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27자)

관리청은 새벽에도 불이 켜져 있다

드래곤 알을 주웠더니 우리 원룸이 둥지가 되었다 · 채온유

손잡이를 쥔 채로 우리는 십 초쯤 서 있었다⁠. 나는 이 십 초 동안 재인의 손가락이 하나씩 풀리기를 기다렸다⁠. 풀리지 않았다⁠. 재인은 힘으로 당기지도 않았다⁠. 헌터였던 사람이 마음먹으면 나 같은 건 손잡이째 뽑혀 나갔을 것이다⁠. 재인은 그냥 쥐고 있었다⁠.

“⁠그럼 나도 가요⁠.⁠” 내가 말했다⁠.

“⁠타⁠.⁠”

맨발에 슬리퍼를 꿰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1층 창문이 드르륵 열렸다⁠. 할머니가 내복 차림으로 내다보더니 플라스틱 반찬통 하나를 마당으로 던졌다⁠. 반찬통이 내 가슴팍에 맞고 떨어졌다⁠. 장조림이었다⁠.

“⁠애 밥은 먹이고 데려가⁠!⁠”

재인의 차는 골목 끝 공영주차장에 있었다⁠. 2019년식 SUV였다⁠. 뒷문에 오래된 흑림 스티커를 떼어 낸 자국이 나무 모양으로 하얗게 남아 있었고⁠, 조수석 발밑에 빈 소주병 둘이 굴렀고⁠, 차 안에서 파스 냄새가 났다⁠. 골목 입구 PC방 앞의 흑림 승합차는 시동이 꺼져 있었다⁠. 운전석 사람이 고개를 젖히고 자고 있었다⁠.

“⁠저 사람 깨면 어떡해요⁠.⁠”

“⁠새벽 세 시에 교대해⁠. 지금 깬 사람은 없어⁠.⁠” 재인이 시동을 걸었다⁠. “⁠나도 저거 해 봤어⁠.⁠”

*

이동장은 출발하고 오 분 만에 못 쓰게 됐다⁠. 바닥 플라스틱이 엿처럼 처지더니 창살 한쪽이 휘어 빠졌다⁠. 나는 깜부를 꺼내 바스타월로 감싸 안았다⁠. 수건이 금세 김을 냈다⁠. 재인이 에어컨을 끝까지 올렸다⁠. 찬바람이 내 얼굴을 때리고 깜부 등에 닿아 수증기가 되었다⁠.

“⁠얘 원래 이렇게 뜨거워⁠?⁠”

“⁠아뇨⁠. 어제보다 더 뜨거워요⁠.⁠”

재인이 백미러로 깜부를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백미러에 걸린 소나무 모양 방향제가 흔들렸고⁠, 깜부가 이 냄새에 고개를 쳐들었고⁠, 재채기를 했다⁠. 방향제에 불이 붙었다⁠. 재인이 운전대를 잡은 채 손바닥으로 방향제를 쥐어 껐다⁠. 녹은 화상 자국이 있는 왼손이었다⁠.

“⁠안 뜨거워요⁠?⁠”

“⁠거긴 감각 없다니까⁠.⁠” 재인이 꺼진 방향제를 창밖으로 던졌다⁠. “⁠장조림 줘⁠. 배고파서 저러는 거야⁠.⁠”

장조림 통을 열자 깜부가 통째로 머리를 박았다⁠. 차 안에 간장 냄새와 탄 소나무 냄새와 파스 냄새가 섞였다⁠. 이 냄새 속에서 재인이 말했다⁠.

“⁠관리청에 넘기면 얘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

“⁠몰라요⁠.⁠”

“⁠나도 몰라⁠. 그래서 가 보는 거야⁠.⁠”

나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나중에 알았다⁠. 재인은 관리청 앞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반쯤 알고 있었고⁠, 이 반쯤이 틀리기를 바라고 있었다⁠.

*

게이트 관리청 인천 지부는 남동구청 뒤편 회색 육 층 건물이다⁠. 새벽 네 시인데 1층 상황실과 4층 창문 몇 개에 불이 켜져 있었다⁠. 게이트는 밤에도 열린다⁠. 그래서 관리청은 문을 닫지 않는다⁠.

정문 앞 백 미터에서 재인이 차를 세웠다⁠. 전조등을 껐다⁠.

