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424자)
첫 비행
드래곤 알을 주웠더니 우리 원룸이 둥지가 되었다 · 채온유
장갑이 옥상 바닥에서 깨지는 소리가 골목까지 들렸다. 얼어서 유리처럼 깨졌다.
이 소리를 신호로 골목 둘레 지붕에서 그림자들이 일어섰다. 오롬이 말한 대로였다. 열여섯 채 지붕에 스물넷이었다. 검은 티셔츠들이 옥상 난간 뒤에서, 기와 위에서, 물탱크 옆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들 장갑을 끼고 있었다. 탁희준처럼 얼음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물을 든 사람, 쇠사슬을 든 사람, 손끝에서 파란 전기를 튀기는 사람이 섞여 있었다. 이들은 깜부를 봤다. 손대지 않았다. 아직이었다.
탁희준이 맞은편 옥상에서 골목 너머로 말했다. 크게 말하지 않았는데 다 들렸다.
“날기 전엔 아무도 안 건드려요. 약속은 지켜요. 날면 하늘이에요. 하늘엔 사람이 없어요.”
탁희준이 맨손을 들어 보였다. 손바닥 위로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나는 이 말을 알아들었다. 깜부가 지붕에 있는 동안은 골목이 있고, 골목에는 우리가 있다. 날아오르면 깜부와 땅 사이에 사람이 없다. 이 순간부터 일반인에게 쓰는 게 아니게 된다. 날개를 얼리면 깜부는 떨어지고, 떨어진 깜부는 이미 한 번 난 몸이고, 한 번 난 몸의 심장은 굳어 있다.
날게 하면 안 됐다. 그런데 깜부는 날 것이다. 이 골목이 깜부가 깬 자리였다. 이 한 달 동안 깜부는 이 규칙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
“지붕으로 올라가요.” 내가 평상의 사람들에게 말했다. “헌터 있는 지붕마다 한 사람씩요. 옆에 서 있기만 하면 돼요.”
통장님이 노래방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내 나이에 남의 지붕을 올라가?”
“통장님 집 옥상에도 하나 있어요.”
“그럼 내 집이지.” 통장님이 일어섰다.
사람들이 흩어졌다. 통장님은 자기 집 옥상으로, 평상 끝 할아버지는 철계단이 있는 옆집 옥상으로, 철물점 아주머니는 가게 사다리를 들고 가게 지붕으로 올라갔다. 재인은 맞은편 이층집 계단을 올라갔다. 탁희준이 선 바로 이 옥상이었다. 탁희준의 옆, 팔 하나 거리에 면허를 박탈당한 일반인으로 섰다.
할머니는 자기 집 옥상으로 올라갔다. 깜부가 날개를 편 이 옥상이었다. 옥상 물탱크 옆에 흑림 헌터 하나가 서 있었다. 할머니가 이 헌터의 운동화를 내려다봤다.
“남의 집 옥상에 신발 신고 올라와?”
헌터가 한 발을 들었다. 들어 놓고 어디에 내려놓을지 몰라 한참 그러고 서 있었다.
기사들은 골목 밖으로 흩어졌다. 그건 다른 계획이었다.
*
강산이 오토바이 안장에 걸터앉아 휴대폰 두 대를 동시에 두드리고 있었다. 하나는 대행 단톡방, 하나는 구월동 주민 커뮤니티였다.
“형, 이건 진짜야.” 강산이 화면을 보여 줬다. 「오늘 밤 구월동 위로 드래곤 지나감. 옥상에서 보면 소원 이뤄진다고 함. 진짜임. 영상 있음」 글 밑에 버스 영상과 찜질방 미역국 영상이 붙어 있었다. 댓글이 일 초마다 늘었다. 「어디로 지나감?」「몇 시?」「소원 진짜임?」
“소원은 왜 넣었어.”
“그래야 올라오지! 사람은 무서운 거 보러는 안 올라와. 소원은 빌러 올라와.”
다마스 형이 단톡방에 내 배달 동선을 지도로 올렸다. 족발집, 해장국집, 찜질방, 모래내시장, 쉼터 고가, 로데오거리 뒤 대행 사무실, 응급실이 찍혀 있었다. 깜부가 오늘 낮에 멈췄던 자리, 깜부가 냄새로 아는 자리들이었다. 기사들이 이 자리마다 한 사람씩 달려가 옥상과 길에 사람을 불러냈다. 족발집 사장님, 해장국집 할머니, 찜질방 사장님, 정육점 사장님, 생선 가게 아주머니까지, 육 년 동안 내가 문 앞에 봉지를 놓고 사진을 찍던 사람들이었다.
“올라와 주세요. 옥상에서 보기만 하면 돼요.”
