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449자)

집으로 가는 길

드래곤 알을 주웠더니 우리 원룸이 둥지가 되었다 · 채온유

공단에서 구월동까지는 오토바이로 이십 분이다⁠. 이날은 두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앞에서 시속 십 킬로미터로 갔다⁠. 깜부는 날개를 반쯤 접고 네 발로 뒤따랐다⁠. 걸음마다 아스팔트가 울렸다⁠. 발톱이 닿은 자리에 하얀 자국이 남았다⁠. 가끔 날개 끝이 가로수 가지를 쳤고⁠, 가지에서 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뒤로 기사들이 따라왔다⁠. 다마스 형이 맨 뒤에서 비상등을 켜고 따라왔다⁠. 다마스 짐칸에서는 아직도 연탄 연기가 났다⁠.

큰길로 가면 안 됐다⁠. 오후 세 시의 큰길에는 사람이 많다⁠. 나는 머릿속으로 남동구 지도를 펼쳤다⁠. 육 년 동안 오후 세 시에 비어 있던 길만 골랐다⁠. 공단 뒤편 화물차 차고지⁠, 승기천 둑길 아래 산책로⁠, 이 시간에 문 닫힌 학원가 뒷골목⁠, 재개발로 빈집만 남은 간석동 언덕 같은 데였다⁠. 교차로마다 기사 하나가 먼저 가서 오토바이를 가로로 세우고 차를 막았다⁠. 할리 누나가 경적을 울리며 손을 흔들었다⁠. 잠깐만요⁠, 드래곤 지나가요⁠. 차 안의 사람들은 웃다가 깜부를 보고 웃음을 멈췄다⁠.

경찰차 두 대가 따라붙었다⁠. 뒤로 관리청 단속 차량이 따라붙었고⁠, 맨 뒤로 흑림 승합차 셋이 따라붙었다⁠. 아무도 앞을 막지 않았다⁠.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경찰은 권총 대신 무전기를 쥐고 있었고⁠, 관리청은 본청 지시를 기다린다고 했고⁠, 흑림은 탁희준이 막지 말라고 했다⁠.

승기천 둑길 아래에서 낚시하던 아저씨 하나는 깜부가 옆을 지나가는 동안 낚싯대를 쥔 채 꼼짝도 안 했다⁠. 깜부가 이 아저씨 양동이에 코를 박고 붕어 세 마리를 먹었다⁠. 아저씨가 빈 양동이를 내려다보다가 나한테 소리쳤다⁠. 그거 내 저녁이었어⁠! 나는 오토바이 위에서 고개를 숙였다⁠. 다마스 형이 지나가며 만 원짜리 한 장을 양동이에 넣었다⁠.

*

깜부가 처음 멈춘 건 구월동 초입의 족발집 앞이었다⁠.

나는 이 앞을 지나치려 했다⁠. 깜부가 따라오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깜부가 족발집 유리문 앞에 서서 코를 벌름거리고 있었다⁠. 가게 안에서 사장님이 족발을 썰다가 칼을 든 채 굳었다⁠. 칠월 구일 밤⁠, 기사님 드시라며 서비스 족발을 따로 싸 주던 사장님이었다⁠.

“⁠사장님⁠, 죄송해요⁠. 금방 갈게요⁠.⁠”

“⁠수동 씨⁠, 그거 뭐야⁠?⁠”

“⁠그날 서비스 족발 먹은 애요⁠.⁠”

사장님이 나를 보고⁠, 깜부를 보고⁠, 도마 위의 족발을 봤다⁠. 그러고는 족발 한 덩이를 통째로 비닐에 담아 들고 나왔다⁠. 손이 떨렸다⁠. 그래도 나왔다⁠. 깜부 코앞에 비닐을 내려놓고 뒷걸음질 쳤다⁠. 깜부가 비닐째 족발을 삼켰다⁠. 오도독⁠, 오도독⁠. 첫날 밤 싱크대 위에서 들은 이 소리였다⁠. 소리만 백 배 커져 있었다⁠.

