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333자)

날개는 접히지 않는다

드래곤 알을 주웠더니 우리 원룸이 둥지가 되었다 · 채온유

탁희준은 보일러실 문 앞 다섯 걸음에서 멈췄다⁠. 더 다가오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선 자리에서부터 공장 바닥에 서리가 퍼졌고⁠, 서리는 보일러실 문턱을 넘어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보일러 배관의 성에가 두꺼워졌다⁠. 압력계 바늘이 떨어졌다⁠. 보일러 기사가 밸브를 끝까지 돌렸다⁠. 바늘은 올라가지 않았다⁠.

“⁠세 번째죠⁠.⁠” 탁희준이 문틈으로 깜부의 등을 봤다⁠. 갈라진 옆구리 틈에서 접힌 날개가 꿈틀거렸다⁠. “⁠지금 식으면 굳어요⁠. 반쯤 벗은 채로⁠. 그러면 날개 하나 못 써요⁠. 평생요⁠.⁠”

“⁠그럼 얼리지 마요⁠.⁠”

“⁠얼리는 거 아니에요⁠. 식히는 거예요⁠. 얌전하게⁠.⁠” 탁희준이 공장 밖을 가리켰다⁠. 셔터 너머에 흑림 승합차보다 큰 트럭 한 대가 서 있었다⁠. 짐칸 옆에 굴뚝이 달려 있었다⁠. “⁠저 차 짐칸에 보일러가 있어요⁠. 송도 사육장 갈 때 쓰는 거예요⁠. 얌전해지면 저기 실어서 마저 벗기면 돼요⁠. 날개 멀쩡하게⁠. 기사님이 비켜 주시기만 하면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탁희준이 깜부의 날개를 지키려는 것도 사실이었다⁠. 날개가 멀쩡해야 날고⁠, 날아야 심장이 굳는다⁠. 탁희준은 깜부가 잘 나는 걸 나보다 더 바랐다⁠.

“⁠싫어요⁠.⁠”

“⁠그럼 기사님이 여기서 저 날개를 굳히시는 거예요⁠.⁠” 탁희준이 시계를 봤다⁠. “⁠이십 분이면 바닥이 영하예요⁠.⁠”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손가락이 굳어 화면이 잘 안 눌렸다⁠. 재인에게 걸었다⁠.

*

재인은 이미 오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겹겹이 들렸다⁠.

“⁠오롬 카메라 화면이 흑림 쪽에 뜨는 거⁠, 나 있을 때도 그랬어⁠. 탁희준이 직접 갈 줄 알았어⁠.⁠” 재인이 엔진 소리 위로 소리쳤다⁠. “⁠할머니 창고 연탄 다 싣고 간다⁠. 이십 분만 버텨⁠.⁠”

“⁠연탄을 어떻게⁠—⁠”

“⁠배달통에⁠.⁠”

이 이십 분을 나는 지금도 초 단위로 기억한다⁠. 보일러실 바닥에 성에가 피었다⁠. 깜부가 몸을 웅크렸다⁠. 갈라진 옆구리 틈의 젖은 날개가 추위에 오그라들었다⁠. 나는 보일러실 안으로 들어가 깜부 옆에 엎드렸다⁠. 내 체온은 깜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깜부는 내 쪽으로 몸을 붙였다⁠. 깜부는 처음 먹이 준 사람의 체온을 따라왔다⁠. 첫날 밤 내 가슴 위로 기어 오던 그대로였다⁠.

보일러 기사가 공구함에서 토치를 꺼내 배관을 지졌다⁠. 성에가 녹았다가 다시 얼었다⁠.

탁희준은 문 앞에서 이걸 다 봤다⁠. 오롬이 뒤에 서 있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했다⁠.

“⁠오롬 씨⁠, 지금 체온 몇 도예요⁠?⁠”

오롬이 카메라를 들었다⁠. 화면을 봤다⁠. 깜부의 하얀 덩어리가 조금씩 노란색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오롬 씨⁠.⁠”

“⁠모르겠어요⁠.⁠”

“⁠화면 보이시잖아요⁠.⁠”

“⁠카메라가 얼었어요⁠. 숫자가 안 떠요⁠.⁠” 오롬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화면에는 58⁠.2가 떠 있었다⁠. 나는 문틈으로 이 숫자를 봤다⁠. 오롬이 거짓말을 했다⁠. 한 달 동안 거짓말을 못 하던 사람이었다⁠.

