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75자)

상인회 총회, 용왕님도 손을 들었다

용왕님 단골 경매사 · 석다감

2027년 12월 15일 수요일 새벽 네 시 반⁠, 3번 자리 경매가 끝나자 변두만이 경매대 앞으로 다가왔다⁠. 머리띠는 그대로였는데 목에 굵은 나무 염주를 걸고 있었다⁠. 단톡방에서 금목걸이라고 놀림받은 물건이 이 염주였다⁠. 두만은 염주를 손가락으로 굴리며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형님⁠, 용왕님 통장이에요⁠. 보세요⁠. 제가 이렇게 깨끗하게 관리해요⁠.⁠”

은행 앱 화면에 통장 이름이 떠 있었다⁠. 「⁠변두만(⁠용왕님⁠)⁠」⁠. 입금 줄이 진주 판 날마다 길게 늘어서 있었고⁠, 법인 정산으로 나간 돈이 차례로 찍혀 있었다⁠. 팔용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내리다가 한 줄에서 멈췄다⁠. 12월 7일⁠, 출금⁠, 받는 사람 「⁠해맑음대부⁠」⁠.

“⁠이건 뭐냐⁠?⁠”

두만의 손에서 염주 굴리던 소리가 멎었다⁠.

“⁠빌린 거예요⁠, 형님⁠. 용왕님한테⁠. 이자 쳐서 갚을 거예요⁠.⁠”

“⁠어르신이 빌려주신다고 했냐⁠?⁠”

“⁠바다에 돈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안 쓰실 돈이면 잠깐 쓰는 건데⁠.⁠” 두만이 휴대전화를 거두어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형님⁠, 저 그 대부업체 문자 이 년 받았어요⁠. 새벽마다요⁠. 경매 들어가기 전에 꼭 와요⁠. 그 문자가 이번 주에 안 왔어요⁠. 이 년 만에 처음으로 잠을 잤어요⁠.⁠”

팔용은 두만의 눈 밑을 보았다⁠. 거뭇하던 자리가 조금 옅어져 있었다⁠.

“⁠어르신께 말씀드려라⁠. 오늘 안에⁠.⁠”

“⁠오늘 총회 끝나고요⁠. 총회 때 저 형님 편 들 거예요⁠. 용왕님 계셔야 저도 살아요⁠.⁠”

“⁠내 편 들지 마라⁠. 네 편 들어⁠.⁠”

“⁠그게 그거예요⁠, 형님⁠.⁠”

*

오후 두 시⁠, 2층 회의실은 접이식 의자 일흔 개가 빈틈없이 찼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회에는 1층 수조 상인과 2층 식당 주인⁠, 중도매인 몇이 같이 들어 있었다⁠. 창가에는 수조 상인들이 고무장화를 신은 채 앉았고⁠, 문 근처에는 2층 식당 주인들이 앞치마를 벗어 무릎에 접어 놓고 앉았다⁠. 회의실 안에 비린내와 초고추장 냄새가 반반 섞였다⁠.

맨 앞 탁자에 상인회장 피영애가 앉았다⁠. 영애는 마이크를 두 번 두드리고⁠, 고무장갑을 벗어 탁자에 올렸다⁠.

“⁠임시총회 엽니다⁠. 안건 둘이에요⁠. 하나⁠, 3번 자리 경매사 바꿔 달라고 법인에 요청하는 거⁠. 둘⁠, 새솔마트 직거래 물량 우리가 같이 받는 거⁠. 할 말 있는 사람 손 들어요⁠. 손 드는 건 경매장에서 질리게 봤으니까 짧게⁠.⁠”

창가에서 광어 수조 하는 사내가 손을 들었다⁠.

“⁠내 수조에 물만 돌아⁠. 산소 거품만 보글보글⁠. 손님이 회 뜨러 왔다가 거품 구경하고 가⁠. 거품도 팔 수 있으면 내가 부자야⁠.⁠”

웃음이 터졌다⁠. 옆자리 우럭 수조 아주머니가 받았다⁠.

“⁠나는 손님이 용왕님 어디 계시냐고 물어⁠. 내가 용왕님 안내원이야⁠? 하루에 서른 번 물어⁠. 2층 가 보라고 하면 2층 가서 회덮밥 먹고 가⁠. 1층은 길만 가르쳐 줘⁠.⁠”

문 근처에서 옥난주가 손을 들었다⁠. 손에 볼펜을 쥐고 있었는데 남편 것을 빌려 온 것이었다⁠.

