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34자)

집회장에 떨어진 아들의 그물

용왕님 단골 경매사 · 석다감

2027년 12월 28일 화요일 오전 열 시⁠, 주문진 위판장 앞 광장은 장화 신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게 철 한복판인데 항구 안에 배들이 줄줄이 묶여 있었다⁠. 뱃머리마다 붉은 깃발이 펄럭였다⁠. 위판장 지붕 처마에 매단 현수막 셋이 바람에 부풀었다 꺼졌다⁠. 「⁠동해 그물을 돌려 달라⁠」「⁠노량진 용왕 경매 중단하라⁠」「⁠직거래 위약금 유예하라⁠」⁠.

팔용은 난주가 모는 차에서 내려 광장 가장자리로 갔다⁠. 지난 한 주 동안 용왕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3번 자리에 왔다⁠. 방류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었다⁠. 해양수산부에서 기창술에게 두 번 전화가 왔고⁠, 기창술은 전화를 받을 때마다 팔용에게 와서 어르신 좀 말려 보라고 했다⁠. 팔용은 말리지 않았다⁠. 손이 올라오면 불렀다⁠. 제일 높은 손이었다⁠. 뉴스 자막에는 「⁠노량진 용왕⁠, 검사 없이 방류 강행⁠」이 떴고⁠, 「⁠#노량진용왕⁠」 꼬리표가 달린 영상은 조회수가 몇백만을 넘었다⁠.

난주가 보온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가방에서 깍두기 냄새가 났다⁠.

“⁠해일이 먹이려고⁠. 걔 밥 제대로 안 먹어⁠. 목소리 들으면 알아⁠.⁠”

“⁠집회에 반찬을 싸 와⁠.⁠”

“⁠집회는 집회고 밥은 밥이지⁠. 당신은 경매 날에도 밥 먹잖아⁠.⁠”

광장 앞쪽에 화물차 짐칸을 단상으로 쓰고 있었다⁠. 짐칸 위에 확성기 두 개를 세워 놓았고⁠, 사회를 보는 어촌계 사람이 마이크를 두드렸다⁠. 단상 아래에는 탁세윤이 혼자 서 있었다⁠. 검은 패딩 대신 낡은 털 점퍼를 입고⁠, 등의 「⁠주문진 어촌계⁠」 글씨를 감추려는 듯 목도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어민 몇이 세윤을 보고 수군거렸다⁠.

“⁠탁 선주 딸 아니야⁠? 오징어배 하던⁠.⁠”

“⁠그 딸이 마트 들어가서 우리한테 위약금 물린대⁠.⁠”

“⁠아버지가 배 팔 때 얼마나 울었는데⁠, 그 딸이⁠.⁠”

세윤은 못 들은 척 휴대전화만 보았다⁠. 화면을 쥔 손가락이 하얬다⁠.

허리 굽은 어민 하나가 세윤 앞으로 다가갔다⁠. 일흔은 넘어 보였고⁠, 장화 위로 고무 바지를 가슴까지 끌어올린 노인이었다⁠.

“⁠세윤이 맞지⁠? 나 기억 안 나⁠? 너희 아버지 배에서 같이 오징어 털던 영식이 아저씨⁠.⁠”

“⁠기억나요⁠, 아저씨⁠.⁠” 세윤이 휴대전화를 내렸다⁠.

“⁠너희 아버지가 배 팔던 날 나도 울었어⁠. 그런 집 딸이 어민들한테 위약금을 물려⁠?⁠”

“⁠아저씨⁠, 9월에 오징어 위판 값 바닥 쳤을 때 저희 계약 배들은 계약 값 받았어요⁠. 위판장 값의 두 배요⁠. 그때는 아무도 저한테 뭐라고 안 하셨어요⁠.⁠” 세윤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계약서에는 좋은 달하고 나쁜 달이 같이 들어 있어요⁠. 좋은 달만 받고 나쁜 달은 안 받겠다고 하시면⁠, 그건 경매예요⁠.⁠”

노인이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말은 너희 아버지를 쏙 뺐네⁠. 아버지도 말로는 안 졌어⁠. 바다한테만 졌지⁠.⁠”

노인이 돌아가고 세윤은 다시 휴대전화를 들었다⁠. 화면이 꺼져 있었는데 한참 그대로 보았다⁠.

