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00자)

칠월의 연탄난로

드래곤 알을 주웠더니 우리 원룸이 둥지가 되었다 · 채온유

할머니가 대문 앞에서 오롬을 올려다보며 한 말을 나는 평생 못 잊는다⁠.

“⁠고추 말려⁠.⁠”

“⁠네⁠?⁠”

“⁠고추 말린다고⁠. 장마에 태양초가 안 마르니까 연탄초 만드는 거여⁠. 반지하에 연탄난로 피워 놨어⁠. 그러니까 뜨겁지⁠.⁠”

거짓말이었다⁠. 이 순간까지 내 방에는 연탄난로도 고추도 없었다⁠. 할머니는 이 말을 해 놓고 오롬을 대문 밖에 세워 둔 채 마당 뒤 창고로 들어갔다⁠. 창고 문이 끼익 열리는 소리가 나고⁠,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할머니가 무쇠 연탄난로를 바퀴 달린 손수레에 싣고 나왔다⁠. 일흔둘의 팔뚝이 이걸 끌었다⁠.

나는 그사이 깜부를 겨울 이불장에 밀어 넣었다⁠. 솜이불 두 채 사이였다⁠. 깜부가 이불 속에서 꿈틀대며 따라 나오려 해서⁠, 나는 이불장 문에 등을 대고 앉았다⁠. 내 등 체온이 문짝 너머에 있으니 깜부는 거기서 멈췄다⁠. 문짝이 금세 따뜻해졌다⁠.

할머니가 반지하 문을 발로 차서 열고 난로를 들여놨다⁠. 불붙은 연탄 한 장을 집게로 집어 난로에 넣고⁠, 신문지를 방바닥에 펼치고⁠, 부엌에서 들고 온 홍고추 한 소쿠리를 이 위에 쏟았다⁠. 매운 냄새와 연탄 냄새가 동시에 방을 채웠다⁠. 습도계가 92에서 80으로 떨어졌다⁠. 할머니가 창문을 열고 골목을 향해 소리쳤다⁠.

“⁠봐라⁠, 고추⁠!⁠”

오롬이 쪼그려 앉아 창문 안으로 열화상 카메라를 들이댔다⁠. 화면 한가운데 난로가 하얗게 타올랐다⁠. 연탄 속은 몇 백 도다⁠. 내 방 다른 데가 43도든 50도든⁠, 이 하얀 덩어리 옆에서는 다 미지근한 색이었다⁠.

“⁠할머니⁠, 칠월에 반지하에서 연탄 때면 가스 마셔요⁠.⁠”

“⁠내가 연탄을 마흔 해 팔았어⁠. 아가씨보다 연탄을 내가 더 알아⁠.⁠”

오롬이 카메라를 내리고 나를 봤다⁠. 스물대여섯⁠, 땀에 젖은 앞머리가 이마에 붙어 있었고⁠, 우비 안에 받쳐 입은 흑림 반팔 티셔츠에 「⁠추적조 계약직⁠」이라는 명찰이 달려 있었다⁠.

“⁠맹수동 씨죠⁠. 들어가 봐도 돼요⁠?⁠”

“⁠영장 있어요⁠?⁠”

“⁠길드는 그런 거 없어요⁠. 집 뒤지는 건 관리청 단속반만 해요⁠.⁠” 오롬이 순순히 말했다⁠. 아는 걸 숨기지 않는 말투였다⁠. “⁠그래서 이거만 붙일게요⁠.⁠”

오롬이 주머니에서 동전만 한 은색 딱지를 꺼내 창문 바깥 유리에 붙였다⁠.

“⁠열 감지 딱지예요⁠. 45도 넘으면 저한테 알림 와요⁠. 고추가 다 마르면 떼 드릴게요⁠.⁠”

오롬은 대문을 나서다 한 번 돌아봤다⁠. 할머니가 이 등 뒤에다 대고 고구마 먹고 가라고 소리쳤다⁠. 오롬은 정말로 돌아와서 난로 위에서 구운 고구마 하나를 받아 갔다⁠. 받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나는 이게 더 무서웠다⁠.

오롬이 가고 나서 이불장 문을 열자 깜부가 굴러 나왔다⁠. 깜부는 나를 지나쳐 곧장 난로로 기어갔다⁠. 무쇠 난로 몸통을 발톱으로 긁어 올라가 연탄 구멍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연탄 구멍에서 올라오는 파란 불길이 깜부 배 밑에서 갈라졌다⁠. 깜부가 눈을 감았다⁠. 목구멍에서 주전자 소리가 길게 났다⁠.

