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566자)

해경 앞에서 아들이 입을 열었다

용왕님 단골 경매사 · 석다감

2028년 1월 4일 화요일 오전 아홉 시⁠, 주문진 부두 끝 선주 사무실은 석유난로 냄새로 매캐했다⁠. 창틀에 성에가 끼어 바다가 뿌옇게 보였다⁠. 선주는 난로 앞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아 손바닥을 불에 쬐고 있었다⁠. 해일은 문 앞에 서서 털모자를 손에 쥐고 있었다⁠.

집회 영상은 이레 동안 온 나라를 돌았다⁠. 젖은 그물과 노란 부표와 「⁠제7순풍호⁠」 글씨가 뉴스마다 나왔다⁠. 사흘 전 강릉 해양경찰서에서 선주에게 출석하라는 연락이 왔고⁠, 선주는 감기라며 미뤘다⁠. 오늘 오후가 두 번째 날짜였다⁠.

“⁠앉아라⁠.⁠”

“⁠서 있을게요⁠.⁠”

선주가 한숨을 쉬고 난로 위 주전자를 들어 종이컵에 보리차를 따랐다⁠. 해일은 받지 않았다⁠. 선주가 컵을 탁자에 놓았다⁠.

“⁠해일아⁠, 내 말 잘 들어라⁠. 네가 혼자 한 걸로 해라⁠. 선장이 물량 채우려고 밤에 나갔다⁠. 선주는 몰랐다⁠. 그럼 배는 산다⁠. 벌금은 내가 낸다⁠. 출어 정지 끝나면 너 다시 선장 시켜 준다⁠.⁠”

“⁠선주님이 나가자고 하셨잖아요⁠.⁠”

“⁠내가 언제 빵게 잡으라 했냐⁠? 다른 데 그물 놓자고 했지⁠.⁠”

“⁠그물코 잔 거 선주님이 사 오셨어요⁠. 지난겨울에도요⁠. 빵게 받아 가는 사람도 선주님이 데려왔고요⁠.⁠”

선주의 손이 난로 앞에서 멈췄다⁠. 불빛이 손바닥 주름을 붉게 비췄다⁠.

“⁠내가 불려 가면 배는 은행 거다⁠. 칠 년 빚이 남았다고 했지⁠. 선원 둘은 어디 가냐⁠? 너는 어디 가고⁠?⁠” 선주가 해일을 올려다보았다⁠. 눈가가 붉었다⁠. “⁠나 혼자 살자고 하는 말 아니다⁠. 배 하나에 다섯 집이 매달려 있다⁠.⁠”

“⁠알아요⁠.⁠”

“⁠알면 됐다⁠.⁠”

해일은 털모자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모자 털이 손가락 사이로 비죽 나왔다⁠.

*

사무실 문이 열리고 탁세윤이 들어왔다⁠. 찬 바람이 같이 들어와 난로 불꽃이 기울었다⁠. 세윤은 서류 봉투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봉투 위에 새솔마트 로고가 찍혀 있었다⁠.

“⁠제7순풍호 직거래 계약 해지 통지서예요⁠. 계약서 12조⁠, 불법 조업이 확인되면 해지한다⁠. 오늘 날짜로 끊습니다⁠.⁠”

선주가 봉투를 열지 않고 밀어냈다⁠. “⁠탁 선주 딸이 이걸 들고 오네⁠.⁠”

“⁠제 아버지는 빵게 안 잡았어요⁠.⁠” 세윤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배를 팔았지⁠.⁠”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난로 위 주전자가 끓으며 뚜껑을 달그락거렸다⁠. 세윤이 해일을 보았다⁠.

“⁠남궁 선장님⁠, 해경 가시면 사실대로 말하세요⁠. 선주님이 시켰으면 시켰다고요⁠.⁠”

“⁠새솔은 아무 잘못 없다는 거죠⁠.⁠” 해일이 말했다⁠. “⁠최소 물량 못 채우면 위약금이라고 한 게 누군데요⁠.⁠”

세윤은 대답하기 전에 봉투 밑에서 종이 한 장을 더 꺼냈다⁠. 「⁠직거래 계약 표준안 개정 요청 — 최소 물량 조항 중 해황 악화 시 유예 신설⁠」⁠. 맨 아래 결재 칸에 세윤의 서명만 있었다⁠.