정문 옆 주차 칸에 검은 승합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옆구리에 흑림의 검은 나무가 그려져 있었고⁠, 이 아래 하얀 글씨가 있었다⁠. 「⁠관리청 위탁 처리⁠」

“⁠저게 뭐예요⁠.⁠”

“⁠관리청이 거둔 게이트 생물은 처리 업체로 가⁠. 죽이고⁠, 자르고⁠, 팔 데로 보내⁠.⁠” 재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인천 처리 업체가 흑림이야⁠. 내가 있을 때부터⁠.⁠”

“⁠그럼 관리청에 넘기면⁠—⁠”

“⁠흑림 냉동 창고로 가⁠. 순서만 하나 늘어⁠.⁠”

정문 유리문이 열렸다⁠. 두 사람이 나왔다⁠. 한 사람은 흰 셔츠였다⁠. 다른 한 사람은 사십 대 중반쯤⁠, 구겨진 남색 근무복 위에 관리청 조끼를 걸치고 종이컵 커피를 들고 있었다⁠. 조끼 가슴에 「⁠과장 변연수⁠」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둘은 웃고 있었다⁠. 변연수가 무슨 말을 하자 탁희준이 고개를 젖히고 웃었다⁠. 새벽 네 시의 관리청 정문에서⁠,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의 웃음이었다⁠.

탁희준이 웃다가 고개를 돌렸다⁠. 우리 쪽이었다⁠. 전조등은 꺼져 있었다⁠. 그런데 백 미터 밖 어두운 차 한 대를 정확히 봤다⁠. 아니⁠, 봤다기보다 알았다⁠. 승합차 지붕 위에서 작은 카메라 하나가 우리 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열화상이었다⁠.

탁희준이 걸어왔다⁠. 서두르지 않았다⁠. 변연수가 커피를 든 채 뒤따랐다⁠.

재인의 손이 운전대를 쥐었다⁠. 기어 손잡이로 가지 않았다⁠. 탁희준이 운전석 창 앞에 섰다⁠. 창유리 바깥에 하얀 서리가 가장자리부터 번졌다⁠. 재인이 창을 손가락 두 마디만큼 내렸다⁠.

“⁠재인 씨⁠. 이 시간에 여기까지 오셨네요⁠.⁠”

“⁠지나가던 길이야⁠.⁠”

“⁠관리청에 볼일 있으면 제가 대신 해 드릴게요⁠. 어차피 저한테 와요⁠. 여기 거치면 이틀 걸리고⁠, 저한테 바로 주면 오늘 안에 정리돼요⁠.⁠” 탁희준이 몸을 숙여 조수석의 나를 봤다⁠. 내 품의 수건에서 김이 나고 있었다⁠. “⁠맹수동 기사님도 계시네⁠. 하수구 장어는 찾으셨어요⁠?⁠”

“⁠아직 찾는 중이에요⁠.⁠”

“⁠품에 든 거는요⁠?⁠”

“⁠찜질팩이요⁠.⁠”

변연수가 뒤에서 커피를 마시다 말고 나를 봤다⁠. 피곤에 절은 눈이었는데⁠, 이 눈이 수건을 오래 봤다⁠.

“⁠탁 길드장님⁠, 아는 분들이에요⁠?⁠”

“⁠옛날 팀원이요⁠.⁠” 탁희준이 다시 재인에게로 몸을 돌렸다⁠.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재인 씨가 들고 와 주면 좋겠어요⁠. 옛날처럼⁠.⁠”

재인의 오른손이 운전대에서 미끄러졌다⁠. 아주 조금이었다⁠. 나는 재인이 숨을 멈추는 소리를 들었다⁠. 옛날처럼이라는 말이 재인의 어디를 건드렸는지 나는 이때 몰랐다⁠. 재인은 대답 대신 기어를 후진에 넣었다⁠.

“⁠다치게 하지 마세요⁠.⁠” 변연수가 탁희준에게 말했다⁠. 우리가 아니라 그에게였다⁠.

“⁠일반인 타고 있잖아요⁠. 안 해요⁠.⁠”

재인이 가속 페달을 밟았다⁠. 차가 뒤로 튀어 나가며 서리 낀 창에 금이 갔다⁠. 사거리에서 핸들을 끝까지 꺾어 차를 돌렸다⁠. 백미러 속에서 탁희준이 손을 흔들었다⁠. 이 옆에서 흑림 승합차의 전조등이 켜졌다⁠.

