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516자)

그물을 비켜 가는 참돔

용왕님 단골 경매사 · 석다감

2027년 12월 12일 일요일 새벽 다섯 시⁠, 주문진항 방파제 끝의 빨간 등대가 바다를 향해 불빛을 돌렸다⁠. 팔용은 첫 기차로 강릉에 내려 택시를 타고 왔다⁠. 택시 기사는 노량진 경매사라는 말에 룸미러로 팔용을 두 번 보더니⁠, 용왕 영상 속 경매사 아니냐고 물었다⁠. 팔용은 아니라고 했고⁠, 기사는 목소리가 똑같다며 웃었다⁠.

부두에는 경유 냄새와 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위판장 지붕 아래 형광등이 하얗게 켜졌고⁠, 바닥에 빈 플라스틱 상자가 키 높이로 쌓여 있었다⁠. 바람이 바다에서 곧장 불어와 작업복 깃을 세워도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팔용은 노란 모자 대신 털모자를 썼다⁠. 서울에서 노란 모자를 안 쓴 건 쉬는 날뿐이었다⁠.

다섯 시 이십 분⁠, 항구 입구로 배 한 척이 들어왔다⁠. 뱃머리에 흰 페인트로 「⁠제7순풍호⁠」⁠. 조타실 창 너머로 털모자를 눌러쓴 해일이 보였다⁠. 해일은 배를 부두에 대고 밧줄을 던지다가 팔용을 보고 손을 멈췄다⁠. 밧줄 끝이 물에 빠졌다⁠.

“⁠아버지가 여기 왜 있어요⁠?⁠”

“⁠쉬는 날이다⁠.⁠”

“⁠쉬는 날 주문진까지 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해일이 밧줄을 다시 건져 올렸다⁠. 주황 방수복 소매 끝으로 갈라진 손등이 보였다⁠. 손등의 틈마다 소금이 하얗게 끼어 있었다⁠.

*

갑판 위 양망기가 돌아가며 그물을 감아올렸다⁠. 대게를 잡는 자망은 바닥에 길게 세워 두는 그물이라⁠, 올라오는 그물코마다 대게가 다리를 걸고 있어야 했다⁠. 그물은 깨끗했다⁠. 해초 몇 가닥과 불가사리 두 마리⁠, 대게는 한참 만에 한 마리씩 올라왔다⁠. 선원 둘이 대게를 그물에서 떼어 내 상자에 넣었다⁠. 상자 바닥이 다 덮이지도 않았다⁠.

“⁠어제도 이랬어요⁠. 그제도⁠.⁠” 해일이 그물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봐요⁠, 저기⁠.⁠”

해일이 턱으로 바다를 가리켰다⁠. 배 옆 검푸른 물속에 붉은 그림자가 떼 지어 있었다⁠. 참돔이었다⁠. 참돔 떼는 그물이 감겨 올라오는 자리를 피해 둥글게 돌았다⁠. 그물 쪽으로 다가오던 대게 한 마리가 참돔 떼를 따라 몸을 돌리는 것이 물 위에서도 보였다⁠.

“⁠참돔이 대게를 데리고 다녀요⁠. 말이 돼요⁠? 오십 년 배 탄 선주님도 이런 건 처음 본대요⁠.⁠”

“⁠언제부터⁠?⁠”

“⁠아버지 단골이 참돔 풀어 놓은 날부터요⁠.⁠” 해일이 장갑을 벗어 갑판에 던졌다⁠. “⁠아버지가 낙찰 부르신 날부터⁠.⁠”

“⁠경매사는 제일 높은 손을 부른다⁠. 그게 일이다⁠.⁠”

“⁠알아요⁠. 아버지는 언제나 그게 일이죠⁠.⁠” 해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선원 둘이 손을 멈추고 이쪽을 보았다⁠. “⁠그 손님이 사 간 참돔이 왜 하필 주문진 앞에 풀렸는지는 아세요⁠? 노량진에서 방어 사 가서 또 여기다 풀었죠⁠? 그 방어들이 우리 그물 앞에서 대게를 다 몰고 나가요⁠.⁠”

“⁠새솔마트 계약은 왜 말 안 했냐⁠?⁠”

해일이 입을 다물었다⁠. 양망기가 그물 끝을 감아올리고 멈췄다⁠. 마지막 그물코에 아무것도 없었다⁠.

