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13자)

신문실

꿈에서 만나는 남녀북남 · 기담오

리광혁은 신문실 시멘트 바닥이 군화 밑창을 뚫고 올라오는 냉기를 느꼈다⁠. 4월 10일 오후였다⁠. 신의주 시내의 회색 건물 삼층⁠, 복도 끝 방이었다⁠. 철제 탁자 하나⁠, 의자 둘⁠, 벽에 붙은 철제 침대 하나⁠. 창에는 쇠창살이 있었고⁠, 창살 사이로 지붕들 너머 압록강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보였다⁠. 벽시계는 탁자 위 높이에 박혀 있었다⁠. 누워서도 보이는 높이였다⁠.

“⁠오늘부터 여기서 잔다⁠.⁠”

오창익이 담요 한 장을 침대에 던졌다⁠. 담요에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초소는 철민이하고 초소장이 본다⁠. 너는 내가 자라 할 때 자고⁠, 깨라 할 때 깬다⁠. 남쪽 여자도 그 시각에 맞춰 자게 해라⁠. 저쪽 담당관이 알아서 맞추겠지⁠.⁠”

“⁠제가 무슨 죄를 지었습네까⁠?⁠”

창익은 의자를 빼서 앉았다⁠. 담배 개비를 탁자 위에 굴렸다⁠. 개비가 탁자 끝까지 굴러가 떨어지기 직전에 손가락으로 막았다⁠.

“⁠죄는 아직 안 지었다⁠. 지금부터 정하자⁠.⁠”

*

창익은 가죽 잠바 안주머니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글씨가 뒷면까지 배어 있었다⁠.

“⁠하구 어부 박가의 진술이다⁠. 3월 마지막 밤⁠, 그물 손보러 강둑에 나왔다가 초소 손전등을 봤단다⁠. 빛이 강 위를 훑다가 한자리에서 멈추더니⁠, 물로 뚝 떨어졌단다⁠. 엔진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빛이 물에 박혀 있었단다⁠.⁠”

광혁은 종이를 보지 않았다⁠. 창익이 종이를 접어 도로 넣었다⁠.

“⁠너는 배를 봤다⁠. 그리고 보냈다⁠.⁠”

“⁠배를 봤으면 쐈습네다⁠.⁠”

“⁠기래⁠, 쐈어야지⁠. 기런데 안 쐈다⁠.⁠”

창익은 화를 내지 않았다⁠. 목소리가 더 느려졌을 뿐이었다⁠. 창밖에서 짐을 실은 소달구지가 덜컹거리며 지나갔다⁠.

“⁠내가 이걸 위에 올리면 너는 다시는 강가에 못 선다⁠. 너희 어머니 배급도 끊긴다⁠. 너희 할아버지 약도⁠. 철민이는 같은 초소였으니 같이 간다⁠.⁠”

“⁠철민이는 아무것도 모릅네다⁠.⁠”

“⁠안다⁠. 그 아이가 아는 건 중국 드라마하고 감자뿐이다⁠.⁠”

창익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창살 너머로 연기를 내보내고 한참 강을 보았다⁠. 강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반짝였다⁠.

“⁠스무 해 전 봄이었다⁠. 내 누이가 열아홉이었다⁠.⁠”

광혁은 고개를 들었다⁠. 창익의 목소리에는 아무 높낮이가 없었다⁠. 근무 보고를 읽는 목소리였다⁠.

“⁠단둥에서 온 중개인이 누이한테 강 건너면 일자리가 있다 했다⁠. 얼음이 반쯤 녹은 3월 끝이었다⁠. 밤에 둘이 얼음 위로 나갔는데⁠, 가운데쯤에서 얼음이 갈라졌다⁠. 중개인은 혼자 뛰어서 건너편으로 갔다⁠. 돌아보지도 않았다고⁠, 강가에서 본 사람이 그러더라⁠.⁠”

창익은 연기를 한 번 더 뱉었다⁠.

