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75자) · 하리 · 동짓달 보름

성 밖에서 세 번

문세(門稅)를 받는 사람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동짓달 보름 아침, 강가에 첫 얼음이 얼었다. 빨래터 돌판 가장자리에 손톱만 한 얼음이 수놓은 테두리처럼 빙 둘러 붙었고, 아낙들이 방망이 자루로 그것을 톡톡 깨며 빨래를 시작했다. 깨진 얼음 조각이 물살에 실려 가며 햇빛에 한 번씩 번쩍였다. 목이 할아범 뒷문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이 입김을 뿜으며 줄을 섰다. 이제 그 줄에 밧줄도 몽둥이도 없었다. 뒷문 옆 걸상에 할아범이 앉아 있었고, 요강은 부엌 구석으로 옮겨져 있었다. 삼 형제의 맏이가 요강을 밟은 사람이 여섯이 되자 문계가 돈을 모아 옮겼다.

아랫말 문은 다시 청이 두드렸다. 하리는 옛 패를 차고 소금골목부터 돌았고, 무하는 빨래골목부터 돌았고, 청 견습이 된 동이는 하리 뒤를 따라다니며 문을 너무 세게 쳤다. 동이가 치면 한 냥짜리 문이 둥, 하고 울다가 한 번 더 둥, 하고 메아리를 달았다. 보리댁은 그걸 듣고 제 문이 두 냥이 되는 줄 알고 밀대를 들고 나왔다.

성벽과 윗말 담에 연 문은 스물이었다. 문계에 든 집은 백셋이었다. 도급이 거두어졌는데도 문계는 흩어지지 않았다. 문 스물을 지키려면 그믐마다 백여든 냥이 들었고, 그 돈을 소을이 끈에 꿰어 세었다. 진의 공방 다락에는 끈 꾸러미가 쌓였고, 소을은 대팻밥 대신 쇠돈 냄새가 머리카락에 밴다고 투덜거렸다.

*

그날 한낮에 성주부 사람들이 강둑에 왔다. 배 두 척에 석공 열둘과 미장이 여섯, 쇠뇌를 멘 성주부 병사 스물이 탔다. 맨 앞에서 내린 사내가 성벽 감독관 노현이었다. 마흔넷에 어깨가 넓었고, 오른쪽 귀가 반쯤 잘려 있었다. 가죽 덧옷에 성주부 쇠 표를 달았다. 노현은 강둑에 서서 성벽을 올려다보지 않고 돌을 셌다. 물문에서 빨래터 끝까지 성벽을 따라 걸으면서, 오른손 검지로 돌 틈을 하나씩 짚어 나갔다. 난 문 앞에 이를 때마다 발을 멈추고 문짝을 손바닥으로 밀어 보았다. 손바닥 밑에서 문은 벽이 아니라 문으로 버텼다. 노현은 그때마다 제 가죽 덧옷 소매에 숯으로 금을 하나씩 그었다.

스무 번째 문 앞에서 노현이 멈췄다. 목이 할아범 뒷문이었다. 하리가 그 문 앞에 서 있었다.

“자네가 이 문들을 열었다는 수문꾼이오?”

“열었고, 두드렸고, 받았습니다. 청 문세를 낸 문들이에요.”

“청 문세는 청 일이고, 성벽은 성주부 일이오.”

노현이 소매에 그은 숯 금 스물을 손가락으로 짚어 보였다.

“성벽에 문이 스물이면 그건 성이 아니라 체요. 물이 새듯 사람이 새지.”

“이 문으로 아랫말 사람이 강에 나가요. 문 뒤에 사람이 살아요.”

“성벽 뒤에는 삼문 사람 팔만이 살지.”

노현이 강 위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강이 굽어 도는 저 멀리, 물안개 속에 배들이 떠 있었다. 열 척이 넘었다. 뗏목도 섞여 있었다.

“여숙이오. 열흘 전에 여숙 고을 창고가 털렸소. 흉년에 도적 떼까지 들었지. 저 배들이 서문으로 내려오고 있소. 성주부는 서문을 닫았고. 그믐이 지나면 성벽에 난 문은 다 막소. 석회가 안 먹는 문 앞에는 돌을 쌓을 거요. 문짝은 그대로 두고, 그 앞에 벽을 하나 더 세우는 거지.”

하리 등 뒤에서 목이 할아범이 기침을 했다. 줄 서 있던 빨래꾼들이 광주리를 내려놓았다. 소을이 공방 쪽에서 끈 꾸러미를 안고 뛰어왔다.

무하가 빨래골목 쪽에서 걸어와 하리 옆에 섰다. 노현이 무하의 굽은 손과 패를 보았다.