“⁠세윤 팀장이 말했어요⁠?⁠” 해일이 물었다⁠. “⁠선주님 배는 새솔이랑 겨울 계약했어요⁠. 대게 몇 톤⁠, 값은 미리 정해 놓고⁠. 물량 못 채우면 위약금 물어요⁠. 선주님이 물면 저도 같이 물어요⁠. 계약 선장은 그래요⁠.⁠”

“⁠얼마나 모자라냐⁠?⁠”

“⁠아버지가 그걸 알아서 뭐 하시게요⁠? 진주로 메워 주시게요⁠?⁠”

팔용은 대답하지 못했다⁠. 해일은 상자를 들어 부두로 넘겼다⁠. 상자는 가벼웠다⁠.

*

여섯 시 반⁠, 위판장에서 산지 경매가 열렸다⁠. 노량진보다 작았고 경매사 목소리가 더 컸다⁠. 바닥에 늘어놓은 상자마다 대게가 몇 마리씩 다리를 꼬물거렸고⁠, 방어 상자는 몇 개 안 됐다⁠. 오징어 상자는 하나도 없었다⁠.

장화를 신은 어민들이 경매를 지켜보며 수군거렸다⁠. 팔용 옆에 선 늙은 어민이 담배를 귀에 꽂은 채 말했다⁠.

“⁠오징어가 안 와⁠. 물이 따뜻해서⁠. 내 젊을 땐 이 바닥이 오징어로 덮였어⁠. 지금은 방어가 올라오고⁠, 남해 고기가 올라와⁠. 물이 데워지니까 고기가 이사를 다녀⁠.⁠”

“⁠참돔도요⁠?⁠”

“⁠참돔은 이번 달에 처음이야⁠. 노량진에서 웬 노인네가 사다 풀었다더만⁠.⁠” 늙은 어민이 팔용을 흘끗 보았다⁠. “⁠그쪽 혹시 영상에 나오는 그 경매사요⁠?⁠”

“⁠아닙니다⁠.⁠”

“⁠목소리가 똑같은데⁠.⁠”

옆에 있던 젊은 어민이 끼어들었다⁠. “⁠아재⁠, 그 경매사 덕에 저번 주에 우리 방어 노량진에서 세 배 받았잖아요⁠.⁠”

“⁠세 배 받고 그물은 비었지⁠. 세 배를 한 번 받으면 뭐 해⁠? 그물이 비면 다음 달에 올려 보낼 게 없는데⁠.⁠” 늙은 어민이 담배를 귀에서 빼 손가락에 끼웠다⁠. “⁠경매는 오늘 값만 불러⁠. 내일 그물은 안 불러 줘⁠.⁠”

경매사가 대게 상자를 부르는 소리가 위판장 지붕을 울렸다⁠. 팔용은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주먹을 쥐었다⁠. 노량진에서 세 배를 받는다는 소문이 돌아 이 바닥의 방어 값도 올라 있었다⁠. 산지 중도매인들은 서울로 올려 보낼 생각에 손을 높이 들었는데⁠, 들 손은 많고 부를 상자가 적었다⁠. 오른 값을 받을 고기가 없으니 어민들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값은 서울에서 오르고⁠, 그물은 여기서 비었다⁠.

*

일곱 시⁠, 방파제 끝 테트라포드 위에 용왕이 앉아 있었다⁠. 푸른 두루마기 자락이 물에 잠겼는데 젖지 않았다⁠. 은빛 수염은 바람에 날리지 않고 무릎 위에 가지런했다⁠. 용왕은 맨발을 바닷물에 담그고 수평선을 보고 있었다⁠.

“⁠올 줄 알았다⁠.⁠” 용왕이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팔용은 테트라포드 사이를 조심스럽게 건너가 용왕 옆에 자리를 잡았다⁠. 발밑에서 파도가 콘크리트를 때리고 물러났다⁠.