“⁠언니들⁠, 2층은 손님이 두 배예요⁠. 그 손님들이 1층 지나서 올라와요⁠. 지금 용왕님 쫓으면 2층도 죽고 1층은 원래대로 죽어요⁠. 같이 죽을래요⁠, 반만 죽을래요⁠?⁠”

“⁠반은 너네잖아⁠.⁠” 광어 수조 사내가 소리쳤다⁠.

“⁠우리 반이 살아야 언니들 김장 김치 사 주지⁠.⁠”

영애가 마이크를 당겼다⁠. “⁠난주야⁠, 너는 남편 편이니까 빠져⁠.⁠”

“⁠남편 편 아니에요⁠. 우리 가게 편이에요⁠. 남편은 집에서도 경매만 해요⁠. 저녁 반찬도 낙찰로 정해⁠.⁠”

*

맨 앞줄에 법인 상무 기창술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가 손을 들지도 않고 몸을 일으켰다⁠.

“⁠여러분⁠, 경매사 배치는 법인이 정합니다⁠. 상인회가 정할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 3번 자리 수수료로 시장 지붕 새는 거 고칩니다⁠. 내년에 주차장 바닥도 새로 깔고⁠.⁠”

“⁠지붕 고쳐서 빈 수조에 비 안 새면 뭐 해요⁠?⁠” 영애가 받아쳤다⁠.

“⁠회장님⁠, 우리 법인은 제일 높은 값을 부른 사람한테 팔아요⁠. 그게 법이에요⁠. 그 손님이 용왕이든 마트든 똑같아요⁠.⁠”

“⁠그 마트가 오늘 여기 와 있어요⁠.⁠” 영애가 문을 가리켰다⁠.

탁세윤이 회의실 뒤에서 걸어 나왔다⁠. 검은 패딩 차림에 손에는 서류 묶음을 들고 있었다⁠. 세윤은 탁자 옆에 서서 회의실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수조 상인들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새솔마트 수산 구매팀장 탁세윤입니다⁠. 1월부터 새솔은 동해 어민 삼천 가구에서 직거래로 물건을 받습니다⁠. 경매를 안 거쳐요⁠. 그 물량 일부를 상인회에 같은 값으로 넘겨 드리겠습니다⁠. 값은 한 달 단위로 미리 정합니다⁠. 경매 안 거친 고기에는 용왕님 손가락이 안 닿아요⁠. 여러분 수조가 찹니다⁠.⁠”

수조 상인들이 웅성거렸다⁠. 광어 수조 사내가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얼만데요⁠?⁠”

세윤이 서류 한 장을 넘겼다⁠. 영애가 받아 들고 숫자를 읽더니 안경을 고쳐 썼다⁠. 용왕이 오기 전 값보다 조금 높고⁠, 용왕이 온 뒤 값의 절반이 안 됐다⁠.

“⁠남궁 경매사님⁠.⁠” 영애가 마이크를 내밀었다⁠. “⁠할 말 있으면 해요⁠. 당신 얘기니까⁠.⁠”

*

팔용은 맨 뒷줄에서 일어나 탁자 앞까지 걸어 나갔다⁠. 회의실 바닥이 고무장화 밑에서 삐걱거렸다⁠. 마이크를 받았지만 입에 대지 않았다⁠. 경매장에서 서른 해 질러 온 목소리는 마이크가 필요 없었다⁠.

“⁠직거래 값은 누가 정합니까⁠?⁠”

“⁠새솔이 어민들과 같이 정합니다⁠.⁠” 세윤이 답했다⁠.

“⁠새솔이 정하는 겁니다⁠. 어민 삼천 가구가 마트 하나랑 마주 앉으면 누가 이깁니까⁠? 지금은 싸게 주십니다⁠. 경매장이 문 닫으면 그다음엔 누가 값을 부릅니까⁠?⁠”

“⁠경매장은 누가 값을 불렀는데요⁠?⁠” 세윤이 팔용을 정면으로 보았다⁠. “⁠경매사님이 부르셨죠⁠. 모두가 보는 데서⁠. 그리고 모두가 보는 데서 용왕님 혼자 다 가져가셨어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세윤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는데 뒷줄까지 또렷했다⁠.