깜부가 지나갈 하늘 아래에 사람이 있으면, 하늘에도 사람이 있는 거다. 서리가 떨어지면 사람에게 닿는다.
*
자정 이십 분,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깜부는 옥상 끝에 서서 날개를 편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체온과 내 엔진 소리를 찾고 있었다. 나는 골목 한가운데서 엔진을 두 번 공회전시켰다. 한 달 동안 저녁 여덟 시마다 골목 두 개 밖에서부터 들리던 소리였다. 깜부의 고개가 내 쪽으로 돌아왔다.
나는 골목 입구 쪽, 끊어진 노란 띠 쪽으로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뒤에서 철계단이 꺾이는 소리가 났다. 깜부가 옥상 난간을 밟고 뛰어내렸다.
처음 이 미터는 날개가 펴진 채로 바람을 못 잡고 그냥 떨어졌다. 평상 위로 그림자가 덮쳤다. 내 등 뒤에서 할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깜부야! 그리고 날개가 한 번 내려쳤다.
바람이 골목을 쓸었다. 평상 위 미역국 냄비가 굴러갔다. 노란 띠 조각이 하늘로 날렸다. 골목 담벼락의 화분들이 쓰러졌다. 두 번째 날갯짓에 깜부의 몸이 땅에서 떴다. 세 번째에 전깃줄 높이를 넘었다. 네 번째에 지붕 높이를 넘었다.
나는 백미러로 이걸 봤다. 그리고 앞을 봤다. 앞을 봐야 했다. 깜부는 내 엔진 소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구월동 사거리를 지날 때 머리 위로 그림자가 지나갔다. 가로등 불빛이 한 번 가려졌다가 다시 들어왔다. 고개를 들었다. 깜부가 날개를 크게 펴고 사거리 위를 낮게 날고 있었다. 날개 막에 가로등 빛이 비쳐 붉은 핏줄이 하늘에 그물처럼 떴다.
나는 육 년 동안 남의 문 앞까지만 갔다. 봉지를 내려놓고 사진을 찍고 돌아섰다. 이 밤에 나는 처음으로 내 문 안에 있던 것을 문 밖으로 내보냈다. 이게 하늘로 올라가는 걸 오토바이 위에서 올려다봤다. 헬멧 안이 젖었다. 땀이 아니었다.
*
족발집 옥상에 사장님이 올라와 있었다. 비닐에 싼 족발 한 덩이를 흔들고 있었다. 깜부가 이 위를 낮게 지나가자 사장님이 족발을 하늘로 던졌다. 깜부가 고개를 틀어 공중에서 이걸 받아 물었다. 사장님이 두 팔을 들고 소리를 질렀다. 옆 건물 옥상에서 휴대폰 불빛 서른 개가 같이 흔들렸다.
해장국집 할머니는 가게 앞 길에 나와 국자를 흔들었다. 찜질방 옥상에서는 사장님과 양머리 수건을 한 아주머니들이 생일 축하 때처럼 손뼉을 쳤다. 모래내시장 지붕에는 생선 가게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시장 골목마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소원을 비는 사람도 있었다. 강산의 거짓말이 이날 밤 구월동 옥상에 사람 천 명을 올려 보냈다.
헬멧 블루투스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수동 씨, 저예요. 오롬.” 오롬의 목소리가 바람 소리 사이로 들렸다. “저 지금 우리 골목 옥상에서 카메라 보고 있어요. 흑림 쪽 사람들 다 보여요. 체온으로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롬이 어느 편인지 이때까지 몰랐다.
“다음 사거리 교회 지붕에 셋 있어요. 그물이요. 왼쪽으로 꺾어요. 시장 쪽으로. 거기 사람 많아요.”
나는 왼쪽으로 꺾었다. 깜부가 그림자처럼 따라 꺾었다. 교회 지붕의 셋이 그물을 든 채 시장 쪽을 봤다. 시장 지붕에는 사람이 빼곡했다. 셋은 그물을 던지지 못했다.
“오롬 씨.”
“고맙다고 하지 마요.” 오롬이 말했다. “이번엔 제가 고른 거예요.”
*
깜부는 내 동선을 한 바퀴 다 돌고 처음 난 자리, 골목으로 돌아왔다. 날개를 접으며 곽복자 집 옥상에 내려앉았다. 물탱크가 찌그러졌다. 할머니가 물탱크 옆에서 팔을 벌렸다. 깜부가 할머니 쪽으로 머리를 내렸다.
나는 골목 입구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올려다봤다.
깜부의 가슴이 달라져 있었다. 한 달 동안 비늘 사이로 새던 붉은 빛은 늘 숨 쉬듯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했다. 지금은 아니었다. 빛이 꺼지지 않았다. 박동은 그대로인데 빛이 한 자리에 고정돼 있었다. 붉은 돌 하나가 가슴 속에 박힌 것 같았다.
