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12자)

불가마에서 벗은 것

드래곤 알을 주웠더니 우리 원룸이 둥지가 되었다 · 채온유

오롬은 계란 껍데기를 손톱으로 아주 잘게 깠다⁠. 껍데기 조각이 수건 위에 눈처럼 쌓였다⁠. 계란 하나를 다 까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

“⁠새벽 다섯 시에 구월동에서 제일 뜨거운 데가 어딜까 생각했어요⁠. 연탄 창고는 우리 차가 보고 있고⁠, 찜질방은 세 군데인데 불가마 있는 데는 여기 하나고⁠. 사장님이 다섯 시에 「⁠보수 공사⁠」 팻말을 거는 찜질방은 없어요⁠.⁠”

“⁠팻말 때문에요⁠?⁠”

“⁠팻말 때문에요⁠.⁠” 오롬이 계란에 소금을 찍었다⁠. “⁠보고는 했어요⁠. 팀이 오는 데 십오 분 걸려요⁠.⁠”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게 탁희준보다 더 다루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거짓말로 상대할 수 있다⁠.

“⁠그럼 십오 분 동안 뭐 하실 건데요⁠?⁠”

“⁠설득이요⁠.⁠” 오롬이 불가마 유리창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거 길드에 넘기시면 사육장에서 키워요⁠. 죽이지 않아요⁠. 송도 사옥 지하에 내열 사육장이 있어요⁠. 고기도 실컷 먹고⁠, 수의사도 있고⁠. 반지하보다 나아요⁠.⁠”

“⁠그리고 날면요⁠?⁠”

오롬이 계란을 씹다 멈췄다⁠.

“⁠처음 날면 심장이 굳는다면서요⁠. 그날까지 배불리 먹이고⁠, 그다음에 꺼내는 거잖아요⁠. 돼지 키우듯이⁠.⁠”

“⁠돼지도 그렇게 키워요⁠.⁠” 오롬이 말했다⁠. 목소리가 작아졌다⁠. “⁠수동 씨도 돼지 앞다리 사 먹였잖아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오롬의 말이 맞았다⁠. 오롬이 세 번째 계란을 까기 시작했다⁠. 계약직 명찰이 찜질복 앞섶에서 흔들렸다⁠.

“⁠저는 이거 하나 찾으면 정규직이에요⁠. 계약 이 년째예요⁠. 열감각 B급은 흑림에 열둘 있는데 정규직은 셋이에요⁠.⁠” 오롬이 껍데기를 수건 위에 털었다⁠. “⁠나쁜 짓 하는 거 아니에요⁠. 저거 다 크면 진짜로 사람 죽어요⁠.⁠”

“⁠알아요⁠.⁠”

“⁠아는데 왜 그래요⁠?⁠”

이 물음 앞에서 나는 입만 벌렸다⁠. 불가마 유리창 안에서 깜부의 등이 들썩였다⁠. 갈라진 틈이 꼬리 끝까지 내려가 있었다⁠. 검은 껍질이 통째로 들려 황토 바닥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

십오 분이 아니라 십이 분이었다⁠. 찜질방 유리문이 열리고 검은 티셔츠 셋이 들어왔다⁠. 흑림 헌터들이었다⁠. 셋 다 운동화를 신은 채 매트 깔린 휴게실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카운터에서 사장님이 일어섰다⁠.

“⁠신발 벗어⁠!⁠”

셋 중 맨 앞의 사내가 멈칫했다⁠. 몸이 오롬의 세 배는 돼 보였는데⁠, 이 몸이 반사적으로 운동화 뒤축을 밟았다⁠. 뒤의 둘이 이 사내를 봤다⁠. 사내가 헛기침을 하고 운동화를 도로 꿰었다⁠.

“⁠흑림입니다⁠. 게이트 생물 확인하러 왔습니다⁠.⁠”

“⁠여긴 찜질방이여⁠. 확인은 신발 벗고 해⁠.⁠”

나는 불가마 문 앞에 섰다⁠. 팔을 벌리지는 않았다⁠. 그냥 섰다⁠. 맨 앞 사내가 내 앞 한 걸음에서 멈췄다⁠. 사내가 손을 들어 내 어깨를 밀려다 멈췄다⁠. 손끝에서 희미하게 전기가 튀는 소리가 났다⁠. 이 사람이 손을 내렸다⁠.

