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12자)

치킨 백 마리

드래곤 알을 주웠더니 우리 원룸이 둥지가 되었다 · 채온유

탁희준은 공터 한가운데까지 걸어 들어와 우리 일곱 앞에 섰다⁠. 대행 사장님이 이 반 걸음 뒤에 섰다⁠. 승합차 전조등이 우리 얼굴을 하얗게 비췄다⁠. 강산이 내 등 뒤로 반쯤 숨었다⁠.

“⁠여러분 생계 문제로 말씀드리러 왔어요⁠.⁠” 탁희준이 말했다⁠. 강연하는 사람 목소리였다⁠. “⁠흑림이 이번 달부터 구월동 대행 콜을 다 맡습니다⁠. 사옥 식당⁠, 현장 야식⁠, 직원 숙소⁠. 한 달에 사천 콜쯤이에요⁠. 콜당 배달비 만 원 드립니다⁠.⁠”

공터가 술렁였다⁠. 콜당 만 원이면 평소의 두 배가 넘었다⁠.

“⁠대신 맹수동 씨 집으로 가는 고기는 안 돼요⁠.⁠” 대행 사장님이 이어받았다⁠. 사장님은 땅을 보며 말했다⁠. “⁠고기 나르다 걸리면 그 기사도 배차 정지야⁠. 흑림 조건이 그래⁠.⁠”

휴학생 하나가 헬멧을 고쳐 썼다⁠. 등록금 얘기를 하던 녀석이었다⁠. 이 녀석이 나를 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공터를 나갔다⁠. 탁희준은 이 뒷모습을 눈으로 따라가다가 다시 우리를 봤다⁠.

다마스 형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인천에 대행이 서른 개야⁠. 여기서 정지 먹으면 부평 가서 타면 돼⁠.⁠”

“⁠부평도 저희가 시킬 수 있어요⁠.⁠” 탁희준이 말했다⁠.

“⁠그럼 시흥 가지 뭐⁠.⁠” 할리 누나가 헬멧을 썼다⁠. “⁠난 흑림 콜 안 받아⁠. 지난번에 송도 사옥 갔더니 경비가 엘리베이터 못 타게 해서 열한 층 걸어 올라갔어⁠.⁠”

탁희준이 처음으로 할 말을 잃었다⁠. 이 열한 층 이야기를 몰랐다⁠. 고개를 끄덕이고⁠, 이 일은 사과드린다고 말하고⁠, 차로 돌아갔다⁠. 대행 사장님이 뒤를 따르다가 나를 돌아봤다⁠. 뭔가 말하려다 그냥 갔다⁠.

여섯이 남았다⁠.

*

다음 날 오후 흑림 헌터 넷이 우리 골목에 들어오려 했다⁠. 탁희준이 직접 오지 않은 날이었다⁠. 골목 입구에 오토바이 여섯 대가 비스듬히 서 있었다⁠. 다마스 형은 다마스까지 끌고 와 세웠다⁠. 기사들은 헬멧을 벗고 오토바이 안장에 걸터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헌터 하나가 다가와 비켜 달라고 했다⁠.

“⁠식사 중이에요⁠.⁠” 할리 누나가 국물을 마시며 말했다⁠.

할머니가 대문에서 나와 보리차 주전자를 들고 기사들 사이를 돌았다⁠. 다 따르고 나서 주전자에 남은 걸 헌터들에게도 내밀었다⁠. 헌터 하나가 엉겁결에 종이컵을 받았다⁠. 받아 놓고 마시지도 버리지도 못해 컵을 든 채 서 있었다⁠. 맞은편 2층 창가에서 오롬이 이걸 보고 이마를 짚었다⁠.

헌터들은 십오 분을 서 있다가 돌아갔다⁠. 이들은 사람을 밀 수 없었다⁠. 오토바이를 밀면 이 위에 앉은 사람이 넘어진다⁠. 사람 앞에서 헌터는 멈춘다⁠. 이게 이 나라 규칙이었다⁠. 강산은 이날 저녁 단톡방에 「⁠구월동 헌터 넷⁠, 컵라면에 패배⁠」라고 올렸다⁠. 처음으로 이 녀석의 소문이 사실이었다⁠.

