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70자)
아홉 시의 창고
드래곤 알을 주웠더니 우리 원룸이 둥지가 되었다 · 채온유
강산 앞에 섰을 때 나는 주먹을 쥐고 있었다. 붕대 감은 손이라 제대로 쥐어지지도 않았다. 강산은 피하지 않았다. 헬멧을 땅에 내려놓고 턱을 들었다. 맞을 자리를 내준 얼굴이었다.
“얼마야?”
“…천이백.” 강산이 말했다. “처음엔 삼백이었어. PC방에서 아이템 사느라고. 이자가 붙어서. 형 사채 소문 낸 거, 사실 나 들으라고 낸 거야. 형 일이면 사람들이 웃으니까. 내 일이면 아무도 안 웃으니까.”
나는 주먹을 풀었다. 강산이 등 뒤에서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흑림이 빚 갚아 주고 남은 거야. 오백. 형 고기 값 해.”
여기서 나는 이 봉투를 쳐 내야 했다. 이게 맞았다. 그런데 이 열흘 동안 할머니가 연탄 백 장을 팔았고, 기사들이 자기 돈으로 고기를 샀고, 깜부는 하루에 이십 킬로그램을 먹었다. 나는 봉투를 받았다. 탁희준이 반장을 산 돈이 깜부의 고기가 됐다. 이것도 털어놓는다.
“이거로 끝 아니야.” 내가 말했다. “새벽 네 시, 탑차 형한테 탑차 빌려서 우리 골목 뒤로 와. 운전은 네가 해.”
“뭐 하게?”
“깜부 옮겨. 아홉 시 전에.”
강산이 고개를 들었다. 맞을 자리를 내줬던 얼굴에 처음으로 눈물이 돌았다. 이 녀석은 이걸 닦지 않고 헬멧을 집어 썼다.
“형, 이건 진짜야. 나 네 시에 올게.”
*
어디로 옮길지는 할머니가 정했다.
“남동공단 보일러 공장 사장. 내 단골이었어. 삼십 년. 그 공장이 연탄 보일러 만들던 데여. 아이엠에프 때 그 양반 부도나서 연탄값 못 낼 때 내가 외상으로 한 겨울을 대 줬어.” 할머니가 전화기를 들었다. “그 공장 보일러실이면 깜부 하나쯤 따뜻하게 재워.”
새벽 한 시에 할머니가 전화를 걸었다. 받자마자 할머니가 나여, 연탄, 하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일흔 넘은 남자가 한참 웃다가 기침을 했다. 사정은 할머니가 일 분 만에 말했다. 손주가 하나 있는데 덩치가 크고 몸이 뜨겁고 사람들이 무서워한다. 수화기 너머 남자는 묻지 않았다. 몇 시에 오냐고만 물었다.
문제는 맞은편 창의 카메라였다. 밤에는 이름 모르는 흑림 사내가 이 앞에 앉아 있었다. 탑차가 골목 뒤에 서서 깜부를 싣고 떠나면, 이 사내의 화면에서 하얀 덩어리 하나가 움직이는 게 다 보였다.
“하얀 덩어리를 일곱 개로 만들면 돼.” 재인이 말했다.
새벽 세 시 반, 기사 여섯이 골목에 들어왔다. 다마스 형, 탑차 형, 할리 누나, 중국집 막내, 남은 휴학생 하나, 그리고 다마스 형이 데려온 시흥 대행 기사 하나였다. 할머니가 창고에서 연탄을 꺼내 연탄난로에 하나씩 붙였다. 불붙은 연탄을 집게로 집어 은박지로 싸고, 이걸 배달통에 하나씩 넣었다. 배달통 안에서 연탄이 빨갛게 숨 쉬었다.
“아, 냄새.” 할리 누나가 코를 막았다. “내 배달통 이제 평생 연탄 냄새 나겠다.”
“짜장면 시키는 손님이 연탄 향 짜장 좋아할 거여.” 할머니가 말했다.
네 시 정각, 골목 뒤편 공영주차장 쪽에 탑차가 멈췄다. 강산이 운전석에서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깜부를 창고 뒷벽 쪽으로 이끌었다. 송아지만 한 몸이 창고 뒷문을 옆으로 비집고 나갔다. 뿔이 문틀을 긁었다. 탑차 뒷문까지는 스무 걸음이었다. 깜부는 이 스무 걸음을 내 체온을 따라 걸었다. 나는 탑차 짐칸에 먼저 올라가 앉았다. 깜부가 따라 올라왔다. 짐칸 바닥이 깜부 무게에 꺼지듯 내려앉았다.
