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23자)

목까지

꿈에서 만나는 남녀북남 · 기담오

리광혁은 목에 손을 대고 깨어났다⁠. 4월 30일 새벽 네 시였다⁠. 신문실 천장의 얼룩이 흐릿하게 보였다⁠. 목살에 아무 자국도 없었다⁠. 손끝으로 쓸면 매끈했다⁠. 그런데 턱 밑이 바늘로 찌른 듯 따끔했다⁠. 가시가 겨누던 자리였다⁠.

유채는 대답하지 않았다⁠. 뭘 뺐나⁠, 하고 물은 뒤로 유채는 입을 꾹 다물었고⁠, 철조망은 목 높이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둘은 가시를 턱 밑에 둔 채로 마주 보다가 깼다⁠. 깨기 직전 유채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광혁은 그것도 보았다⁠.

광혁은 유채가 말한 열 줄을 처음부터 다시 떠올렸다⁠. 둘째 줄 다음에서 쇠줄이 움찔하지 않았다⁠. 열 번째 줄 다음에 이게 다예요⁠, 하자마자 쇠줄이 솟았다⁠. 뺀 것은 열 줄 사이 어딘가였다⁠. 무엇을 뺐는지는 몰랐다⁠. 왜 뺐는지는 짐작이 갔다⁠. 유채는 늘 몸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었다⁠. 몸으로 막을 수 없으면 말을 빼서라도 막는 사람이었다⁠.

여섯 시에 창익이 왔다⁠. 광혁은 열 줄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불렀다⁠. 창익이 받아 적었다⁠.

“⁠이게 다냐⁠?⁠”

창익이 물었다⁠. 광혁은 창익의 눈을 보았다⁠.

“⁠이게 다입네다⁠.⁠”

이쪽에는 철조망이 없었다⁠. 창익의 얼굴만 있었다⁠. 창익은 광혁을 한참 보다가 종이를 접었다⁠.

*

5월 2일 오후⁠, 경비병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목소리를 낮췄다⁠. 낮춘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하사 동지⁠, 유명해지셨습네다⁠.⁠”

“⁠무슨 소리냐⁠?⁠”

“⁠남쪽 텔레비전에 하사 동지 얘기가 나왔답네다⁠. 단둥에서 넘어오는 방송을 위층에서 보는데⁠, 다들 웅성웅성합네다⁠.⁠”

광혁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경비병이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3월에 내려간 셋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말했답네다⁠. 떠나던 밤에 초소 군인이 손전등을 물로 돌려서 보내 줬다고⁠. 그 군인이 고마워서 잠이 안 온다고 울었답네다⁠.⁠”

“⁠얼굴도 나왔나⁠?⁠”

“⁠하사 동지 얼굴은 안 나왔습네다⁠. 기래서 위층에서는 다들 자기가 그 군인 같다고 우깁네다⁠. 하나는 자기가 키가 커서 그렇고⁠, 하나는 자기가 손전등을 잘 다뤄서 그렇답네다⁠.⁠”

경비병은 제 말이 칭찬인 줄 알았다⁠. 광혁은 경비병의 얼굴을 보다가 아무 말 없이 다시 침대에 앉았다⁠. 손바닥이 차가워졌다⁠. 유채가 뺀 한 줄이 무엇이었는지 이제 알았다⁠. 남쪽은 손전등 이야기를 답 전갈에 넣었고⁠, 유채는 한 줄을 강 건너로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세 사람은 같은 말을 텔레비전에서 했다⁠. 유채가 막은 문 옆으로 강물이 다 넘어왔다⁠.

한 시간 뒤 창익이 들어왔다⁠. 문을 닫는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창익은 의자에 앉지 않았다⁠.

“⁠들었냐⁠?⁠”

“⁠들었습네다⁠.⁠”

“⁠국장 동지가 노발대발이다⁠. 손전등을 돌린 군인을 찾으라 하신다⁠. 3월 마지막 밤 하구 근무는 너다⁠. 근무 일지에 다 있다⁠.⁠”

창익은 탁자를 손바닥으로 짚었다⁠.