*

“⁠어디로⁠?⁠”

재인이 물었다⁠. 이 동네를 몰랐다⁠. 나는 알았다⁠.

“⁠직진⁠, 두 번째 골목 좌회전⁠.⁠”

승합차가 백 미터 뒤에서 따라붙었다⁠. 남동구청 뒤 큰길은 넓었고⁠, 넓은 길에서는 엔진이 큰 쪽이 이긴다⁠. 나는 좁은 길로 끌고 들어갔다⁠.

“⁠여기 일방통행이에요⁠. 새벽엔 아무도 없어요⁠. 그대로 쭉⁠. 저 치킨집 간판 끝나면 바로 우회전⁠, 각이 좁으니까 미리 붙여요⁠.⁠”

SUV 사이드미러가 담벼락을 긁었다⁠. 재인이 욕을 했다⁠. 승합차는 더 넓었다⁠. 우회전 골목 입구에서 이 차가 한 번 멈췄다가 후진했다가 다시 들어왔다⁠. 이 사이에 우리는 간석동 언덕길 셋을 올라갔다⁠.

“⁠다음⁠, 저 빌라 앞에서 좌회전하면 막다른 길처럼 보이는데 끝에 차 하나 빠지는 틈 있어요⁠. 쓰레기통 두 개 사이요⁠. 거기 지나면 간석시장 뒤 하역장이에요⁠.⁠”

“⁠막혔으면⁠?⁠”

“⁠안 막혀요⁠. 거기 해장국집에 사 년 동안 새벽마다 배달했어요⁠.⁠”

쓰레기통 사이는 차 한 대 폭에서 손바닥 하나가 남았다⁠. 재인이 사이드미러를 접었다⁠. 우리가 빠져나간 뒤 백미러로 보니 승합차가 쓰레기통 앞에서 멈췄다⁠. 이 차는 손바닥 하나가 모자랐다⁠. 하역장을 지나 시장 뒤 주차 타워로 들어가 반대편 출구로 나오는 동안⁠,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탁희준이 마음먹었다면 승합차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정문 앞에서 손 하나로 우리 차 바퀴를 얼려 버리면 끝났다⁠. 그러지 않은 건 조수석에 내가 있어서였다⁠. 나는 스무 살에 각성 검사를 받고 아무 등급도 못 받은 일반인이었다⁠. 이 결과를 받던 날 나는 사흘 동안 밥을 못 먹었는데⁠, 이 새벽 처음으로 등급 없는 몸이 쓸모가 있었다⁠.

재인이 처음으로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웃었다⁠. 소리 없이 입꼬리만 올라갔는데⁠, 나는 이 여자가 웃는 걸 이때 처음 봤다⁠.

“⁠배달 기사 무섭네⁠.⁠”

“⁠흑림 무서운 거에 비하면요⁠.⁠”

*

웃음은 이 분도 안 갔다⁠. 품에 안은 깜부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무거워진 게 아니라 뜨거워졌는데⁠, 너무 뜨거워서 무게처럼 느껴졌다⁠. 바스타월에서 연기가 올랐다⁠. 나는 수건을 펼쳤다⁠.

깜부의 등을 따라 붉은 줄이 갈라지고 있었다⁠. 비늘 사이 줄이 아니라 피부 자체가⁠, 등뼈를 따라 지퍼처럼 벌어지고 있었다⁠. 갈라진 틈 안쪽이 숯불처럼 빨갰다⁠. 깜부가 몸을 비틀며 소리를 냈다⁠. 주전자 소리가 아니라 쇠를 긁는 소리였다⁠.

“⁠허물이야⁠.⁠” 재인이 차를 세웠다⁠. “⁠첫 번째는 깨고 며칠 안에 온다더니⁠, 사흘 만이네⁠.⁠”

“⁠어떡해요⁠?⁠”

“⁠뜨거운 데 넣어야 돼⁠. 허물은 불 속에서 벗어⁠. 식은 데서 벗으면 반쯤 벗다가 굳어⁠. 굳으면 다리 하나를 못 써⁠.⁠” 재인이 핸들을 쳤다⁠. “⁠송도 둥지는 용암 같은 데였어⁠. 집 창고 연탄은 안 돼⁠. 골목에 흑림 차가 서 있어⁠.⁠”

연탄보다 뜨겁고⁠, 새벽 다섯 시에 문이 열려 있고⁠, 흑림이 모르는 데가 있어야 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구월동 지도를 폈다⁠. 새벽 다섯 시에 내가 배달하는 곳은 해장국집⁠, 편의점⁠, 병원 응급실⁠, 그리고 구월동 황토 불가마 찜질방이었다⁠. 밤샘 손님들이 새벽마다 라면과 식혜를 시키는 곳이었다⁠.

