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52자)

잠 안 재우기

꿈에서 만나는 남녀북남 · 기담오

리광혁은 쾅 소리에 눈을 떴다⁠. 한 시간 전에도 쾅이었고⁠, 두 시간 전에도 쾅이었다⁠. 5월 11일 새벽 세 시였다⁠. 신의주 보위부 건물 지하 구류장⁠, 철창이 달린 시멘트 방이었다⁠. 바닥에 짚 깔개 하나⁠, 구석에 양동이 하나⁠. 창은 없었다⁠. 복도의 알전구 불빛이 철창 사이로 들어와 바닥에 줄무늬를 그렸다⁠.

“⁠하사 동지⁠, 미안합네다⁠.⁠”

복도에서 경비병이 속삭였다⁠. 신문실에서 국수를 나르던 앳된 경비병이었다⁠. 국장의 명령은 짧았다고 했다⁠. 한 시간마다 문을 두드려라⁠. 잠들게 두지 마라⁠. 줄은 당분간 닫는다⁠.

“⁠시키는 대로 합네다⁠. 저도 싫습네다⁠.⁠”

“⁠알았다⁠. 두드려라⁠.⁠”

경비병은 다음 한 시간 뒤에 또 두드렸다⁠. 이번에는 쾅⁠, 쾅쾅⁠, 쾅⁠. 박자가 있었다⁠. 광혁이 철창을 보자 경비병이 머쓱하게 웃었다⁠.

“⁠같은 소리만 내면 저도 졸려서⁠, 노래 박자로 두드립네다⁠. 이건 「⁠휘파람⁠」입네다⁠.⁠”

“⁠다음 시간엔 다른 노래 하라⁠.⁠”

“⁠알갔습네다⁠. 하사 동지가 좋아하는 노래 있습네까⁠?⁠”

“⁠남쪽 노래는 모른다⁠.⁠”

“⁠저도 모릅네다⁠.⁠”

경비병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의자로 돌아갔다⁠. 다음 쾅은 행진곡 박자였다⁠.

*

잠을 못 자는 몸은 이상하게 굴었다⁠. 사흘째부터 눈알이 모래알을 굴리는 것처럼 따끔했다⁠. 닷새째에는 손끝이 저렸다⁠. 이레째에는 시멘트 바닥이 가끔 물렁하게 느껴졌다⁠. 발밑이 모래처럼 꺼지는 것 같아 내려다보면 시멘트였다⁠.

쾅 소리 사이사이에 몇 분씩 깜빡 졸았다⁠. 그럴 때마다 바닷가가 잠깐 보였다⁠. 모래는 차가웠고⁠, 하늘은 잿빛에 가까웠다⁠. 건너편은 비어 있었다⁠. 세 시 십 분이 아니었다⁠. 철조망은 볼 때마다 흐려졌다⁠. 말뚝이 물속에서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가늘어졌다⁠. 아흐레째 깜빡 졸았을 때는 쇠줄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광혁은 비어 있는 건너편 모래에서 발자국 하나를 보았다⁠. 맨발 자국이었다⁠. 물이 밀려와 가장자리부터 지우고 있었다⁠. 깨어 보니 쾅 소리가 막 끝난 참이었다⁠.

광혁은 깔개 위에 앉아 손가락을 접어 날을 세었다⁠. 열 손가락을 다 접고 하나를 다시 폈다⁠. 열하루⁠. 유채는 세 시 십 분에 누웠을 것이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

5월 13일 오후⁠, 창익이 구류장에 왔다⁠. 철창 앞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았다⁠. 경비병에게 담배 한 개비를 쥐여 주고 복도 끝으로 보냈다⁠. 경비병은 담배를 귀에 꽂고 행진곡 박자로 걸어갔다⁠.

창익은 오래 광혁을 보았다⁠. 광혁의 눈 밑이 검게 꺼져 있었다⁠. 입술이 갈라져 있었고⁠, 손등에는 깔개 짚에 긁힌 자국이 몇 줄 나 있었다⁠. 창익은 긁힌 자국을 세지 않고 눈을 돌렸다⁠.