“⁠거 봐라⁠. 애가 추웠던 거여⁠.⁠” 할머니가 말했다⁠.

*

밤 열한 시⁠, 바깥 계단에서 발소리가 내려왔다⁠. 2층 여자였다⁠.

두 해를 같은 집에 살면서 나는 이 여자와 인사밖에 안 했다⁠. 이름은 택배 상자에서 봤다⁠. 한재인이었다⁠. 칠월에도 긴소매를 입고⁠, 새벽 늦게 들어오고⁠, 분리수거 날이면 소주병이 한 상자씩 나왔다⁠. 이 여자가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열고 들어왔다⁠. 손가락 사이에 은색 딱지가 끼어 있었다⁠.

“⁠이거 흑림 거야⁠.⁠” 재인이 딱지를 내 신발장 위에 내려놓았다⁠. “⁠붙인 사람은 B급 열감각⁠. 이 골목 반경 이백 미터 안에서 이 방이 제일 뜨거운 거 벌써 알아⁠.⁠”

재인의 눈이 난로 위의 깜부로 갔다⁠. 그리고 오래 머물렀다⁠. 나는 이 여자가 무엇을 하려는지 몸이 먼저 알았다⁠. 재인이 허리 뒤로 손을 넣었을 때 나는 이미 난로 앞에 서 있었다⁠.

재인이 뽑아 든 것은 손바닥 두 개 길이의 단검이었다⁠. 손잡이 가죽이 다 닳아 있었다⁠.

“⁠비켜⁠.⁠”

“⁠누구세요⁠?⁠”

“⁠윗집⁠.⁠” 재인이 왼손으로 오른쪽 소매를 걷는 대신 왼쪽 소매를 걷었다⁠. 칼은 오른손에 있었다⁠. 걷힌 왼팔은 손목에서 어깨 쪽으로 피부가 녹았다가 굳은 자리였다⁠. 반들반들하고 울퉁불퉁하고 땀구멍이 없었다⁠. “⁠2019년 9월 송도⁠. 마흔한 명⁠. 나는 그 불 안에 있었어⁠.⁠”

“⁠헌터세요⁠?⁠”

“⁠은퇴했어⁠. A급⁠.⁠” 재인이 칼끝으로 깜부를 가리켰다⁠. “⁠지금은 고양이야⁠. 석 달이면 이 집보다 커⁠.⁠”

“⁠그 칼로 저 찌르시게요⁠?⁠”

“⁠헌터가 일반인한테 능력 쓰면 면허 날아가⁠.⁠” 재인의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다⁠. “⁠칼은 능력이 아니야⁠. 그러니까 비켜⁠.⁠”

나는 비키지 않았다⁠. 등 뒤에서 난로 열이 내 종아리를 지졌다⁠. 할머니가 창문 밖 골목에서 쪼그려 앉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몰랐다⁠.

“⁠그럼 하나만 알려 줘요⁠. 얘가 어떻게 되는데요⁠.⁠”

재인이 칼을 내리지 않고 말했다⁠.

“⁠허물을 벗어⁠. 첫 번째는 깨고 며칠 안에⁠, 그다음부터는 열이틀쯤마다 한 번씩⁠, 뜨거운 데서⁠. 벗을 때마다 커지고 뜨거워져⁠. 첫 번째에 개만 해지고⁠, 두 번째에 뿔이 나고⁠, 세 번째에 날개가 펴져⁠. 그다음엔 자기가 깬 자리로 돌아와서 처음 날아⁠.⁠” 재인이 잠깐 숨을 골랐다⁠. “⁠처음 날면 심장이 굳어⁠. 굳은 심장은 값이 열 배야⁠. 탁희준은 그날을 기다려⁠. 지금 잡으면 새끼 심장 값밖에 안 나오니까⁠.⁠”

“⁠탁희준을 알아요⁠?⁠”

“⁠내 팀장이었어⁠.⁠”

재인은 이 말을 하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이 침묵에 대고 물었다⁠.