*

탁희준의 답은 이날 저녁 여덟 시에 왔다⁠.

냄새로 먼저 왔다⁠. 반지하 창문 틈으로 튀김 기름 냄새가 밀려들었다⁠. 한 집이 아니었다⁠. 구월동 하늘 전체가 기름에 튀겨지는 냄새였다⁠. 강산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형⁠. 이건 진짜야⁠. 지금 구월동 치킨집 열두 군데에 같은 주소로 주문이 들어갔대⁠. 다 합쳐서 백 마리⁠. 주소가 공사장 B구역 정문 앞이야⁠. 요청 사항이 「⁠정문 앞 공터에 쌓아 주세요⁠」래⁠.⁠”

골목으로 오토바이 소리가 연달아 지나갔다⁠. 공사장으로 가는 길이 우리 골목 앞이었다⁠. 하나가 지나가면 다음 하나가 왔다⁠. 배달통 틈마다 튀김 냄새가 흘렀다⁠.

깜부가 일어섰다⁠.

저녁 여덟 시는 깜부 밥때였다⁠. 탁희준은 이것도 알았다⁠. 오롬에게 말한 자정은 거짓말이었는데⁠, 열화상 카메라는 거짓말을 안 했다⁠. 깜부가 창틀에 앞발을 걸었다⁠. 나는 깜부의 몸통을 끌어안았다⁠. 이십 킬로그램이 내 팔 안에서 뒤틀렸다⁠. 오토바이가 하나 더 지나갔다⁠. 깜부가 목구멍으로 공기를 빨아들였다⁠. 나는 주둥이를 잡았다⁠. 깜부가 내 손을 피해 머리를 틀었고⁠, 불은 창틀로 나갔다⁠. 나무 창틀이 타면서 쪼개졌다⁠. 깜부가 이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골목에 떨어진 깜부는 마침 지나가던 오토바이 배달통에 뛰어올랐다⁠. 우리 편 여섯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기사였다⁠. 이 기사가 백미러로 등 뒤를 보고 짐승 같은 소리를 질렀다⁠. 오토바이가 휘청거리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이 짐승이 자기한테 올 것 같았나 보다⁠. 깜부를 매단 오토바이가 골목을 빠져나갔다⁠.

나는 헬멧도 못 쓰고 내 오토바이에 올랐다⁠.

*

구월동 사거리에서 공사장까지는 내가 눈 감고도 가는 길이다⁠. 이날은 이 길을 남들이 먼저 달리고 있었다⁠. 치킨 배달 오토바이 열두 대가 한 방향으로 줄지어 달렸고⁠, 이 사이에 깜부가 매달린 오토바이가 있었다⁠. 깜부는 배달통 뚜껑을 앞발로 끌어안고 꼬리를 깃발처럼 흔들었다⁠. 신호 대기에 선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창에 붙었다⁠. 누가 휴대폰을 들었다⁠.

강산이 옆 골목에서 튀어나와 내 옆에 붙었다⁠.

“⁠형⁠, 저거 영상 찍혔어⁠. 지금 단톡방에 벌써 셋이야⁠.⁠”

“⁠찍혀도 돼⁠! 앞에 그 오토바이 세워⁠!⁠”

강산이 경적을 길게 누르며 이 기사를 따라붙었다⁠. 기사가 공사장 정문 앞 공터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뛰어내려 도망쳤다⁠. 깜부는 오토바이에서 내려 공터 한가운데로 갔다⁠.

공터 한가운데 치킨 상자가 쌓여 있었다⁠. 내 키만 했다⁠. 후라이드와 양념과 간장과 파닭이 탑처럼 쌓여 김을 냈다⁠. 깜부가 이 탑에 머리부터 처박았다⁠. 상자가 무너지고 닭다리가 공터에 쏟아졌다⁠.

이 위로 그물이 떨어졌다⁠.

