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14자)

아들의 헬멧

드래곤 알을 주웠더니 우리 원룸이 둥지가 되었다 · 채온유

구급차는 골목에 들어오지 못했다⁠. 골목 입구에 세워 두고 구급대원 둘이 들것을 들고 뛰어 들어왔다⁠. 데인 남자는 들것 위에서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대야 물에 담갔던 팔을 젖은 수건으로 감싼 채 이를 딱딱 부딪쳤다⁠. 구급대원 하나가 팔을 보더니 무엇에 데었냐고 물었다⁠. 남자가 창고를 가리켰다⁠. 구급대원이 창고 쪽을 봤다⁠. 창고 문은 할머니가 막고 있었다⁠.

할머니는 노인정에서 택시를 타고 왔다⁠. 화투 패를 쥔 채였다⁠. 이 손으로 창고 문틀을 잡고 버티고 섰다⁠.

“⁠도마뱀이 놀라서 그랬어⁠. 남의 집에 담요 들고 쳐들어오는데 안 놀래⁠?⁠”

경찰차가 왔다⁠. 경찰 둘이 할머니와 데인 남자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무전을 쳤다⁠. 게이트 생물이 엮인 건 관리청 소관이라고 했다⁠. 한 시간 뒤에 관리청 단속 차량이 왔다⁠. 변연수 과장이 내렸다⁠. 이 사이 탁희준은 골목 한가운데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휴대폰은 주머니에 넣었다⁠.

변연수가 창고 앞으로 걸어왔다⁠. 할머니가 화투 패 쥔 손을 더 꽉 쥐었다⁠. 변연수가 창고 문을 봤다⁠. 부서진 문틈 안쪽에서 열기가 흘러나왔고⁠, 연탄 벽 너머에서 무언가 숨 쉬는 소리가 났다⁠. 변연수가 고개를 돌려 탁희준을 봤다⁠. 탁희준이 아주 작게 고개를 저었다⁠.

“⁠관리청은 신고만 접수하겠습니다⁠.⁠” 변연수가 말했다⁠. “⁠다친 분 진술은 병원에서 받고요⁠. 단속은 따로 날 잡겠습니다⁠.⁠”

변연수가 차로 돌아갔다⁠. 나는 이 고갯짓을 봤다⁠. 관리청 과장이 창고를 열지 않은 건 탁희준이 열지 말라고 해서였다⁠. 창고를 열면 이 안의 것은 관리청 서류에 올라가고⁠, 서류는 서울 본청으로 올라가고⁠, 본청은 키우지 않고 태운다⁠. 탁희준은 이걸 원하지 않았다⁠. 깜부가 관리청을 안 거치고⁠, 골목이 내주는 방식으로 자기 손에 오기를 원했다⁠.

*

이날 밤 깜부는 허물을 마저 벗었다⁠. 할머니와 내가 창고 안 연탄난로 둘에 연탄을 갈아 넣으며 밤을 새웠다⁠. 새벽 세 시쯤 어깨에 걸려 있던 허물이 통째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송아지만 한 껍질이 연탄 벽에 기대 섰다⁠. 깜부는 새 몸으로 일어서다가 뿔로 창고 천장 서까래를 들이받았다⁠. 먼지가 쏟아졌다⁠. 창고 문은 이제 깜부가 옆으로 몸을 틀어야 겨우 빠져나갈 폭이었다⁠. 반지하 문은 아예 못 지나갔다⁠. 이날부터 깜부의 집은 창고였다⁠.

아침에 나는 2층 계단을 올라갔다⁠. 문이 열려 있었다⁠. 재인이 부엌 식탁에 앉아 자기 왼손에 화상 연고를 바르고 있었다⁠. 어제 용역의 바지 불을 비벼 끈 손이었다⁠. 흉터 위에 새로 덴 자국이 붉게 부풀어 있었다⁠. 감각이 없는 살이라 어디가 얼마나 데었는지 눈으로 보고서야 알았다⁠.

