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575자)

방류 신청서를 쓰는 용왕님

용왕님 단골 경매사 · 석다감

2027년 12월 21일 화요일 오전 열한 시⁠, 경부고속도로 안성휴게소 주차장에서 기창술 상무의 검은 승합차가 멈췄다⁠. 뒷자리에서 용왕이 내리다가 금관이 문틀에 부딪혀 딱 소리가 났다⁠. 용왕은 금관을 바로잡고 휴게소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바람에 호두과자 굽는 냄새가 실려 왔다⁠.

“⁠저것은 무엇이냐⁠?⁠”

“⁠호두과자요⁠.⁠” 변두만이 앞치마 대신 두꺼운 점퍼를 입고 따라 내렸다⁠. “⁠어르신⁠, 한 봉지 사 드려요⁠?⁠”

두만이 호두과자 한 봉지와 오징어 버터구이 한 접시를 들고 왔다⁠. 용왕이 오징어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두만이 접시를 등 뒤로 감췄다⁠.

“⁠이건 제 거예요⁠.⁠”

“⁠내 오징어다⁠.⁠”

“⁠어르신⁠, 이거 원양산이에요⁠. 멀리 남의 바다에서 잡은 거예요⁠. 포장지에 쓰여 있어요⁠.⁠”

“⁠그 바다 임자도 화가 났겠구나⁠.⁠”

두만은 오징어 접시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넣었다⁠. 피영애 회장이 아깝다고 소리쳤다⁠. 용왕은 호두과자를 하나 집어 한참 굴려 보더니 입에 넣었다⁠. 씹다가 멈췄다⁠. 다시 씹었다⁠.

“⁠바다에는 이런 것이 없다⁠.⁠”

“⁠세종 가면 더 많아요⁠. 공무원들이 간식을 좋아해요⁠.⁠” 두만이 봉지를 통째로 내밀었다⁠.

팔용은 승합차 옆에서 노란 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 있었다⁠. 세종에 노란 모자를 쓰고 가도 되느냐고 아침에 난주에게 물었더니⁠, 난주는 그거 벗으면 당신이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팔용은 모자를 다시 썼다⁠.

*

오후 두 시⁠, 정부세종청사 해양수산부 회의실은 창이 크고 바닥이 말랐다⁠. 탁자에 이름표가 놓여 있었다⁠. 「⁠도매법인⁠」「⁠경매사⁠」「⁠상인회⁠」「⁠중도매인 32번⁠」「⁠새솔마트⁠」⁠. 맨 끝 이름표에는 「⁠낙찰자⁠」라고만 적혀 있었다⁠. 용왕이 맨 끝 자리에 앉자 의자 밑으로 그림자가 회의실 바닥을 가로질렀다⁠. 탁자 맞은편에 앉은 직원 셋이 그림자를 보고 서류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

수산정책을 맡은 사무관이 회의를 열었다⁠. 마흔 남짓에 안경을 쓰고⁠, 노트북을 두 대 펴 놓은 사람이었다⁠. 사무관은 목을 가다듬고 용왕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먼저 낙찰자 선생님께 여쭙겠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용왕이다⁠.⁠”

“⁠성은요⁠.⁠”

“⁠없다⁠.⁠”

사무관이 노트북에 무언가를 쳤다⁠. 화면을 보던 직원 하나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었다⁠.

“⁠선생님께서 노량진에서 낙찰받으신 활어를 바다에 방류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수산 생물은 바다에 풀기 전에 전염병 검사를 받고⁠, 어느 바다에 풀지 협의해야 합니다⁠. 양식한 참돔을 원래 살지 않던 바다에 대량으로 풀면 그 바다 고기들이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사무관이 서류 한 장을 용왕 앞으로 밀었다⁠. 「⁠수산 생물 방류 신청서⁠」⁠. “⁠이걸 쓰셔야 합니다⁠.⁠”

“⁠내 바다에 내 고기를 넣는데 누구에게 묻느냐⁠?⁠”

“⁠법이 그렇습니다⁠.⁠”

“⁠법은 누가 만들었느냐⁠?⁠”

“⁠국회가요⁠.⁠”

“⁠국회는 바다에 와 본 적이 있느냐⁠?⁠”

사무관이 잠시 말을 잃었다⁠. 두만이 호두과자 봉지를 바스락거렸다⁠. 영애가 팔꿈치로 두만의 옆구리를 찔렀다⁠.

