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136자) · 하리 · 동짓달 초닷새

네 입으로 불러

문세(門稅)를 받는 사람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동짓달 초닷새, 문세청 대청에는 사람이 들어찰 데가 없었다. 장부 벽 앞까지 사람이 섰고, 다 못 들어온 사람들은 이 층 계단에서 일 층 복도까지 줄줄이 앉았다. 아랫말 문계 예순여덟 집에서 한 사람씩만 와도 예순여덟이었는데, 한 집에서 셋씩 온 집이 많았다. 윗말 사람들도 구경을 왔다. 판관 댁 버선을 빨던 할멈이 죽은 일이라는 말이 윗말까지 돌았다. 높은 창으로 들어온 겨울 햇빛에 사람들 입김이 하얗게 떠올라 장부 등 위로 흩어졌다. 오래된 종이 냄새 위에 강 비린내와 빵 냄새와 쇳내가 섞였다. 아랫말이 통째로 올라온 냄새였다.

긴 탁자 너머에 판관 백온이 앉았다. 탁자 한쪽에 곰례네 죽은 문 귀퉁이 널판과 빈 물그릇과 숯 종이가 놓여 있었다. 탁자 앞 왼쪽에 권양이 섰다. 털 깃 겉옷을 입고 있었고, 등 뒤에 갑쇠와 탁 목수가 섰다. 오른쪽에 하리와 소을과 진과 목이 할아범이 섰다. 할아범은 이백 계단을 오르느라 기침을 스무 번은 했는데, 대청에 들어서자 서문 문지기 시절처럼 허리를 펴고 섰다. 소을은 빈손이었다. 방망이는 진의 공방 다락에 두고 왔다. 대청에 방망이를 들고 가면 사령이 뺏는다고 진이 말렸고, 소을은 뺏기느니 두고 가겠다고 했다. 하리는 패 없는 오른 손목을 왼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대청 문 옆에 무하가 굽은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미장이 양씨가 탁자 앞 한가운데로 나왔다. 터진 무릎에 무명을 감아 절룩거렸다. 봄이는 윗말 의원 집에서 열이 내려 죽을 먹었다고 했다. 양씨는 판관을 보고 권양을 보고 소을을 보았다. 그다음에는 바닥만 봤다.

“구월 스무엿새 밤이었습니다. 도급방 셈방에서 도급인 어른이 그러셨습니다. 봉 붙은 집 뒤 성벽에 문이 나면 밤에 바른다. 안에 누가 있든 바르라.”

대청이 술렁였다. 판관이 탁자를 손가락으로 한 번 두드리자 조용해졌다.

“빨래골목 곰례네 뒤에 문이 난 걸 누가 알렸소?”

“갑쇠가 알렸습니다. 봉 붙은 집 뒤를 밤마다 배로 돌았습니다. 그날 밤 배는 갑쇠가 댔습니다. 문 앞에 저 아이가 있었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갑쇠가 아이를 안아 입을 막았고, 제가 발랐습니다. 가장자리부터 발랐습니다. 가운데를 바를 때 안에서 세 번을 쳤습니다.”

양씨의 목소리가 거기서 한 번 끊겼다. 대청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또 세 번을 쳤습니다. 그 위에 한 겹을 더 발랐습니다. 그다음에는 안 들렸습니다.”

소을은 양씨를 보지 않고 탁자 위의 물그릇을 봤다. 소을의 손이 치마 옆에서 방망이를 쥐는 모양으로 쥐어졌는데, 손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섯 해 동안 제가 바른 문이 열하나입니다. 그중 안에 사람이 있는 줄 알고 바른 게 셋입니다. 둘은 이레 뒤에 살아서 나왔고, 하나가 곰례 할멈입니다.”

*

갑쇠가 앞으로 뛰어나왔다.

“흙손 든 건 저놈이오! 나는 배만 저었소!”

“그럼 손을 보이시오.”

판관이 말했다. 갑쇠가 오른손을 등 뒤로 감췄다. 사령 둘이 갑쇠의 팔을 붙잡아 앞으로 끌어냈다. 손등에 반달 모양으로 하얗게 아문 이빨 자국 여섯 개가 대청 사람들 앞에 드러났다. 맨 앞에 선 보리댁이 제 입을 손으로 막았다. 갑쇠는 손을 다시 감추려고 버둥거리다가, 제풀에 그 손으로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물린 거요! 내가 문 게 아니라 물린 거라고!”

누가 웃음을 참다가 기침을 했다. 판관은 웃지 않았다.

