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02자)

송도의 비늘

드래곤 알을 주웠더니 우리 원룸이 둥지가 되었다 · 채온유

재인은 이 비늘을 다시 지갑에 넣지 않았다⁠. 내 붕대 위에 올려 둔 채로 말했다⁠. 침대 끝에 앉아⁠, 나를 보지 않고⁠, 벽지에 흐르는 물자국을 보면서⁠.

“⁠2019년 9월⁠. 흑림은 그때 다섯 명이었어⁠. 길드도 아니었어⁠. 탁희준이 팀장이고⁠, 내가 둘째⁠.⁠” 재인이 숨을 골랐다⁠. “⁠송도 매립지 공사장에 게이트가 하나 열렸는데 신고를 안 했어⁠. 탁희준이 먼저 찾았거든⁠. 신고하면 큰 길드가 가져가니까⁠.⁠”

나는 듣고만 있었다⁠. 이 말이 구월동 가림막 안의 노란 띠 없는 구덩이와 겹쳤다⁠.

“⁠안에 둥지가 있었어⁠. 바닥이 쇳물처럼 끓는 굴이었고⁠, 거기 알이 셋 있었어⁠. 어미는 없었어⁠. 사냥 나간 거였어⁠. 탁희준이 하나만 들고 나가자고 했어⁠. 하나면 표가 안 난다고⁠. 알 껍데기 한 조각만 팔아도 우리 다섯이 일 년을 먹는다고⁠.⁠” 재인의 왼손이 오른 손목을 쥐었다⁠. “⁠그 열을 견딜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었어⁠. 내 칼이 열을 다루거든⁠. 그래서 내가 들었어⁠.⁠”

“⁠재인 씨가 들고 나왔어요⁠?⁠”

“⁠응⁠.⁠”

재인은 거기서 한참 멈췄다⁠. 냉장고가 웅웅거렸다⁠.

“⁠나오는 길에 알이 내 품에서 두드렸어⁠. 안에서⁠. 세 번⁠.⁠”

나는 숨을 들이켰다⁠. 똑⁠, 똑⁠, 똑⁠. 첫날 밤 내 방에서 들은 소리였다⁠. 나는 이 소리에 네⁠, 나가요⁠, 하고 대답했다⁠.

“⁠나는 대답 안 했어⁠. 계속 걸었어⁠. 게이트 밖으로 나왔고⁠, 탁희준이 알을 받아서 얼렸어⁠. 열이 새면 어미가 찾아온다고⁠. 얼리니까 두드리는 소리가 멈췄어⁠.⁠” 재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갈라졌다⁠. “⁠어미는 그래도 왔어⁠. 다 큰 드래곤이 게이트 밖으로 나와서 송도를 태웠어⁠. 알을 찾느라고⁠. 아파트 열두 층⁠, 세 블록⁠. 마흔한 명⁠.⁠”

“⁠그래서 탁희준이⁠—⁠”

“⁠어미 목을 얼려서 떨어뜨렸어⁠. 심장을 꺼냈고⁠, 굳어 있었고⁠, 그 돈으로 흑림을 세웠어⁠. 관리청에는 게이트가 저절로 열리고 드래곤이 튀어나왔다고 보고했어⁠. 다섯 명이 다 그렇게 말했어⁠. 나도⁠.⁠”

재인이 그제야 나를 봤다⁠.

“⁠구월동 구덩이 봤지⁠? 얼음으로 굴 뚫어 놓은 거⁠. 송도 때랑 똑같아⁠. 게이트는 닫혀도 같은 안쪽이 다른 데서 다시 열려⁠. 둥지가 다시 열린 거야⁠. 남은 알 중에 하나가 깜부야⁠. 탁희준은 처음부터 알았어⁠. 그래서 나한테 옛날처럼이라고 한 거야⁠.⁠”

나는 비늘을 내려다봤다⁠. 깜부 엄마의 비늘은 깜부의 비늘보다 열 배 크고⁠, 가장자리가 녹아 말려 있었다⁠. 이 비늘의 주인이 마흔한 명을 태웠다⁠. 이 주인을 게이트 밖으로 불러낸 건 이 여자의 품이었다⁠.