“⁠그리고 하나 더⁠. 남쪽 답 전갈에는 손전등 얘기가 한 줄도 없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떠드는 얘기를 정작 우리한테 보내는 답에서는 뺐다⁠. 국장 동지는 이렇게 보신다⁠. 남쪽이 일부러 감췄든지⁠, 아니면 전령 둘이 짜고 뺐든지⁠.⁠”

광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익이 허리를 숙여 광혁과 눈높이를 맞췄다⁠.

“⁠어느 쪽이냐⁠?⁠”

“⁠모릅네다⁠.⁠”

“⁠거짓말 마라⁠. 너 그 여자 일이면 귀부터 빨개진다⁠.⁠”

광혁은 귀를 만지지 않았다⁠. 만지면 들켰다⁠.

창익은 몸을 일으키고 창가로 갔다⁠. 창살 너머로 강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반짝였다⁠. 창익은 등을 돌린 채로 말했다⁠.

“⁠살 길을 하나 주마⁠. 3월 마지막 밤 하구에 너하고 철민이가 같이 있었다⁠. 철민이가 그러더라⁠, 손전등이 계속 강을 비췄다고⁠. 그 말을 뒤집으면 된다⁠. 손전등은 철민이가 들고 있었다⁠. 철민이가 물로 돌렸고⁠, 너는 졸았다⁠.⁠”

“⁠철민이는 그 밤에 초소에서 잤습네다⁠.⁠”

“⁠안다⁠. 철민이도 거짓말했다⁠. 거짓말 하나에 거짓말 하나를 더 얹자는 거다⁠.⁠”

창익이 몸을 돌렸다⁠.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철민이는 상등병이고 스물넷이다⁠. 어려서 덜 맞는다⁠. 단련대에 몇 달 다녀오면 된다⁠. 너는 이 줄의 끝이다⁠. 네가 무너지면 줄이 끊기고⁠, 줄이 끊기면 선원 다섯도⁠, 네 할아버지 일도⁠, 서민영 아버지 소식도 다 끊긴다⁠. 철민이 몇 달하고 그 모든 것하고 바꾸자는 거다⁠.⁠”

“⁠소좌 동지 누이도 누가 대신 몇 달 다녀오면 살았습네까⁠?⁠”

창익의 얼굴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아주 잠깐이었다⁠. 창익은 담배 개비를 꺼내다가 도로 넣었다⁠.

“⁠내일 저녁까지 생각해라⁠. 그 전에 그 여자한테 물어봐라⁠. 뭘 뺐는지⁠.⁠”

*

5월 2일 해 질 무렵⁠, 창익은 광혁을 지프에 태우고 강 하구로 갔다⁠. 수갑은 채우지 않았다⁠. 운전병도 데려가지 않았다⁠. 창익이 직접 운전대를 잡았고⁠, 지프는 둑길을 따라 덜컹거리며 내려갔다⁠. 하구에 가까워질수록 강폭이 넓어지고 물빛이 누레졌다⁠. 갈대가 사람 키보다 높았다⁠.

창익은 갈대밭 앞에 지프를 세우고 내렸다⁠. 광혁도 따라 내렸다⁠. 바람에 갈대가 한쪽으로 쓸리며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진흙이 군화 밑창에 달라붙었다⁠.

“⁠여기다⁠.⁠”

창익이 갈대 사이 진흙 바닥을 턱으로 가리켰다⁠. 아무것도 없는 진흙이었다⁠. 물이 들어왔다 나간 자국만 물결무늬로 남아 있었다⁠.

“⁠사흘 동안 강을 따라 걸었다⁠. 나흘째 아침에 여기서 찾았다⁠. 얼굴이 진흙에 반쯤 묻혀 있었다⁠. 신발 한 짝이 없었다⁠.⁠”

광혁은 진흙을 내려다보았다⁠. 갈대 사이에서 물새 한 마리가 날개를 털며 날아올랐다⁠. 창익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바람이 세서 성냥을 세 번 그었다⁠.

“⁠너는 강 하구 어부 아들이지⁠.⁠”

“⁠예⁠.⁠”

“⁠네 아버지도 여기서 갔다며⁠.⁠”

광혁은 고개를 들었다⁠. 창익은 광혁의 근무 기록을 다 읽은 사람이었다⁠.