탁희준이 처음으로 오롬을 돌아봤다⁠.

“⁠오롬 씨 계약⁠, 오늘까지예요⁠.⁠”

“⁠네⁠.⁠” 오롬이 카메라를 내렸다⁠. 끄지 않았다⁠. 내렸다⁠.

오롬이 티셔츠 가슴에 달린 「⁠추적조 계약직⁠」 명찰을 떼어 냈다⁠. 핀이 손가락에 걸려 피가 한 방울 났다⁠. 오롬은 명찰을 버리지 않고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이 년 동안 단 것이었다⁠. 그러고는 공장 기둥에 등을 기대고 섰다⁠. 탁희준 쪽도 내 쪽도 아닌 자리였다⁠.

*

십구 분째에 공장 마당으로 오토바이가 들어왔다⁠.

맨 앞이 다마스였다⁠. 다마스 형의 다마스 짐칸에서 연기가 기차처럼 솟고 있었다⁠. 짐칸 가득 불붙은 연탄이었다⁠. 뒤이어 탑차 형⁠, 할리 누나⁠, 중국집 막내⁠, 휴학생⁠, 시흥 대행 기사가 줄을 지었다⁠. 다마스 형이 쉼터에서 부른 처음 보는 기사 셋도 있었다⁠. 배달통마다 은박지에 싼 연탄이 빨갛게 숨 쉬었다⁠. 마지막으로 철물점 아주머니가 가게 화물 오토바이를 몰고 들어왔다⁠. 짐칸에 숯불 화로 넷과 가스 토치 한 상자가 실려 있었다⁠.

“⁠나 관리청에 전화한 거⁠, 그거는 그거고⁠.⁠” 아주머니가 헬멧을 벗었다⁠. “⁠할머니 끌려가는 건 이거고⁠.⁠”

다마스 형이 다마스 뒷문을 열었다⁠. 연탄 열기가 공장 마당을 덮었다⁠. 할리 누나가 배달통 뚜껑을 열고 소리쳤다⁠.

“⁠연탄 배달 왔습니다⁠! 문 앞에 두고 갈까요⁠?⁠”

다마스 형이 연탄을 내리며 숨 가쁘게 떠들었다⁠. 재인이 전화 한 통 돌리자 쉼터에 열 명이 모였고⁠, 평상 끝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맡기고 간 집게로 창고 연탄에 하나씩 불을 붙였고⁠, 철물점 아주머니가 가게 토치를 다 들고 나와 이걸 거들었다고 했다⁠. 불붙은 연탄을 배달통에 넣고 구월동에서 공단까지 신호 열한 개를 다 무시하고 왔다고도 했다⁠. 경찰차 하나가 따라붙었는데⁠, 연기 나는 배달통 열 개를 보고 불이 났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앞길을 터 줬다고 했다⁠.

“⁠내 평생 경찰 에스코트는 처음이다⁠.⁠” 다마스 형이 말했다⁠.

“⁠안으로⁠!⁠” 보일러 기사가 소리쳤다⁠.

기사들이 집게와 장갑으로 한 사람이 두 장씩⁠, 배달통에서 보일러실로 연탄을 날랐다⁠. 연탄은 보일러실 바닥의 깜부 둘레로⁠, 날개가 접힌 옆구리 쪽으로 깔렸다⁠. 연탄이 깔린 자리마다 성에가 녹아 김으로 올랐다⁠. 서리와 김이 보일러실 문턱에서 부딪쳤다⁠.

탁희준이 손을 들었다⁠. 공장 바닥 전체에 서리가 다시 덮였다⁠. 기사들의 운동화가 미끄러졌다⁠. 강산이 연탄 두 장을 든 채 넘어졌다⁠. 연탄이 깨지며 불씨가 흩어졌다⁠. 강산이 맨손으로 불씨를 주워 담았다⁠. 손바닥이 데었는데 이 녀석은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불씨를 배달통에 도로 쓸어 담더니 다시 일어나 보일러실로 뛰었다⁠.