이 순간 골목 입구 쪽에서 오토바이 여섯 대가 동시에 시동을 걸었다. 여섯 대가 배달통마다 불붙은 연탄을 싣고 구월동 사거리 쪽으로, 간석동 쪽으로, 모래내시장 쪽으로, 고가 밑 쉼터 쪽으로, 인천대공원 쪽으로, 그리고 송도 쪽으로 흩어졌다. 맞은편 창의 화면에서는 하얀 덩어리 일곱 개가 동시에 골목을 떠났을 것이다.
강산이 탑차를 몰았다. 운전이 엉망이었다. 첫 번째 과속방지턱에서 짐칸이 튀었고, 깜부가 짐칸 천장에 뿔을 박았다. 탑차 지붕이 안에서 볼록 튀어나왔다.
“강산아, 천천히!”
“형, 이거 수동이야! 나 수동 처음 몰아!”
깜부가 짐칸 뒷문 틈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새벽 공기를 맡았다. 첫 번째 신호에서 옆 차선 택시 기사가 탑차 뒷문에서 삐져나온 뿔 달린 머리를 봤다. 택시 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한참 보다가, 휴대폰을 꺼내지 않고 창문을 올렸다. 새벽 네 시의 택시 기사는 많은 걸 본다.
*
보일러 공장 사장님은 일흔다섯이었다. 공장 셔터를 반쯤 올리고 이 밑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탑차에서 깜부가 내리자 사장님이 지팡이를 짚은 채 한 걸음 물러섰다가, 다시 한 걸음 다가왔다.
“곽 여사 손주가 이거여?”
“네.”
“곽 여사 닮았네. 덩치 크고 뜨거운 거.”
공장 안쪽 보일러실은 산업용 보일러 세 대가 나란히 서 있는 콘크리트 방이었다. 사장님이 보일러 셋을 다 켰다. 바닥이 데워지고 배관에서 쉭쉭 김이 샜다. 깜부가 가장 큰 보일러 옆 바닥에 엎드렸다. 등의 붉은 줄이 다시 굵어지고 있었다. 열이틀이 다 찼다. 팔월 오일이었다.
여덟 시에 출근한 직원들을 사장님이 공장 마당에서 돌려보냈다. 오늘 휴무, 일당은 준다. 다들 좋아서 돌아갔는데 하나가 남았다. 예순 넘은 보일러 기사였다. 보일러실 문틈으로 깜부를 들여다보고는 작업복 소매를 걷었다. 보일러 셋을 한꺼번에 돌리면 압력 맞추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사람은 나한테 이름도 묻지 않고, 깜부가 뭔지도 묻지 않고, 압력계 바늘만 봤다. 바늘이 빨간 칸에 닿을 때마다 밸브를 반 바퀴씩 돌렸다.
나는 보일러실 문 앞에 앉았다. 재인은 골목에 남았다. 할머니 곁에 누가 있어야 했다.
*
아홉 시 정각에 재인에게서 영상 통화가 왔다. 휴대폰 화면 속에 우리 집 뒷마당이 보였다.
관리청 단속 차량 두 대와 흑림 처리 승합차 한 대가 골목 입구를 막고 서 있었다. 방호복을 입은 단속반 넷이 창고 앞에 섰다. 변연수 과장이 조끼 차림으로 이 앞에 섰다. 할머니는 연탄 집게를 무릎에 얹고 창고 문 앞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르신, 비켜 주세요.”
“우리 창고여.”
변연수가 고개를 끄덕였고 단속반이 할머니 의자 옆을 돌아 창고 문을 열었다. 손전등 넷이 안을 비췄다. 연탄 벽과 연탄난로 둘, 바닥에 뱉어 놓은 노란 단무지, 그리고 연탄 벽에 기대 선 송아지만 한 허물 껍질뿐이었다.
단속반 하나가 허물을 손전등으로 비추고 소리를 질렀다. 껍질인 걸 알고 나서 헛기침을 했다.
화면 구석에서 흰 셔츠가 움직였다. 탁희준이 승합차에서 내려 창고 안을 들여다봤다. 빈 연탄 벽을 봤다. 웃지 않았다.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짧게 말하고 끊었다.
변연수가 할머니 앞에 쪼그려 앉았다.
“어르신, 어디 있어요?”
“몰러.”
“어르신, 그거 숨기시면 은닉입니다. 게이트 생물 은닉. 연세 생각해서 그동안 말 안 했는데, 오늘은 같이 가셔야 해요.”
“가지 뭐.” 할머니가 집게를 들고 일어섰다. “차는 어느 거여?”
할머니는 차로 가기 전에 평상 끝 할아버지에게 연탄 집게를 맡겼다. 이거 잃어버리면 안 돼, 사십 년 쓴 거여. 할아버지가 집게를 두 손으로 받았다.