공터 둘레 어둠 속에서 흑림 헌터 여섯이 동시에 그물 끝을 당겼다⁠. 찜질방의 이 쇠줄 그물보다 훨씬 컸다⁠. 깜부가 고개를 들고 불을 뿜었다⁠. 하얀 불이 그물에 닿는 순간 탁희준이 그물 한쪽 끝을 맨손으로 쥐었다⁠. 탁희준의 손에서 서리가 그물을 타고 번졌다⁠. 쇠줄이 하얗게 얼었다⁠. 깜부의 불이 언 쇠줄에 닿아 김으로 터졌다⁠. 그물은 녹지 않았다⁠. 깜부가 두 번째 불을 뿜었다⁠. 이번 불은 아까보다 짧았다⁠. 추웠다⁠. 이 공터만 겨울이었다⁠.

깜부가 소리를 냈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높고 갈라지는 소리였다⁠.

나는 오토바이를 버리고 뛰었다⁠. 헌터 둘이 내 앞을 막아섰다가 비켰다⁠. 막으면 손을 대야 했다⁠. 나는 그물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그물을 쥐었다⁠. 손바닥이 언 쇠줄에 붙었다⁠. 아팠다⁠. 이 밑에서는 깜부의 열이 올라왔다⁠. 위는 얼음이고 아래는 불이었다⁠. 내 손바닥이 이 사이에서 동시에 얼고 데었다⁠.

“⁠기사님⁠, 손 떼세요⁠.⁠” 탁희준이 그물 반대편 끝에서 말했다⁠. “⁠얼어요⁠. 손가락 잃어요⁠.⁠”

“⁠그쪽이 떼요⁠.⁠”

“⁠저는 일반인한테 쓰는 게 아니에요⁠. 그물에 쓰는 거예요⁠. 기사님이 붙잡은 거고⁠.⁠”

탁희준의 말이 맞았다⁠. 그래서 더 놓을 수가 없었다⁠. 내 손가락 끝이 하얘지고 있었다⁠.

이때 공터 입구에서 누가 뛰어 들어왔다⁠. 슬리퍼가 아니라 운동화 소리였다⁠. 재인이었다⁠. 재인은 집에서부터 뛰어온 모양이었다⁠. 긴소매가 땀에 젖어 팔에 붙어 있었다⁠. 재인은 멈추지 않고 허리 뒤에서 단검을 뽑았다⁠.

칼날이 빛났다⁠. 가로등 빛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칼날 자체가 하얗게 달아올랐다⁠. 처음 보는 빛이었다⁠. 재인이 그물 위로 칼을 한 번 그었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언 쇠줄이 이 줄을 따라 갈라졌다⁠. 얼음 조각이 공터에 흩어지며 반짝였다⁠.

깜부가 갈라진 틈으로 튀어나왔다⁠. 내 손바닥에 붙은 쇠줄은 재인이 칼등으로 쳐서 떼어 냈다⁠. 살갗이 같이 떨어졌다⁠. 나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지를 숨이 없었다⁠.

탁희준이 그물 끝을 놓고 일어섰다⁠. 재인과 이 사이에 찢어진 그물과 쏟아진 치킨이 있었다⁠. 재인의 칼을 봤다⁠. 칼날의 빛이 천천히 꺼지고 있었다⁠.

“⁠여섯 해 만이네요⁠.⁠” 탁희준이 말했다⁠. “⁠재인 씨 칼 빛나는 거⁠.⁠”

“⁠들고 와 달라며⁠. 옛날처럼⁠.⁠” 재인이 칼을 내리지 않았다⁠. “⁠이번엔 안 들어⁠.⁠”

“⁠도심이에요⁠. 허가 없이 쓰셨어요⁠.⁠”

“⁠너도 썼잖아⁠.⁠”

“⁠저는 그물에 썼죠⁠. 재인 씨도 그물에 쓰셨고요⁠.⁠” 탁희준이 웃었다⁠. “⁠근데 저는 허가가 있어요⁠. 흑림은 관리청 위탁 업체라 처리 현장에서는 써도 돼요⁠. 재인 씨는 은퇴하셨고⁠.⁠”

재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규칙을 알고 있었다⁠. 알고 칼을 뽑았다⁠.