팔용이 손을 들었다⁠. 경매장에서 하던 대로 손가락 하나였다⁠.

“⁠어르신⁠, 쓰십시오⁠. 제 경매장에 오실 때는 제 규칙을 따르셨습니다⁠. 여기 오셨으니 여기 규칙을 따르셔야 합니다⁠.⁠”

용왕이 팔용을 보았다⁠. 한참 뒤에 서류를 끌어당겼다⁠. 사무관이 볼펜을 내밀었다⁠. 용왕은 볼펜을 받아 거꾸로 쥐었다⁠. 팔용이 일어나 용왕 옆으로 가서 볼펜을 바로 쥐여 주었다⁠. 서른 해 쥔 손이 볼펜을 쥐는 법을 가르쳤다⁠.

「⁠신청인 성명⁠」 칸에 용왕이 「⁠용왕⁠」이라고 썼다⁠. 획이 물결처럼 휘었다⁠. 「⁠주소⁠」 칸에 「⁠동해⁠」⁠. 「⁠생년월일⁠」에서 용왕의 볼펜이 멈췄다⁠.

“⁠바다가 생길 때⁠.⁠”

“⁠미상으로 하겠습니다⁠.⁠” 사무관이 받아 적었다⁠.

「⁠방류 해역⁠」에 「⁠주문진 앞⁠」⁠, 「⁠어종⁠」에 「⁠참돔 방어 대게 광어 우럭⁠」⁠. 「⁠수량⁠」에서 용왕은 볼펜을 내려놓았다⁠.

“⁠다⁠.⁠”

“⁠숫자로 써 주셔야 합니다⁠.⁠”

“⁠다 사서 다 넣는다⁠.⁠”

사무관이 안경을 벗어 닦았다⁠. 마지막으로 신청인 서명란이 남았다⁠. 용왕은 볼펜 대신 오른손 엄지를 서류에 눌렀다⁠. 엄지가 닿은 자리에서 바닷물이 번져 나왔다⁠. 서류 절반이 젖어 투명해졌다⁠. 소금기가 하얗게 말라붙었다⁠.

“⁠접수는 됐습니다⁠.⁠” 사무관이 젖은 서류를 두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이 주 걸립니다⁠. 그동안 방류하시면 불법입니다⁠.⁠”

“⁠그럼 산 것을 어디에 두느냐⁠?⁠”

“⁠그건⁠…⁠…⁠” 사무관이 기창술을 보았다⁠. 기창술은 천장을 보았다⁠.

*

“⁠제가 말씀드려도 될까요⁠?⁠” 탁세윤이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에 표가 떴다⁠. “⁠몇 해 전 정부가 맡긴 연구에서⁠, 소비자가 낸 수산물 값의 절반 넘게가 유통비용으로 나간다고 나왔어요⁠. 산지에서 위판장⁠, 중도매인⁠, 도매시장⁠, 다시 중도매인⁠, 소매⁠. 단계마다 돈이 붙어요⁠. 새솔은 산지에서 바로 받아서 단계를 줄입니다⁠. 정부도 직거래를 늘리자고 하잖아요⁠.⁠”

“⁠맞습니다⁠.⁠” 사무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통 단계를 줄이는 건 저희 방향이기도 합니다⁠.⁠”

팔용은 노란 모자 챙을 만졌다⁠.

“⁠단계가 줄면 값을 부르는 사람도 줍니다⁠.⁠” 팔용이 말했다⁠. “⁠노량진에서는 중도매인 백 명이 한 상자를 두고 손을 듭니다⁠. 출하자는 전광판에서 누가 얼마에 샀는지 봅니다⁠. 직거래는 마트 하나가 어민을 만납니다⁠. 그 값을 누가 봅니까⁠?⁠”

“⁠계약서가 있어요⁠.⁠”

“⁠계약서는 두 사람만 봅니다⁠. 제 아들도 새솔 계약서 갖고 있습니다⁠. 그물이 빈 달에 위약금 조항부터 읽었습니다⁠.⁠”

세윤이 팔용을 보았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그 조항이 없으면 마트는 진열대를 비워요⁠.⁠” 세윤이 말했다⁠. “⁠진열대가 비면 사람들은 수입산을 사요⁠. 그럼 동해 어민 삼천 가구는 누구한테 파는데요⁠? 경매장은 그 사람들 다음 달을 책임져 줘요⁠?⁠”

“⁠경매장은 오늘 값을 바르게 부릅니다⁠. 다음 달은 다음 달 경매에서 부릅니다⁠.⁠”

“⁠다음 달 그물이 비면요⁠?⁠”

팔용은 대답하지 못했다⁠. 주문진 늙은 어민의 말이 귀에 남아 있었다⁠. 경매는 오늘 값만 불러⁠. 내일 그물은 안 불러 줘⁠.