“⁠어르신이 산 고기는 왜 그물에 안 듭니까⁠?⁠”

“⁠값을 치렀으니 내 것이다⁠. 내 것은 다시 사람 그물에 들지 않는다⁠.⁠” 용왕이 물속을 가리켰다⁠. 참돔 떼가 방파제 아래를 돌았다⁠. “⁠내 것은 제 무리도 데리고 나간다⁠. 동무가 그물에 드는 것을 보고만 있겠느냐⁠?⁠”

“⁠그 그물이 제 아들 그물입니다⁠.⁠”

“⁠안다⁠.⁠”

“⁠아신다고요⁠?⁠”

“⁠네 아들 그물은 코가 잘다⁠.⁠” 용왕이 수염을 쓸었다⁠. “⁠잘아서 많이 걸린다⁠. 그래서 많이 비켜 간다⁠.⁠”

팔용은 용왕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자망 그물코는 법으로 크기가 정해져 있었다⁠. 해일이 그물코를 속일 아이는 아니었다⁠. 팔용은 고개를 저었다⁠.

“⁠그만 사십시오⁠. 어르신이 사는 만큼 그물이 빕니다⁠.⁠”

“⁠바다가 찰 때까지 사겠다⁠.⁠”

“⁠바다가 언제 찹니까⁠?⁠”

“⁠명태가 돌아오면⁠. 오징어가 돌아오면⁠.⁠” 용왕이 처음으로 팔용을 보았다⁠. 눈동자가 바닷물처럼 짙었다⁠. “⁠너는 네 규칙을 지켜라⁠. 제일 높은 손이 가져간다⁠. 나는 그 규칙이 좋아서 네 경매에 갔다⁠. 힘으로 빼앗지 않고⁠, 손을 들어 가져간다⁠. 사람들이 바다에서 가져갈 때도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사람들도 값을 내고 사 갑니다⁠.⁠”

“⁠누구에게 냈느냐⁠? 바다에는 한 푼도 안 냈다⁠.⁠”

바람이 한 번 세게 불었다⁠. 팔용의 털모자가 벗겨질 뻔해 손으로 눌렀다⁠. 용왕의 수염은 여전히 한 올도 움직이지 않았다⁠.

용왕이 일어나 시장 골목에서 풍겨 오는 냄새를 맡았다⁠. 오징어순대를 찌는 냄새였다⁠.

“⁠사람들은 오징어 속을 채워 먹더구나⁠.⁠” 용왕이 말했다⁠. “⁠내 오징어가 다 어디 갔는지 아느냐⁠?⁠”

“⁠모릅니다⁠.⁠”

“⁠나도 모른다⁠. 그래서 산다⁠.⁠” 용왕은 테트라포드에서 물로 걸어 내려갔다⁠. 물이 무릎까지 차오르더니⁠, 한 걸음에 허리⁠, 두 걸음에 어깨⁠, 세 걸음에 금관까지 잠겼다⁠. 물 위에 동그란 물결 하나만 남았다⁠.

*

여덟 시⁠, 부두로 돌아오자 위판장 앞에 흰 승합차가 서 있었다⁠. 탁세윤이 해일과 마주 서 있었다⁠. 세윤은 검은 패딩 대신 낡은 털 점퍼를 입었는데⁠, 등에 「⁠주문진 어촌계⁠」라는 글씨가 바래 있었다⁠.

“⁠엄마 집에 왔다가 들렀어요⁠.⁠” 세윤이 팔용을 보고 말했다⁠. “⁠여기가 제 고향이에요⁠. 아버지가 이 부두에서 오징어 배를 했어요⁠.⁠”

“⁠계약 물량 얘기입니까⁠?⁠”

“⁠네⁠. 제7순풍호 이번 주 물량이 계약의 오분의 일이에요⁠.⁠” 세윤이 해일을 보았다⁠. “⁠남궁 선장님 잘못이 아닌 거 알아요⁠. 바다가 이상한 것도 알고요⁠. 그래도 계약은 계약이에요⁠. 마트 진열대는 바다 사정을 안 봐줘요⁠.⁠”

“⁠1월 말까지만 봐 주세요⁠.⁠” 해일이 말했다⁠. “⁠그때까지 채울게요⁠.⁠”

“⁠어떻게 채우실 건데요⁠?⁠”

해일은 대답하지 않고 부두 끝 선주 사무실을 보았다⁠. 사무실 창에 선주의 실루엣이 비쳤다⁠. 세윤이 해일의 눈길을 따라 사무실을 보았다가 다시 팔용을 보았다⁠.