이때 재인이 탁희준 앞에 섰다⁠.

재인은 다마스 조수석에서 내리자마자 칼을 뽑았다⁠. 칼날이 하얗게 달아올랐다⁠. 면허 정지 중이었다⁠. 이번에 걸리면 정지가 아니라 박탈이고⁠, 박탈 뒤에 쓰면 처벌이었다⁠. 재인은 이걸 알았다⁠. 나도 알았다⁠. 재인이 칼끝을 공장 바닥에 박았다⁠. 칼이 박힌 자리에서 서리가 녹아 물이 되고⁠, 물이 끓어 김이 되었다⁠. 김이 원을 그리며 퍼졌다⁠. 기사들이 이 원 안에서 다시 걸을 수 있었다⁠.

“⁠재인 씨⁠. 이번엔 박탈이에요⁠.⁠”

“⁠알아⁠.⁠”

“⁠저는 처리 현장 허가가 있어요⁠. 재인 씨한테는 써도 돼요⁠. 일반인 아니시니까⁠.⁠”

“⁠알아⁠.⁠”

탁희준이 손바닥을 재인 쪽으로 향했다⁠. 사람을 향해 얼음을 쓰는 건 처음이었다⁠. 재인 둘레의 김이 공중에서 얼어 하얀 가루로 떨어졌다⁠. 재인의 긴소매에 성에가 앉았다⁠. 왼팔이었다⁠. 화상 자국 위로 서리가 피었다⁠. 감각이 없는 살이었다⁠. 재인은 이 팔이 어는 걸 못 느꼈다⁠. 나는 이 소매가 하얗게 굳어 가는 걸 봤다⁠.

“⁠재인 씨⁠, 팔⁠!⁠”

재인은 칼을 놓지 않았다⁠. 칼날의 빛이 오른손에서 바닥으로⁠, 바닥에서 보일러실 문턱으로 흘렀다⁠. 서리와 열이 재인의 몸을 경계로 반씩 갈렸다⁠. 왼쪽은 하얗고 오른쪽은 붉었다⁠.

*

보일러실 안에서 소리가 났다⁠. 가죽이 찢어지는 소리였다⁠.

깜부가 연탄 위에서 등과 옆구리의 허물을 한꺼번에 밀어내며 일어서고 있었다⁠. 검은 껍질이 통째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리고 날개가 펴졌다⁠.

접혀 있던 것이 펴지는 데 삼 초가 걸렸다⁠. 왼쪽 날개 끝이 보일러를 쳤고⁠, 오른쪽 날개 끝이 벽에 닿고도 다 안 펴져 벽을 밀었다⁠. 콘크리트 벽에 금이 갔다⁠. 날개 막은 젖어 있었고⁠, 검은 바탕에 붉은 핏줄이 그물처럼 퍼져 있었다⁠. 날개가 다 펴지자 보일러실 천장의 슬레이트가 날개 뼈에 밀려 들렸다⁠. 슬레이트 석 장이 깨지며 공장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구멍으로 팔월 한낮의 햇빛이 쏟아졌다⁠.

깜부가 날개를 접지 않았다⁠. 날개를 편 채로 보일러실 문을 부수고 나왔다⁠. 문틀이 날개에 걸려 뜯겨 나갔다⁠. 깜부가 공장 바닥에 섰다⁠. 송아지만 하던 몸이 날개를 펴자 공장 안의 반을 덮었다⁠.

탁희준이 손을 들었다⁠. 서리가 깜부를 향해 날아갔다⁠.

깜부가 날개를 접었다⁠. 자기 몸 쪽이 아니라 재인과 나 쪽으로 접었다⁠. 한쪽 날개가 우리 둘의 머리 위를 지붕처럼 덮었다⁠. 서리가 이 날개 막에 부딪혀 김으로 터졌다⁠. 날개 아래는 뜨거웠다⁠. 젖은 날개 막에서 물방울이 우리 어깨로 떨어졌다⁠. 뜨거운 물방울이었다⁠.

재인이 칼을 바닥에서 뽑았다⁠. 재인의 왼팔 소매가 하얗게 굳어 있었다⁠. 이 팔을 들어 날개 막에 댔다⁠. 감각이 없는 팔이었다⁠. 그런데 숨을 들이켰다⁠.

