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31자) · 하리 · 동짓달 초사흘

파루 전에

문세(門稅)를 받는 사람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동짓달 초사흘, 파루까지 한 식경쯤 남은 새벽이었다. 목이 할아범 뒷문 밖 강둑에 등롱 여섯이 늘어서 있었다. 권양의 선창패 다섯이 몽둥이를 들고 반원으로 섰고, 그 한가운데 청 사령 하나가 목판 방 한 장을 가슴에 대고 서 있었다. 사령의 붉은 두건이 새벽 강바람에 한쪽으로 날렸다.

방은 초하루에 물문 곁 벽에 붙었다. 판관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성벽에 난 문으로 드나드는 자는 성벽을 넘는 자다. 성벽을 넘는 자는 성문세 아홉 냥을 낸다. 초닷새 대청에서 다시 정할 때까지.

선창 품꾼들은 파루 전에 나가야 했다. 선창 일은 해 뜨기 전에 시작한다. 목이 할아범 부엌에는 그 품꾼들이 서른 넘게 서 있었다. 누구도 뒷문을 못 넘었다. 아홉 냥이면 품꾼 한 사람의 두 달 치 품삯이었다. 물문으로 돌아가면 한 푼이었지만, 물문은 파루가 울려야 열렸고 그러면 선창 일에 늦었다. 늦으면 그날 품은 없었다.

하리는 뒷문 앞에 서서 사령에게 말했다. 패 없는 오른 손목이 강바람에 시렸다.

“성문세는 성 밖 사람이 성 안에 살러 들어올 때 한 번 내는 돈이오. 아랫말 사람은 성 안 사람이오. 성 안 사람이 제 집 뒷문으로 제 강에 나가는데 무슨 성문세요?”

“방에 그렇게 적혀 있소.”

“방에 성 안 사람이 성 안에서 성문세를 낸다고 적혀 있소?”

사령이 방을 제 얼굴 앞으로 들어 다시 읽었다. 읽는 동안 입술이 움직였다. 그 옆에서 갑쇠가 몽둥이를 어깨에 걸치고 하품을 했다.

“수문꾼은 패도 없는 게 말은 많네.”

“패는 없어도 셈은 해요. 여기 서른이 오늘 선창에 못 가면 서른 사람 품이 날아가고, 그 품을 대신 채우는 건 권양 어른 창고 품꾼들이오. 권양 어른 창고 품은 하루 다섯 푼이 아니라 네 푼이고.”

부엌에서 누가 욕을 했다. 선창 짐꾼 삼 형제의 맏이였다. 맏이가 뒷문으로 한 걸음 나서자 선창패 하나가 몽둥이 끝으로 맏이 가슴을 밀었다. 맏이가 몽둥이를 잡았다. 갑쇠가 하리의 멱살을 잡아 성벽에 밀어붙였다. 뒤통수가 이끼 낀 돌에 닿아 차고 미끄러웠다. 갑쇠의 손등 반달 자국이 하리 턱 밑에 있었다.

그때 옆에서 널판 하나가 날아와 갑쇠의 팔과 하리 사이에 끼었다. 진이었다. 진은 공방에서 못 판 문짝 하나를 방패처럼 들고 서 있었다.

“잡을 거면 문짝을 잡아. 이건 팔 거라 흠 나면 안 되지만.”

갑쇠가 문짝을 밀었고, 진이 문짝째로 밀려서 강둑 진흙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문짝이 진 위로 덮였다. 문짝 밑에서 진의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흠 났다. 이거 두 냥짜리다.”

누가 웃었고, 누가 몽둥이를 휘둘렀고, 부엌 안의 서른이 한꺼번에 뒷문으로 밀려 나왔다.

*

그 소란 한가운데로 미장이 양씨가 뛰어왔다. 물문 쪽에서, 강둑 진흙에 두 번 넘어지면서 왔다. 서른여섯이라는데 얼굴이 쉰 같았다. 흙손 대신 빈손이었다. 양씨는 선창패를 밀치고 하리 앞에 무릎을 꿇었다.

“우리 봄이가 안에 있소.”

양씨 집은 쇠메골목 셋째 집이었다. 이번 달 권양이 양씨 품삯을 깎았다. 시월 스무닷새, 곰례네 배 얘기가 판관 대청에서 나온 뒤로 다섯 번 배를 늦게 댔다는 까닭이었다. 양씨는 문세를 못 냈고, 어젯밤 초저녁에 갑쇠가 양씨 집에 봉을 붙였다. 양씨는 그때 선창 석회 창고에서 석회를 개고 있었다. 여섯 살 봄이가 사흘째 열이 올라 있었다.

“벽을 두드렸는데 대답이 약하오. 처음엔 세 번 오더니, 아까는 한 번 왔소. 성벽 쪽을 다 봤는데 문이 없소. 우리 집 뒤에 문이 안 났소.”