재인이 화면 밖에서 뭐라고 했다. 변연수가 재인에게 한재인 씨는 면허 정지 중이니 끼어들면 이것도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재인의 숨소리가 수화기에서 거칠게 났다.
할머니는 단속 차량 뒷좌석 앞까지 걸어갔다. 단속반이 문을 열어 주었다. 할머니가 차에 오르다 말고 돌아섰다. 위로금을 받은 집이든 안 받은 집이든 골목 사람들이 대문마다 나와 있었다. 할머니가 이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우리 손주 밥 줘라! 저녁 여덟 시! 돼지 앞다리!”
평상 끝 할아버지가 손을 들었다. 대답하는 손이었다. 철물점 아주머니가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차 문이 닫혔다. 나는 공장 보일러실 앞에서 이 화면을 쥐고 있었다. 손에 쥔 휴대폰이 뜨거웠다. 휴대폰 탓이 아니었다.
*
열 시 반, 공장 셔터 밑으로 운동화 한 켤레가 들어왔다. 흰 운동화였다.
오롬은 혼자였다. 우비도 없이 흑림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손에 열화상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보일러실 문 앞의 나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일곱 개 중에 여섯 개는 십 분 만에 식었어요.” 오롬이 말했다. “연탄은 식으면 끝이에요. 하나만 안 식었어요. 그런데 그건 여기 와서 보일러 열이랑 섞였고요.”
“그럼 어떻게 찾았어요?”
오롬이 카메라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보일러실 벽 너머가 하얗게 타고 있었다. 보일러 세 대의 하얀 덩어리 사이에 하나가 더 있었다. 이 덩어리 가운데에서 붉은 점 하나가 일정하게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보일러는 안 뛰어요. 이건 뛰어요.” 오롬이 말했다. “한 달 동안 저것만 봤어요. 박동을 알아요.”
나는 일어섰다. 오롬이 한 걸음 물러섰다.
“보고는 했어요?”
“아직이요.” 오롬이 카메라를 내렸다. “삼십 분 뒤에 할게요.”
“왜요?”
“할머니 차에 타는 거, 저도 맞은편 창에서 봤어요.” 오롬이 공장 바닥을 봤다. 기름때 낀 콘크리트였다. “삼십 분이면 어디로도 못 가요. 저 덩치를 실을 차도 없을 거고. 그래도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예요. 보고 안 하면 저 잘려요. 저 정규직 되고 싶어요. 그거 아직 안 변했어요.”
오롬은 여전히 거짓말을 못 했다. 삼십 분이 오롬이 줄 수 있는 전부라는 것도 거짓말이 아니었다.
“고마워요.”
“고맙다고 하지 마요. 삼십 분 뒤에 제가 전화할 거예요.”
*
나는 강산에게 탑차를 다시 대라고 전화했다. 탑차는 공단 입구 주유소에 있었다. 오 분이면 왔다. 나는 보일러실 문을 열었다.
깜부의 등이 갈라져 있었다.
첫 허물 때처럼 등뼈를 따라 지퍼처럼 갈라진 자리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갈라진 틈이 등에서 끝나지 않았다. 양쪽 어깨뼈 뒤에서 두 줄이 더 갈라져 옆구리로 내려갔다. 이 틈 안에서 무언가가 접힌 채 꿈틀거렸다. 젖은 가죽이었다. 박쥐 날개처럼 접힌, 아직 펴지지 않은 것이었다.
세 번째 허물이었다. 이 상태로는 탑차에 못 실었다. 반쯤 벗다 식으면 굳는다. 굳으면 날개 하나를 못 쓴다. 재인이 첫날 해 준 말이었다.
오롬이 보일러실 문 앞에서 이걸 봤다. 휴대폰 시계를 봤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공장 바닥에 주저앉았다. 삼십 분이 다 갈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이십오 분째에 보일러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쉭쉭 새던 김이 끊겼다. 배관 이음매에 하얀 것이 피어올랐다. 성에였다. 팔월 한낮의 공장 안에서 보일러 배관이 바깥에서부터 얼어 들어오고 있었다. 보일러실 온도계 바늘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롬이 고개를 들었다. 오롬의 얼굴이 하얘졌다.
“저 아직 보고 안 했어요.”
공장 셔터가 끝까지 올라갔다. 바깥의 햇빛 속에 흰 셔츠가 서 있었다. 탁희준의 발밑 콘크리트에서 서리가 공장 안쪽으로 혀처럼 뻗어 들어왔다. 탁희준이 공장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오롬 씨는 보고를 안 하셨죠.” 탁희준이 말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봤어요. 오롬 씨 카메라 화면은 제 휴대폰에도 뜨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