*

단상 뒤 부두에서 난주가 해일을 찾아냈다⁠. 해일은 화물차 바퀴에 등을 기대고 종이에 적은 연설문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난주가 보온 가방을 열어 깍두기 통과 김밥을 꺼냈다⁠.

“⁠먹고 해⁠.⁠”

“⁠엄마⁠, 지금 집회야⁠.⁠”

“⁠집회는 배고프면 목소리가 안 나와⁠. 아버지가 그래⁠. 경매 전에 밥 안 먹으면 호창이 갈라져⁠.⁠” 난주가 김밥 한 줄을 해일의 손에 쥐여 주었다⁠. 해일은 김밥을 한입 베어 물고 씹다가 멈췄다⁠.

“⁠아버지 데리고 오지 말라니까⁠.⁠”

“⁠네 아버지는 누가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야⁠. 혼자 첫 기차 타고 여기 왔던 사람이야⁠.⁠” 난주가 해일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눈 밑이 거뭇했다⁠. “⁠너 잠은 자니⁠?⁠”

“⁠배 타는 사람이 언제 자요⁠?⁠”

“⁠밤에 자지⁠.⁠”

해일은 대답 대신 김밥을 다 먹고 연설문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난주는 아들의 손등을 보았다⁠. 갈라진 틈마다 소금이 끼어 있었고⁠, 손톱 밑에 주황색 무언가가 묻어 있었다⁠. 난주는 주황색이 무엇인지 몰랐다⁠. 알았다면 김밥을 쥐여 주지 않았을 것이다⁠.

*

열 시 반⁠, 사회자가 해일을 불렀다⁠. 해일은 털모자를 벗어 주머니에 쑤셔 넣고 짐칸에 올라갔다⁠. 주황 방수복이 햇빛에 번쩍였다⁠. 마이크를 잡은 손등이 갈라져 있었다⁠.

“⁠제7순풍호 선장 남궁해일입니다⁠. 선장들 대표로 말씀드립니다⁠.⁠”

어민들이 박수를 쳤다⁠. 난주가 보온 가방을 끌어안았다⁠.

“⁠이번 달 우리 그물이 비었습니다⁠. 대게 철인데 그물에 대게가 안 듭니다⁠. 고기가 그물 앞에서 돌아 나갑니다⁠. 다들 보셨죠⁠?⁠” 해일이 광장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서 대답이 나왔다⁠. “⁠노량진 3번 자리에서 용왕이라는 노인이 우리 고기를 다 사서 우리 바다에 풀었습니다⁠. 그 고기들이 그물을 비켜 다니면서 다른 고기까지 몰고 나갑니다⁠.⁠”

해일이 잠깐 말을 끊었다⁠. 광장 가장자리의 팔용과 눈이 마주쳤다⁠.

“⁠3번 자리 경매사가 제 아버지입니다⁠.⁠”

광장이 술렁였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고⁠, 누군가 팔용을 알아보고 손가락질했다⁠. 영상 속 경매사다⁠. 노란 모자는 안 썼는데 목소리가 똑같다⁠. 난주가 팔용의 팔을 붙잡았다⁠.

“⁠아버지는 제일 높은 손을 부른다고 하십니다⁠. 서른 해 그렇게 사셨습니다⁠. 저도 압니다⁠. 저 그 손 보고 컸습니다⁠.⁠” 해일의 목소리가 확성기에서 갈라졌다⁠. “⁠아버지⁠, 경매 멈추세요⁠. 그 손님 손을 받지 마세요⁠. 아버지가 낙찰 부를 때마다 여기 그물이 빕니다⁠.⁠”

어민들이 함성을 질렀다⁠. 「⁠중단하라⁠」 구호가 터졌다⁠. 사회자가 단상 위에서 팔용을 향해 손짓했다⁠. 올라와서 한마디 하라는 뜻이었다⁠. 난주가 팔용의 팔을 놓지 않았다⁠.