“⁠제가 열다섯 살 때였습네다⁠. 배가 뒤집혔습네다⁠. 아버지는 옆집 아저씨를 배 밑바닥 위로 밀어 올리고 물에 들어갔습네다⁠. 옆집 아저씨는 살았습네다⁠. 아버지가 늘 하던 말이 있습네다⁠. 물에 뜬 사람은 일단 건지고 본다⁠.⁠”

“⁠기래서 목선을 보냈나⁠?⁠”

“⁠물에 뜬 사람이었습네다⁠. 손바닥을 들어 보였습네다⁠.⁠”

창익은 연기를 길게 뱉었다⁠. 연기가 바람에 찢겨 갈대 위로 흩어졌다⁠.

“⁠나는 강을 막아서 사람을 건지고⁠, 너는 강을 열어서 사람을 건진다⁠. 둘 중 하나는 틀렸겠지⁠.⁠”

“⁠둘 다 틀렸을 수도 있습네다⁠.⁠”

창익이 피식 웃었다⁠. 처음으로 비웃음이 섞이지 않은 웃음이었다⁠. 창익은 담배를 진흙에 비벼 끄고 지프로 돌아갔다⁠. 광혁은 갈대밭에 잠깐 더 서 있다가 따라갔다⁠. 군화 밑창의 진흙이 지프 바닥에 떨어졌다⁠.

*

5월 3일 새벽 세 시 십 분⁠, 바닷가의 철조망은 여전히 목 높이였다⁠. 유채는 철조망에서 한 걸음 떨어져 서 있었다⁠. 턱을 들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면 가시가 목에 닿았다⁠.

광혁도 턱을 들었다⁠. 둘은 하늘을 보는 사람들처럼 턱을 들고 마주 보았다⁠. 분홍빛 하늘이 턱 밑에서 번졌다⁠.

“⁠남쪽 텔레비전에서 셋이 말했다⁠. 손전등⁠.⁠”

유채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게 네가 뺀 줄이지⁠.⁠”

“⁠어떻게 알아요⁠?⁠”

“⁠다 넘어왔다⁠. 텔레비전으로⁠.⁠”

유채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더니 목소리가 높아졌다⁠. 처음 듣는 높이였다⁠.

“⁠그럼 내가 왜 뺐겠어요⁠? 그 줄 들어가면 당신이 손전등 돌린 사람이 되니까요⁠!⁠”

“⁠나는 원래 손전등 돌린 사람이다⁠.⁠”

“⁠그쪽 사람들이 모르면 아닌 거예요⁠!⁠”

“⁠나한테는 거짓말 안 하기로 했지 않나⁠!⁠”

광혁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바닷가에서 둘이 언성을 높인 것은 처음이었다⁠. 말소리가 물 위로 멀리 굴러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당신은요⁠? 초소라면서요⁠. 신문실이었으면서⁠.⁠”

“⁠그건 고백했다⁠.⁠”

“⁠나도 지금 고백하잖아요⁠!⁠”

“⁠지금은 내가 먼저 알아서 묻는 거다⁠.⁠”

“⁠그게 무슨 차이예요⁠!⁠”

“⁠차이가 크다⁠!⁠”

둘은 숨을 몰아쉬었다⁠. 턱을 든 채로 싸우느라 목이 아팠다⁠. 광혁은 문득 우스워졌다⁠. 하늘을 보면서 싸우는 사람 둘⁠. 유채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입꼬리가 떨렸다⁠. 유채가 먼저 터졌다⁠. 턱을 든 채로 웃으니 웃음소리가 이상하게 꺾였다⁠.

“⁠목 아파요⁠.⁠”

“⁠나도 아프다⁠.⁠”

유채가 숨을 골랐다⁠. 그러고는 한 글자씩 말했다⁠.

