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90자)

반지하의 습기

드래곤 알을 주웠더니 우리 원룸이 둥지가 되었다 · 채온유

나는 이날 가림막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고백하는 김에 다 말하겠다⁠. 하려고 했다⁠. 입을 열었고⁠, 첫 글자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이 글자를 막은 건 재인이었다⁠.

“⁠그 사람 상관없어요⁠.⁠” 재인이 변연수에게 말했다⁠. 손전등 빛이 내 얼굴과 재인의 얼굴 사이에서 망설였다⁠. “⁠치킨 주우러 온 기사예요⁠. 손 다쳤으니까 병원이나 보내요⁠.⁠”

변연수의 손전등이 내 손으로 내려갔다⁠. 언 쇠줄에 살갗이 뜯긴 손바닥에서 진물이 흘러 손목까지 번들거렸다⁠. 손전등이 거기서 잠깐 멈췄다가⁠, 내 발밑의 치킨 상자 더미로 갔다⁠. 상자 틈에서 김이 오르고 있었다⁠. 깜부가 닭다리를 씹는 소리가 아주 작게 났다⁠. 변연수는 이 김을 이 초쯤 봤다⁠. 그리고 손전등을 껐다⁠.

“⁠병원 가세요⁠.⁠” 변연수가 말했다⁠. 그러고는 재인의 등을 가볍게 밀어 단속 차량 뒷좌석에 태웠다⁠.

차가 떠나고 나서 나는 상자 더미를 헤쳤다⁠. 깜부가 닭뼈를 입에 문 채 나를 올려다봤다⁠. 강산이 내 등을 두드렸다⁠. 나는 이 손을 뿌리쳤다⁠. 강산에게 화가 난 게 아니었다⁠. 이 손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

재인이 내 대신 이 차에 탔다⁠. 나는 입을 다무는 편을 골랐다⁠. 깜부를 지키려고 그랬다고 말하면 그건 반만 맞다⁠. 나머지 반은⁠, 이 순간 나는 겁이 났다⁠.

*

응급실 간호사가 내 손을 보더니 무슨 일을 하다 이렇게 됐냐고 물었다⁠. 동상과 화상이 한 손바닥에 같이 있는 건 처음 본다고 했다⁠. 냉동고 문에 손이 붙었는데 이 안에 군고구마가 있었다고 대답했다⁠. 간호사가 붕대를 감으면서 이 냉동고 어디 거냐고 물었다⁠. 나는 이 응급실에 육 년 동안 야식을 날랐다⁠. 간호사가 나를 알아보고 더는 묻지 않았다⁠.

이틀 뒤 재인의 청문이 열렸다⁠. 관리청 인천 지부 3층 회의실이었다⁠. 나는 붕대 감은 두 손을 무릎에 얹고 복도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한 시간 사십 분이 걸렸다⁠. 문이 열리고 재인이 나왔다⁠. 나를 보고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일어나 따라갔다⁠.

“⁠어떻게 됐어요⁠?⁠”

“⁠면허 일 년 정지⁠. 부상 연금 중단⁠.⁠” 재인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연금은 팔에 대한 거였어⁠. 팔이 칼을 휘둘렀으니까 다 나았다는 거래⁠.⁠”

“⁠그 돈 없으면⁠—⁠”

“⁠소주를 좀 줄이면 돼⁠.⁠”

“⁠제가 말했으면 그쪽도 같이⁠—⁠”

“⁠네가 말했으면 깜부가 지금 흑림 냉동 창고에 있어⁠.⁠” 재인이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내가 고른 거야⁠. 네가 고른 거 아니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재인이 먼저 탔다⁠. 나는 재인 옆에 서서 붕대 감은 손으로 1층 버튼을 눌렀다⁠. 손가락이 굽혀지지 않아 손바닥 옆면으로 눌렀다⁠. 재인이 이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

관리청 정문 앞 계단에 탁희준이 서 있었다⁠. 이번에는 흰 셔츠가 아니라 짙은 남색 양복이었다⁠. 청문에 흑림 쪽 참고인으로 왔다고 했다⁠.