권양이 한 걸음 나섰다. 목소리가 여전히 낮고 부드러웠다.

“판관 어른. 저는 벽을 바르라 했지, 사람을 죽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난 문은 청이 벽으로 칩니다. 스무 해 전부터 그렇습니다. 그 방침을 적은 분이 여기 앉아 계시지요. 제 미장이는 청 방침대로 벽을 발랐습니다. 안에 사람이 있다고 벽이 문이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권양이 판관 쪽으로 조금 더 다가섰다.

“어른이 적은 방침을 제가 따랐습니다. 그렇다면 벌은 누가 받습니까? 방침을 따른 손입니까, 방침을 적은 손입니까?”

판관의 붓 쥔 손가락이 하얘졌다. 대청 문 옆에서 무하가 고개를 들었다. 판관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대청 사람들의 입김만 높은 창 쪽으로 떠올랐다.

“둘 다요.”

판관이 붓을 벼루에 내려놓았다. 먹물이 벼루 가장자리에 한 방울 튀었다.

“방침을 적은 손은 오늘 여기서 받소. 방침을 핑계로 안에서 두드리는 소리 위에 석회를 한 겹 더 얹게 한 손은 옥에서 받고. 청 방침 어디에도 안에 누가 있든 바르라는 말은 없소. 그 말은 도급인 입에서 나왔소.”

*

판관이 권양을 두고 하리를 불렀다.

“수문꾼. 곰례네에 봉이 붙은 까닭을 말하시오. 도급방은 곰례가 문세를 못 냈다고 했소. 누가 못 냈다고 불렀소?”

하리가 탁자 앞으로 나섰다. 소을이 옆에 있었다. 하리는 소을 쪽을 보지 않았다. 보면 말이 안 나올 것 같았다.

“제가 불렀습니다.”

대청이 조용해졌다.

“구월 스무사흘 저녁, 곰례네 문을 두드렸습니다. 둥 텅, 두 번 울었습니다. 지난달에는 둥, 한 번이었습니다. 저는 그 차이를 손으로 들었습니다. 누가 밤에 경첩을 갈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할멈은 한 냥을 쥐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 냥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홉 냥짜리 문에서 한 냥을 받으면 제 몫이 깎이니까요. 그날 밤 도급방 마당에서 빨래골목 곰례네, 아홉 냥 못 냈소, 하고 불렀습니다.”

하리의 손마디가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하리는 그 손을 탁자 위에 펴서 올려놓았다. 펴는 데 한참 걸렸다.

“성벽의 석회 자국 열하나 가운데 여덟 집을 제가 불렀습니다. 여덟 번 다 문이 한 번 울다가 두 번 울었습니다. 여덟 번 다 알았습니다. 저는 들은 대로 받는 사람이라고 제게 말했습니다.”

소을이 하리 옆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대청 사람들이 소을을 봤다. 소을은 판관을 보지 않고 하리를 봤다.

“그럼 이번엔 네가 불러.”

하리가 소을을 봤다.

“그날 밤 배에 탄 사람 이름. 문 뒤집은 사람 이름. 바르라고 한 사람 이름. 네 입으로 우리 집 불렀지? 그 입으로 불러. 여기서. 다 들리게.”

하리는 숨을 한 번 쉬었다. 대청 공기가 목에 차갑게 걸렸다. 그리고 도급방 마당에서 그믐마다 집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로, 한 사람씩 불렀다.

“탁 목수. 구월 스무이튿날 밤에 빨래골목 곰례네 경첩을 갈았소.”

탁 목수가 고개를 숙였다. 진이 옆에서 코로 숨을 내쉬더니 탁 목수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탁아, 그 경첩 못은 몇 치 박았냐?”

“한 치 덜.”

“그래서 이튿날 두드렸을 때 문이 덜 박힌 소리로 두 번 울었겠구먼. 그 소리를 하리가 들었고.”

탁 목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른 해 앙숙이 처음으로 같은 문 얘기를 했다.

“갑쇠. 스무엿새 밤에 배를 댔고, 소을의 입을 막았소.”

갑쇠가 이빨 자국 난 손을 또 머리에 올렸다.

“미장이 양씨. 그 문을 발랐소.”

양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끄덕였다.

“도급인 권양. 안에 누가 있든 바르라 했소.”

권양은 웃지 않았다. 처음으로 웃음이 없는 얼굴이었다. 주름이 적은 얼굴에 웃음이 빠지자 나이가 한꺼번에 드러났다.