“⁠철민이 진술은 내가 찢었다⁠. 상등병은 그 밤 초소에서 코 골며 잤다⁠. 그걸로 끝났다⁠.⁠”

“⁠감사합네다⁠.⁠”

“⁠고맙다고 할 일 아니다⁠. 네가 자백했으니 철민이 거짓말이 쓸 데가 없어졌을 뿐이다⁠.⁠”

창익은 담배를 꺼내 손가락 사이에서 굴렸다⁠. 오늘은 불을 붙이지 않았다⁠.

“⁠하구 갈대밭에서 누이를 찾았다고 했지⁠. 하나 말 안 한 게 있다⁠.⁠”

광혁은 철창 쪽으로 다가앉았다⁠.

“⁠누이가 강을 건너려 한 건 어머니 약값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 막 보위부에 들어갔고⁠, 월급으로는 약을 못 샀다⁠. 누이가 단둥에 가서 한 해만 식당 일을 하겠다 했을 때 내가 뭐라 했는지 아나⁠? 강 건너면 너는 죽는다⁠. 그 말만 했다⁠. 약값 얘기는 안 했다⁠.⁠”

창익의 손가락이 담배를 멈췄다⁠.

“⁠누이는 내 말이 맞았다는 걸 보여 주고 갔다⁠.⁠”

복도 끝에서 경비병이 기침을 했다⁠. 알전구가 지지직 떨었다⁠.

“⁠너는 목선을 보내 놓고 손전등을 돌렸다고 자백했다⁠. 나는 누이를 못 건네주고 강을 막는 사람이 됐다⁠. 우리 둘 중 누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지금 위에서는 이 줄이 다시 필요하다⁠.⁠”

“⁠줄은 닫는다 하셨습네다⁠.⁠”

“⁠국장 동지가 닫았다가 다시 연다⁠. 중국을 거치는 길은 느리고⁠, 중국이 다 듣는다⁠. 남쪽에서는 선원 가족들이 날마다 길에 나와 앉는단다⁠. 베이징에서도 한마디 했다⁠. 바다에 사람을 오래 두지 말라고⁠. 다섯을 계속 잡고 있으면 우리가 욕먹는다⁠.⁠”

창익은 몸을 앞으로 숙였다⁠.

“⁠판문점에서 만나자는 말을 전해라⁠. 남과 북이 한 방에 마주 앉는 자리다⁠. 다섯을 넘기고 셋 일을 정리한다⁠. 참말만 전해라⁠. 한 글자도 빼지 말고⁠, 한 글자도 보태지 말고⁠.⁠”

“⁠조건이 있습네다⁠.⁠”

“⁠또 조건이냐⁠.⁠”

창익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광혁은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할아버지를 판문점에 데려가 주십시오⁠. 옥순이 할머니하고 한 번 만나게⁠. 할아버지는 아흔셋입네다⁠. 이번이 아니면 없습네다⁠.⁠”

“⁠하나⁠.⁠”

“⁠철민이는 제대할 때까지 아무도 건드리지 않게⁠.⁠”

“⁠둘⁠. 그건 이미 했다⁠.⁠”

“⁠셋을 억지로 돌려받지 마십시오⁠. 그 셋은 제가 보냈습네다⁠.⁠”

창익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 개비를 귀에 꽂았다⁠. 한참 복도 천장을 보았다⁠.

“⁠셋은 국장 동지가 못 놓는다⁠. 놓으면 우리 공민이 남쪽에 꾀여 갔다는 말을 우리 입으로 거두는 꼴이 된다⁠.⁠”

“⁠기럼 셋이 어떻게 되는 겁네까⁠?⁠”

“⁠영상 편지로 하자⁠. 셋이 판문점에 오는 게 아니라⁠, 셋이 남쪽에서 찍은 얼굴을 우리 쪽 가족이 본다⁠. 제 입으로 남겠다고 하면⁠, 국장 동지한테 나는 그걸로 덮자고 말하겠다⁠. 산 얼굴을 보면 가족이 조용해진다⁠. 가족이 조용하면 국장 동지도 조용하다⁠.⁠”

광혁은 창익을 보았다⁠. 창익의 눈 밑 주름이 알전구 아래에서 더 깊었다⁠.