“⁠면허는 제가 돌려 드릴 수 있어요⁠.⁠” 탁희준이 계단 세 칸 아래에서 재인을 올려다봤다⁠. “⁠흑림이 처리 현장 보조로 부른 거라고 하면 돼요⁠. 위탁 업체 요청이면 은퇴 헌터도 현장에서 쓸 수 있거든요⁠. 날짜만 바꾸면 되고요⁠.⁠”

“⁠조건⁠.⁠”

“⁠아시잖아요⁠.⁠” 탁희준이 나를 봤다⁠. 붕대 감은 내 손을 봤다⁠. “⁠재인 씨가 들고 오시면 돼요⁠.⁠”

“⁠안 들어⁠.⁠”

“⁠그때도 무겁다고 하셨죠⁠.⁠” 탁희준이 계단을 한 칸 올라왔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한테는 들렸다⁠. 들리게 한 것 같았다⁠. “⁠그래도 들고 나오셨잖아요⁠. 그 덕에 우리 둘 다 살았고요⁠.⁠”

재인의 왼손이 긴소매 끝을 손바닥으로 끌어당겼다⁠. 재인이 계단 아래로 걸음을 뗐다⁠. 탁희준이 재인을 지나가게 비켜 주면서 마지막으로 말했다⁠.

“⁠맹수동 씨한테 아직 말씀 안 하셨죠⁠, 그 얘기⁠. 제가 해 드릴까요⁠?⁠”

재인이 멈췄다⁠. 재인의 등이 굳었다⁠. 돌아보지 않았다⁠.

“⁠네 입으로 하면 내가 너 죽여⁠. 면허 없어도⁠.⁠”

탁희준이 웃었다⁠. 이 웃음에 대고 나는 처음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남자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몰랐고⁠, 모른다는 게 이 남자가 쥔 칼이었다⁠.

*

이 주에 강산이 처음으로 쓸모 있는 거짓말을 했다⁠.

흑림의 사진 값 백만 원이 아직 대행 단톡방에 걸려 있었다⁠. 버스에서 누가 찍은 영상⁠, 깜부가 배달통에 매달려 꼬리를 흔드는 영상이 동네 커뮤니티를 돌기 시작한 참이었다⁠. 강산이 쉼터에서 손뼉을 쳤다⁠.

“⁠형⁠, 사진을 우리가 보내면 되잖아⁠. 엄청 많이⁠. 다 가짜로⁠.⁠”

이날 밤부터 흑림 제보 창구에 사진이 쏟아졌다⁠. 송도 해변에서 조개구이를 먹는 검은 짐승⁠, 부평 지하상가 계단을 내려가는 검은 짐승⁠, 주안역 광장 분수에 발을 담근 검은 짐승이 들어왔다⁠. 실제로는 시골 사는 할리 누나 큰아버지네 흑염소였고⁠, 다마스 형네 아파트 경비실 검정 고양이였고⁠, 중국집 막내가 짜장 소스를 뒤집어쓴 강아지였다⁠. 강산은 사진마다 목격담을 붙였다⁠. 「⁠진짜 불 뿜는 거 봄⁠」 「⁠눈이 노랬음⁠」 「⁠옆에 흰 셔츠 남자가 쫓아감⁠」

흑림 추적조는 이 주에 인천을 세 바퀴 돌았다⁠. 열화상 카메라로 흑염소의 체온을 쟀다⁠. 39도였다⁠.

그사이 우리는 깜부의 잠자리를 연탄 창고로 옮겼다⁠. 반지하는 이제 깜부에게 좁았다⁠. 창고 안쪽에 연탄을 벽처럼 쌓고⁠, 이 안에 할머니가 연탄난로 둘을 피웠다⁠. 연탄이 열을 가렸다⁠. 반지하 창문에는 연탄난로 하나를 그대로 피워 두었다⁠. 맞은편 창의 카메라는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43도를 봤다⁠.

목요일 새벽⁠, 오롬이 우리 대문 앞 평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눈 밑이 거뭇했다⁠. 운동화 끝에 진흙이 말라 있었다⁠. 할머니가 나와서 이 옆에 앉았다⁠.