“⁠어제 그 말⁠, 미안해요⁠.⁠”

“⁠맞는 말이었어⁠.⁠” 재인이 연고 뚜껑을 닫았다⁠. “⁠송도 사람들한테 안 보여 줬어⁠. 열두 해 동안 긴소매만 입었어⁠.⁠”

“⁠이제 어떡할 건데요⁠.⁠”

“⁠오늘 저녁에 통장 집에서 모인대⁠. 저 사람이 모은대⁠.⁠” 재인이 소매를 내리지 않았다⁠. 걷힌 채로 두었다⁠. “⁠나도 갈 거야⁠. 가서 말할 거야⁠.⁠”

“⁠뭘요⁠?⁠”

“⁠들고 나온 거⁠.⁠”

나는 이 식탁 맞은편에 앉았다⁠. 재인이 연고를 내 쪽으로 밀었다⁠. 내 손바닥 붕대 위로 진물이 배어 나와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손에 연고를 발랐다⁠. 둘 다 손가락이 잘 굽혀지지 않아서 연고가 식탁에 반쯤 흘렀다⁠.

*

이날 저녁 일곱 시⁠, 통장님 집 마당에 골목 사람들이 모였다⁠.

통장님은 골목 끝 빨간 대문 집에 사는 예순여덟 살 아주머니다⁠. 마당에 평상 둘을 붙이고 플라스틱 의자를 스무 개 깔았다⁠. 노래방 마이크를 들고 나왔는데 켜지지 않았다⁠. 통장님이 마이크를 두드리고⁠, 입으로 후후 불고⁠, 아⁠, 아⁠, 하다가 결국 마이크를 손에 쥔 채 맨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이 마이크를 보며 웃었다⁠. 이 웃음이 이날 마당의 마지막 웃음이었다⁠.

의자 스무 개가 다 찼다⁠. 서 있는 사람도 열 명쯤 됐다⁠. 맨 앞자리에 탁희준이 앉아 있었다⁠. 이 옆에 어제 데인 남자가 오른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앉아 있었다⁠.

“⁠오늘 맞은편 집 새로 이사 오신 분이 할 말이 있다고 해서 모였어요⁠.⁠” 통장님이 말했다⁠.

탁희준이 일어섰다⁠. 흰 셔츠 대신 회색 반팔 셔츠였다⁠. 옷만 바꿨는데 동네 사람처럼 보였다⁠.

“⁠흑림 탁희준입니다⁠. 이 골목에 같이 사는 사람으로 말씀드릴게요⁠.⁠” 탁희준이 붕대 감은 남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분은 저희가 일을 맡긴 분이에요⁠. 큰 짐승 하나 옮기는 일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제가 위험을 다 말씀 못 드렸어요⁠. 그건 제 잘못입니다⁠. 치료비와 위로금은 흑림이 전부 냅니다⁠.⁠”

탁희준이 고개를 숙였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눈이 나를 피했다⁠.

“⁠저 창고에 있는 건 드래곤 새끼입니다⁠. 2019년 송도⁠, 기억하시죠⁠?⁠” 마당이 조용해졌다⁠. “⁠어제 저 정도였어요⁠. 뿔이 났습니다⁠. 다음은 날개고⁠, 날개 다음은 송도입니다⁠.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송도 사옥에 내열 사육장이 있어요⁠. 관리청 거치면 본청이 내려와서 이 골목에 통제선 치고 석 달 조사합니다⁠. 소독차 다니고⁠, 이사도 못 나가고⁠, 집값은 말씀 안 드려도 아시죠⁠. 저한테 주시면 오늘 밤 조용히 끝납니다⁠. 그리고 이 골목 집마다 이백만 원씩 위로금 드리겠습니다⁠.⁠”

이백만 원이라는 말에 마당이 술렁였다⁠.

“⁠그거 데려가서 어떻게 하는데⁠.⁠” 평상 끝의 할아버지가 물었다⁠. 어제 119를 누르려다 손목을 붙잡혔던 할아버지였다⁠.