“⁠소좌 동지는 뭘 가져가십니까⁠?⁠”

창익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시멘트를 긁었다⁠.

“⁠서덕환이를 데려간다⁠. 판문점에⁠. 딸한테 십 분⁠. 그 늙은이가 스물아홉 해 동안 술만 마시면 부르던 이름을 한 번 눈앞에서 부르게⁠.⁠”

“⁠그게 소좌 동지 것입네까⁠?⁠”

“⁠내가 서민영을 그 이름으로 쥐었다⁠. 쥐었으면 놓는 것도 내가 한다⁠.⁠”

창익은 복도 끝을 향해 손짓했다⁠. 경비병이 뛰어왔다⁠.

“⁠오늘부터 세 시부터 네 시까지는 두드리지 마라⁠.⁠”

“⁠네 시 반은 어떻게 합네까⁠?⁠”

“⁠네 시 반에는 두드려라⁠. 대신 조용한 노래로⁠.⁠”

*

5월 14일 오후⁠, 창익은 광혁을 지프에 태워 집으로 데려갔다⁠.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창익은 골목 어귀에서 수갑을 풀어 주며 말했다⁠. 한 시간이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나오다가 광혁을 보고 부지깽이를 떨어뜨렸다⁠. 광혁의 꺼진 눈 밑을 손가락으로 한 번 쓸고는 아무 말 없이 솥뚜껑을 열었다⁠. 감자가 네 알이었다⁠. 어머니는 세 알을 광혁 그릇에 담았다⁠.

할아버지 방에서 광혁은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있었다⁠. 광혁이 할아버지의 마른 손을 잡았다⁠.

“⁠할아버지⁠. 엿새 뒤에 판문점에 갑네다⁠. 옥순이 할머니가 남쪽에서 옵네다⁠.⁠”

할아버지의 눈꺼풀이 떨렸다⁠. 탁한 눈동자가 천장을 헤매다 광혁에게 왔다⁠.

“⁠순아가⁠.⁠”

“⁠예⁠.⁠”

할아버지는 한참 숨만 쉬었다⁠. 그러다 손가락으로 벽을 가리켰다⁠. 벽에 걸린 낡은 털모자였다⁠. 광혁이 모자를 내려 할아버지 가슴에 올려놓자 할아버지가 모자를 두 손으로 쥐었다⁠.

“⁠이거 쓰고 간다⁠. 순아가 떠준 거다⁠.⁠”

부엌에서 어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오월에 털모자가 뭐요⁠! 땀띠 납네다⁠!⁠”

“⁠쓰고 간다⁠.⁠”

할아버지 목소리가 처음으로 커졌다⁠. 어머니는 부엌 문간에 서서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그러더니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투덜거렸다⁠.

“⁠남쪽 할머니 만나는데 옷이 이것뿐이니⁠. 옆집 영감한테 양복저고리라도 빌려야갔다⁠. 그 영감 저고리는 소매가 짧은데⁠.⁠”

어머니가 대문을 나서는 소리가 들렸다⁠. 창익은 골목 지프에 기대 서서 담배를 피우다가 어머니가 옆집으로 뛰어가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광혁은 창익이 웃음을 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창익의 어깨가 두 번 들썩였고⁠, 담배 연기가 들썩임을 따라 끊겼다⁠. 보위부 소좌도 남의 집 영감 양복저고리 앞에서는 웃음을 참았다⁠.

*

5월 15일 새벽 세 시 십 분⁠. 광혁은 짚 깔개 위에 누워 눈을 감았다⁠. 열하루 동안 감기지 않던 눈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시멘트 바닥이 물렁해지는가 싶더니 발바닥에 모래가 닿았다⁠.

모래가 따뜻했다⁠.

하늘이 분홍빛과 하늘빛으로 번져 있었다⁠. 물이 발목에서 찰랑였다⁠. 광혁은 철조망을 찾았다⁠. 쇠줄은 물 밑에 있었다⁠. 말뚝 끝이 물 위로 겨우 손톱만큼 나와 있었고⁠, 쇠줄은 발목 아래 물속에서 반쯤 녹은 채 물결에 흔들렸다⁠. 가시는 하나도 없었다⁠. 쇠줄 군데군데가 끊겨 실처럼 풀어져 물에 흩어져 있었다⁠.