“청 수문꾼이 둘이나 나오셨군.”

“스무 해 전 겨울, 서문 성벽에 난 문 하나로 여숙 사람이 들어왔소. 그해 아랫말 예순이 죽었소. 내 아내도.”

무하가 먼저 그 말을 했다. 하리가 무하를 돌아봤다. 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영감은 내 편이오.”

“그런데 이 스물은 안에서 난 문이오. 갇힌 사람이 나가려고 난 문이오. 밖에서 들어오려고 난 문은 하나도 없소.”

“오늘은 그렇지.”

노현은 소매의 숯 금을 털지 않고 배로 돌아갔다. 석공들이 강둑에 돌을 부리기 시작했다. 돌이 돌에 부딪는 소리가 성벽을 타고 아랫말 방 안까지 들어갔다. 목이 할아범이 뒷문 안쪽에서 그 소리를 듣고 한참 서 있다가 걸상을 도로 뒷문 옆에 내려놓고 앉았다.

“서른 해 서문을 지켰는데, 그때도 저 소리가 제일 싫었지. 문 막는 소리. 돌이 돌 위에 앉는 소리는 한번 나면 안 그쳐.”

소을이 끈 꾸러미를 안은 채 할아범 걸상 곁에 쪼그려 앉았다. 둘은 석공들이 돌을 다 부릴 때까지 그 소리를 들었다.

*

인경이 울리고 한참 지났다. 하리는 청 수문꾼 밤 순찰을 돌았다. 도급이 거두어진 뒤로 청은 밤마다 봉 붙은 집 뒤를 한 번씩 돌게 했다. 난 문이 나면 덮지 말고 알리라고 했다. 판관이 스무 해 만에 바꾼 방침이었다. 하리는 목이 할아범 뒷문으로 강둑에 나가 등롱을 들고 걸었다. 강물 가장자리가 밤새 더 얼어서 빨래 돌판에 하얀 테가 둘렸다. 발밑 진흙이 얼어 신발 밑창이 딱딱 소리를 냈다.

서문 쪽 강물 위에 배 불빛이 떠 있었다. 여숙 배들이 서문 아래 강둑에 코를 대고 줄지어 묶여 있었다. 불을 크게 못 피운 배들이라 불빛이 작고 낮았다. 그 사이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났고, 누가 그 아이를 달래는 소리가 났다. 강 아래 천막 마을 불빛이 그 너머로 흐릿하게 보였다. 하리는 셋째 천막 불을 찾았고, 이번에는 찾았다. 어머니 천막은 여숙 배들과 백 걸음 거리였다.

빨래터 끝, 곰례네 하얀 석회 자국 곁을 지날 때였다. 성벽에서 소리가 났다.

둥, 둥, 둥.

하리는 등롱을 들어 올렸다. 석회 자국 바로 옆, 이끼 낀 성벽 바깥 면에 문이 서 있었다. 결이 세로로 선 널판 문이었고, 손잡이가 없었다. 그 문 앞 얼어붙은 진흙에 아이 하나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예닐곱 살쯤 되는 여자아이였다. 여숙 사람들이 입는 누비 두건을 썼고, 두건 끝에 서리가 앉아 하얗게 굳어 있었다. 아이가 작은 주먹으로 문을 세 번 쳤다.

문틈으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문 안에서가 아니었다. 빛은 문 너머, 성 안쪽에서 새어 나왔다. 아이는 성 밖에 있었다. 성 밖에서 난 문이었다. 성 안 어딘가에 이 아이가 꼭 가야 할 사람이 있었다.

아이가 하리를 올려다봤는데 입술이 파랬다.

“엄마가 먼저 들어갔어요. 서문으로. 아홉 냥이 한 사람 것밖에 없어서요. 나는 다음 배로 오라고 했는데, 문을 닫았어요.”

하리는 패 찬 손으로 문을 세 번 쳤다. 문은 울지 않았다. 값이 없는 문이었다.

뒤에서 발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소을이 끈 꾸러미를 안고 서 있었다. 목이 할아범 뒷문으로 나와 따라온 모양이었다. 그믐에 청에 낼 백여든 냥 가운데 벌써 걷힌 것들이었다.

소을이 아이를 보고, 문을 보고, 문 옆의 하얀 석회 자국을 봤다.

“할머니 문은 나 있는 데로 났어.”

소을이 끈 아홉 가닥을 풀어 두 손에 받쳐 들었는데 손이 떨렸다. 추워서인지 다른 까닭인지 하리는 묻지 않았다.

“이 애 문도 누구 있는 데로 났겠지.”

“그걸 내면 그믐에 문 하나가 벽이 돼.”