“⁠계산은 다음에 해⁠.⁠” 사장님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아니⁠, 하지 마⁠. 그날 그 족발 내가 제대로 쌌네⁠.⁠”

두 번째로 멈춘 건 간석시장 뒤 해장국집⁠, 내가 사 년 동안 새벽마다 들르던 집이었다⁠. 세 번째는 찜질방이었다⁠. 깜부는 찜질방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사장님이 카운터에 걸어 둔 첫 허물이 유리문 너머로 보였다⁠. 사장님이 셔터를 반쯤 올리고 나와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깜부는 아무 데서나 멈추는 게 아니었다⁠. 내 옷과 내 오토바이에 매일 밤 묻어 오던 냄새의 자리에서 멈췄다⁠. 한 달 동안 내 가슴 위에서 자면서⁠, 깜부는 내 하루를 냄새로 다 맡았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받아 어디로 날랐는지⁠. 내가 모르는 사이에 깜부는 내 배달 동선을 외우고 있었다⁠.

깜부는 나를 따라오는 게 아니었다⁠. 내가 매일 집에 가던 길로⁠, 집에 가고 있었다⁠.

*

골목 입구는 막혀 있었다⁠.

관리청 단속 차량 두 대가 입구를 가로로 막았고⁠, 노란 띠가 전봇대에서 전봇대로 이어져 있었다⁠. 구덩이에는 넉 달 동안 안 치던 노란 띠가 우리 골목에는 반나절 만에 쳐졌다⁠. 변연수 과장이 확성기를 들고 있었다⁠.

“⁠게이트 생물 이동으로 이 골목 주민분들 대피 바랍니다⁠. 짐은 최소한으로 챙겨 주세요⁠. 관리청 지시입니다⁠.⁠”

흑림 승합차들이 골목 둘레 블록마다 서 있었다⁠. 골목 양 끝⁠, 뒤편 공영주차장⁠, 교회 경사로 아래까지⁠. 맞은편 이층집 앞에는 탁희준이 서 있었다⁠. 흰 셔츠에 하얀 면장갑을 끼고 있었다⁠. 처음 보는 장갑이었다⁠. 사람이 많은 자리에 설 때 끼는 거라고⁠, 나중에 재인이 말해 주었다⁠. 맨손이면 옆 사람 소매까지 언다고 했다⁠.

깜부가 노란 띠 앞에서 멈췄다⁠. 띠 너머 골목 안쪽을 봤다⁠. 우리 집 쪽이었다⁠. 띠를 지키던 단속반 둘이 뒤로 물러섰다⁠. 탁희준이 손짓하자 단속 차량 하나가 후진해 길을 텄다⁠. 깜부가 노란 띠를 가슴으로 밀고 들어갔다⁠. 띠가 끊어졌다⁠.

나는 오토바이를 세우고 탁희준 앞으로 걸어갔다⁠.

“⁠기사님⁠, 수고 많으셨어요⁠.⁠” 탁희준이 말했다⁠. “⁠이제 하나만 해 주시면 돼요⁠.⁠”

“⁠뭘요⁠?⁠”

“⁠주민분들 다 나가시게 해 주세요⁠. 날 때까지 저는 안 건드려요⁠. 약속해요⁠. 날고 나면 제가 잡고요⁠. 그 사이에 사람이 다치면 안 되잖아요⁠.⁠”

나는 이 말의 뒷면을 알았다⁠. 사람이 없는 골목에서는 탁희준이 장갑을 벗어도 된다⁠. 일반인이 한 명도 없으면 규칙도 없다⁠.

“⁠아무도 안 나가요⁠.⁠”

“⁠그럼 제가 내보내야죠⁠.⁠” 탁희준이 장갑 낀 손으로 변연수를 가리켰다⁠. “⁠대피 명령은 경찰이 집행해요⁠. 관리청이 요청하면⁠.⁠”

경찰들이 골목으로 들어갔다⁠. 집집의 대문을 두드렸다⁠. 위로금을 받은 집들은 이미 짐을 싸 놓고 있었다⁠. 세탁소 아저씨가 가방 둘을 들고 나왔다⁠. 아이 안은 엄마가 유모차를 끌고 나왔다⁠. 이 엄마가 나를 지나치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는 건지 비키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남은 집이 있었다⁠. 통장님은 빨간 대문 앞 평상에 앉아 노래방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이번에는 켜져 있었다⁠.