양씨가 하리의 무릎을 붙잡았다. 손바닥에 석회 가루가 하얗게 말라붙어 갈라져 있었다.

“곰례 할멈네 문은 내가 발랐소. 알고 발랐소. 도급인 어른이 안에 누가 있든 바르라 했소. 벌은 초닷새에 받겠소. 봄이 문만 찾아 주시오.”

강둑이 조용해졌다. 몽둥이를 쥔 선창패도, 맏이도 손을 멈췄다. 소을이 목이 할아범 부엌 뒷문에서 걸어 나왔다. 품에 문계 끈 꾸러미를 안고 있었다. 새 달 문계가 어제부터 걷히기 시작해서 끈은 아직 두 가닥 남짓이었다. 소을이 양씨를 내려다봤다. 양씨는 소을 얼굴을 알았다. 눈을 들지 못했다.

하리는 셈을 했다. 봉 붙은 집 안의 아이는 열이 올랐다. 숨이 막힌 할아범은 바람 쪽으로 문이 났다. 불에 갇힌 돌이는 물 쪽으로 났다. 할멈은 소을 쪽으로 났다. 열 오른 아이가 가야 할 데는 강이 아니었다.

“의원이오. 윗말 의원 거리.”

하리가 일어섰다. 성벽 위 하늘이 동쪽부터 옅어지고 있었다. 파루가 울리면 열리기 전의 난 문은 벽으로 돌아간다. 윗말까지는 돌계단이 이백 개가 넘었다.

소을이 끈 꾸러미를 품에 고쳐 안고 먼저 뛰었다.

*

하리가 뛰어나가기 전에 목이 할아범이 부엌 문간에서 소리쳤다. 할아범은 걸상을 들어 뒷문 앞에 가로놓고 그 위에 올라앉았다.

“가게. 이 문은 내가 지키지. 서른 해를 서문에서 몽둥이 든 놈들 상대했어. 저놈들 몽둥이는 서문 것보다 가늘어.”

계단은 서리에 젖어 미끄러웠다. 하리가 앞에서 뛰고, 소을이 끈 꾸러미를 안고 뒤따르고, 양씨가 맨 뒤에서 넘어지며 따라왔다. 백 개째에서 하리 숨이 목구멍에 걸렸다. 폐가 서리를 삼킨 것처럼 차갑게 아팠고, 허벅지가 제 것 같지 않게 무거웠다. 백오십 개째에서 소을이 끈 꾸러미를 떨어뜨렸다. 쇠돈 몇 가닥이 계단 아래로 짤랑짤랑 굴렀다. 소을이 돌아서려는 걸 양씨가 제 몸으로 막고 굴러간 끈을 주워 왔다. 양씨 무릎이 터져 바지에 피가 배었다.

의원 거리는 윗말 동쪽 끝이었다. 문 앞마다 약초 말리는 채반이 걸려 있어서 새벽 공기에 감초와 쑥 냄새가 짙었다. 셋은 거리를 끝에서 끝까지 뛰었다. 세 번째 의원 집 마당 담에서 하리가 멈췄다.

담에 문이 서 있었다. 결이 세로로 선 널판 문이었고, 손잡이가 없었다. 문 아래로 흔들리지 않는 빛이 새어 나와 마당 돌바닥의 서리를 둥글게 녹이고 있었다. 문 안에서 한 번, 아주 작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하리는 종루 쪽 하늘을 봤다. 종루 지붕 끝이 벌써 검은색에서 잿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종지기가 줄을 잡으러 올라가는 데 한 식경이 채 안 걸린다. 양씨가 문에 달려들어 문짝을 손바닥으로 쳤다.

“봄아. 아버지다. 봄아.”

안에서 한 번이 더 왔다.

소을이 문 앞에 무릎을 꿇고 끈 꾸러미를 풀었다. 계단에서 끈 하나가 끊어져 쇠돈 몇 개가 빠져 있었다. 헤아려 보니 열다섯 푼, 한 냥 다섯 푼이었다. 아홉 냥에는 한참 모자랐다.

양씨가 제 허리춤을 뒤졌다. 석회 창고에서 받은 사흘 치 품삯 열닷 푼이 나왔다. 하리가 제 주머니를 털었다. 패를 잃은 뒤로 진 공방에서 대팻밥 쓸어 주고 받은 일곱 푼이었다. 아직 모자랐다.

마당 안채 문이 열리고 늙은 의원이 등잔을 들고 나왔다. 흰 수염에 잠옷 바람이었다. 의원은 제 담에 난 문과, 무릎 꿇은 셋과, 문턱에 늘어놓은 쇠돈을 차례로 봤다.

“스무 해 전에 서문 골목에서 이런 걸 봤지. 얼마 모자라나?”