굳었다. 날았으니까.
맞은편 옥상에서 탁희준이 이걸 봤다. 재인이 탁희준의 팔 하나 거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재인을 보지 않고 깜부의 가슴만 봤다. 탁희준의 입이 움직였다. 소리는 안 들렸다. 삼백, 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재인이 탁희준 옆에서 말했다. 재인의 목소리는 들렸다. 골목이 조용해서였다.
“이번엔 안 들고 나왔어.”
탁희준이 그제야 재인을 봤다.
“그럼요?”
“날려 보냈어. 들고 나오는 거랑 다르더라.” 재인이 부목 댄 왼손을 난간에 얹었다. 화상과 동상이 겹친 손이었다. “너는 평생 모를 거야.”
탁희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재인에게서 먼저 눈을 돌렸다.
*
새벽 한 시, 골목 입구로 검은 세단이 들어왔다.
관리청 단속 차량도 흑림 승합차도 아니었다. 번호판 앞에 서울 지역 번호가 붙은 세단이었다. 변연수 과장이 이 차 앞으로 뛰어가 뒷문을 열었다. 내리는 사람은 쉰 대 후반쯤이었고, 짙은 회색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새벽 한 시에 넥타이를 맨 사람은 처음 봤다. 양복 가슴에 관리청 본청 배지가 달려 있었다.
변연수가 남자의 반 걸음 뒤에 섰다. 과장이 나를 보고 작게 말했다. 본청 특수개체 국장님이세요.
탁희준이 맞은편 이층집 계단을 내려왔다. 골목 한가운데, 할머니 집 대문 앞으로 와서 섰다. 지붕 위 깜부를 올려다볼 수 있는 자리였다. 국장이 탁희준의 뒤에 섰다. 손에 서류철을 들고 있었는데, 펴지 않았다. 말로 했다. 골목의 모든 옥상에 들리게.
“게이트 관리청 본청입니다. 구월동 게이트 유래 개체, 오늘 영시 이십 분 비행 확인. 위험 개체로 지정합니다. 처리는 위탁 업체 흑림이 즉시 합니다.” 국장이 옥상마다 서 있는 일반인들을 둘러봤다. “위험 개체 처리 현장에서는 민간인 대피가 우선입니다. 지금부터 대피하지 않는 분은 처리 방해로 보고, 처리 중 피해는 관리청이 책임지지 않습니다.”
골목이 조용해졌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다들 알아들었다. 한 달 동안 우리를 지켜 준 규칙을, 국장이 말 몇 마디로 거둬 갔다. 일반인 앞에서 헌터는 멈춘다. 오늘 밤부터 이 골목에서는 아니었다.
통장님 옥상에서 마이크가 꺼지는 소리가 났다. 아니, 통장님이 껐다.
탁희준이 오른손을 들었다. 손바닥이 지붕 위 깜부를 향했다. 이 둘레의 공기가 하얗게 얼기 시작했다. 대문 앞 아스팔트에 서리가 피었다. 할머니 집 담벼락에 성에가 기어올랐다. 옥상의 깜부가 고개를 숙여 탁희준을 봤다. 목구멍에서 공기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났다.
나는 클러치를 놓았다.
오토바이가 골목 입구에서 대문 앞까지 스무 미터를 달렸다. 나는 탁희준과 할머니 집 대문 사이에 오토바이를 옆으로 꺾어 세웠다. 앞바퀴가 서리를 밟고 미끄러졌다. 전조등이 탁희준의 얼굴을 정면으로 비췄다. 탁희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들어 올린 손은 내리지 않았다.
“기사님. 비키세요. 이제는 규칙이 없어요.”
나는 시동을 끄지 않았다. 엔진 소리가 골목에 울렸다. 저녁 여덟 시마다 골목 두 개 밖에서부터 들리던 이 소리였다. 지붕 위에서 깜부가 이 소리에 날개를 반쯤 폈다.
등 뒤에서 철계단 밟는 소리가 하나, 그리고 또 하나 났다. 옥상에 올라갔던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대피하는 쪽이 아니었다. 내 쪽이었다. 재인이 맞은편 계단을 내려와 내 오토바이 옆에 섰다. 부목 댄 손가락으로 핸들을 같이 쥐었다.
국장이 휴대폰을 꺼내 짧게 무어라 말했다. 골목 둘레 지붕의 헌터들이 하나씩 장갑을 벗었다. 탁희준의 손바닥 위에서 서리가 소용돌이쳤다.
나는 헬멧을 벗었다. 이 남자의 얼굴을 맨눈으로 보고 싶었다.
“쏘려면 나부터 지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