“⁠올라가지 마⁠. 당신 거기 올라가면 해일이랑 싸워⁠.⁠”

“⁠싸우러 가는 거 아니다⁠.⁠”

“⁠당신이 말을 하면 싸움이 돼⁠. 서른 해 봤어⁠.⁠”

팔용은 난주의 손을 풀고 짐칸 사다리를 올랐다⁠.

*

짐칸 위는 생각보다 좁았다⁠. 해일과 팔용 사이에 확성기 하나가 있었다⁠. 해일은 마이크를 아버지에게 내밀지 않았다⁠. 팔용도 달라고 하지 않았다⁠. 팔용은 확성기 옆에 서서 목소리를 높였다⁠. 경매장에서 쓰던 목소리였다⁠.

“⁠노량진 3번 자리 경매사 남궁팔용입니다⁠.⁠”

광장이 조금 조용해졌다⁠.

“⁠제 손님이 여러분 그물을 비웠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그 손을 불렀습니다⁠.⁠” 팔용은 광장을 한 번 훑었다⁠. 장화와 털모자와 갈라진 손들이 보였다⁠. “⁠그런데 제가 그 손을 안 받으면⁠, 여러분이 노량진에 보내는 고기도 세 배를 못 받습니다⁠. 저번 주에 방어 세 배 받으신 분들 계시지요⁠.⁠”

앞줄에서 누군가 손을 들었다가 슬그머니 내렸다⁠. 뒷줄에서 젊은 어민이 소리쳤다⁠.

“⁠세 배 받고 그물은 비었어요⁠!⁠”

“⁠압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멈추면 그물은 찹니까⁠? 바다가 데워져서 오징어는 이미 떠났습니다⁠. 용왕 어르신이 오기 전부터 그물은 줄고 있었습니다⁠. 세종 가서 그래프를 봤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계속 부르시겠다고요⁠?⁠” 해일이 마이크를 놓고 맨목소리로 물었다⁠. 확성기 없이도 광장 끝까지 들렸다⁠. 아버지를 닮은 목소리였다⁠.

“⁠경매사가 경매를 안 부르면 경매가 없다⁠.⁠”

“⁠경매가 없으면 뭐가 없는데요⁠? 아버지 자리가 없죠⁠.⁠”

팔용은 아들을 보았다⁠. 해일의 눈 밑이 거뭇했다⁠. 지난 열흘 밤마다 배를 탄 얼굴이었다⁠. 팔용은 이제야 아들의 눈 밑을 보았다⁠.

“⁠너 요새 밤에 어디 나가냐⁠?⁠”

해일의 얼굴이 굳었다⁠. 광장의 어민들은 부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듣지 못하고 웅성거렸다⁠. 해일이 마이크를 다시 집어 들었다⁠.

“⁠아버지⁠, 내려가세요⁠.⁠”

*

바다에서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파도 소리였다가⁠, 파도 소리보다 낮고 길게 울렸다⁠. 위판장 뒤 부두 끝의 물이 둥글게 솟았다⁠. 광장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물 기둥이 사람 키만큼 올랐다가 갈라지고⁠, 갈라진 물 사이로 용왕이 걸어 나왔다⁠. 은빛 수염이 무릎까지 내려왔고 금관 끝에 햇빛이 튀었다⁠. 푸른 비단 두루마기에서 물이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용왕이 부두에서 광장으로 걸어오자 사람들이 양옆으로 갈라졌다⁠. 바닥에 그림자가 따라왔다⁠. 그림자는 광장 한복판에서 몸을 크게 부풀렸다⁠. 거대한 푸른 용이었다⁠. 비늘 하나가 장화 한 켤레만 했다⁠. 어민들이 뒷걸음질 쳤고 누군가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다⁠. 세윤은 서 있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용왕이 세윤 앞을 지나며 잠깐 멈췄다가 다시 걸었다⁠.

용왕은 오른손에 젖은 그물 한 덩이를 끌고 있었다⁠. 그물이 아스팔트에 질질 끌리며 물자국을 남겼다⁠.