“⁠비키세요⁠.⁠”

“⁠싫은데요⁠.⁠”

“⁠일반인한테 손 못 대는 거 아시죠⁠? 그러니까 비켜 주셔야죠⁠.⁠”

“⁠일반인한테 손 못 대는 거 아니까 안 비키는 거예요⁠.⁠”

뒤에서 슬리퍼 소리가 다가왔다⁠. 밤새 자고 있던 손님들이었다⁠. 양머리 수건을 한 아주머니 셋⁠, 맥주 배가 나온 아저씨 둘⁠, 찜질복 바지를 무릎까지 걷은 할아버지 하나였다⁠. 다들 무슨 구경인지 몰라 서 있다가 내 옆으로⁠, 사내들 앞으로 섞여 들었다⁠. 이 사람들은 나를 지키러 온 게 아니었다⁠. 그냥 구경하러 왔다⁠. 그런데 구경하는 사람이 앞에 서면 헌터는 못 지나간다⁠.

이때 유리문이 또 열렸다⁠. 할머니였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들어온 모양인지 한 손에 연탄 집게⁠, 한 손에 양은 냄비를 들고 있었다⁠. 냄비 뚜껑 틈으로 미역국 김이 올랐다⁠.

“⁠우리 손주 생일에 어떤 놈들이 신발 신고 들어와 있어⁠.⁠”

“⁠할머니⁠, 생일이 아니라⁠—⁠”

“⁠껍데기 벗으면 생일이라니까⁠.⁠” 할머니가 사내들 사이를 집게로 헤치고 들어와 내 옆에 섰다⁠. 사내 하나가 반사적으로 길을 비켰다⁠. “⁠아줌마들⁠, 이놈들 신발 좀 봐요⁠. 우리 집 같으면 벌써 쫓아냈어⁠.⁠”

양머리 아주머니 하나가 사내의 운동화를 내려다봤다⁠. 다른 아주머니가 혀를 찼다⁠. 사내들의 귀가 빨개졌다⁠. S급 길드의 헌터가 찜질방 휴게실에서 신발 때문에 아주머니 넷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오롬이 계란을 든 채 그쪽을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떨렸다⁠. 웃음을 참는 어깨였다⁠.

*

맨 앞 사내가 무전기에 대고 뭐라고 했다⁠. 둘이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신발을 신은 채였다⁠. 나는 이 둘이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사장님이 알았다⁠.

“⁠화구⁠!⁠” 사장님이 소리쳤다⁠. “⁠불가마 뒤에 장작 넣는 데 있어⁠!⁠”

나는 휴게실을 가로질러 비상구로 뛰었다⁠. 비상구 철문을 어깨로 밀자 건물 뒤 좁은 마당이 나왔다⁠. 장작이 쌓여 있었고⁠, 불가마 뒤편 벽에 무쇠 화구 문이 달려 있었다⁠. 사내 둘이 이 앞에 있었다⁠. 하나가 화구 문을 장갑 낀 손으로 열고 있었고⁠, 다른 하나가 은빛 그물을 펼치고 있었다⁠. 실이 아니라 가는 쇠줄로 엮은 그물이었다⁠. 불에 안 타는 그물이었다⁠.

“⁠하지 마요⁠!⁠”

화구 문이 열리는 순간 안쪽에서 열기가 터져 나왔다⁠. 장작불이 아니었다⁠. 화구 안쪽 황토 굴 속에서 검은 것이 고개를 들었다⁠. 진돗개만 했다⁠. 반나절 전까지 고양이만 하던 것이 문 하나를 꽉 채우고 있었다⁠. 비늘이 새로 굳어 반들거렸고⁠, 등을 따라 붉은 줄이 더 굵어져 있었고⁠, 노른자 색 눈이 바깥의 사내들을 봤다⁠.

그물이 날아갔다⁠.

