5화(5,477자)

한 뼘

꿈에서 만나는 남녀북남 · 기담오

강유채는 아침마다 왼팔 안쪽부터 들여다보았다⁠. 4월 12일 아침에도 그랬다⁠. 살갗에는 아무 자국도 없었다⁠. 손가락으로 쓸면 매끈했다⁠. 그런데 손끝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따끔했다⁠. 가시가 그은 줄이 살갗 밑에 남아 있었다⁠.

유채는 숙직실이라고 말한 순간을 백 번쯤 다시 떠올렸다⁠. 말이 입에서 나가자마자 발밑의 쇠줄이 움찔했고⁠, 말뚝이 한 뼘 자랐다⁠. 광혁이 초소라고 말했을 때도 쇠줄이 먼저 움찔했다⁠. 둘 다 그걸 보았고⁠, 둘 다 입을 다물었다⁠.

요구르트 뚜껑을 따는데 민영이 현관에서 불렀다⁠.

“⁠소방장님⁠, 잠깐 내려가실까요⁠?⁠”

*

아파트 지하 주차장 끝에 철문이 하나 있었다⁠. 「⁠전기실⁠」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철문 안은 전기실이 아니었다⁠. 창문 없는 방에 탁자 하나와 의자 두 개⁠, 천장에 형광등 두 줄⁠. 벽은 소리를 먹는 회색 천으로 덮여 있었다⁠. 유채는 들어서자마자 천장의 스프링클러 헤드부터 찾았다⁠. 없었다⁠.

“⁠여기 불나면 다 죽어요⁠.⁠”

“⁠불날 일 없어요⁠. 앉으세요⁠.⁠”

민영은 오늘 박하사탕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탁자 위에 사진 한 장을 내려놓았다⁠. 위에서 내려다본 흑백 사진이었다⁠. 강둑을 따라 구불구불한 선이 있었고⁠, 선 위에 점 몇 개가 찍혀 있었다⁠. 민영의 볼펜 끝이 점을 하나씩 짚었다⁠.

“⁠위성 사진이에요⁠. 어제 거요⁠. 초소 지붕에 하나⁠, 초소 옆에 하나⁠, 강둑 진지에 둘⁠. 넷이에요⁠.⁠”

유채는 사진을 보지 않았다⁠. 사진을 보지 않으려고 민영의 볼펜을 보았다⁠.

“⁠두 정이라고 하셨죠⁠.⁠”

“⁠그 사람이 잘못 안 거예요⁠.⁠”

“⁠소방장님 귀가 빨개요⁠.⁠”

유채는 손을 들어 귀를 덮었다가 도로 내렸다⁠. 덮어 봐야 늦었다⁠. 민영은 볼펜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딸깍 소리가 나지 않으니 방이 더 조용했다⁠.

“⁠소방장님은 그 사람을 지키려고 숫자를 줄이셨어요⁠. 알아요⁠. 저도 그랬을 거예요⁠.⁠”

“⁠그럼 왜 물어요⁠?⁠”

“⁠저한테도 지킬 사람이 있어서요⁠.⁠”

민영은 잠깐 천장을 보았다⁠. 형광등 하나가 가늘게 떨렸다⁠.

“⁠1999년 6월이었어요⁠. 저는 열 살이었고⁠, 인천 연안부두에서 아버지 배를 기다렸어요⁠. 제칠 순풍호⁠. 아버지가 선장이었어요⁠. 안개가 짙은 날이었대요⁠. 경계선 근처에서 그물을 걷다가 북쪽 경비정이 끌고 갔대요⁠. 처음 한 달은 다들 돌아올 거라고 했어요⁠. 석 달이 지나자 아무도 그 말을 안 했어요⁠. 어머니는 이 년 뒤에 집을 팔았어요⁠.⁠”

민영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수첩에 적힌 것을 읽는 목소리였다⁠. 그래서 더 듣기 힘들었다⁠.

“⁠스물아홉 해 동안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사흘 전 새벽에 소방장님이 부엌에서 그러셨죠⁠. 신의주에 산다⁠. 살아 있다⁠.⁠”

“⁠그건 저쪽 소좌가 한 말이에요⁠.⁠”

“⁠알아요⁠. 저쪽 소좌는 그 말 한마디로 저를 쥐었어요⁠. 저도 알고⁠, 소좌도 알아요⁠.⁠”

민영은 사진을 접어 수첩 사이에 끼웠다⁠.