*

해가 뜨고 나서 우리는 연탄 창고에서 싸웠다⁠. 깜부가 연탄 벽 안쪽에서 자고 있었고⁠, 우리는 이 벽 바깥에 서 있었다⁠. 창고는 연탄 냄새와 깜부의 열로 숨이 막혔다⁠.

“⁠그래서 첫날 칼 들고 내려온 거예요⁠?⁠” 내가 말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어미를 불러낸 걸 새끼 죽여서 갚으려고⁠?⁠”

“⁠갚는 거 아니야⁠.⁠”

“⁠그럼 뭔데요⁠?⁠”

“⁠다시 안 들려고⁠.⁠” 재인이 말했다⁠. “⁠다 크면 또 누가 들고 가⁠. 또 누가 쫓아와⁠. 또 탈 거야⁠. 그 전에 끝내려고 했어⁠.⁠”

“⁠근데 안 끝냈잖아요⁠.⁠”

“⁠못 끝냈어⁠.⁠” 재인이 왼팔을 들었다⁠. “⁠얘가 여기 올라와서 누웠잖아⁠. 감각도 없는 데에⁠.⁠”

나는 이 팔을 봤다⁠. 밤새 내 붕대 아래 있던 팔이었다⁠. 나는 이 팔을 보면서 하면 안 되는 말을 했다⁠.

“⁠그 팔⁠, 송도 사람들한테는 안 보여 줬죠⁠.⁠”

재인이 팔을 내렸다⁠. 대꾸가 없었다⁠. 연탄 벽 안쪽에서 깜부가 뒤척였다⁠. 비늘이 연탄에 긁히는 소리가 났다⁠. 재인이 창고를 나갔다⁠. 계단을 올라가는 발소리가 2층 문에서 멎었다⁠. 문 닫히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나는 연탄 벽 안쪽을 들여다봤다⁠. 깜부가 자면서 등을 비틀고 있었다⁠. 등뼈를 따라 비늘 사이 붉은 줄이 평소보다 굵고 밝았다⁠. 첫 허물 전날 밤 재인의 차 안에서 본 것과 같은 빛이었다⁠. 손을 대 보니 비늘이 프라이팬 가장자리처럼 뜨거웠다⁠. 두 번째가 오고 있었다⁠. 열이틀이 거의 다 찼다⁠.

나는 이걸 알고도 나갔다⁠. 이것도 털어놓겠다⁠. 이날 나는 깜부보다 내 머릿속이 더 뜨거웠고⁠, 이 열을 식히는 게 먼저였다⁠. 연탄 두 장을 더 넣고⁠, 창고 문을 닫고⁠, 오토바이에 올랐다⁠. 할머니에게 깜부를 봐 달라고 문자를 보내고⁠, 맞은편 창의 카메라를 등지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

송도까지는 사십 분이다⁠. 배달할 때는 이 길을 하루에 두 번도 탔다⁠. 이날은 아무것도 싣지 않았다⁠.

2019년의 세 블록은 지금 공원이다⁠. 바닷바람이 부는 잔디밭 한가운데 아파트 기둥 하나가 그대로 서 있다⁠. 콘크리트가 녹아 흘러내린 모양 그대로 굳은 기둥이었다⁠. 기둥 둘레에 국화가 놓여 있었다⁠. 마른 것과 싱싱한 것이 섞여 있었다⁠. 누가 아직도 갖다 놓는다⁠.

기둥 앞에 국화 한 다발을 내려놓는 남자가 있었다⁠. 예순 넘어 보였고⁠, 한쪽 다리를 절었고⁠, 소방서 로고가 바랜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남자는 국화를 내려놓고 기둥에 손바닥을 한 번 댔다가 뗐다⁠. 내가 쳐다보는 걸 알았는지 남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날 여기 계셨어요⁠?⁠”

“⁠아뇨⁠. 뉴스로만요⁠.⁠”

“⁠나는 있었어요⁠. 구월동 우리 소방서에서 제일 먼저 왔지⁠.⁠” 남자가 기둥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 기둥 안쪽 계단으로 맨 먼저 들어간 사람이 우리 반장이었어요⁠. 곽 반장⁠. 열두 층에 애 셋이 있다고 해서⁠. 애들은 내려왔는데 반장은 못 내려왔어⁠.⁠” 남자가 모자를 고쳐 썼다⁠. “⁠반장 어머니가 헬멧을 가져가셨어요⁠. 녹은 거를⁠. 그 뒤로 한 번도 여기 안 오셨어⁠. 그래서 내가 대신 와요⁠. 매달 넷째 주에⁠.⁠”