“⁠사흘 뒤에 하구 갈대밭에서 누이를 찾았다⁠. 내가 찾았다⁠. 그때 나는 막 보위부에 들어온 서른둘이었다⁠.⁠”

탁자 위에서 담뱃재가 떨어졌다⁠. 창익은 재를 손가락으로 쓸어 바닥에 털었다⁠.

“⁠그 뒤로 스무 해⁠, 강가에서 건져 낸 사람을 세는 걸 그만뒀다⁠. 건너다 빠진 사람⁠, 건너가서 팔려 간 사람⁠, 다시 끌려온 사람⁠. 강을 건너게 해 주는 놈들이 사람을 죽인다⁠. 나는 강을 막는다⁠. 막아야 덜 빠진다⁠.⁠”

“⁠그 배는 강을 건너지 않았습네다⁠. 바다로 나갔고⁠, 살았습네다⁠.⁠”

“⁠이번에는 살았지⁠.⁠”

창익이 광혁을 똑바로 보았다⁠. 창익의 눈 밑에 주름이 깊었다⁠.

“⁠남쪽 기관은 단둥의 중개인들을 안다⁠. 누가 누구를 건네주는지⁠, 돈은 어디로 가는지⁠. 너는 그 여자를 통해 그 이름들을 받아 와라⁠. 그러면 박가 진술은 내 서랍에서 안 나온다⁠.⁠”

“⁠중개인 중에도 사람 살리는 사람이 있습네다⁠.⁠”

“⁠사람 살리는 중개인은 얼음 위에서 뛰어 도망 안 간다⁠.⁠”

광혁은 대꾸하지 못했다⁠. 창익은 담배를 비벼 끄고 일어나다가 다시 앉았다⁠.

“⁠서민영 이름 하나로 어떻게 그 아버지를 찾았는지 궁금하지 않나⁠?⁠”

광혁은 말이 없었다⁠. 창익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주에 남쪽에서 데려온 늙은 선장이 하나 산다⁠. 스물아홉 해 동안 술만 마시면 딸 이름을 불렀다⁠. 민영아⁠, 민영아⁠. 신의주 보위부에서 그 이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창익은 문을 열고 나가며 한마디를 남겼다⁠.

“⁠오늘 밤은 세 시 십 분에 자라⁠. 그 여자 소식이 궁금하다⁠.⁠”

*

해가 질 무렵⁠, 복도에서 창익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이 얇아서 말이 거의 그대로 넘어왔다⁠. 창익은 전화기를 들고 있었고⁠, 상대에게 높임말을 썼다⁠.

“⁠네⁠, 국장 동지⁠. 흰 천은 올렸습네다⁠. 남쪽이 봤는지는 단둥 쪽 사람이 확인했습네다⁠. 유람선에서 한국 관광객 하나가 초소만 찍더랍네다⁠. 네⁠. 아직은 저 혼자 봅네다⁠. 위에 올릴 만한지는 제가 더 보고 말씀드리갔습네다⁠.⁠”

전화가 끊기고 한참 조용했다⁠. 광혁은 문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창익의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다가 멀어졌다⁠. 국장이라는 말이 신문실 안에 오래 남았다⁠. 소좌 위에는 국장이 있었고⁠, 국장 위에도 누군가 있었다⁠. 꿈 이야기가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고 있었다⁠.

*

저녁에 경비병이 강냉이 국수 한 그릇을 들여왔다⁠. 열여덟쯤 된 앳된 얼굴이었다⁠. 경비병은 국수를 탁자에 놓고도 나가지 않고 문가에서 머뭇거렸다⁠.

“⁠하사 동지⁠, 정말 꿈에서 남쪽 여자를 만납네까⁠?⁠”

“⁠누가 그러더나⁠?⁠”

“⁠복도에 다 소문났습네다⁠. 보위부 국수는 맛이 없어서 다들 소문으로 배를 채웁네다⁠.⁠”

광혁은 국수를 한 젓가락 떴다⁠. 정말 맛이 없었다⁠. 국물이 미지근하고 면이 퍼져 있었다⁠.