*

“⁠숫자를 하나 보여 드리겠습니다⁠.⁠” 사무관이 다른 노트북을 돌렸다⁠. 회의실 벽 화면에 그래프가 떴다⁠. 「⁠연근해 어업 생산량⁠」⁠. 막대가 1980년대에 가장 높았다가 오른쪽으로 갈수록 낮아졌다⁠. “⁠1980년대에는 한 해 백오십만 톤 가까이 잡았습니다⁠. 2024년에는 팔십사만 톤이었습니다⁠. 1971년 이후로 가장 적었습니다⁠. 오징어는 그해 한 해에만 사십 퍼센트 넘게 줄었습니다⁠.⁠”

화면이 바뀌었다⁠. 붉은 선이 오른쪽으로 갈수록 올라갔다⁠. 「⁠동해 표층 수온⁠」⁠.

“⁠물이 데워지면서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고기들이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명태는 동해에서 거의 사라져서 2019년부터 아예 못 잡게 막았습니다⁠. 정부는 한 해에 잡을 수 있는 양을 미리 정하는 총허용어획량 제도를 내년까지 모든 어선으로 넓히려고 합니다⁠.⁠”

용왕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림자가 회의실 벽까지 올라가 화면 위에 겹쳤다⁠. 붉은 선 위에 푸른 비늘이 어른거렸다⁠.

“⁠사람도 알고 있었구나⁠.⁠” 용왕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바다가 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무관이 말했다⁠.

“⁠그럼 왜 아직도 잡느냐⁠?⁠”

“⁠사람들이 먹고살아야 해서요⁠.⁠” 대답한 사람은 영애였다⁠. 영애는 고무장갑 없는 손을 무릎에 얹고 앉아 있었다⁠. “⁠우리 수조도⁠, 주문진 그물도⁠. 다들 그거 하나 보고 새벽에 눈을 떠요⁠.⁠”

용왕은 영애를 오래 보았다⁠. 그다음에 붉은 선을 다시 보았다⁠.

“⁠물은 왜 데워지느냐⁠?⁠”

“⁠여러 까닭이 있습니다⁠. 사람이 땐 불이 하늘에 쌓여서⁠…⁠…⁠” 사무관이 말을 고르다 멈췄다⁠.

“⁠그것도 사람이구나⁠.⁠”

용왕은 다시 앉았다⁠. 그림자가 의자 밑으로 오그라들었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용왕은 말을 하지 않았다⁠. 사무관은 결론을 읽었다⁠. 방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낙찰자는 활어 매수를 멈춰 달라⁠. 도매법인은 3번 자리 전자 경매 전환을 검토해 달라⁠. 새솔마트 직거래는 지원 대상인지 따로 검토하겠다⁠.

용왕은 자기 이름이 불릴 때 고개를 들지 않았다⁠.

*

다섯 시⁠, 청사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세윤이 팔용을 불러 세웠다⁠. 계단 창 너머로 인공 호수가 보였다⁠. 용왕은 먼저 내려가 호숫가 난간에 손을 얹고 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만이 용왕 옆에서 호두과자를 하나 더 권했다⁠.

“⁠아까 위약금 얘기요⁠.⁠” 세윤이 말했다⁠. “⁠남궁 선장님 배 선주님이 저한테 전화하셨어요⁠. 이번 겨울 최소 물량을 반으로 깎아 달라고⁠.⁠”

“⁠깎아 주셨습니까⁠?⁠”

“⁠못 했어요⁠. 제가 올렸는데 위에서 잘렸어요⁠. 우리 상무님이 그러시더라고요⁠. 한 배 깎아 주면 삼천 가구가 다 깎아 달라고 한다고⁠.⁠” 세윤이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경매사님은 제가 계약서 위에 혼자 앉아 있는 줄 아시죠⁠. 제 위에도 상무님이 있어요⁠. 경매사님 위에 계신 분처럼요⁠.⁠”

팔용은 계단 아래 승합차 옆에서 전화 통화를 하는 기창술을 내려다보았다⁠. 기창술은 손짓을 크게 하며 웃고 있었다⁠. 수수료 이야기일 터였다⁠.

