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18자) · 무하 · 시월 그믐
굽은 손
문세(門稅)를 받는 사람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무하는 파루가 울리기 전에 깼다. 서른 해 동안 그랬다. 도급방 뒤채 방은 창이 좁아서 새벽빛이 늦게 들었고, 어둠 속에서 무하는 제일 먼저 손을 폈다. 손가락은 밤새 굽은 쪽으로 더 굽어 있었다. 검지와 가운뎃손가락 둘째 마디가 새끼손가락 쪽으로 누웠고, 약지는 펴려고 하면 마디에서 모래 씹는 소리가 났다. 서른 해 동안 하루 백 번씩 문을 친 손이었다. 무하는 화로에 올려 둔 물 대야에 손을 담그고, 물이 식을 때까지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접었다. 손가락마다 따로 아팠다. 아픈 순서를 무하는 외우고 있었다.
탁자 위에 쇠 패 둘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하나는 무하의 패였고, 고리의 가죽이 서른 해 손목 땀에 삭아서 세 번 갈았다. 다른 하나는 하리의 패였는데 고리 가죽이 아직 뻣뻣했다. 무하는 젖은 손으로 하리의 패를 집어 한참 무게를 쟀다. 청에서 처음 패를 받던 날, 이것보다 무겁다고 느꼈다. 그때는 패가 무거웠고 지금은 손이 무거웠다.
시월 스무아흐레, 그믐 전날이었다.
*
셈방에서 권양이 기다리고 있었다. 탁자 위에 아랫말 약도가 펼쳐져 있었다. 소금골목, 빨래골목, 쇠메골목, 선창. 성벽 선을 따라 붉은 점이 아홉 개 찍혀 있었다. 이레 사이에 봉 붙은 집이 여섯 더 늘었고, 그 가운데 다섯 집에서 문이 났고, 다섯 번 다 문계 끈에서 아홉 냥이 나갔다. 미장이 배는 다섯 번 다 늦었다. 목이 할아범 뒷문으로 나가면 강둑까지 백 걸음이었고, 배로 가면 물문을 돌아 오백 걸음이었다.
“내일이 그믐이네. 난 문 아홉이면 여든한 냥이지.”
권양이 붉은 점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었다.
“그런데 물문이 한 달에 얼마 벌었는지 아나? 지난달 이백십 냥. 이번 달 서른한 냥. 강둑 밧줄은 소을이란 계집이 끊어 먹었고. 여든한 냥 받자고 백팔십 냥을 버릴 수는 없지 않나?”
“그러면 어쩌시려고요?”
“문계가 내일 돈을 들고 올 걸세. 받지 말게.”
무하가 권양을 봤다. 권양은 약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내민 돈을 수문꾼이 안 받으면, 그 문은 못 낸 문이지. 초닷새가 지나면 도로 벽이 되고, 다시는 안 나. 초닷새는 판관이 곰례 일을 다시 듣는 날이고. 그날 아침 아랫말에 난 문이 하나도 없으면, 판관은 무엇을 두고 난 문 얘기를 듣겠나?”
무하는 굽은 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문이 두 번 울면 아홉 냥이오. 내민 아홉 냥을 안 받는 건 수문꾼 일이 아니오.”
“자네 일은 내가 정하네. 다섯 해 전부터 그랬어. 그리고 자네가 못 하겠으면 할 사람은 있어. 탁 목수 조카가 열아홉인데 손목이 굵더군. 패만 채우면 문은 누가 쳐도 우네.”
“울림은 청이 정하오.”
권양이 처음으로 약도에서 눈을 들었다. 웃음은 그대로였는데 목소리가 한 치 낮아졌다.
“무하, 자네 손은 내 돈으로 굽었네. 청이 수문꾼을 넷으로 줄였을 때 자네를 데려온 게 나야. 청이 자네 급료를 못 줄 때 내가 줬지.”
“내 손은 문이 굽혔소.”
무하는 셈방을 나왔다. 셈방 문이 등 뒤에서 둥, 한 번 낮게 울었다. 무하가 그 문을 다섯 해 동안 한 번도 뒤집히게 두지 않았다는 것을 권양은 몰랐다.
*
스무 해 전 겨울에도 문이 났다. 서문 문루 곁, 성벽 바깥 면이었다.