“⁠남쪽 여자들은 정말 머리를 노랗게 물들입네까⁠?⁠”

“⁠갈색이다⁠.⁠”

“⁠갈색이면⁠, 감자 색입네까⁠?⁠”

“⁠감자보다 진하다⁠.⁠”

경비병은 무슨 큰 비밀을 들은 얼굴로 문을 닫고 나갔다⁠. 복도에서 “⁠감자보다 진하답네다⁠” 하고 누군가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광혁은 국수를 다 먹고 침대에 누웠다⁠. 시멘트 벽에서 냉기가 스며 나왔다⁠. 어머니가 생각났다⁠. 할아버지 약은 이번 달 것까지만 남았다고 했다⁠. 창익이 서랍을 열면 다음 달 약은 없었다⁠. 광혁은 벽시계를 보았다⁠. 세 시까지는 여덟 시간이 남았다⁠.

*

4월 11일 새벽 세 시 십 분⁠, 광혁의 맨발이 모래를 밟았다⁠. 모래가 따뜻했다⁠. 유채가 먼저 와서 물가에 앉아 있었다⁠. 활동복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었고⁠, 무릎에 턱을 괴고 있었다⁠.

“⁠흰 천 봤대요⁠. 사진도 봤어요⁠. 하나는 속옷이던데요⁠.⁠”

“⁠철민이 거다⁠. 아침에 돌려 달라고 울었다⁠.⁠”

“⁠돌려줬어요⁠?⁠”

“⁠초소장이 지붕에서 걷어 오다가 바람에 날렸다⁠. 강으로⁠.⁠”

유채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썩였다⁠. 웃음소리가 무릎 사이로 새어 나왔다⁠.

“⁠그럼 지금 철민 씨 속옷은 단둥으로 가고 있어요⁠?⁠”

“⁠중국 땅에 처음 들어간 우리 초소 물건이다⁠.⁠”

“⁠오늘은 잘 잤어요⁠? 지난번엔 늦게 잤다면서요⁠.⁠”

광혁은 대답을 고르는 동안 철조망 말뚝을 보았다⁠. 신문실 이야기를 하면 유채는 물속으로 걸어 들어올 사람이었다⁠. 물이 가슴까지 오는 데는 못 들어간다고 하면서도⁠, 들어올 사람이었다⁠.

“⁠초소다⁠. 잘 잤다⁠. 철민이가 감자를 또 반 쪼개 줬다⁠.⁠”

말이 입에서 나가는 순간 발목이 따끔했다⁠. 광혁은 내려다보았다⁠. 물속에서 철조망 쇠줄이 움찔하더니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말뚝이 물 밖으로 쑥쑥 자랐다⁠. 무릎에서 허벅지로⁠, 허벅지에서 허리로⁠.

“⁠이게 뭐예요⁠?⁠”

유채가 벌떡 일어났다⁠. 쇠줄은 멈추지 않았다⁠. 둘 사이에서 철조망이 허리를 넘었다⁠. 유채가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나도 잘 있어요⁠. 숙직실이에요⁠. 어제 출동 두 번 나갔어요⁠. 팀장님이 또 개그 했어요⁠.⁠”

철조망이 가슴께까지 치솟았다⁠. 뭉툭하던 가시 끝이 뾰족하게 갈라졌다⁠. 쇠줄 마디마다 가시가 새로 돋았다⁠. 유채가 쇠줄을 잡아 누르려다 “⁠아⁠!⁠” 하고 손을 뺐다⁠. 왼팔 안쪽에 붉은 줄이 하나 그어졌다⁠. 핏방울 하나가 맺혔다가 물에 떨어져 흩어졌다⁠.

“⁠만지지 말라⁠!⁠”

광혁이 소리쳤다⁠. 제 목소리가 그렇게 큰 줄 몰랐다⁠. 유채는 팔을 감싸 쥐고 철조망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물이 무릎께에서 출렁였다⁠.

“⁠3월 첫 밤에도 이만했어요⁠. 가슴까지⁠.⁠”

“⁠기래⁠. 그러다 점점 내려갔다⁠.⁠”

“⁠왜 다시 올라와요⁠?⁠”

광혁은 말뚝을 보았다⁠. 쇠줄이 움찔한 것은 초소라는 말이 입에서 나간 바로 다음이었다⁠. 광혁은 그걸 알았다⁠. 알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신문실을 말해야 했다⁠.