나는 곽 반장이라는 이름을 들고 한참 앉아 있었다⁠. 우리 집주인도 곽 씨였다⁠. 곽 씨는 많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하기로 했다는 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남자가 절룩이며 주차장 쪽으로 갔다⁠. 이후에 벤치에 앉아 있는데 할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나 노인정이다⁠. 화투 치는데 내가 손주 자랑을 했어⁠. 껍데기 벗을 때마다 생일 해 준다니까 다들 부러워해⁠.⁠”

“⁠할머니⁠, 깜부는요⁠.⁠”

“⁠창고에서 자⁠. 아까 보니까 또 등이 갈라지려고 하더라⁠. 연탄 두 장 더 넣어 놨어⁠. 저녁에 미역국 끓일라고 미역 불려 놨다⁠.⁠” 할머니가 수화기를 막고 누군가에게 소리쳤다⁠. “⁠광 팔았어⁠, 광⁠! 내 거야⁠!⁠” 그러고는 다시 나한테 물었다⁠. “⁠너 어디냐⁠? 오토바이 소리가 바닷바람 소리다⁠.⁠”

“⁠송도요⁠.⁠”

수화기 너머가 잠깐 비었다⁠. 화투장 섞는 소리만 났다⁠.

“⁠거긴 왜⁠?⁠”

“⁠그냥요⁠.⁠”

“⁠늦지 마라⁠.⁠”

할머니가 전화를 끊었다⁠. 나는 녹아내린 기둥을 오래 봤다⁠. 이 기둥을 녹인 불은 불가마 뒤 화구에서 본 불처럼 하얀 데 파란 테였을 것이다⁠. 나는 이 불을 키우고 있었다⁠. 마흔한 명의 이름은 이 공원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기둥만 서 있었다⁠. 이름 대신 국화가 있었다⁠.

*

저녁 일곱 시 십 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수동 씨⁠, 오롬이에요⁠.⁠” 오롬의 목소리가 빨랐다⁠. 처음 듣는 속도였다⁠. “⁠창고에 사람 들어갔어요⁠. 넷이요⁠. 우리 헌터 아니에요⁠. 용역이에요⁠. 길드장님이 일반인을 샀어요⁠. 일반인끼리는 능력 규칙이 없으니까⁠.⁠”

“⁠지금요⁠?⁠”

“⁠방금요⁠. 할머니 노인정 가신 거 보고 들어갔어요⁠. 재인 씨는 2층에서 안 나오고요⁠. 저는 카메라로 보고만 있어요⁠. 길드장님이 보고만 있으라고 했어요⁠.⁠” 수화기 너머로 오롬이 의자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났다⁠. “⁠저 이런 거 하려고 흑림 들어온 거 아니에요⁠. 괴물 잡으려고 들어왔어요⁠. 일반인 시켜서 하는 거 아니고요⁠.⁠” 오롬이 숨을 삼켰다⁠. “⁠저거 지금 허물 벗고 있어요⁠. 온도가 120도까지 올라갔어요⁠. 그런 거 처음 봐요⁠.⁠”

나는 송도에서 구월동까지 이십육 분에 왔다⁠. 신호를 몇 개 무시했는지 모른다⁠. 고가 밑을 지나 쉼터 앞을 지나 우리 골목으로 꺾는 마지막 모퉁이에서 냄새가 먼저 왔다⁠. 탄 천 냄새였다⁠. 그리고 탄 살 냄새였다⁠.

골목에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집집의 문이 열려 있었고⁠, 평상의 할아버지들이 서 있었고⁠, 아이 안은 엄마가 대문 뒤로 숨어 내다보고 있었다⁠. 우리 집 뒷마당 쪽에서 연기가 솟았다⁠.