깜부가 입을 벌렸다⁠. 재채기가 아니었다⁠. 목구멍 깊은 데서부터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났고⁠, 다음에 불이 나왔다⁠. 주황색이 아니라 하얀 속에 파란 테가 도는 불이 한 줄로 뻗었다⁠. 쇠줄 그물이 공중에서 빨갛게 달아오르다 흐물흐물 녹아 떨어졌다⁠. 녹은 쇳물이 장작더미에 떨어져 장작에 불이 붙었다⁠. 두 사내가 뒤로 나자빠졌다⁠. 불은 이 사내들의 신발 끝 한 뼘 앞에서 멎었다⁠.

나는 이 한 뼘을 오래 봤다⁠. 깜부가 사내들을 피한 건지 그냥 거기까지만 닿은 건지 지금도 모른다⁠.

사장님이 소화기를 들고 비상구로 나와 장작더미에 분말을 뿜었다⁠. 하얀 가루가 마당을 덮었다⁠. 이 가루 속에서 깜부가 화구 문을 빠져나와 나한테 걸어왔다⁠. 기어 오는 게 아니라 네 다리로 발톱 소리를 내면서 걸어왔다⁠. 그러고는 내 배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이십 킬로그램이 내 명치를 밀었다⁠. 나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둑한 마당에서 깜부의 가슴팍 비늘 사이로 빛이 새고 있었다⁠. 붉은 빛이 일정하게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심장이었다⁠. 나는 손바닥을 거기 댔다⁠. 뜨거웠고⁠, 내 손바닥 밑에서 쿵⁠, 쿵⁠, 하고 뛰었다⁠. 이제는 내 심장보다 느렸다⁠. 나는 내 숨을 이 박자에 맞춰 봤다⁠.

*

불가마 안에 허물이 남아 있었다⁠. 사장님이 이걸 꺼내 왔다⁠. 깜부 모양 그대로⁠, 검은 유리처럼 얇고 단단한 껍질이었다⁠. 등의 갈라진 자리만 벌어져 있었다⁠. 사장님이 이걸 들고 한참 불빛에 비춰 봤다⁠.

“⁠이거 내가 가져도 되냐⁠. 카운터에 걸어 두게⁠.⁠”

“⁠그거 걸면 흑림이 매일 와요⁠.⁠”

“⁠그럼 신발 벗고 오라 그래⁠.⁠”

할머니가 휴게실 바닥에 미역국 냄비를 내려놓았다⁠. 깜부가 냄비에 머리를 박고 미역을 건져 먹었다⁠. 미역 줄기가 깜부 입가에 걸려 늘어졌다⁠. 양머리 아주머니들이 이걸 보고 웃었다⁠. 할머니가 냄비 옆에 쪼그려 앉아 깜부의 새 비늘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손바닥이 지글거렸는데 할머니는 손을 떼지 않았다⁠.

“⁠생일 축하한다⁠, 깜부야⁠.⁠”

할머니가 그렇게 말하자 아주머니 하나가 손뼉을 쳤다⁠. 다른 아주머니가 따라 쳤다⁠. 찜질방 휴게실에서 새벽 여섯 시에⁠, 손님 여섯과 사장 하나와 할머니 하나가 진돗개만 한 드래곤의 생일에 박수를 쳤다⁠. 나는 이 박수 소리 속에 앉아 미역국 냄비 바닥이 보일 때까지 아무 말도 못 했다⁠.

*

탁희준은 박수가 끝날 때쯤 왔다⁠. 유리문을 열고 로비에 섰다⁠. 신발을 벗지 않았다⁠. 사장님이 입을 열기 전에 신발을 벗어 손에 들었다⁠. 맨발로 매트 위에 섰다⁠. 서 있는 매트에 하얗게 서리가 앉았다⁠.

사장님은 반나절 만에 개만 해진 깜부를⁠, 냄비에 머리를 박은 깜부를⁠, 새로 굳은 비늘과 가슴의 빛을 오래 봤다⁠. 깜부가 고개를 들고 사장님을 봤다⁠. 목구멍에서 아까와 같은 소리가 났다⁠. 공기를 빨아들이는 소리였다⁠. 나는 깜부 목을 끌어안았다⁠.

“⁠잘 키우셨네요⁠.⁠” 탁희준이 말했다⁠. 진심이었다⁠. 이 진심이 제일 무서웠다⁠.