“다섯 냥 세 푼이요.”

하리가 대답했다. 의원이 한숨을 쉬고 안채로 들어갔다가 돈주머니째 들고 나와 소을 무릎 앞에 던졌다.

“열 오른 아이면 내 마당으로 오는 게 맞지. 문값은 약값에 얹어 받겠소, 미장이.”

동쪽 하늘에서 종루 쪽으로 새벽빛이 번졌다. 소을이 문 앞에서 값을 불렀다.

“아홉 냥.”

소을은 곰례의 방망이를 두고 온 빈손으로 쇠돈을 문턱에 놓았다. 끈째 놓고 양씨의 열닷 푼을 놓았다. 하리의 일곱 푼을 놓고, 의원의 쇠돈을 셈해서 놓았다. 문틈이 한 개씩 삼켰다. 마지막 한 푼이 들어가자 종루에서 파루의 첫 종이 울렸다. 그 첫 울림과 함께 문이 마당 쪽으로 열렸다.

문 안은 쇠메골목 양씨네 방이었다. 윗말 의원 마당의 감초 냄새 사이로 아랫말 방의 공기가 훅 밀려 나왔다. 식은 화로의 재 냄새와 석회 자루 냄새, 그리고 사흘 동안 열에 들뜬 아이 몸에서 나는 시큼한 땀 냄새였다. 이백 계단 아래 방이 담 하나 너머에 붙어 있었다. 이불 위에 봄이가 모로 누워 있었다. 볼이 불덩이처럼 붉었고, 한 손이 벽 쪽으로 뻗어 주먹을 쥔 채 멈춰 있었다. 양씨가 문턱을 넘어 아이를 안아 들었다. 봄이가 눈을 반쯤 뜨고 아버지 목에 뜨거운 얼굴을 묻더니 작게 말했다. 아버지 손에서 흙 냄새 나. 양씨의 손은 석회 냄새였다. 봄이에게는 그게 흙 냄새였다. 의원이 아이 이마에 손을 대 보고는 소리를 질러 제자를 깨웠다. 찬물, 버드나무 껍질, 이불. 마당이 한꺼번에 시끄러워졌다.

양씨는 아이를 의원 제자 품에 넘기고 나서 마당 돌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소을은 빈 끈만 쥔 채 문턱에 앉아 있었다. 양씨가 소을을 봤다. 곰례의 셋째 밤 이후로 처음 소을의 얼굴을 바로 봤다.

“왜 냈소? 내가 네 할멈 문을 발랐는데.”

소을이 빈 끈을 손가락에 감았다.

“아저씨 발랐다고, 봄이가 우리 할머니처럼 되면 셈이 맞아요? 안 맞아. 그건 셈이 아니야.”

양씨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손바닥에 말라붙은 석회가 눈물에 풀려서 하얀 물이 손목으로 흘렀다.

“초닷새에 가겠소. 대청에. 누가 바르라 했는지, 누가 배를 댔는지, 누가 네 입을 막았는지, 다 말하겠소.”

*

해가 성벽 위로 오른 뒤 하리와 소을이 아랫말로 내려왔을 때, 목이 할아범 뒷문 앞 강둑에는 선창패가 없었다. 사령도 방을 말아 들고 가 버리고 없었다. 뒷문 앞에 무하가 서 있었다. 오른 손목에 패를 차고 있었다.

진이 문짝을 안고 뒷문 옆 걸상에 앉아 있다가 무슨 일인지 떠들었다. 파루가 울리자 무하가 와서 사령 앞에서 뒷문을 두드렸고 문이 둥 텅 울었다. 이 문은 어제 청 문세를 냈소. 청 셈에 든 문은 성문이 아니라 집 문이오. 청 문세 낸 문을 청 방으로 막으면 청이 청을 막는 거요. 사령은 그 말에 대꾸를 못 하고 방을 들고 판관에게 물으러 갔고, 선창패들은 사령이 가자 저희끼리 눈치를 보다가 따라갔다고 했다.

“그리고 갑쇠가 이 문짝 값 두 냥을 안 냈다.”

진이 흠 난 문짝을 두드렸다. 문짝 모서리에 몽둥이 자국이 움푹 파여 있었다.

그날 하루 아랫말에서 봉 붙은 집 네 곳에 더 문이 났고, 문계가 네 번 다 파루 전에 닿았다. 소을의 끈에 새 달 문계로 든 집이 예순여덟이 되었다. 성벽과 윗말 담에 연 문은 열넷이었다. 새로 연 다섯 문은 아직 울지 않았다. 다음 그믐에 무하가 굽은 손으로 한 번씩 두드려야 울 문들이었다.

물문 곁 도급방 삼 층 창에서 권양이 그 강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리가 올려다보자 권양은 창을 닫지 않고, 등롱 든 아이를 불러 창턱의 등잔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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