“그럼 그믐까지 아홉 냥 더 모으면 되잖아. 문계가 백셋이야. 한 집에 한 푼씩만 더 내면 돼. 셈해 봐.”

하리는 셈을 했다. 백셋 푼은 열 냥 세 푼이었다. 한 냥 세 푼이 남았다.

강둑 위쪽에서 등롱 불빛 여럿이 흔들리며 내려왔다. 돌 부딪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노현의 목소리가 먼저 닿았다.

“수문꾼, 그 문은 밖에서 난 문이오.”

노현이 병사 넷과 석공 둘을 데리고 다가와 섰다. 병사들이 쇠뇌를 어깨에서 내렸다. 노현이 아이를 보고, 문을 보고, 소을 손의 쇠돈 끈을 봤다.

“그 돈을 문턱에 놓으면, 삼문이 성 밖 사람을 셈에 넣는 거요. 오늘은 한 아이지. 내일은 저 배 열 척이오. 모레는 여숙 전부고.”

무하가 목이 할아범 뒷문에서 걸어 나왔다. 순찰을 돌다가 불빛을 보고 왔다고 했다. 무하는 문 앞의 아이를 보자마자 걸음을 멈췄다. 누비 두건과 거기 앉은 서리와 작은 주먹을 오래 보았다. 하리는 무하가 거기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몰랐다. 다만 굽은 손가락 하나가 소매 끝에서 한 번 떨리는 것은 보았다. 무하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고 하리를 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리지도 않았고, 하라고도 하지 않았다. 굽은 손을 겉옷 소매 밖으로 꺼내 가만히 내려뜨렸다.

하리는 소을 손에서 끈 아홉 가닥을 받았다. 받아서 무게를 쟀다. 목이 할아범이 서문 앞에서 사흘 잔 아이에게 준 무게였고, 하리가 목이 할아범의 뒷문에 낸 무게였다. 소을이 곰례 할멈에게 내지 못한 무게였다.

하리가 문 앞에 쪼그려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이름이 뭐야?”

“달래요.”

“달래야, 엄마가 이 안에 있어?”

“몰라요. 그냥, 여기를 치면 엄마가 대답할 것 같았어요.”

하리는 값을 불렀다.

“아홉 냥.”

첫 가닥을 문턱에 놓자 문틈이 목구멍 소리를 내며 삼켰다. 노현이 한 걸음 다가섰다가 멈췄다. 병사 하나가 쇠뇌를 반쯤 들었다가, 노현이 손을 들자 내렸다.

둘째 가닥과 셋째 가닥이 들어갔다. 다섯째 가닥에서 하리 손이 한 번 떨렸고, 이번에는 동이 대신 소을이 그 손을 받쳤다. 여덟째 가닥이 들어갔다. 마지막 한 가닥을 놓기 전에 하리는 노현을 돌아봤다.

“감독관 어른, 이 문 뒤에 누가 있는지 저도 몰라요. 그런데 이 애가 세 번 쳤어요. 삼문에서 세 번 치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발랐다가 사람이 죽었어요. 그 할멈 문이 바로 이 옆에 있어요.”

노현이 하얀 석회 자국을 봤다. 소매의 숯 금 스무 개를 봤다.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하리가 마지막 가닥을 놓았고, 문이 그것까지 삼켰다.

문이 바깥으로 열렸다. 성 안쪽에서 등잔 빛이 쏟아져 나왔다. 문 너머는 윗말 어느 집 부엌이었다. 화덕 앞에 여숙 두건을 쓴 여자가 부지깽이를 든 채 이쪽을 돌아보고 서 있었다. 서문으로 들어와 그 집에 부엌일을 얻은 모양이었다. 여자가 부지깽이를 떨어뜨렸다. 달래가 문턱을 넘어 뛰어 들어갔다. 둘이 서로를 붙잡는 소리가 강둑까지 들렸다.

하리는 허리에서 끌을 뽑아 새 문 설주에 눈금 하나를 팠다. 결이 곱고 단단했다. 삼문의 문은 사만 이천 스물하나가 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처음으로 성 밖에서 난 문이었다.

노현이 소매에 숯으로 금 하나를 더 그었다.

“스물하나.”

석공 둘이 돌을 안은 채 노현의 얼굴만 쳐다봤다. 노현은 문 앞에 돌을 부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강 위쪽 서문 아래를 바라봤다. 하리도 그쪽을 봤다.

여숙 배들이 묶인 서문 아래 성벽에서 소리가 나고 있었다. 한 군데가 아니었다. 둥, 둥, 둥. 조금 떨어진 데서 또 둥, 둥, 둥. 얼어붙은 강물 소리 위로, 성 밖 여기저기서 작은 주먹들이 성벽을 세 번씩 두드리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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