“⁠제 아버지는 주문진에서 오징어 배를 했어요⁠. 제가 열다섯 살 때 오징어가 미어터지게 잡혔어요⁠. 풍어였어요⁠. 위판장 경매에서 값이 바닥까지 떨어졌어요⁠. 기름값도 안 나왔어요⁠. 잡을수록 손해라서 아버지가 배를 팔았어요⁠. 풍어인 해에요⁠.⁠” 세윤이 서류 묶음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경매는 고기가 많으면 어민을 죽이고⁠, 고기가 적으면 사는 사람을 죽여요⁠. 값을 미리 정해 두면 둘 다 덜 죽어요⁠. 저는 그걸 하려고 마트에 들어갔어요⁠.⁠”

팔용은 대답할 말을 찾았다⁠. 서른 해 경매대에서 본 얼굴들이 지나갔다⁠. 풍어인 날 고개를 숙이고 돌아가던 출하자들⁠, 값이 오른 날 혀를 차며 손을 내리던 소매 상인들⁠. 세윤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풍어인 날 값이 떨어지는 건 맞습니다⁠.⁠” 팔용이 말했다⁠. “⁠그날 값이 떨어지는 걸 모두가 봤습니다⁠. 누가 얼마에 샀는지 전광판에 떴습니다⁠. 미리 정한 값은 마주 앉은 두 사람만 봅니다⁠. 나머지는 계약서를 못 봅니다⁠.⁠”

“⁠전광판에는 진주가 안 떴잖아요⁠.⁠”

광어 수조 사내가 박수를 쳤다⁠. 누구 편인지 아무도 몰랐다⁠.

*

“⁠표결합니다⁠.⁠” 영애가 마이크를 잡았다⁠. “⁠안건 둘부터⁠. 새솔 물량 같이 받는 거 찬성하는 사람 손⁠.⁠”

손이 올라갔다⁠. 수조 상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영애가 볼펜으로 줄마다 셌다⁠. 반대 손이 올라갔다⁠. 2층 식당 주인들과 중도매인들⁠, 두만이 두 손을 다 들었다가 영애의 눈총에 한 손을 내렸다⁠.

“⁠찬성 서른넷⁠, 반대 서른넷⁠. 나는 아직 안 들었어요⁠.⁠”

회의실 문이 열렸다⁠. 차가운 바닷바람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용왕이 문턱에 서 있었다⁠. 금관 끝에 물방울이 맺혔다가 떨어졌다⁠. 바닥에 그림자가 길게 누웠고⁠, 그림자 끝에서 푸른 비늘이 반짝였다⁠. 문 근처에 앉은 식당 주인들이 의자째 뒤로 물러났다⁠.

용왕은 회의실을 한 번 둘러보고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나는 반대다⁠.⁠”

“⁠회원 아니세요⁠!⁠” 영애가 소리쳤다⁠.

“⁠나는 이 시장에서 제일 많이 산 손님이다⁠.⁠”

“⁠손님은 손님이고 회원은 회원이에요⁠!⁠”

“⁠회비 내시면 회원이에요⁠!⁠” 두만이 끼어들었다⁠.

용왕이 두루마기 소매에서 진주 한 알을 꺼내 영애 앞 탁자에 내려놓았다⁠. 진주가 탁자 위를 굴러 영애의 고무장갑에 닿고 멈췄다⁠.

“⁠회비다⁠.⁠”

“⁠회비는 월 삼만 원⁠, 현금만이에요⁠.⁠” 영애가 진주를 손가락으로 밀어 돌려보냈다⁠. “⁠그리고 회원 가입은 이사회 통과해야 해요⁠. 이사회는 다음 달이에요⁠.⁠”

“⁠사람들은 바다보다 절차가 많구나⁠.⁠”

“⁠바다는 회의를 안 하잖아요⁠.⁠” 영애가 마이크를 고쳐 잡고 손을 들었다⁠. “⁠나 찬성⁠. 서른다섯 대 서른넷⁠. 새솔 물량 받습니다⁠.⁠”

회의실이 떠나갈 듯 시끄러워졌다⁠. 수조 상인들은 서로 어깨를 쳤고⁠, 식당 주인들은 의자를 접으며 혀를 찼다⁠. 두만은 머리띠를 벗어 얼굴을 덮었다⁠. 세윤은 영애에게 고개를 숙이고 서류에 서명을 받았다⁠. 서명을 받는 동안 세윤은 한 번도 용왕을 보지 않았다⁠.