“⁠압니다⁠. 그 조항이 선주님 등을 떠민 거⁠. 그건 제 계약서예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위에 다시 올렸어요⁠. 바다가 이상하면 물량을 미루게 해 달라고⁠. 지난번엔 잘렸는데 이번엔 영상이 있으니까 붙을 거예요⁠.⁠” 세윤이 종이를 다시 봉투에 넣었다⁠. “⁠그래도 이 배는 끊어요⁠. 빵게를 잡은 배랑 계약을 이어 가면 다른 삼천 가구 물건도 아무도 안 사요⁠.⁠”

세윤이 나가자 선주가 보리차를 단숨에 마셨다⁠. 해일은 문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

열한 시⁠, 묶여 있는 제7순풍호 갑판에서 선원 둘이 그물을 개고 있었다⁠. 한 사람은 쉰 줄의 갑판장이었고⁠, 한 사람은 베트남에서 온 지 세 해 된 스물여섯 살 청년이었다⁠. 청년은 해일이 다가오자 장갑 낀 손을 흔들었다⁠. 한국말이 아직 서툴러서 반말과 존댓말이 반씩 섞였다⁠.

“⁠선장님⁠, 경찰 가요⁠? 나도 가요⁠?⁠”

“⁠너는 안 가⁠. 너는 시키는 대로 했잖아⁠.⁠”

“⁠선장님도 시키는 대로 했어요⁠.⁠” 청년이 그물을 내려놓았다⁠. “⁠선주님이 시키고⁠, 선장님이 하고⁠, 나는 그물 당겼어⁠. 다 같이 했어요⁠.⁠”

갑판장이 담배에 불을 붙이다 말고 해일을 보았다⁠.

“⁠선장⁠, 나는 막내 학원비가 걸려 있어⁠. 그 말부터 하고 시작할게⁠.⁠” 갑판장이 연기를 길게 뱉었다⁠. “⁠그래도 다 말해⁠. 우리도 같이 나갔다고⁠. 빵게 털 때 나도 알았어⁠. 알고도 털었어⁠. 선장 혼자 덮어쓰면 나는 이 배에서 다시는 그물 못 당겨⁠. 손이 안 움직여⁠.⁠”

“⁠배가 날아가요⁠, 형님⁠.⁠”

“⁠배는 배고⁠, 사람은 사람이지⁠. 배는 또 사⁠. 은행이 팔아도 누가 사서 또 띄워⁠. 근데 선장이 혼자 덮어쓰면 그건 못 사⁠.⁠” 갑판장이 그물코를 손가락으로 꼬집었다⁠. 잔 그물코가 손톱 밑에 끼었다⁠. “⁠이거 사 올 때부터 알았어⁠. 이렇게 잔 걸로는 안 되는데⁠, 했지⁠. 말은 안 했지⁠. 그게 내 죄야⁠.⁠”

청년이 갑판장을 보고⁠, 해일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말해요⁠. 한국말 서툴러서 통역 불러요⁠. 통역 오면 잘 말해요⁠.⁠”

해일은 털모자를 깊이 눌러썼다⁠. 갑판에 쌓인 잔 그물 위로 갈매기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가⁠,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고 날아갔다⁠.

*

오후 두 시⁠, 강릉 해양경찰서 정문 앞 버스 정류장 의자에 팔용이 앉아 있었다⁠. 새벽 경매를 마치고 첫 기차를 탔다⁠. 작업복 위에 외투만 걸쳤고⁠, 고무장화는 운동화로 바꿔 신었는데 노란 모자는 깜빡 잊고 머리에 그대로 쓰고 있었다⁠. 지나가던 고등학생 둘이 팔용을 보고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팔용이 쳐다보자 내렸다⁠.

해일이 택시에서 내렸다⁠. 혼자였다⁠. 선주는 따로 온다고 했다⁠. 해일은 아버지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모자요⁠.⁠”

팔용이 손을 올려 노란 모자를 만졌다⁠. 벗지는 않았다⁠.

“⁠선주가 뭐라고 했냐⁠?⁠”

“⁠혼자 한 걸로 하래요⁠. 벌금 내주고 선장 다시 시켜 준대요⁠.⁠”

“⁠그렇게 해라⁠.⁠”

해일이 아버지를 보았다⁠.