소을은 하리가 다 부를 때까지 서 있다가, 다 부르자 탁자 위의 할머니 물그릇을 집어 품에 안았다. 판관이 막지 않았다. 소을은 그 물그릇을 안고 목이 할아범 옆으로 돌아가 섰다. 할아범이 소을의 어깨에 손을 얹었고, 소을은 그 손을 털어 내지 않았다.

*

판관이 붓을 들었다. 먹을 한 번 찍고, 붓끝을 벼루에 눕혔다가 다시 세웠다.

“권양은 곰례를 가둬 죽게 한 일로 옥에 둔다. 안에 사람이 있는 줄 알고 그 사람이 나갈 문을 덮게 한 일이다. 벽을 바른 일이 아니다. 갑쇠도 옥에 둔다. 미장이 양씨는 스스로 와서 말했으니 옥에 두되 딸이 나을 때까지는 의원 집에 둔다. 탁 목수는 뒤집은 문 하나에 아홉 냥씩, 문 주인에게 물어낸다.”

탁 목수가 셈을 하다가 입을 벌렸다. 열둘이었다.

“아랫말 문세 도급은 오늘로 거둔다. 아랫말 문은 다시 청이 두드린다.”

대청이 한꺼번에 술렁였다. 문계 사람들 사이에서 누가 먼저 소리를 질렀다. 보리댁이 옆 사람 어깨를 치며 울다 웃었고, 쇠메가 풀무 같은 목소리로 뭐라고 외쳤는데 너무 커서 무슨 말인지 아무도 못 알아들었다. 선창 짐꾼 삼 형제의 맏이는 계단 쪽으로 뛰어가 아래층 복도에 앉은 사람들에게 소식을 내려보냈다. 소리가 계단을 타고 한 층씩 내려가며 커졌다. 판관은 이번에는 탁자를 두드리지 않고 사람들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난 문.”

판관이 장부 벽을 돌아봤다. 스무 해 전 제가 적은 방침이 저 어딘가에 꽂혀 있었다.

“청 방침이 사람을 가두는 데 쓰였소. 그 방침을 적은 손이 거두오. 오늘부터 연 난 문은 청 셈에 든다. 달마다 아홉 냥. 아직 안 연 난 문은, 청이 벽으로 치지 않는다. 다만 청이 열어 주지도 않는다.”

권양이 사령에게 팔을 잡힌 채 판관을 봤다.

“판관 어른, 청이 셀 수 없는 문을 들이시는군요. 성벽에 문이 몇입니까? 지금 스물이지요. 성주부에 사만 이천 스물이라고 올리실 겁니까?”

판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권양이 끌려 나가다가 대청 문 옆에서 하리를 돌아봤다.

“하리. 문을 셀 수 없으면, 성주부는 성벽을 세네.”

*

사람들이 계단을 다 내려간 뒤, 판관이 서랍에서 새 쇠 패 하나를 꺼내 탁자에 놓았다. 가죽 고리가 아직 접힌 자국 그대로였다.

“청이 아랫말을 두드릴 손이 모자라오. 수문꾼, 다시 차시오.”

하리가 패를 집으려는데 대청 문 옆에서 무하가 걸어왔다. 무하가 품에서 패 하나를 꺼내 판관의 새 패 옆에 놓았다. 하리의 옛 패였다. 가죽 고리에 삼 년 치 손목 땀이 배어 까맸다.

“그건 새것이라 울림이 늦게 옵니다. 이게 낫습니다.”

판관이 무하를 오래 봤다. 스무 해 전 같은 대청에서 무하가 난 문을 벽으로 치자고 말하던 날을 판관도 기억하고 있을 터였다. 판관은 새 패를 서랍에 도로 넣었다.

하리가 옛 패를 오른 손목에 찼다. 손목뼈에 닿는 차가운 쇠가 삼 년 전과 같은 자리에 앉았다. 패를 잃은 열흘 동안 하얗게 눌려 있던 자국이 그 쇠 밑으로 도로 숨었다. 무하는 하리 손목을 한 번 내려다보고, 제 굽은 손을 겉옷 소매 안으로 감췄다. 하리는 대청 문을 세 번 쳤다. 둥, 한 번 낮게 울었다. 한 냥짜리 청 문이었다. 울림이 팔꿈치까지 올라왔고, 거기서 오래 떨었다.

“성주부에서 사람이 올 거요.”

판관이 붓을 씻으며 말했다.

“성벽에 문이 스물이라고 올려야 하니까. 그 사람은 문을 안 세오. 돌을 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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