*

용왕이 팔용에게 다가왔다⁠. 사람들이 물결처럼 갈라졌다⁠.

“⁠진 것이냐⁠?⁠”

“⁠상인회가 정한 겁니다⁠. 어르신이 지신 건 아닙니다⁠.⁠”

“⁠그럼 누가 졌느냐⁠?⁠”

팔용은 수조 상인들이 빠져나간 의자 줄을 보았다⁠. 이긴 사람들 얼굴도 밝지 않았다⁠. 새솔 값은 미리 정해졌지만 물량은 새솔이 정했다⁠. 수조에 고기가 들어오는 날은 1월 둘째 주라고 했다⁠.

“⁠모르겠습니다⁠.⁠” 팔용이 말했다⁠.

“⁠나도 모르는 일을 너도 모르는구나⁠.⁠” 용왕이 수염을 쓸었다⁠. “⁠사람들이 손을 드는 것은 재미있다⁠. 경매장보다 느리다⁠.⁠”

“⁠회의라서 그렇습니다⁠.⁠”

두만이 머리띠를 다시 이마에 묶으며 다가왔다⁠. 염주를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 두만은 팔용을 한 번 보고⁠, 용왕 앞에 무릎을 반쯤 굽혔다⁠.

“⁠어르신⁠, 드릴 말씀이 있어요⁠. 어르신 통장에서 제가 돈을 좀 썼어요⁠. 대부업체 빚 갚았어요⁠. 이자 쳐서 갚을게요⁠. 이 년 안에⁠.⁠”

“⁠빚이 무엇이냐⁠?⁠”

“⁠먼저 쓰고 나중에 갚는 거요⁠. 늦게 갚으면 새벽마다 문자가 와요⁠.⁠”

용왕이 한참 두만을 내려다보았다⁠. 회의실에 남은 사람들이 의자를 접다 말고 둘을 보았다⁠.

“⁠바다에도 빚이 있다⁠.⁠” 용왕이 말했다⁠. “⁠사람이 먼저 가져가고 안 갚은 것⁠. 나는 문자를 보낼 줄 몰라서 받으러 왔다⁠.⁠”

“⁠그럼 저는 어떻게 갚아요⁠?⁠”

“⁠돈은 가져라⁠. 바다에 돈은 쓸 데가 없다⁠.⁠” 용왕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두만의 이마를 가리켰다⁠. “⁠대신 너는 끝까지 내 손이 되어라⁠. 내가 손가락을 드는 날까지 네가 들어라⁠. 도중에 내리면 그날 빚을 받으러 가겠다⁠.⁠”

두만이 침을 삼켰다⁠. 이마의 머리띠에 땀이 배어 나왔다⁠. 겨울인데⁠.

“⁠네⁠, 어르신⁠. 끝까지요⁠.⁠”

팔용은 두만의 대답을 들으며 볼펜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두만의 손이 용왕에게 묶였다⁠. 두만이 손을 드는 한 용왕은 계속 산다⁠.

기창술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기창술은 화면을 보고 얼굴이 굳더니 팔용에게 와서 화면을 들이밀었다⁠. 공문 사진이었다⁠.

「⁠해양수산부 · 노량진수산물도매시장 활어 이상 고가 낙찰 관련 관계자 회의 · 2027년 12월 21일 화요일 오후 두 시 · 정부세종청사 · 참석 요청 : 도매법인⁠, 경매사 남궁팔용⁠, 상인회장⁠, 새솔마트⁠, 중도매인 32번⁠, 낙찰자 본인⁠」

“⁠낙찰자 본인이래⁠.⁠” 기창술이 용왕을 흘끗 보았다⁠. “⁠어르신⁠, 세종 가 보셨어요⁠?⁠”

“⁠세종이 어디냐⁠?⁠”

“⁠충청도요⁠.⁠”

“⁠바다가 없는 곳이구나⁠.⁠” 용왕은 진주를 다시 소매에 넣었다⁠. “⁠그 사람들도 손을 드느냐⁠?⁠”

“⁠거기는 도장을 찍습니다⁠.⁠” 팔용이 말했다⁠.

용왕이 처음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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