“⁠불가마요⁠.⁠”

*

찜질방 사장님은 예순 넘은 대머리 아저씨다⁠. 젊어서 남동공단에서 용접을 했고⁠, 손등에 쇳물 튄 자국이 별자리처럼 박혀 있다⁠. 나는 이 사람에게 새벽 해장국을 삼 년 날랐다⁠. 카운터에서 졸던 사장님이 수건에 싸인 연기 나는 덩어리를 보고 눈을 비볐다⁠.

“⁠수동이 너 그거 뭐냐⁠?⁠”

“⁠사장님⁠, 불가마 한 시간만 빌려 주세요⁠. 손님 받지 말고요⁠.⁠”

“⁠불가마를 왜⁠.⁠”

“⁠얘가 허물을 벗어야 돼요⁠. 뜨거운 데서⁠.⁠”

사장님이 수건 끝을 젖혔다⁠. 갈라진 등 안쪽의 숯불 빛이 사장님 대머리에 비쳤다⁠. 사장님은 오래 봤다⁠. 용접하는 사람은 쇳물 색을 오래 보는 버릇이 있다⁠.

“⁠몇 도면 되냐⁠?⁠”

“⁠모르겠어요⁠. 뜨거울수록요⁠.⁠”

사장님이 카운터 밑에서 「⁠보수 공사 중⁠」 팻말을 꺼냈다⁠.

불가마는 황토로 쌓은 둥근 굴이다⁠. 문을 열자 숨이 막혔다⁠. 바닥 온도계가 98도를 가리켰다⁠. 깜부를 바닥에 내려놓자 깜부는 비틀거리며 가장 안쪽⁠, 장작 화구에 제일 가까운 자리로 기어가 엎드렸다⁠. 갈라진 등이 황토 바닥에 닿자 깜부가 처음으로 쇠 긁는 소리를 멈췄다⁠. 숨소리가 길어졌다⁠.

나는 문을 닫고 나와 이 앞에 앉았다⁠. 찜질복을 얻어 입었다⁠. 재인은 차를 숨기러 나갔다⁠. 사장님은 팻말을 문에 걸고 카운터로 돌아갔다⁠. 불가마 문 작은 유리창 너머로 깜부의 등에서 검은 껍질이 한 겹 들뜨는 게 보였다⁠.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두 번 가고 할머니가 받았다⁠. 뒤에서 남자 목소리 여럿이 웅성거렸다⁠.

“⁠할머니⁠, 괜찮아요⁠?⁠”

“⁠괜찮긴⁠. PC방 앞 차에서 시커먼 놈들이 내려서 골목을 쑤시고 다닌다⁠. 반지하 창문에 불빛을 비추길래 내가 연탄 집게 들고 대문 앞에 앉았어⁠.⁠” 할머니가 수화기에서 입을 떼고 누군가에게 소리쳤다⁠. “⁠남의 집 창문에 불 비추는 거 아녀⁠!⁠” 그러고는 다시 나한테 말했다⁠. “⁠애는⁠?⁠”

“⁠허물 벗어요⁠. 찜질방에서요⁠.⁠”

“⁠허물⁠? 뱀처럼⁠?⁠” 할머니가 잠깐 조용해졌다⁠. “⁠잘 벗기고 와⁠. 할미가 미역국 끓여 놓을게⁠.⁠”

“⁠미역국은 왜요⁠.⁠”

“⁠애가 껍데기를 하나 벗었으면 생일이지⁠.⁠”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한참 불가마 유리창을 봤다⁠. 생일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옆에 누가 앉았다⁠. 같은 찜질복이었다⁠. 수건을 양머리로 말아 올린 젊은 여자가 맥반석 계란 두 개를 내밀었다⁠. 하나는 이미 까져 있었다⁠.

“⁠드실래요⁠?⁠” 오롬이 말했다⁠. “⁠여기 온도 재기 좋네요⁠.⁠”

4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관리청은 새벽에도 불이 켜져 있다 · 드래곤 알을 주웠더니 우리 원룸이 둥지가 되었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