“⁠경매사님⁠, 1월부터 직거래 간다는 거 농담 아니에요⁠. 용왕님이 노량진에서 사 가는 만큼 여기 그물이 비어요⁠. 경매가 바다를 망치는데 경매장에 물건을 계속 보낼 이유가 없잖아요⁠.⁠”

“⁠경매는 바다를 안 망칩니다⁠. 손님 하나가 이상한 겁니다⁠.⁠”

“⁠그 손님을 경매가 못 막잖아요⁠.⁠” 세윤은 승합차 문을 열었다⁠. “⁠저희 아버지 배도 경매가 못 막아서 팔았어요⁠. 풍어인 해에요⁠.⁠”

승합차가 떠났다⁠. 해일은 빈 상자를 들고 선주 사무실로 걸어갔다⁠. 팔용이 따라가려 하자 해일이 돌아보지 않고 손을 들어 막았다⁠.

*

열한 시⁠, 택시를 기다리는 정류장으로 선주가 걸어왔다⁠. 예순 중반에 배가 나온 사내였고⁠, 오리털 조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있었다⁠. 선주는 팔용 옆 의자에 앉아 한참 바다만 보다가 입을 열었다⁠.

“⁠해일이 아버님 되시지요⁠. 영상에서 봤습니다⁠. 목소리가 쩌렁쩌렁하시더만⁠.⁠”

“⁠아들이 신세 지고 있습니다⁠.⁠”

“⁠신세는 내가 지지요⁠. 저만한 선장 구하기 어렵습니다⁠. 바다 읽는 눈이 좋아요⁠. 경매사 아들이라 그런가⁠, 값 나갈 고기가 어디 있는지 압니다⁠.⁠” 선주가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손가락을 접었다⁠. “⁠배 산 빚이 아직 칠 년 남았어요⁠. 새솔 계약 들어가면서 빚 갚을 계산이 섰는데⁠, 이번 겨울 물량을 못 채우면 위약금이 나가요⁠. 위약금 나가면 배가 은행 거 됩니다⁠.⁠”

“⁠용왕 어르신 때문이라는 건 새솔도 압니다⁠.⁠”

“⁠압디다⁠. 알아도 계약서는 용왕을 몰라요⁠.⁠” 선주가 웃었는데 눈이 안 웃었다⁠. “⁠노량진 양반⁠, 당신 손님 좀 말려 주쇼⁠. 당신이 부르는 경매에만 손 든다면서요⁠. 당신이 안 부르면 되잖소⁠.⁠”

“⁠법인 경매사가 경매를 안 부르면 법인에서 잘립니다⁠.⁠”

“⁠그럼 나는 배를 잘리고⁠.⁠” 선주가 일어나 조끼 지퍼를 올렸다⁠. “⁠해일이한테는 내가 알아서 하라고 했소⁠. 바다는 넓어요⁠. 여기 그물이 비면 다른 데 그물 놓으면 되지⁠.⁠”

“⁠다른 데가 어딥니까⁠?⁠”

선주는 대답 대신 손을 한 번 흔들고 부두로 걸어갔다⁠. 택시가 왔다⁠. 팔용은 택시 문을 잡은 채 선주의 등을 보았다⁠. 선주는 사무실 앞에서 해일과 마주 서서 바다 먼 곳을 가리켰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이 어디인지 정류장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

오후 두 시⁠,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서 팔용의 휴대전화가 연달아 울렸다⁠. 상인회 단톡방이었다⁠. 피영애 회장이 공지를 올렸다⁠.

「⁠12월 15일 수요일 오후 두 시 상인회 임시총회 · 2층 회의실 안건 1 3번 자리 활어 경매사 교체 요청 건 안건 2 새솔마트 직거래 물량 공동 구매 건 경매사 남궁팔용 님 꼭 오세요⁠」

아래로 답글이 줄줄이 달렸다⁠. 「⁠찬성⁠」「⁠교체는 좀⁠」「⁠용왕님 오시고 2층 장사 잘됨⁠」「⁠2층만 잘됨⁠」「⁠두만이 요즘 금목걸이 함⁠」⁠. 마지막 글은 두만이 올렸다⁠. 「⁠목걸이 아니고 염주임⁠」⁠.

팔용은 화면을 끄고 창밖을 보았다⁠. 기차가 대관령 터널을 빠져나왔고⁠, 창유리에 노란 모자를 쓰지 않은 반백 머리가 비쳤다⁠. 휴대전화가 한 번 더 울렸다⁠. 해일이었다⁠.

「⁠선주님이 정 안 되면 밤에 다른 데 나가 보재요⁠」

팔용은 답장을 쓰다가 지웠다⁠. 무엇을 쓸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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