“⁠아가씨⁠, 어디 갔다 왔어⁠?⁠”

“⁠강화도요⁠. 흑염소 농장이요⁠.⁠” 오롬이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거기 흑염소가 서른 마리였어요⁠. 서른 마리 다 쟀어요⁠.⁠”

할머니가 집에 들어가 식은 밥에 물을 말아 김치랑 들고 나왔다⁠. 오롬은 이걸 다 먹었다⁠. 먹고 나서 숟가락을 내려놓고 내 쪽을 봤다⁠. 우리 집 반지하 창문을 봤다⁠. 연탄 창고 쪽은 보지 않았다⁠. 볼 수 있었는데 보지 않았다⁠. 나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이날 오후 나는 골목을 건넜다⁠. 맞은편 이층집 대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가자 공기가 한 칸마다 식었다⁠. 2층 거실은 냉장고 안 같았다⁠. 벽지 이음매마다 성에가 끼어 있었고⁠, 노부부가 두고 간 벽시계 유리에 물방울이 얼어 있었다⁠. 탁희준은 창가 의자에 앉아 할머니가 오롬에게 준 고구마를 먹고 있었다⁠. 언 고구마였다⁠.

“⁠어서 오세요⁠, 이웃님⁠.⁠”

“⁠재인 씨 얘기⁠, 그쪽한테는 안 들을 거예요⁠.⁠”

“⁠그 말 하러 길 건너오셨어요⁠?⁠” 탁희준이 고구마 껍질을 접시에 내려놓았다⁠. “⁠궁금하실 텐데⁠.⁠”

“⁠궁금해요⁠. 그래도 그쪽 입으로는 안 들어요⁠.⁠”

탁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내 쪽으로 돌렸다⁠. 깜부가 배달통에 매달려 꼬리를 흔드는 이 버스 영상이었다⁠. 화면 아래 조회 수가 삼십일만이었다⁠.

“⁠관리청 본청에서 이걸 봤어요⁠. 인천 지부 말고 서울 본청이요⁠. 특수개체 담당 국장이 저한테 전화했어요⁠. 저게 뭐냐고⁠.⁠” 탁희준이 휴대폰을 거뒀다⁠. “⁠저는 모른다고 했어요⁠. 아직은요⁠. 본청이 직접 내려오면 저도 손을 못 써요⁠. 그 사람들은 키우지 않아요⁠. 위험 개체로 지정하고 바로 태워요⁠. 지정되면 옆에 사람이 있어도 처리해요⁠. 대피 안 한 사람이 책임지는 거예요⁠. 그 전에 저한테 주시는 게 깜부한테도 나아요⁠.⁠”

탁희준이 깜부라는 이름을 불렀다⁠. 강산의 PC방 이야기에서 들었겠지⁠. 이 이름이 탁희준의 입에서 나오니까 남의 이름 같았다⁠.

“⁠깜부 이름 부르지 마요⁠.⁠”

“⁠그럼 뭐라고 불러요⁠? 삼십억이요⁠?⁠”

나는 계단을 내려왔다⁠. 등 뒤에서 탁희준이 고구마 잘 먹었다고 할머니께 전해 달라고 했다⁠. 나는 전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다음 날 또 고구마를 이 집 대문 앞에 놓았다⁠.

*

토요일 밤⁠, 골목 전기가 나갔다⁠.

폭염 경보 사흘째였다⁠. 집집마다 에어컨을 틀다 골목 끝 전봇대 변압기가 퍽 소리를 냈다⁠. 가로등이 꺼지고⁠, 집집의 창이 꺼지고⁠, 맞은편 2층 창의 카메라 표시등도 꺼졌다⁠. 골목에 사람들이 하나둘 나와 부채질을 했다⁠. 할머니는 연탄 창고에서 깜부와 잤다⁠. 연탄 창고는 전기가 없어도 따뜻했고⁠, 깜부에게는 이게 좋았다⁠.

반지하는 지옥이었다⁠. 선풍기도 멈췄다⁠. 연탄난로 하나가 남은 열을 뿜었다⁠. 나는 이 불을 껐다⁠. 꺼도 방은 38도였다⁠. 벽지에서 물이 흘렀다⁠. 나는 러닝셔츠 하나만 입고 어둠 속에 누워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났다⁠. 문이 열렸다⁠. 재인이었다⁠. 휴대폰 손전등 빛이 방바닥을 훑다가 꺼졌다⁠. 재인이 문을 닫았다⁠. 어둠 속에서 재인이 내 옆에 와 앉는 소리가 났다⁠. 매트리스가 재인 쪽으로 기울었다⁠.