*

깜부는 내 쪽으로 오지 않았다⁠. 공사장 가림막 틈으로 들어갔다⁠. 나는 손바닥을 가슴에 안은 채 따라 들어갔다⁠. 탁희준이 뒤에서 뭐라고 소리쳤다⁠. 처음으로 소리를 높였다⁠.

가림막 안은 진흙과 쇠 냄새와 덜 마른 시멘트까지 첫날 밤 그대로였다⁠. 깜부는 구덩이 가장자리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코를 벌름거렸다⁠. 구덩이 바닥에서 파란빛이 아주 희미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꺼지지 않았다⁠. 게이트는 아직 열려 있었다⁠. 바닥에는 하얀 얼음이 판처럼 덮여 있었고⁠, 이 얼음 밑으로 파란빛이 새어 나왔다⁠. 구덩이 옆벽에 굴이 하나 뚫려 있었고⁠, 굴 입구에 흑림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상자에 성에가 끼어 있었다⁠.

노란 띠는 여전히 없었다⁠.

구덩이 건너편 컨테이너 숙소 앞에 작업복 차림 남자가 하나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쉰 살쯤⁠, 안전모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이 남자가 나를 봤다⁠. 깜부를 봤다⁠. 담배를 땅에 떨어뜨리고 발로 비볐다⁠. 그러고는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나는 깜부 목덜미를 잡았다⁠. 깜부가 구덩이를 한 번 더 내려다보고 나를 따라 돌아섰다⁠.

*

공터로 나왔을 때 관리청 차가 서 있었다⁠. 흰 바탕에 파란 줄이 그어진 단속 차량이었다⁠. 경광등이 돌았다⁠. 남색 근무복에 조끼를 걸친 변연수 과장이 손전등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탁희준이 이 옆에 서 있었다⁠. 흑림 헌터들이 등 뒤로 가림막 틈을 닫았다⁠. 철판 하나가 쾅 소리를 내며 맞물렸다⁠.

나는 치킨 상자 더미 뒤로 깜부를 끌고 들어가 쪼그려 앉았다⁠. 강산이 쓰러진 상자들을 우리 위로 쌓았다⁠. 깜부가 상자 틈으로 닭다리를 하나 물고 조용해졌다⁠. 이것만은 고마웠다⁠.

변연수가 손전등을 재인에게 비췄다⁠. 빛이 재인의 얼굴에서 내려가 변연수의 손에 든 단검에서 멈췄다⁠.

“⁠한재인 씨⁠. 도심 무허가 능력 사용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변연수의 목소리는 피곤했다⁠. 이런 말을 하루에 열 번은 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같이 가셔야겠습니다⁠. 청문 날짜 잡고⁠, 그때까지 면허는 정지예요⁠.⁠”

재인이 손전등 빛 속에서 칼을 돌려 손잡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변연수가 장갑 낀 손으로 이걸 받았다⁠. 재인이 치킨 상자 더미 쪽을 한 번 봤다⁠. 나를 본 게 아니라 나와 깜부가 있는 자리를 봤다⁠. 입 모양으로 가⁠, 하고 말했다⁠.

나는 가림막 쪽을 봤다⁠. 삼 미터 철판 너머에 노란 띠도 없이 얼음 밑에서 파란빛을 내는 신고 안 한 게이트가 있었다⁠. 변연수에게 이 말 한마디만 하면 탁희준이 재인과 나란히 이 차에 탈 것이다⁠. 그리고 관리청 단속반이 가림막을 열고⁠, 구덩이를 보고⁠, 치킨 상자 더미를 들출 것이다⁠. 깜부를 보고⁠, 깜부를 거둘 것이다⁠. 거둔 것은 위탁 처리 업체인 흑림으로 간다⁠.

나는 일어섰다⁠. 상자 하나가 내 어깨에서 굴러떨어졌다⁠. 변연수의 손전등이 내 쪽으로 돌아왔다⁠.

입을 열었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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