유채도 말뚝을 보고 있었다⁠. 유채의 얼굴에 무엇인가가 지나갔다⁠. 유채는 팔을 감싼 손에 힘을 주고 입술을 깨물었다⁠. 유채도 말하지 않았다⁠.

둘은 가슴 높이의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닷가에 온 뒤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늘 끝 분홍빛이 아까보다 엷어 보였다⁠.

“⁠철조망이 무슨 경비대원이가⁠. 왜 갑자기 근무를 서나⁠.⁠”

광혁이 말하자 유채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 끝에 눈가가 젖어 있었다⁠.

“⁠팔은 일 없나⁠?⁠”

“⁠일 없어요⁠. 구조하다 긁힌 게 한두 번인가요⁠.⁠”

유채는 팔을 등 뒤로 감췄다⁠. 광혁은 가시 사이로 손을 넣어 보려다 그만두었다⁠. 가시가 손등을 스쳤다⁠.

*

깨어 보니 다섯 시 반이었다⁠. 광혁은 침대에 누운 채 제 손등을 보았다⁠. 아무 자국도 없었다⁠. 물건은 꿈에서 나오지 못했다⁠. 상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손등이 따끔했다⁠. 따끔함은 나왔다⁠. 유채의 팔도 지금쯤 따끔할 것이었다⁠.

광혁은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초소라는 한마디였다⁠. 철조망은 거짓말을 알아들었다⁠. 그렇다면 유채가 숙직실이라고 했을 때 쇠줄이 한 번 더 치솟은 것도 알아들은 것이었다⁠. 유채도 지금 숙직실에 없었다⁠.

광혁은 유채를 의심했다는 것이 싫어서 돌아누웠다⁠. 벽의 냉기가 뺨에 닿았다⁠.

여섯 시에 문이 열렸다⁠. 창익이 김이 오르는 사기 컵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하나를 광혁 앞에 놓았다⁠. 옥수수 차였다⁠.

“⁠어땠나⁠?⁠”

“⁠만났습네다⁠.⁠”

“⁠무슨 얘기를 했나⁠?⁠”

“⁠팔을 긁혔습네다⁠. 그 여자가⁠.⁠”

창익은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광혁을 보다가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더 묻지 않았다⁠. 광혁은 뜨거운 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손바닥이 데일 만큼 뜨거웠는데도 놓지 않았다⁠. 손등의 따끔함이 열기에 조금 묻혔다⁠.

“⁠어제 복도에서 국장 동지 말씀을 들었습네다⁠.⁠”

“⁠문이 얇지⁠.⁠”

“⁠국장 동지도 압네까⁠?⁠”

“⁠아직은 나 혼자 안다⁠. 오래가지는 않는다⁠. 흰 천 두 장이 지붕에 올라간 걸 본 눈이 이쪽에도 많다⁠.⁠”

창익은 컵 바닥에 남은 옥수수 알갱이를 들여다보았다⁠.

“⁠위로 올라가면 이 꿈은 내 손을 떠난다⁠. 그 전에 내가 쓸 수 있는 만큼 쓴다⁠. 너도 그 전에 네 것을 챙겨라⁠.⁠”

“⁠제 것이 뭡네까⁠?⁠”

“⁠어머니 약⁠, 할아버지 약⁠, 철민이 제대⁠.⁠”

창익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했다⁠. 셋을 접고 나자 주먹이 되었다⁠. 대신 창가로 가서 창살 사이로 강을 보았다⁠. 아침 햇빛에 강물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하얗게 빛났다⁠.

“⁠중개인 이름은 천천히 받아 와도 된다⁠.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무슨 일입네까⁠?⁠”

창익은 돌아서지 않고 말했다⁠.

“⁠그 여자를 단둥으로 불러라⁠. 유람선 타고 강 건너에 오라 해라⁠. 내 눈으로 한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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