“⁠이 줄을 제가 놓을 수 있을 것 같으세요⁠? 맞는 숫자가 가야 맞는 말이 와요⁠. 소방장님이 숫자를 줄이면⁠, 저쪽도 우리 아버지 소식을 줄여서 보낼 거예요⁠.⁠”

유채는 대답하지 못했다⁠. 민영이 먼저 일어났다⁠.

“⁠오늘은 집에 다녀오세요⁠. 할머니 뵙고⁠, 내일 저녁에 돌아오세요⁠. 오늘 밤 꿈은 쉬셔도 돼요⁠.⁠”

“⁠왜 보내 줘요⁠?⁠”

“⁠소방장님 얼굴이 안 좋아서요⁠. 얼굴 안 좋은 사람이 보내는 말은 믿을 수가 없어요⁠.⁠”

민영은 문을 열어 주며 처음으로 박하사탕을 하나 내밀었다⁠. 유채는 받지 않고 지나갔다⁠. 계단을 반쯤 올라가다 돌아와서 받았다⁠.

*

망원동 할머니 집은 골목 끝 이층 양옥이었다⁠. 마당에 녹슨 수돗가가 있고⁠, 수돗가 옆에 고무 대야가 엎어져 있었다⁠. 할머니는 마루에 앉아 작은 맷돌로 녹두를 갈고 있었다⁠. 아흔 살 할머니는 허리가 굽었지만 맷돌 손잡이를 돌리는 손목은 아직 빨랐다⁠.

“⁠교육 끝났냐⁠?⁠”

“⁠하루 나왔어⁠.⁠”

“⁠교육에서 하루 내보내 주는 데가 어딨냐⁠. 감옥에서나 그러지⁠.⁠”

유채는 신발을 벗다가 멈칫했다⁠. 할머니는 녹두 간 것을 그릇에 쓸어 담으며 혀를 찼다⁠.

“⁠니 얼굴이 감옥 다녀온 얼굴이다⁠. 들어와⁠. 지짐 해 줄게⁠.⁠”

할머니는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녹두 반죽을 국자로 떠 부었다⁠. 기름이 튀는 소리가 부엌에 가득 찼다⁠. 유채는 식탁에 턱을 괴고 앉아 할머니의 등을 보았다⁠. 할머니가 고향 말을 쓸 때마다 광혁의 말투가 떠올랐다⁠. 기래⁠, 일 없다⁠, 뭐이가⁠.

“⁠할머니⁠, 고향이 신의주였지⁠?⁠”

“⁠신의주 남민동⁠. 압록강 보이는 동네⁠.⁠”

“⁠강이 보였어⁠?⁠”

“⁠보이다마다⁠. 겨울이면 강이 얼어서 애들이 썰매를 탔다⁠. 나도 탔다⁠. 오라비가 끌어 줬지⁠.⁠”

할머니가 지짐을 뒤집었다⁠. 노릇한 면이 위로 올라왔다⁠.

“⁠오라비가 있었어⁠? 처음 듣는데⁠.⁠”

“⁠말 안 했으니 처음 듣지⁠. 니 할아버지도 몰랐다⁠.⁠”

할머니는 지짐을 접시에 옮기고 다음 반죽을 부었다⁠. 기름 소리 사이로 말이 이어졌다⁠.

“⁠1950년 겨울에 피란을 나왔다⁠. 우리 엄마 아버지는 그해 가을에 다 돌아가셨고⁠, 나는 열두 살이었다⁠. 오라비가 나를 데리고 평양까지 걸어 내려왔다⁠. 대동강 다리가 끊겨서 다들 얼음 위로 건넜다⁠. 얼음이 얇아서 쩍쩍 소리가 났다⁠. 오라비가 나를 업고 건넜다⁠. 강 이쪽에 와서 나를 고모한테 넘기고⁠, 오라비는 도로 갔다⁠. 북쪽에 어머니가 있다고⁠.⁠”

“⁠어머니⁠? 돌아가셨다면서⁠.⁠”

할머니의 국자가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오라비 어머니가⁠.⁠”

유채는 오라비 어머니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물으려다 할머니의 등을 보고 그만두었다⁠. 할머니는 지짐을 뒤집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 바꿨다⁠.