“⁠팔 거 아니에요⁠.⁠”

“⁠알아요⁠. 그래서 안 사요⁠.⁠” 탁희준이 휴게실의 아주머니들을 한 번 둘러봤다⁠. 아주머니들이 이 시선에 몸을 움츠렸다⁠. “⁠지금 저 심장이 삼십억쯤 합니다⁠. 날고 나면 삼백억이고요⁠. 저는 서두를 이유가 없어요⁠. 기사님이 키워 주시면 돼요⁠. 고기 값 모자라시면 말씀하세요⁠. 제가 대 드릴게요⁠.⁠”

“⁠필요 없어요⁠.⁠”

“⁠그럼 하나만 알려 드릴게요⁠.⁠” 탁희준이 이번에는 아주머니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목소리를 조금 키웠다⁠. 상냥한 목소리였다⁠. “⁠여러분⁠, 저건 드래곤 새끼입니다⁠. 2019년 송도 아시죠⁠? 마흔한 명⁠. 저게 다 크면 그렇게 됩니다⁠. 오늘 생일 축하 잘 해 주셨어요⁠.⁠”

박수 치던 아주머니가 손을 내렸다⁠. 양머리 수건을 한 다른 아주머니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맥주 배 아저씨가 탈의실 쪽으로 슬금슬금 걸어갔다⁠. 휴게실에 남은 웃음이 이 한마디에 다 빠져나갔다⁠. 탁희준은 신발을 손에 든 채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사장님 쪽으로 오만 원짜리를 몇 장 카운터에 올려 놓고 갔다⁠. 입장료라고 했다⁠.

할머니가 이 돈을 집게로 집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재인은 이 직후에 들어왔다⁠. 차를 세 블록 밖 교회 주차장에 숨기고 걸어왔다고 했다⁠. 매트 위에 남은 맨발 모양의 서리를 내려다보고⁠, 뒷마당으로 나가 녹아 붙은 그물 덩어리를 신발 끝으로 뒤집어 봤다⁠. 쇠줄이 엿가락처럼 꼬여 굳어 있었다⁠. 이 앞에 쪼그려 앉아 한참 일어나지 않았다⁠.

“⁠불 색이 송도랑 같아⁠.⁠” 재인이 말했다⁠. “⁠하얀 데 파란 테⁠.⁠”

이 말을 하는 재인의 왼손이 긴소매 끝을 손바닥 안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이 손을 보면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은 걸 나중에 후회했다⁠.

*

재인이 숨겨 둔 차로 깜부를 데려왔다⁠. 뒷좌석을 접고 담요를 깔았는데⁠, 깜부가 눕자 담요에서 김이 났다⁠. 할머니는 조수석에서 미역국 냄비를 무릎에 안고 졸았다⁠. 골목 입구에 닿았을 때 PC방 앞 흑림 승합차가 없었다⁠. 나는 이게 좋은 신호라고 생각했다⁠. 육 년 동안 배달을 하면서 나는 늘 사람을 너무 좋게 봤다⁠.

대문 앞에 차를 세우자 골목 맞은편이 시끄러웠다⁠. 맞은편 이층집 앞에 이삿짐 트럭이 서 있었다⁠. 이 집 노부부가 장롱을 내보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이십 년 동안 평상을 같이 쓰던 사람이었다⁠. 할아버지가 우리 쪽을 보다가 시선을 피했다⁠.

“⁠어디 가세요⁠?⁠”

할아버지가 대답 대신 2층을 올려다봤다⁠. 나도 올려다봤다⁠.

2층 창문이 열려 있었다⁠. 흰 셔츠가 창틀에 기대어 서 있었다⁠. 이 옆에서 오롬이 삼각대를 펴고 있었다⁠. 삼각대 위에 열화상 카메라가 올라갔다⁠. 카메라 렌즈가 우리 집 반지하 창문을 향했다⁠.

탁희준이 손을 흔들었다⁠.

“⁠오늘 아침에 샀어요⁠.⁠” 탁희준이 골목 너머로 말했다⁠. 크게 소리치지 않았는데 다 들렸다⁠. “⁠이제 이웃이에요⁠, 맹수동 씨⁠.⁠”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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