“⁠셋째 줄⁠. 북쪽은 세 사람이 남쪽에 꾀여 왔다고 하나⁠, 세 사람은 해경 조사에서 떠나던 밤 북쪽 초소 군인이 손전등을 물로 돌려 보내 주었다고 진술했다⁠. 북쪽은 먼저 자기 군인을 살피라⁠. 이 줄을 뺐어요⁠. 내가 연필로 두 번 그었어요⁠.⁠”

쇠줄이 아래로 움찔했다⁠. 목에서 쇄골로⁠, 쇄골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허리로⁠. 말뚝이 한 뼘씩 물속으로 들어갔다⁠. 둘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목이 풀렸다⁠. 철조망이 무릎에서 멈췄다⁠.

광혁도 말했다⁠.

“⁠소좌가 철민이한테 덮어씌우라 한다⁠. 손전등은 철민이가 들었고 나는 졸았다고 하라고⁠. 철민이는 단련대에 몇 달 가고⁠, 나는 줄이니까 살아야 한다고⁠.⁠”

“⁠하지 마요⁠.⁠”

“⁠안 한다⁠.⁠”

쇠줄이 한 뼘 더 내려갔다⁠. 정강이⁠. 둘 다 참말이었다⁠.

유채가 철조망 앞으로 다가왔다⁠. 광혁도 다가갔다⁠. 이번에는 손끝만 대지 않았다⁠. 유채가 손바닥을 펴서 내밀었고⁠, 광혁이 손바닥을 맞댔다⁠. 손바닥 전체가 닿았다⁠. 유채의 손바닥은 뜨겁고 축축했다⁠. 광혁의 손바닥은 차갑고 거칠었다⁠. 유채의 손가락이 광혁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들어왔다⁠. 광혁은 깍지를 꼈다⁠. 굳은살이 유채의 손등을 긁었다⁠. 유채가 손을 빼지 않고 더 세게 쥐었다⁠.

“⁠내일 소좌한테 말할 거다⁠.⁠”

“⁠뭘요⁠?⁠”

“⁠배⁠.⁠”

유채의 손이 광혁의 손을 꽉 조였다⁠.

“⁠안 돼요⁠.⁠”

“⁠참말을 하면 철조망이 내려간다⁠. 나는 이쪽에서도 한번 내려 보고 싶다⁠.⁠”

“⁠거긴 철조망이 아니잖아요⁠. 거긴 감옥이잖아요⁠.⁠”

“⁠감옥에도 창살은 있다⁠. 창살 사이로 강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보인다⁠.⁠”

유채는 대답하지 않았다⁠. 깍지 낀 손에 이마를 댔다⁠. 유채의 숨이 광혁의 손등에 닿았다⁠. 뜨거웠다⁠. 광혁은 유채의 머리카락이 손목에 닿는 것을 느꼈다⁠. 하나로 묶은 갈색 머리 끝이 손목을 간질였다⁠. 광혁은 손목의 간지러움을 오래 기억하기로 했다⁠. 꿈에서 느낀 것은 깨어나면 남지 않았지만⁠, 꿈에서 한 말은 남았다⁠.

“⁠유채야⁠.⁠”

처음으로 동무를 떼고 불렀다⁠. 유채가 이마를 든 채로 굳었다⁠.

“⁠세 시 십 분에 내가 안 오면⁠, 다음 날도 세 시 십 분이다⁠. 그다음 날도⁠.⁠”

*

5월 4일 오후⁠, 신문실에 창익과 국장이 같이 들어왔다⁠. 국장은 의자에 앉았고 창익은 문 옆 벽에 등을 붙였다⁠. 창익의 손에 박가 진술이 든 종이가 들려 있었다⁠. 국장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오 소좌 말로는 네가 할 말이 있다지⁠.⁠”

광혁은 창익을 보았다⁠. 창익은 고개를 아주 조금 저었다⁠.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광혁은 창익이 고개를 젓는 것을 처음 보았다⁠.

광혁은 일어나서 차렷 자세를 했다⁠. 군화 밑창으로 시멘트 냉기가 올라왔다⁠. 창살 너머로 강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보였다⁠.

“⁠3월 마지막 밤⁠, 하구 근무는 저 혼자 섰습네다⁠. 문철민 상등병은 초소에서 잤습네다⁠. 손전등은 제가 들었습네다⁠.⁠”

국장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 배⁠, 제가 보냈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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