창고 문이 부서져 있었다⁠. 이 앞 마당에 남자 하나가 뒹굴고 있었다⁠. 작업복 차림이었고⁠, 오른팔 소매가 타서 없었다⁠.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살갗이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남자가 짐승처럼 소리를 질렀다⁠. 다른 남자 셋이 은색 방화 담요를 내던진 채 골목 쪽으로 뒷걸음질 쳤다⁠. 이 담요 한쪽이 아직 타고 있었다⁠.

셋 중 머리가 희끗한 남자가 나를 보더니 삿대질을 했다⁠. 손이 떨려서 손가락이 나를 가리켰다가 하늘을 가리켰다⁠.

“⁠당신이 주인이야⁠? 큰 개라며⁠! 사나운 개 하나 옮기는 데 일당 오십이라며⁠!⁠”

“⁠누가 그랬어요⁠?⁠”

“⁠흑림 사람이⁠! 방화 담요 덮으면 얌전해진다고⁠!⁠” 남자가 바닥에서 뒹구는 동료를 가리켰다⁠. “⁠저게 개야⁠? 저 사람 딸 다음 달에 결혼해⁠!⁠”

내 입에서 아무것도 안 나왔다⁠. 이 남자들은 깜부가 뭔지도 모르고 일당 오십만 원에 들어왔다⁠. 탁희준은 이 남자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에게는 처음 보는 일이었다⁠.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던 사람이⁠, 일반인 넷을 사면서는 거짓말을 했다⁠.

재인이 2층에서 내려와 있었다⁠. 맨손으로 타는 담요를 걷어 내고⁠, 뒹구는 남자 위에 자기 몸을 덮어 불붙은 바지를 비벼 껐다⁠. 재인의 긴소매가 그을렸다⁠. 소리쳤다⁠.

“⁠물⁠! 찬물 가져와⁠!⁠”

할머니 집 수돗가에서 내가 대야에 물을 받았다⁠. 손이 떨려서 물이 반은 쏟아졌다⁠. 재인이 남자의 팔을 대야에 담갔다⁠. 남자의 비명이 꺾였다⁠. 재인이 이 팔을 물속에서 잡고 놓지 않았다⁠. 재인의 그을린 소매도 같이 물에 잠겼다⁠. 평상의 할아버지 하나가 휴대폰으로 119를 눌렀다⁠. 옆의 할아버지가 이 손목을 붙잡았다가⁠, 데인 남자의 팔을 보고는 손을 놓았다⁠. 신호 가는 소리가 골목에 크게 울렸다⁠.

창고 안에서 깜부가 나왔다⁠.

반나절 전의 깜부가 아니었다⁠. 등을 따라 갈라진 허물이 반쯤 벗겨져 어깨에 걸려 있었다⁠. 이 아래 새 비늘이 젖은 채로 붉게 빛났다⁠. 몸이 송아지만 했다⁠. 그리고 머리 양쪽⁠, 귀가 있던 자리 위로 손가락 길이의 뿔 두 개가 돋아 있었다⁠. 뿔 끝에서 김이 올랐다⁠.

깜부가 물 대야 위로 웅크린 재인을⁠, 소리 지르는 남자를⁠, 뒷걸음질 치는 셋을⁠, 골목의 이웃들을 봤다⁠. 그리고 나를 봤다⁠. 깜부가 내 쪽으로 한 걸음 왔다⁠. 송아지만 한 몸이 움직이자 마당 흙이 울렸다⁠. 골목에서 누가 비명을 질렀다⁠. 아이 안은 엄마가 대문을 닫았다⁠.

나는 깜부 앞으로 걸어갔다⁠. 깜부가 머리를 내 배에 들이밀었다⁠. 뿔이 내 갈비뼈를 찔렀다⁠. 뜨거웠다⁠.

골목 맞은편에서 대문이 열렸다⁠. 탁희준이 걸어 나왔다⁠. 흰 셔츠였다⁠. 오른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화면이 우리 쪽을 향해 있었다⁠. 녹화 중을 뜻하는 빨간 점이 깜빡였다⁠. 골목 한가운데까지 천천히 걸어와 이웃들 사이에 섰다⁠. 데인 남자와 뿔 돋은 깜부와 나를 한 화면에 담았다⁠.

“⁠다들 보셨죠⁠?⁠” 탁희준이 이웃들에게 말했다⁠.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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