“⁠시끄럽구나⁠.⁠” 용왕이 단상 아래에서 말했다⁠. 확성기를 쓰지 않았는데 광장 구석까지 들렸다⁠. “⁠누가 내 경매를 멈추라 하느냐⁠?⁠”

“⁠제가요⁠.⁠” 해일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럼 이것부터 보아라⁠.⁠”

용왕이 그물을 들어 단상 위로 던졌다⁠. 젖은 그물이 짐칸 바닥에 철퍼덕 떨어졌다⁠. 팔용의 고무장화에 바닷물이 튀었다⁠. 그물코가 손가락 두 마디도 안 되게 잘았다⁠. 그물 한쪽 끝에 노란 부표가 매달려 있었고⁠, 부표에 검은 매직 글씨가 보였다⁠. 「⁠제7순풍호⁠」⁠.

그물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대게였다⁠. 등딱지가 손바닥보다 작은 대게들이 다리를 버둥거리며 그물코를 빠져나오려 했다⁠. 몇 마리는 배 밑에 주황색 알을 잔뜩 품고 있었다⁠.

“⁠암컷이다⁠.⁠” 앞줄 늙은 어민이 중얼거렸다⁠. 주문진 위판장에서 팔용 옆에 서 있던 노인이었다⁠. “⁠빵게야⁠. 알 밴 빵게⁠. 저건 잡으면 안 되는 거야⁠.⁠”

광장이 얼어붙었다⁠. 동해에서 배를 타는 사람이면 다 아는 일이었다⁠. 암컷 대게와 등딱지가 작은 대게는 한 해 내내 못 잡는다⁠. 잡으면 바다에 도로 넣어야 한다⁠. 몰래 뭍에 올려 팔다 들키면 벌금을 물고 배는 출어를 못 한다⁠.

“⁠밤마다 이 배가 내 새끼들을 걷어 갔다⁠.⁠” 용왕이 말했다⁠. “⁠지난겨울부터다⁠. 알 밴 어미를 걷으면 다음 해에 날 새끼가 없다⁠. 다음 해 그물이 빈다⁠. 이 배가 걷어 간 것은 올해 대게가 아니라 다음 해 대게다⁠.⁠”

해일의 손에서 마이크가 미끄러졌다⁠. 마이크가 짐칸 바닥에 떨어져 확성기에서 쾅 소리가 났다⁠.

용왕이 팔용을 올려다보았다⁠.

“⁠네 아들 그물은 코가 잘다고 했다⁠.⁠” 용왕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가 왜 하필 네 경매장에 갔는지 아느냐⁠? 바다에 경매장은 많다⁠. 너는 서른 해 손이 발랐다⁠. 그런 사람의 아들이 밤마다 내 어미들을 걷었다⁠. 그래서 너한테 갔다⁠. 네 손으로 불러서⁠, 네 눈으로 보라고⁠.⁠”

광장의 어민들이 일제히 해일을 보았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주워 들었다가 어쩔 줄 몰라 다시 내려놓았다⁠. 광장 뒤편에서 오리털 조끼를 입은 사내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빠져나가는 것이 팔용의 눈에 들어왔다⁠. 선주였다⁠.

세윤이 단상 아래로 걸어왔다⁠. 세윤은 그물에 매달린 부표를 한참 보고⁠, 해일을 보았다⁠.

“⁠우리 계약 배예요⁠.⁠” 세윤이 말했다⁠. 목소리에 끝이 없었다⁠.

해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짐칸 위에서 무릎을 꿇고 그물코에 엉킨 암컷 대게 한 마리를 손가락으로 떼어 냈다⁠. 손이 떨려서 다리 하나가 그물에 남았다⁠.

팔용은 고무장화 앞으로 기어 오는 대게 한 마리를 내려다보았다⁠. 배 밑에 주황 알을 품은 대게였다⁠. 대게는 짐칸 끝으로⁠, 바다가 있는 방향으로 다리를 뻗었다⁠. 팔용은 허리를 굽혀 대게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볼펜을 쥐던 손바닥 위에서 대게가 집게를 한 번 벌렸다가 오므렸다⁠.

광장 저 끝에서 난주가 보온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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