“⁠뜨거워⁠.⁠” 재인이 말했다⁠. 나를 보지 않았다⁠. 날개를 봤다⁠. “⁠여기가 뜨거워⁠.⁠”

탁희준은 손을 내리고 있었다⁠. 날개를 향해 두 번째 서리를 보내지 않았다⁠. 나는 이 손을 봤다⁠. 내 시선을 알았다⁠.

“⁠날개는 얼면 안 돼요⁠.⁠” 탁희준이 말했다⁠. 나한테 하는 변명이 아니었다⁠. 자기 셈을 소리 내 확인하는 말투였다⁠. “⁠얼면 금이 가요⁠. 금 간 날개로는 못 날아요⁠. 못 날면 심장이 안 굳고요⁠.⁠”

탁희준이 깜부의 가슴을 봤다⁠. 새 비늘 사이로 새는 붉은 빛이 공장 안 햇빛 속에서도 보였다⁠. 첫 허물 뒤 찜질방 마당에서 본 빛보다 훨씬 밝았다⁠. 박동이 느리고 깊었다⁠.

“⁠거의 다 익었네요⁠.⁠”

이 남자의 욕심이 이 순간 깜부의 날개를 지켰다⁠. 나는 이게 고맙지 않았다⁠. 고맙지 않은데 날개는 멀쩡했다⁠.

재인의 왼팔 소매가 하얗게 굳어 있었다⁠. 내가 소매를 걷으려 하자 천이 얼어서 바스락 부서졌다⁠. 이 아래 화상 자국 위로 하얀 반점들이 퍼져 있었다⁠. 동상이었다⁠. 재인은 이걸 내려다보며 손가락을 하나씩 굽혀 봤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이 굽혀지지 않았다⁠.

보일러 공장 사장님이 지팡이를 짚고 나와 지붕 구멍을 올려다봤다⁠. 슬레이트 석 장 자리로 하늘이 보였다⁠.

“⁠지붕 값은 곽 여사한테 받을게⁠. 외상으로⁠.⁠”

*

깜부가 날개를 거두고 공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날지 않았다⁠. 날개를 반쯤 접은 채 네 발로 공장 마당을 지나 정문 쪽으로 갔다⁠. 정문 앞 공단 도로에서 멈췄다⁠.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나는 다마스 옆에 세워 둔 내 오토바이로 갔다⁠. 시동을 걸었다⁠. 깜부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내가 오토바이를 한 바퀴 돌리자 깜부도 따라 돌았다⁠. 내가 공단 도로로 나가자 깜부가 따라 나왔다⁠. 처음 먹이 준 사람의 체온과⁠, 한 달 동안 매일 저녁 골목 두 개 밖에서부터 기다리던 오토바이 소리가 깜부를 끌었다⁠.

공단 도로는 구월동 쪽으로 나 있었다⁠. 깜부는 이 방향으로 고개를 들고 코를 벌름거렸다⁠. 내가 반대쪽으로 핸들을 틀자 깜부가 멈췄다⁠. 따라오지 않았다⁠. 구월동 쪽만 봤다⁠.

깬 자리로 돌아와 처음 난다⁠. 재인이 첫날 밤 그렇게 말했다⁠.

뒤에서 구두 소리가 났다⁠. 탁희준이 공장 정문에 서 있었다⁠. 셔츠 소매가 그을려 있었다⁠. 쫓아오지 않았다⁠. 길을 내주는 사람처럼 정문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섰다⁠.

“⁠그쪽으로 갈 줄 알았어요⁠.⁠” 탁희준이 말했다⁠. “⁠구월동 골목⁠, 반지하⁠. 깬 자리⁠. 저는 거기서 기다릴게요⁠.⁠”

나는 핸들을 쥐었다⁠. 앞에는 구월동으로 가는 길이 있었고⁠, 이 길 끝에서 이 남자가 기다릴 것이다⁠. 내가 어느 쪽으로 핸들을 틀든 깜부는 그쪽으로만 갈 것이다⁠. 나는 클러치 레버를 쥔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13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날개는 접히지 않는다 · 드래곤 알을 주웠더니 우리 원룸이 둥지가 되었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