“⁠통장이 먼저 나가면 누가 남어⁠?⁠”

평상 끝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연탄 집게를 무릎에 얹고 앉아 있었다⁠. 철물점 아주머니는 가게 셔터를 내리고 이 앞에 접이식 의자를 폈다⁠. 경찰 하나가 아주머니 앞에 섰다⁠.

“⁠어머니⁠, 대피하셔야 해요⁠.⁠”

“⁠나 관리청에 전화한 사람이야⁠. 그 사람이 왜 대피해⁠. 내가 신고한 거 어떻게 되나 봐야지⁠.⁠”

경찰이 무전기를 봤다⁠. 무전기가 대답을 안 했다⁠.

*

해가 질 무렵 재인이 왔다⁠. 왼손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에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았다⁠. 휴대폰 화면을 내게 보여 줬다⁠. 관리청 문자였다⁠. 「⁠면허 박탈 처분 통지⁠」

“⁠한 시간 전에 왔어⁠.⁠” 재인이 말했다⁠. “⁠나 이제 일반인이야⁠.⁠”

“⁠그럼 이제⁠—⁠”

“⁠이제 탁희준이 나한테 얼음 못 써⁠.⁠” 재인이 공장에서처럼 소리 없이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열두 해 동안 헌터 면허가 나를 지켜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면허 없어지니까 처음으로 지켜 주네⁠.⁠”

재인이 평상으로 가서 통장님 옆에 앉았다⁠. 탁희준이 맞은편에서 이걸 봤다⁠. 장갑 낀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밤 아홉 시⁠, 골목 뒤편에서 탑차 소리가 났다⁠. 강산이었다⁠. 탑차 지붕은 깜부가 뿔로 박은 자리가 아직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조수석 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내렸다⁠. 강산이 운전석에서 뛰어내려 할머니 팔을 부축했다⁠. 할머니가 이 팔을 뿌리쳤다⁠.

“⁠내가 걸을 줄을 몰라⁠?⁠”

할머니는 관리청 지부에서 열두 시간 진술을 하고 은닉 혐의 조사 끝에 귀가 조치됐다⁠. 강산이 이 열두 시간 동안 지부 일 층 민원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흑림이 갚아 준 빚은 아직 다 안 끝났고⁠, 이 녀석은 앞으로 이걸 어떻게 갚을지 몰랐다⁠. 그래도 이 녀석은 열두 시간 동안 거기 앉아 있었다⁠.

할머니가 골목에 들어서자 평상 끝 할아버지가 일어나 연탄 집게를 두 손으로 내밀었다⁠. 할머니가 받았다⁠. 집게를 한 번 딸깍 쥐어 보고 말했다⁠.

“⁠애는⁠?⁠”

*

깜부는 반지하 창문 앞에 있었다⁠.

창문은 이제 깜부 머리 하나도 안 들어갔다⁠. 깜부는 골목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반지하 창문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곰팡이 핀 벽지⁠, 라면 박스 신발장⁠, 녹은 화장실 손잡이⁠, 창틀에 불탄 자국이 있는 내 방이었다⁠. 깜부가 처음 둘러본 방이었다⁠. 깜부가 코를 창유리에 댔다⁠. 유리가 김으로 뿌옇게 흐려졌다⁠.

할머니가 이 옆에 쪼그려 앉았다⁠. 손바닥으로 깜부 등을 쓸었다⁠. 날개가 접힌 자리였다⁠. 지글거렸다⁠. 할머니는 손을 떼지 않았다⁠.

“⁠생일이네⁠.⁠” 할머니가 말했다⁠. “⁠날개 났으니까⁠.⁠”

강산이 다마스 짐칸에서 미역국 냄비를 꺼내 왔다⁠. 할머니가 관리청 가기 전날 불려 둔 미역으로 철물점 아주머니가 끓인 것이었다⁠. 깜부가 냄비에 머리를 박았다⁠. 뿔이 냄비 손잡이에 걸려 냄비가 깜부 머리에 매달렸다⁠. 깜부가 고개를 흔들었다⁠. 냄비가 골목 담에 부딪혀 쾅쾅 울렸다⁠. 평상의 사람들이 웃었다⁠. 노란 띠 너머 경찰들도 웃었다⁠. 탁희준만 웃지 않았다⁠.