“⁠그럼 날기 전에 데리고 멀리⁠—⁠”

“⁠어디로⁠? 얘 다 크면 이 집보다 커⁠. 다 크면 불이 아파트 열두 층을 덮어⁠.⁠” 재인의 칼끝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때 생각하자는 거지⁠? 송도에서도 다들 그렇게 말했어⁠.⁠”

이때 깜부가 난로에서 내려왔다⁠. 바닥에 떨어진 고추를 하나 밟고 미끄러지고⁠, 재채기를 하고⁠, 재인의 운동화 쪽으로 기어갔다⁠. 재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깜부가 운동화 끈을 타고 정강이로 올라가 칼을 쥔 오른손이 아니라 늘어뜨린 왼손으로 갔다⁠. 녹았다가 굳은 이 팔 위에 배를 대고 엎드렸다⁠. 머리를 손목 안쪽에 얹었다⁠.

“⁠거긴 감각 없어⁠.⁠” 재인이 말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몰랐다⁠. “⁠데인 데는 뜨거운 걸 못 느껴⁠.⁠”

재인의 왼손 손가락이 펴졌다가 오므라들었다⁠. 깜부의 등을 쥐듯이⁠, 그러다 쥐지 않고 멈췄다⁠. 오른손의 칼이 천천히 허리 뒤로 돌아갔다⁠. 재인은 내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고추 위였다⁠. 엉덩이 밑에서 고추가 바스락 부서졌다⁠.

“⁠사흘⁠.⁠” 재인이 말했다⁠. “⁠그 안에 네가 관리청에 신고해⁠. 안 하면 내가 해⁠.⁠”

창밖에서 할머니가 혀를 찼다⁠.

“⁠아가씨⁠, 우리 고추 깔고 앉았어⁠.⁠”

*

다음 날 아침부터 골목 입구 PC방 앞에 흑림 승합차가 대기했다⁠. 시동을 켠 채로 하루 종일 서 있었고⁠, 에어컨 실외기에서 물이 줄줄 흘렀다⁠. 오롬은 정오에 와서 창문을 확인했다⁠. 딱지가 없었다⁠. 새 딱지를 붙였다⁠. 저녁에 재인이 내려와 이걸 뗐다⁠. 다음 날 정오 오롬이 또 붙였다⁠. 사흘 동안 이 은색 딱지는 네 번 붙고 네 번 떨어졌다⁠. 할머니는 떨어진 딱지를 모아 장독 뚜껑 위에 줄 세워 놨다⁠.

둘째 날 저녁에는 탁희준이 직접 왔다⁠. 흰 셔츠에 수박 한 통을 들고 골목을 걸어 들어왔는데⁠, 지나간 자리마다 젖은 아스팔트에서 김 대신 하얀 서리가 올라왔다⁠. 골목 평상에 앉아 있던 동네 할아버지들이 부채질을 멈추고 뒤를 봤다⁠. 시원하다⁠, 소리가 평상에서 나왔다⁠.

탁희준은 대문 앞에서 할머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 흑림 탁희준입니다⁠. 날이 더워서요⁠.⁠”

수박을 받은 할머니가 손을 털었다⁠. 수박이 꽁꽁 얼어 있었다⁠.

“⁠이걸 어떻게 먹으라고 줘⁠.⁠”

“⁠녹여 드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 집⁠, 제가 사고 싶은데요⁠. 시세 세 배 드릴게요⁠. 반지하 세입자분이 위험한 걸 데리고 계셔서⁠, 어르신 다치실까 봐요⁠.⁠”

“⁠이 집이 연탄 몇 장 팔아서 산 집인지 알어⁠?⁠” 할머니가 수박을 옆구리에 끼었다⁠. “⁠이십만 장이여⁠. 세 배면 육십만 장인데⁠, 자네 연탄 육십만 장 있어⁠?⁠”

탁희준이 웃었다⁠. 대답할 말을 고르는 사이 2층 계단에서 문이 열렸다⁠. 재인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내려오다가 계단 중간에서 멈췄다⁠. 탁희준도 고개를 들고 멈췄다⁠. 둘 사이에 계단 열두 칸이 있었다⁠. 나는 마당에서 이 열두 칸을 봤다⁠. 아무도 이 칸을 내려오거나 올라가지 않았다⁠.