“⁠1월 말까지 봐 준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그건 지켜요⁠. 그다음은 저도 몰라요⁠.⁠” 세윤이 잠시 말을 멈췄다⁠. “⁠경매사님⁠, 선주님이 정 안 되면 다른 데 그물 놓는다고 하셨대요⁠. 어디라고 하시던가요⁠?⁠”

“⁠모릅니다⁠. 선주도 안 알려 줬습니다⁠.⁠”

“⁠그럼 아드님한테 물어보세요⁠. 저는 계약 배가 어디서 뭘 잡는지까지는 못 봐요⁠. 그건 아버님이 보셔야죠⁠.⁠”

세윤이 계단을 먼저 내려갔다⁠. 호숫가에서 용왕이 물에 손가락을 담갔다가 뺐다⁠. 물이 손가락을 따라 한 뼘쯤 솟았다가 떨어졌다⁠.

“⁠바다가 없는 곳에 바다 흉내를 냈구나⁠.⁠” 용왕의 목소리가 계단까지 들렸다⁠. “⁠고기가 한 마리도 없다⁠.⁠”

“⁠어르신⁠, 여기 원래 논이었대요⁠.⁠” 두만이 말했다⁠.

“⁠논에 물을 채워 놓고 바다라 하느냐⁠?⁠”

“⁠호수라고 해요⁠.⁠”

용왕은 대답 대신 손가락 끝의 물방울을 털었다⁠. 팔용은 세윤이 남긴 말을 곱씹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아들한테 물어보세요⁠. 서른 해 동안 팔용이 아들에게 물어본 것은 밥 먹었냐는 말뿐이었다⁠.

*

여섯 시⁠, 세종을 빠져나오는 승합차 안은 어두웠다⁠. 두만은 호두과자 빈 봉지를 접고 있었고⁠, 영애는 창에 머리를 기대 졸았다⁠. 기창술은 운전하며 전자 경매가 되면 수수료가 어떻게 되느냐고 혼잣말을 했다⁠. 용왕은 뒷자리 창가에서 고속도로 옆 저수지를 보고 있었다⁠. 저수지 수면에 비친 용왕의 얼굴에 금관이 없었다⁠.

“⁠어르신⁠, 내일 경매 오십니까⁠?⁠” 팔용이 물었다⁠.

“⁠검사가 끝날 때까지 사지 말라고 했다⁠.⁠”

“⁠네⁠.⁠”

“⁠그래도 간다⁠.⁠” 용왕이 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사람들이 만든 규칙이 바다를 지키는 규칙이라면 따르겠다⁠. 바다를 못 지키는 규칙이면 안 따르겠다⁠. 어느 것인지는 내가 본다⁠.⁠”

팔용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해일⁠」⁠. 팔용은 받았다⁠. 해일의 목소리 뒤로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 실내였다⁠.

“⁠아버지⁠, 28일에 주문진 위판장 앞에서 어민 집회해요⁠. 동해안 어민들 다 와요⁠. 「⁠노량진 용왕 경매 중단하라⁠」 현수막도 다 맞췄어요⁠.⁠”

“⁠너도 가냐⁠?⁠”

“⁠제가 선장들 대표로 말해요⁠.⁠” 해일이 잠깐 숨을 골랐다⁠. “⁠아버지 경매 멈추라고 제가 말할 거예요⁠.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나중에 영상으로 보고 놀라지 마시라고⁠.⁠”

“⁠해일아⁠.⁠”

“⁠아버지가 낙찰 부를 때 저도 그물 걷어요⁠. 같은 시간에요⁠. 아버지는 그거 아셨어요⁠?⁠”

전화가 끊겼다⁠. 승합차가 터널로 들어갔다⁠. 주황 불빛이 차례로 지나가며 팔용의 손등을 비췄다⁠. 볼펜을 쥔 손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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