열한 시쯤 노란 띠 밑으로 오롬이 들어왔다⁠. 배낭 하나를 메고⁠, 흑림 티셔츠 대신 회색 후드를 입고 있었다⁠. 단속반이 막으려 하자 주민이라고 했다⁠. 이 골목 주민이 아니었다⁠. 단속반은 이걸 몰랐다⁠.

오롬은 평상 앞에 서서 할머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할머니⁠, 저 잘렸어요⁠.⁠”

“⁠잘했네⁠.⁠” 할머니가 미역국 냄비 바닥을 숟가락으로 긁어 그릇에 담아 내밀었다⁠. “⁠앉어⁠.⁠”

오롬이 평상 끝에 앉아 미역국을 먹었다⁠. 다 먹고 나서 숟가락을 내려놓고 나한테 말했다⁠.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낮추는 법을 몰랐다⁠.

“⁠지붕마다 헌터가 올라가 있어요⁠. 골목 둘레 열여섯 채⁠, 스물네 명이요⁠. 길드장님이 날기 전엔 아무도 손대지 말라고 했어요⁠. 날면 그때⁠.⁠” 오롬이 맞은편 이층집을 봤다⁠. “⁠그리고 길드장님이 오후에 서울에 전화를 길게 했어요⁠. 누구랑 했는지는 몰라요⁠. 끊고 나서 처음으로 화난 얼굴이었어요⁠.⁠”

“⁠왜 알려 줘요⁠?⁠”

“⁠모르겠어요⁠.⁠” 오롬이 배낭을 무릎에 올려 안았다⁠. 배낭 안에서 열화상 카메라 모서리가 비죽 나왔다⁠. 오롬은 그걸 버리지도 꺼내지도 않았다⁠. “⁠저 아직 어느 쪽인지 몰라요⁠. 그래서 여기 앉아 있어요⁠. 여기가 제일 잘 보여서요⁠.⁠”

할머니가 이 말에 대답하지 않고 오롬 그릇에 미역국을 한 국자 더 떠 주었다⁠. 냄비 바닥이었다⁠.

자정이 조금 넘었을 때 깜부가 일어섰다⁠.

반지하 창문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대문을 지나⁠, 할머니 집 바깥 계단으로 갔다⁠. 2층 재인의 집 앞을 지나 옥상으로 오르는 철계단이었다⁠. 깜부가 이 계단을 한 칸씩 밟았다⁠. 철계단이 깜부 무게에 휘었다⁠. 난간 하나가 뜯겨 나갔다⁠. 깜부가 옥상에 섰다⁠.

달이 떠 있었다⁠. 골목 위로 낮게⁠. 깜부가 날개를 폈다⁠.

옥상 양쪽으로 날개가 넘쳐났다⁠. 왼쪽 날개 끝이 옆집 옥상 빨랫줄에 닿았고⁠, 오른쪽 날개 끝이 골목 위 허공으로 뻗었다⁠. 날개 막에 달빛이 비쳐 붉은 핏줄이 그물처럼 떠올랐다⁠. 골목의 사람들이 다 고개를 들었다⁠. 노란 띠 너머의 경찰도⁠, 단속반도⁠, 흑림 헌터들도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 이층집 옥상에 탁희준이 올라가 있었다⁠. 언제 올라갔는지 몰랐다⁠.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깜부와 같은 높이였다⁠. 깜부를 봤다⁠. 그리고 골목 바닥의 평상에 모인 할머니와 재인과 통장님과 할아버지와 철물점 아주머니와 강산과 나를 내려다봤다⁠.

탁희준이 오른손 면장갑의 손가락 끝을 하나씩 잡아당겼다⁠. 엄지⁠, 검지⁠, 중지⁠. 장갑이 벗겨졌다⁠. 탁희준이 벗은 장갑을 옥상 바닥에 떨어뜨렸다⁠. 장갑이 떨어지면서 공중에서 하얗게 얼었다⁠.

14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