“⁠2층이 더 더워⁠.⁠” 재인이 말했다⁠. “⁠열은 위로 올라가⁠.⁠”

“⁠여기가 더 습해요⁠.⁠”

“⁠알아⁠.⁠”

재인이 내 손을 찾았다⁠. 붕대 감은 손이었다⁠. 재인은 내 손을 두 손으로 들어 올려 자기 왼팔에 얹었다⁠. 긴소매가 아니었다⁠. 맨팔이었다⁠. 붕대 너머로 피부가 느껴졌다⁠. 반들반들하고 울퉁불퉁하고⁠, 다른 데보다 차가웠다⁠. 땀이 나지 않는 살이었다⁠.

“⁠여기 감각 없다고 했죠⁠.⁠”

“⁠없어⁠.⁠” 재인이 내 손을 어깨 쪽으로 천천히 끌어 올렸다⁠. 흉터가 끝나는 자리에서 재인이 멈췄다⁠. 거기서부터 피부가 달랐다⁠. 땀에 젖어 있었고⁠, 뜨거웠다⁠. “⁠여기서부터는 있어⁠.⁠”

나는 손가락을 굽힐 수 없었다⁠. 그래서 손바닥 옆면과 손등으로 재인을 만졌다⁠. 재인이 웃었다⁠. 소리 없이 숨으로만 웃었다⁠. 어둠 속에서 재인이 몸을 기울였다⁠. 땀 냄새와 소주 냄새와 파스 냄새가 섞였다⁠. 입술이 짰다⁠.

방은 38도였다⁠. 우리는 이 열 속에서 서로의 땀을 닦지 않았다⁠. 매트리스가 축축해지고⁠, 벽지에서 물이 흐르고⁠, 내 붕대가 재인의 땀을 빨아들여 무거워졌다⁠. 재인이 내 손목을 쥐고 자기가 원하는 자리로 옮겼다⁠. 나는 손가락 대신 손바닥 전체로 재인의 등을 쓸었다⁠. 등뼈를 따라 땀이 고여 있었다⁠. 숨이 내 귀에서 길어졌다가 끊어졌다⁠. 창밖 골목에서 누가 부채질하며 더워 죽겠다고 말했다⁠. 재인이 이 소리에 내 어깨를 깨물고 웃음을 삼켰다⁠. 습기가 우리 둘을 한 덩어리로 붙였다⁠.

한참 뒤에 재인이 내 가슴 위에 머리를 얹었다⁠. 깜부가 늘 자던 자리였다⁠. 재인의 머리는 깜부보다 가벼웠고 덜 뜨거웠다⁠. 내 심장 소리를 듣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 자리 원래 누구 자리야⁠?⁠”

“⁠깜부요⁠.⁠”

“⁠그럼 오늘만 빌려⁠.⁠”

*

새벽 네 시에 전기가 들어왔다⁠. 냉장고가 웅 하고 다시 돌았다⁠. 재인은 깨어 있었다⁠. 침대 끝에 앉아 바닥에 떨어진 자기 바지를 주워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낡은 가죽 지갑이었다⁠. 카드 칸 맨 안쪽에서 뭔가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비늘이었다⁠. 검은 바탕에⁠, 가운데로 붉은 줄이 한 줄 갈라져 있었다⁠. 깜부 것보다 열 배는 컸고 두꺼웠다⁠. 가장자리가 녹아 둥글게 말려 있었다⁠. 오래 만져서 표면이 반질반질했다⁠.

재인이 비늘을 내 붕대 위에 올려놓았다⁠. 무거웠다⁠. 식은 지 오래된 무게였다⁠.

“⁠2019년 송도⁠. 그 드래곤 거야⁠.⁠” 재인이 말했다⁠. 목소리가 평평했다⁠. 평평하게 하려고 애쓰는 목소리였다⁠. “⁠깜부 엄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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