철조망 건너편에 유채가 서 있었다⁠.

유채는 맨발이었고⁠, 하나로 묶은 갈색 머리가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유채가 광혁을 보았다⁠.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술이 달싹이다 멈췄다⁠. 그러더니 유채가 물을 걷어차며 달려왔다⁠. 물보라가 광혁의 군복 바짓단까지 튀었다⁠.

유채는 물 밑의 쇠줄 바로 앞에서 멈췄다⁠. 넘지는 않았다⁠. 둘 사이에 발목 높이의 물과⁠, 물 밑에 가라앉은 쇠줄 한 가닥만 있었다⁠. 유채의 발가락과 광혁의 발가락이 쇠줄을 사이에 두고 마주 닿았다⁠.

“⁠늦었구만⁠.⁠”

유채가 광혁의 말투를 흉내 냈다⁠.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불 끄고 왔다⁠.⁠”

“⁠무슨 불이요⁠?⁠”

“⁠나라 불⁠.⁠”

유채가 웃다가 울었다⁠. 우는 얼굴로 광혁의 군복 가슴을 주먹으로 한 번 쳤다⁠. 주먹이 닿았다⁠. 철조망 너머로 처음 닿은 주먹이었다⁠. 광혁은 유채의 주먹을 손으로 감쌌다⁠. 유채가 이마를 광혁의 쇄골에 댔다⁠. 하나로 묶은 머리 끝이 광혁의 목을 간질였다⁠. 유채의 숨이 군복 천을 뚫고 살갗에 닿았다⁠. 뜨거웠다⁠. 광혁은 유채의 등에 팔을 둘렀다⁠. 활동복 아래 넓은 어깨뼈가 손바닥에 잡혔다⁠. 둘은 물 밑 쇠줄을 사이에 두고 한참 그렇게 서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서로의 가슴이 밀렸다가 돌아왔다⁠.

“⁠철조망이 다 녹았어요⁠. 나 혼자 오는 동안 조금씩⁠.⁠”

“⁠나도 봤다⁠. 졸다가⁠.⁠”

“⁠여드레째엔 아예 없었어요⁠.⁠”

“⁠지금은 있다⁠. 물 밑에⁠.⁠”

광혁은 유채의 머리카락에 턱을 묻은 채로 말했다⁠. 각진 턱이 갈색 머리 위에 닿았다⁠.

“⁠열하루 동안 거짓말을 할 사람이 없었으니 철조망도 할 일이 없었겠지⁠.⁠”

“⁠이제 다시 할 일 생겼어요⁠?⁠”

“⁠없게 할 거다⁠.⁠”

쇠줄은 물 밑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광혁은 유채를 놓고 한 걸음 물러났다⁠. 군복 윗단추를 채웠다⁠. 유채가 단추 채우는 손을 보고 눈가를 손등으로 닦았다⁠. 나라 전갈을 받는 사람의 얼굴로 바꾸는 것이 보였다⁠.

“⁠전갈이다⁠. 소좌가 한 글자도 빼지 말고 보태지 말라 했다⁠.⁠”

“⁠말해요⁠.⁠”

“⁠북쪽에서 남쪽에 전한다⁠. 오월 스무날 정오⁠, 판문점에서 만나자⁠. 제삼 해성호 선원 다섯을 그 자리에서 넘긴다⁠. 지난 3월 남쪽으로 간 세 사람의 일은 그 자리에서 정한다⁠. 이산가족 한 쌍⁠, 리영수와 이옥순을 그 자리에서 만나게 한다⁠. 그리고 서민영 담당관에게⁠. 서덕환을 데려간다⁠. 십 분⁠.⁠”

유채의 입술이 한 글자씩 따라 움직였다⁠. 마지막 두 마디에서 유채의 입술이 멈췄다⁠.

“⁠서덕환을 데려간다⁠.⁠”

“⁠십 분⁠.⁠”

물 밑의 쇠줄은 움직이지 않았다⁠. 반쯤 녹은 쇠줄 끝이 실처럼 풀려 두 사람의 발목 사이에서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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