“⁠이름이 옥순이라서 평생 순하게 살라는 소리만 들었다⁠. 우리 엄마가 옥같이 순하라고 붙인 이름인데 나는 하나도 안 순했다⁠. 동네에서는 다들 옥순아⁠, 옥순아 했는데 오라비만 순아⁠, 순아⁠, 했다⁠. 먹어라⁠. 식는다⁠.⁠”

“⁠오라비 이름은 뭐였어⁠?⁠”

“⁠영수⁠.⁠”

할머니는 프라이팬을 내려놓고 행주로 손을 닦았다⁠. 그러더니 처음으로 유채를 똑바로 보았다⁠.

“⁠근데 니가 신의주를 왜 묻냐⁠?⁠”

유채는 지짐을 입에 넣었다⁠. 뜨거워서 대답을 못 하는 척했다⁠. 할머니는 오래 보다가 혀를 찼다⁠.

“⁠귀 빨갛다⁠.⁠”

밤에 유채는 할머니 방에서 같이 누웠다⁠. 할머니는 텔레비전 홈쇼핑을 켜 놓고 돌침대 온도를 끝까지 올렸다⁠. 등이 뜨거워서 유채는 이불을 걷어찼다⁠.

“⁠할머니⁠, 오라비 사진은 없어⁠?⁠”

“⁠한 장도 없다⁠. 피란 나올 때 아무것도 못 챙겼다⁠. 오라비 얼굴도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눈썹이 짙었던 건 안다⁠. 웃을 때 소리를 안 냈던 것도⁠.⁠”

유채는 천장을 보았다⁠. 웃을 때 소리를 안 내는 사람을 하나 알았다⁠.

“⁠사진관에서 한 장 찍은 적은 있다⁠. 피란 나오기 전 가을에⁠, 동네에 사진사가 왔었다⁠. 살구나무 앞에서⁠. 그 사진은 오라비가 가졌지⁠.⁠”

홈쇼핑 진행자가 「⁠마감 임박⁠」을 외쳤다⁠. 할머니는 리모컨으로 소리를 줄이고 돌아누웠다⁠.

“⁠자라⁠. 니 할미 말 안 들으면⁠.⁠”

“⁠섭섭하지⁠.⁠”

할머니가 등을 돌린 채로 웃었다⁠. 웃음소리가 돌침대에 눌려 작게 났다⁠.

*

4월 14일 새벽 세 시 십 분⁠, 유채는 안가의 작은방에서 전극을 붙이고 눈을 감았다⁠. 모래는 따뜻했다⁠. 철조망은 그대로 가슴 높이였다⁠. 뾰족한 가시가 분홍빛을 받아 반짝였다⁠.

광혁은 철조망에서 두 걸음 떨어져 서 있었다⁠. 유채도 두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멈췄다⁠. 가시가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다가가면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팔은⁠?⁠”

“⁠따끔해요⁠. 자국은 없고⁠.⁠”

“⁠나도 손등이 따끔하다⁠.⁠”

광혁은 철조망 너머 바다 끝을 보다가 말을 꺼냈다⁠.

“⁠단둥에 와 줄 수 있나⁠? 강 건너에서 유람선이 다닌다⁠. 초소 앞을 지난다⁠. 그거 타고 한 번만 지나가라⁠.⁠”

“⁠왜요⁠?⁠”

“⁠소좌는 모른다⁠. 내가 너를 한 번 보고 싶어서다⁠.⁠”

쇠줄이 움찔했다⁠. 말뚝이 한 뼘 더 자랐다⁠. 철조망이 유채의 쇄골까지 올라왔다⁠. 광혁이 제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광혁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유채는 숨을 들이쉬었다⁠. 구조 현장에서 문을 부수기 전에 쉬는 숨이었다⁠.

“⁠나 숙직실 아니에요⁠.⁠”

광혁이 고개를 들었다⁠.

“⁠정보기관 숙소예요⁠. 경기도 아파트 12층⁠. 머리에 전깃줄 열여섯 개 붙이고 자요⁠. 지난번에 숙직실이라고 한 거⁠, 거짓말이에요⁠.⁠”

쇠줄이 다시 움찔했다⁠. 이번에는 아래로 내려갔다⁠. 말뚝이 한 뼘 줄었다⁠. 철조망이 쇄골에서 가슴께로 내려왔다⁠. 유채는 제 눈을 믿을 수 없어서 쇠줄을 보고 광혁을 보고 다시 쇠줄을 보았다⁠.