“⁠아무 말 하지 마라⁠. 선주 말대로 해⁠. 벌금은 아버지가 낸다⁠. 용왕 어르신한테는 아버지가 얘기하마⁠. 네가 선주를 불면 배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 거기 매달린 집이 다섯이다⁠.⁠”

“⁠아버지가 그 말을 해요⁠?⁠” 해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류장에 서 있던 할머니가 고개를 돌렸다⁠. “⁠서른 해 바르게 불렀다면서요⁠. 손은 속이지 않는다면서요⁠. 근데 저한테는 굽게 살라고 하세요⁠?⁠”

“⁠너는 내 아들이다⁠.⁠”

“⁠그러니까요⁠.⁠” 해일이 털모자를 벗었다⁠. 머리가 눌려 납작했다⁠. 아버지와 같은 자리가 눌려 있었다⁠. “⁠아버지⁠, 제가 왜 배 탔는지 아세요⁠?⁠”

팔용은 대답하지 못했다⁠. 몰랐다⁠. 서른한 해 동안 묻지 않았다⁠.

“⁠엄마는 알아요⁠. 엄마한테는 말했어요⁠.⁠” 해일이 정류장 의자 끝에 앉았다⁠. 둘 사이에 사람 하나 앉을 자리가 비었다⁠. “⁠어릴 때 아버지 경매장 따라갔잖아요⁠. 새벽 세 시에⁠. 아버지가 3번 자리에서 출하자 이름 부르는 거⁠, 그게 제일 멋있었어요⁠. 「⁠강원 주문진 무슨무슨호 대게 열 상자⁠」⁠. 그 이름 부르는 목소리가 경매장 끝까지 울렸어요⁠. 저도 저 목소리로 불리고 싶었어요⁠. 제가 잡은 대게를 아버지가 부르는 거⁠. 그거 하나 보고 배 탔어요⁠.⁠”

팔용은 볼펜을 찾아 주머니를 더듬었다⁠. 볼펜이 없었다⁠. 손이 빈 채로 무릎 위에 놓였다⁠.

“⁠올해 겨울에 처음으로 제7순풍호 대게가 노량진 갔어요⁠. 아버지가 부르셨어요⁠. 12월 8일에요⁠. 근데 그날 아버지가 그 대게를 용왕한테 낙찰하셨어요⁠.⁠” 해일이 웃었다⁠. 웃는 입꼬리가 떨렸다⁠. “⁠아버지는 출하자 이름도 안 보셨죠⁠. 손가락만 보셨지⁠.⁠”

팔용은 기억하지 못했다⁠. 12월 8일 새벽 방어 열 상자 사이에 대게 몇 상자가 있었다⁠. 출하지 「⁠강원 주문진⁠」⁠. 배 이름은 전광판에 떴을 것이다⁠. 팔용은 손가락만 보았다⁠.

“⁠그래서 이번엔 제 이름 제가 부를 거예요⁠.⁠” 해일이 일어나 털모자를 다시 썼다⁠. “⁠선주님이 시킨 것도⁠, 제가 한 것도 다 말할 거예요⁠. 아버지는 여기서 기다리세요⁠. 아니면 가셔도 되고요⁠.⁠”

해일이 정문을 지나 경찰서 건물로 들어갔다⁠. 유리문이 닫혔다⁠.

*

해일은 네 시간 뒤에 나왔다⁠. 해가 바다 반대편으로 기울어 정문 그림자가 길었다⁠. 팔용은 같은 의자에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정류장에 버스가 다섯 번 왔다 갔다⁠.

기다리는 동안 난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2층 초장집 점심 손님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왁자했다⁠.

“⁠들어갔어⁠?⁠”

“⁠들어갔다⁠.⁠”

“⁠다 말한대⁠?⁠”

“⁠다 말한단다⁠.⁠”

난주가 한참 말이 없었다⁠. 접시 부딪는 소리가 들렸다⁠. “⁠잘했네⁠. 걔가 그럴 줄 알았어⁠. 당신 닮아서⁠.⁠”

“⁠나는 입 다물라고 했다⁠.⁠”

“⁠알아⁠. 그래서 걔가 당신 안 닮은 데도 있는 거지⁠.⁠” 난주가 숨을 한 번 내쉬었다⁠. “⁠벌금은 가게 적금 깨면 돼⁠. 내가 이 년 부은 거⁠. 용왕 정식 덕에 생각보다 많이 모였어⁠. 웃기지⁠? 용왕님 덕에 모은 돈으로 용왕님이 터뜨린 벌금 내⁠.⁠”

“⁠웃기다⁠.⁠”

“⁠당신 지금 웃었어⁠?⁠”

“⁠안 웃었다⁠.⁠”

“⁠웃었네⁠. 숨소리가 달라⁠.⁠” 난주가 손님을 부르는 소리를 내고 다시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걔 나오면 밥부터 먹여⁠. 해경 앞에 국밥집 있을 거야⁠. 해경 앞엔 꼭 국밥집이 있어⁠.⁠”

전화가 끊겼다⁠. 길 건너에 정말 국밥집 간판이 보였다⁠.