“⁠키웁니다⁠.⁠”

“⁠그다음엔⁠?⁠”

“⁠다 크면 처리합니다⁠. 관리청 위탁 업체니까요⁠.⁠” 탁희준이 거짓말 없이 말했다⁠. “⁠다 큰 드래곤을 도시에 둘 수는 없어요⁠.⁠”

마당 여기저기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는 이 끄덕임을 하나씩 셌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

나는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넘어졌다⁠.

“⁠저 사람이 처리한다는 건⁠, 다 키워서 처음 날 때 심장을 꺼낸다는 거예요⁠. 날면 심장 값이 열 배가 되거든요⁠. 지금 데려가는 건 키워서 값 올리려는 거예요⁠.⁠”

“⁠그래서 맹 기사 니가 키우겠다고⁠?⁠” 앞줄 아주머니가 물었다⁠. 철물점 아주머니였다⁠. 나는 철물점에 짬뽕을 백 번은 날랐다⁠. “⁠다 크면 니가 뭘 할 건데⁠?⁠”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게 내 대답이었다⁠. 마당 사람들이 다 이걸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다 털어놓았다⁠. 알을 주운 게 아니라 주인 앞에서 훔쳤다고 말했다⁠. 껍데기를 배달하며 거짓말을 했고⁠, 할머니 금반지를 팔았고⁠, 기사들 밥줄을 걸게 했다고 말했다⁠. 재인이 내 대신 면허를 내놨는데 나는 입을 다물었다는 것도 말했다⁠. 어제 깜부가 허물을 벗을 걸 알면서 송도에 갔고⁠, 내가 거기 있었으면 용역들이 창고에 못 들어갔을 거라고도 말했다⁠.

“⁠그러니까 저 사람한테 데인 거 아니에요⁠. 저 때문에 데인 거예요⁠.⁠”

붕대 감은 남자가 그제야 나를 봤다⁠.

마당은 조용했다⁠. 조용한 채로 손이 하나 올라갔다⁠. 통장님이 깜부를 흑림에 넘기는 데 찬성하는 사람 손 들어 보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올라갔다⁠. 하나가 올라가자 둘이 올라갔다⁠. 철물점 아주머니와 세탁소 아저씨와 아이 안은 엄마였다⁠. 손이 열 개가 넘었다⁠. 평상 끝 할아버지는 손을 들지 않았다⁠. 대신 팔짱을 꼈다⁠. 강산과 다마스 형이 마당 담장 밖에서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둘은 이 골목 주민이 아니라 손을 들 수 없었다⁠.

탁희준이 손을 하나하나 세는 척했다⁠. 세지 않았다⁠. 다 알고 있었다⁠.

*

재인이 마당 문으로 들어왔다⁠. 어제 그을린 소매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 맨 앞으로 왔다⁠. 탁희준과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 섰다⁠. 그리고 왼쪽 소매를 걷었다⁠. 어깨까지 걷었다⁠. 마당의 형광등 아래에서 녹았다 굳은 살이 번들거렸다⁠.

“⁠2층 사는 한재인이에요⁠. 2019년 송도에 있었어요⁠.⁠”

손을 들고 있던 아이 엄마가 손을 내렸다⁠. 내리는 게 아니라 아이를 안은 팔로 다시 가져갔다⁠.

“⁠그날 드래곤은 저절로 나온 게 아니에요⁠. 신고 안 한 게이트에 둥지가 있었고⁠, 알을 하나 들고 나왔어요⁠. 어미가 그 알을 찾으러 나왔어요⁠. 그 알을 들고 나온 게 저예요⁠.⁠” 재인이 오른손으로 탁희준을 가리키지 않았다⁠. 그냥 탁희준을 봤다⁠. “⁠들라고 한 사람은 이 사람이고요⁠.⁠”

마당에서 의자 다리가 시멘트를 긁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일어섰다가 다시 앉았다⁠. 탁희준은 웃지 않았다⁠. 그렇다고 얼굴이 바뀌지도 않았다⁠. 재인의 걷힌 팔을 봤다⁠. 오래 봤다⁠.

이때 내 뒤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났다⁠.