광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초소 아니다⁠. 신의주 시내 보위부 신문실이다⁠. 시멘트 바닥에 철제 침대⁠. 국수가 맛이 없다⁠.⁠”

쇠줄이 한 뼘 내려갔다⁠. 허리께였다⁠.

“⁠단둥은 소좌가 부르라 했다⁠. 내가 보고 싶다는 것도 참말이지만⁠, 부르라 한 건 소좌다⁠.⁠”

또 한 뼘⁠. 철조망이 허벅지까지 내려왔다⁠. 가시 끝이 다시 뭉툭해졌다⁠.

둘은 한참 서로를 보았다⁠. 유채가 먼저 웃었다⁠. 웃다가 울 것 같아서 웃음을 더 크게 냈다⁠.

“⁠이거 거짓말 탐지기예요⁠?⁠”

“⁠그런 기계가 있나⁠?⁠”

“⁠있어요⁠. 경찰서에⁠.⁠”

“⁠남쪽 경찰서에는 철조망이 있나⁠?⁠”

“⁠아니요⁠, 그건 그냥 기계예요⁠.⁠”

광혁이 말뚝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못 알아들은 말이 나왔을 때 하던 신호였다⁠. 유채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물에 주저앉았다⁠. 바짓단이 다 젖었다⁠.

유채는 앉은 채로 참말을 하나 더 했다⁠.

“⁠우리 할머니 고향이 신의주래요⁠. 남민동⁠. 압록강 보이는 동네⁠.⁠”

광혁의 눈이 커졌다⁠.

“⁠남민동이면 우리 집에서 걸어서 이십 분이다⁠.⁠”

쇠줄이 또 한 뼘 내려갔다⁠. 무릎이었다⁠. 3월 첫 밤 이후로 가장 낮은 높이였다⁠.

광혁이 철조망 앞으로 다가왔다⁠. 유채도 일어나서 다가갔다⁠. 둘 사이에 무릎 높이의 쇠줄 하나만 남았다⁠. 광혁이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 끝이 쇠줄 위 허공에서 멈췄다⁠. 유채도 손을 내밀었다⁠.

손끝이 닿았다⁠.

광혁의 손가락은 차갑고 거칠었다⁠. 총 멜빵에 쓸린 굳은살이 검지 마디에 있었다⁠. 유채의 손가락은 뜨거웠다⁠. 광혁이 움찔하더니 손을 빼지 않았다⁠. 둘은 손가락 다섯 개를 한 마디씩 맞댔다⁠. 분홍빛이 두 사람의 손등 위로 번졌다⁠. 숨을 쉴 때마다 맞댄 손끝이 조금씩 밀렸다가 돌아왔다⁠. 유채는 손이 떨어질까 봐 숨을 참았다⁠.

“⁠오지 말라⁠.⁠”

광혁이 말했다⁠. 쇠줄은 움직이지 않았다⁠. 참말이었다⁠.

“⁠갈 거예요⁠.⁠”

유채가 말했다⁠. 쇠줄은 움직이지 않았다⁠. 참말이었다⁠.

“⁠소좌가 무슨 생각인지 모른다⁠.⁠”

“⁠담당관도 무슨 생각인지 몰라요⁠. 그래도 갈 거예요⁠. 당신 얼굴 한 번 보려고⁠.⁠”

광혁의 귀 끝이 붉어졌다⁠. 광혁은 손끝을 떼지 않은 채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려도 귀는 보였다⁠.

*

아침 일곱 시⁠, 유채는 전극을 떼고 부엌으로 나갔다⁠. 민영은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며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유채는 민영 맞은편에 앉지 않고 선 채로 말했다⁠.

“⁠단둥 갑니다⁠. 유람선 타고 초소 앞을 지나갈 거예요⁠.⁠”

민영은 서류를 넘기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서류 한 장을 빼서 식탁 위로 밀었다⁠. 비행기 표였다⁠. 인천에서 선양으로 가는 표⁠, 날짜는 4월 22일⁠, 이름 칸에 강유채라고 찍혀 있었다⁠.

“⁠어제 끊어 뒀어요⁠.⁠”

유채는 비행기 표를 내려다보았다⁠. 왼손 손끝이 아직 따끔했다⁠. 가시에 긁힌 따끔함과는 달랐다⁠. 차갑고 거친 손가락 다섯 개가 닿았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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