“⁠다 말했어요⁠. 지난겨울부터 언제 몇 번 나갔는지⁠, 그물은 누가 사 왔는지⁠, 빵게는 누가 받아 갔는지⁠.⁠” 해일이 아버지 옆에 앉았다⁠. 이번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선주님은 두 시에 와서 아직 안에 있어요⁠. 배는 출어 정지래요⁠. 처음 걸린 거라 한 달⁠. 저는 벌금 나올 거고요⁠. 선장은 끝났어요⁠.⁠”

“⁠압수한 대게는⁠.⁠”

“⁠살아 있는 건 바다에 다 돌려보낸대요⁠. 내일 아침에요⁠.⁠”

팔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일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아버지 손에 쥐여 주었다⁠. 볼펜이었다⁠. 경찰서 진술서를 쓸 때 쓴 볼펜이었다⁠. 몸통에 「⁠강릉해양경찰서⁠」라고 찍혀 있었다⁠.

“⁠아버지 볼펜 없으시길래⁠.⁠”

팔용은 볼펜을 쥐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

여섯 시⁠, 주문진 방파제 끝 테트라포드 위에 용왕이 앉아 있었다⁠. 해가 진 바다가 검푸르게 출렁였다⁠. 팔용은 테트라포드 사이를 건너가 용왕 옆에 자리를 잡았다⁠. 등대 불빛이 둘의 얼굴을 한 번씩 훑고 지나갔다⁠.

“⁠아들이 다 털어놨습니다⁠. 선주가 시킨 것까지요⁠. 그 배는 한 달 못 나갑니다⁠.⁠”

“⁠보았다⁠.⁠”

“⁠그물 풀어 주십시오⁠. 주문진 그물이 비면 털어놓은 놈도 안 털어놓은 놈도 다 굶습니다⁠.⁠”

“⁠한 배가 털어놨다고 바다가 차느냐⁠?⁠” 용왕이 바다를 보았다⁠. “⁠지난겨울 걷어 간 어미들은 안 돌아온다⁠. 그 어미들이 품은 알도⁠. 다른 바다에서 다른 배가 지금도 걷는다⁠. 물은 계속 데워진다⁠. 나는 계속 산다⁠.⁠”

“⁠어르신이 산다고 물이 식습니까⁠?⁠”

용왕이 대답하지 않았다⁠. 등대 불빛이 다시 지나갔다⁠. 그림자가 테트라포드 아래로 길게 늘어졌다가 줄었다⁠.

“⁠그럼 경매장에서 막겠습니다⁠.⁠” 팔용이 말했다⁠.

“⁠네 규칙은 제일 높은 손이 가져간다고 했다⁠.⁠”

“⁠압니다⁠.⁠”

“⁠네가 네 규칙을 깨겠느냐⁠?⁠”

팔용은 손에 쥔 볼펜을 내려다보았다⁠. 「⁠강릉해양경찰서⁠」⁠. 아들이 제 이름을 부른 볼펜이었다⁠.

“⁠모레 새벽 세 시에 오십시오⁠. 3번 자리로⁠.⁠”

용왕이 처음으로 팔용을 돌아보았다⁠. 금관 끝에서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단골은 가게를 안 바꾼다⁠.⁠” 용왕이 말했다⁠. “⁠간다⁠.⁠”

팔용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기창술 상무⁠」⁠. 받자마자 기창술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남궁 경매사⁠, 뉴스 봤어⁠. 아들 일은 안됐고⁠. 그런데 설 대목이 삼 주 남았어⁠. 혹시라도 어르신 손 막을 생각이면 접어⁠. 당신 손이 막히는 날 법인이 당신을 막아⁠. 정년 이 년 남은 거 알지⁠?⁠”

팔용은 전화를 끊었다⁠. 바다에서 파도가 한 번 크게 쳐 테트라포드를 넘었다⁠. 운동화가 젖었다⁠. 팔용은 발을 빼지 않았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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