“⁠다들 비켜⁠.⁠”

할머니가 보자기 하나를 품에 안고 들어왔다⁠. 연탄 창고 맨 안쪽⁠, 깜부가 자는 연탄 벽 뒤 선반에 늘 놓여 있던 보자기였다⁠. 나는 이 보자기를 매일 봤다⁠. 한 번도 안에 뭐가 있는지 묻지 않았다⁠.

할머니가 평상 위에 보자기를 내려놓고 매듭을 풀었다⁠.

헬멧이었다⁠. 노란색이었던 것 같았다⁠. 지금은 그을음에 덮여 갈색이었다⁠. 한쪽이 녹아서 흘러내린 채 굳어 있었다⁠. 녹은 자리가 촛농처럼 아래로 늘어졌다⁠. 앞면에 붙어 있던 반사띠가 반쯤 남아 있었고⁠, 이 아래 매직으로 쓴 「⁠반장 곽⁠」이 그을음 사이로 보였다⁠.

“⁠우리 아들이여⁠.⁠” 할머니가 말했다⁠. “⁠구월동 소방서 곽 반장⁠. 송도에서 열두 층 계단으로 맨 먼저 올라갔어⁠. 애 셋 업고 내려보내고 자기는 못 내려왔어⁠. 이거 하나 돌아왔어⁠.⁠”

나는 송도 공원의 절룩이던 남자를 떠올렸다⁠. 곽 씨는 많다고 생각하기로 했던 나를 떠올렸다⁠.

“⁠할머니⁠—⁠”

“⁠나는 첫날부터 알았어⁠.⁠” 할머니가 나를 보지 않고 마당 사람들을 봤다⁠. “⁠알에서 깬 그날⁠, 반지하 창문으로 기어 나와서 우리 간장독 위에 앉아 있는 걸 봤어⁠. 검은 데 빨간 줄⁠. 재채기하는데 하얀 불에 파란 테⁠. 뉴스에서 열두 해를 본 색이여⁠. 우리 아들 헬멧 녹인 색이여⁠.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어⁠?⁠”

“⁠그럼 왜⁠—⁠”

“⁠그럼 어떡해⁠. 굶겨 죽여⁠?⁠” 할머니 목소리가 처음으로 갈라졌다⁠. “⁠우리 아들은 장가를 못 가고 갔어⁠. 나는 손주가 없어⁠. 근데 그놈 죽인 불이 우리 집 반지하에서 알 깨고 나와서 배고프다고 내 간장독에 올라앉았어⁠. 나는 연탄 사십 년 판 사람이여⁠. 불이 무서우면 그 장사 못 해⁠. 불은 먹이고 다스리는 거여⁠. 겁나서 꺼 버리는 게 아니고⁠.⁠”

할머니가 헬멧을 두 손으로 들었다⁠. 녹은 쪽이 아래로 처졌다⁠.

“⁠이 애는 아무도 안 태웠어⁠. 담요 들고 쳐들어온 사람 팔 하나 데었어⁠. 그 담요 누가 들려 보냈어⁠?⁠”

마당의 눈이 탁희준에게로 갔다⁠. 붕대 감은 남자도 탁희준을 봤다⁠.

할머니가 헬멧을 안은 채 의자 사이를 지나 한 걸음씩 탁희준 앞으로 걸어갔다⁠. 탁희준은 비키지 않았다⁠. 할머니가 이 앞에 섰다⁠. 키가 탁희준의 가슴께였다⁠.

“⁠그날 송도에서 그 게이트에 맨 먼저 들어간 게 누구여⁠?⁠”

마당에 아무 소리도 없었다⁠. 형광등에 날벌레가 부딪히는 소리만 났다⁠. 탁희준이 할머니를 내려다봤다⁠. 헬멧의 녹아서 흘러내린 쪽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웃었다⁠. 입술 끝만 당겨 올린 웃음이었다⁠. 천천히 오른손을 들었다⁠. 교실에서 손 드는 학생처럼⁠, 어깨 높이까지⁠.

“⁠접니다⁠, 어르신⁠.⁠”

할머니가 헬멧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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