“⁠재인 씨⁠.⁠” 탁희준이 말했다⁠. “⁠여기 살았어요⁠?⁠”

“⁠가⁠.⁠”

“⁠팔은 좀 어때요⁠?⁠”

재인이 쓰레기봉투를 계단 난간에 걸었다⁠. 이 손이 허리 뒤로 가지는 않았다⁠. 대신 계단을 다 내려와 대문 앞에 섰고⁠, 할머니 옆에서 탁희준과 한 걸음 거리로 마주 섰다⁠. 키는 탁희준이 머리 하나 컸다⁠. 고개를 들지 않고 탁희준의 셔츠 단추를 보며 말했다⁠.

“⁠여기서 얼음 쓰면 일반인한테 쓴 거야⁠. 할머니 서 계시잖아⁠.⁠”

“⁠알아요⁠.⁠” 탁희준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래서 수박만 들고 왔어요⁠.⁠”

탁희준은 골목을 걸어 나갔다⁠. 할머니는 이날 밤 언 수박을 깨서 깜부에게 줬다⁠. 깜부가 수박을 껴안자 수박에서 김이 나고⁠, 녹은 단물이 방바닥으로 흘렀고⁠, 깜부는 껍질까지 먹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이 총각⁠, 수박은 잘 골랐네⁠.

셋째 날 아침에는 모래내시장 정육점 사장님이 나를 가게 안쪽으로 불렀다⁠.

“⁠어제 흑림이라는 데서 사람이 왔어⁠. 요즘 고기 많이 사 가는 사람 있으면 전화 달래⁠. 한 명 대 주면 오십만 원 준대⁠.⁠” 사장님이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나는 안 했어⁠. 근데 저 건너 집은 모르겠다⁠.⁠”

고기 봉지를 들고 나오자 건너편 정육점 사장이 휴대폰을 귀에 대고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사장님이 고개를 돌렸다⁠. 오 분 뒤 시장 입구에 검은 스쿠터가 섰다⁠. 나는 봉지를 오토바이 배달통에 넣고 떡집 뒤 통로로 빠졌다⁠. 이번에는 얼음 상자를 밀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스쿠터는 교회 경사로 앞에서 멈췄고⁠, 나는 이 아래 골목에서 숨을 골랐다⁠. 경사로가 언제까지 나를 지켜 줄지는 몰랐다⁠.

이날부터 고기는 셋이 나눠 샀다⁠. 할머니는 간석시장에서⁠, 강산은 부평 마트에서⁠, 나는 동네 정육점 세 군데를 돌며 이 킬로그램씩 샀다⁠. 깜부는 하루에 오 킬로그램을 먹었다⁠. 탁희준이 준 봉투는 사흘 만에 반이 됐다⁠. 셋째 날 저녁 할머니가 금반지 하나를 손가락에서 빼서 나한테 내밀었다⁠. 나는 받지 않았다⁠. 할머니는 이걸 내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신고하지 않았다⁠. 사흘 동안 관리청 번호를 세 번 눌렀고 세 번 다 지웠다⁠.

*

사흘째 새벽 세 시⁠, 가슴이 서늘해서 깼다⁠.

깜부가 자는 자리는 늘 내 가슴 위였다⁠. 이 열이 빠져나가는 걸 몸이 먼저 알았다⁠. 눈을 떴을 때 현관에 재인이 서 있었다⁠. 오른손에는 플라스틱 이동장이⁠, 왼손에는 차 열쇠가 들려 있었다⁠. 이동장 안에서 깜부가 주전자 끓는 소리를 높게 내고 있었고⁠, 이동장 손잡이 언저리가 열에 물러져 휘고 있었다⁠.

“⁠관리청 간다⁠.⁠” 재인이 말했다⁠. “⁠따라오든지 막든지⁠.⁠”

나는 맨발로 뛰어가 이동장 손잡이를 잡았다⁠. 재인은 놓지 않았다⁠. 손잡이를 사이에 두고 우리 둘의 손이 닿았다⁠. 재인의 손은 차가웠고⁠, 플라스틱은 뜨거웠고⁠, 이동장 창살 너머에서 노른자 색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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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귤까는중2026.10.25· 3화

    칠월에 연탄난로를 피우는 건 알 때문이에요? 반지하가 43도인데요?

    • 채온유작가2026.10.26

      알이 식으면 안 돼서요. 주인공은 땀을 흘리고 알은 편안합니다.

칠월의 연탄난로 · 드래곤 알을 주웠더니 우리 원룸이 둥지가 되었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