그해 강 위 여숙 고을에 역병이 돌았다. 여숙 사람들이 배와 걸음으로 삼문까지 내려왔고, 성주부는 서문을 닫았다. 성문세 아홉 냥을 내겠다고 해도 안 열었다. 여숙 사람들은 서문 밖 강둑에 천막을 치고 성벽에 기대어 앓았다. 밤마다 성벽 안쪽까지 기침 소리가 넘어왔다.
닷새째 밤에 서문 곁 성벽에 문이 났다. 밖에서 난 문이었다. 성 밖에 갇힌 사람 가운데 누가 성 안에 꼭 들어가야 했던 모양이었다. 그 문 안쪽 얼굴은 서문 곁 문지기 초소 뒤 골목 벽에 났다. 그 골목에 무하의 집이 있었다.
무하는 그날 밤 청에서 숙직을 섰다. 집에는 아내 연이가 혼자 있었다. 연이는 골목 벽에서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셋, 셋, 셋. 아이 손 같은 작은 두드림이었다. 연이는 문 앞에 나가 한참 서 있다가 집으로 들어가 궤짝을 열었다. 무하가 삼 년 동안 모은 아홉 냥이 거기 있었다. 둘이 아이를 가지면 문 하나를 더 달자고 모은 돈이었다.
이튿날 아침 무하가 숙직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골목에 문이 열려 있었고, 여숙 사람 열한이 무하네 마당에서 연이가 끓인 죽을 먹고 있었다. 맨 앞에 앉은 아이가 연이 치맛자락을 쥐고 있었다. 그 아이가 두드렸다고 연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 겨울에 아랫말 사람 이백이 앓았고 예순이 죽었다. 연이는 섣달 스무날에 죽었다. 죽기 전날 밤 연이는 무하 손을 잡고, 그 아이는 살았다고 말했다. 무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있는 말이 무하에게 없었다.
연이는 말끝마다 웃음을 달았다. 쌀이 떨어졌다는 말도 웃으며 했고, 무하 손가락이 처음 굽기 시작했을 때도 웃으며 그 손을 제 무릎에 올려놓고 주물렀다. 문을 백 번 두드리는 손은 백 번 주물러야 한다고 했다. 무하는 연이가 죽고 나서 스무 해 동안 제 손을 제가 주물렀다. 아홉 번쯤 주무르면 연이가 하던 횟수를 잊어버렸다.
이듬해 봄, 무하는 청 대청에 올라가 난 문은 벽으로 치자고 말했다. 성벽에 난 문은 성벽이 아니고, 성벽이 아니면 성이 아니라고. 그 말을 판관 백온이 받아 적었고, 그해부터 청은 석회를 샀다. 첫 석회 통을 서문 골목 벽 앞에 내려놓은 것도 무하였다. 석회를 개는 물에서 매운 김이 올라와 눈이 따가웠다. 미장이가 연이가 연 문을 바르는 동안 무하는 그 김 때문에 눈물이 나는 거라고 제게 말했다.
무하는 스무 해 동안 그 말이 옳다고 믿었다. 옳다고 믿으면 연이가 연 문이 틀린 문이 되었다. 틀린 문이면 연이는 틀려서 죽은 사람이 되었다. 무하는 그 셈을 스무 해 동안 끝까지 해 본 적이 없었다.
*
그믐 아침, 무하는 목이 할아범 집 부엌에 들어섰다. 부엌에 마흔 집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부엌에 다 못 들어온 사람들이 앞문 밖 소금골목까지 줄을 섰다. 줄 맨 앞, 뒷문 옆 걸상에 소을이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삼끈 꾸러미가 수북했다. 푼을 열 개씩 꿴 끈이 여든한 가닥이었다. 소을은 무하를 보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리는 어디 있냐?”
“패 없는 수문꾼은 돈을 못 받는다며. 밖에 있어. 너무 보고 싶어 해서 쫓아냈어.”
부엌 한쪽에서 보리댁이 식은 빵을 뜯어 줄 선 사람들에게 돌리고 있었다. 무하에게도 한 쪽을 내밀었다.
“수문 우두머리 양반, 이거 드시고 셈 틀리지 마세요. 배고프면 푼이 냥으로 보이고 냥이 푼으로 보여요.”
“빵 먹고 셈 틀리면요?”
“그럼 빵을 더 드려야지.”
무하가 빵을 받아 들고 어정쩡하게 서 있자 줄 선 사람 몇이 킥킥거렸다. 뒷문 밖 강둑에 하리가 서 있었다. 진과 동이가 그 곁에 있었다. 하리는 무하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가, 무하 오른 손목의 패를 보고는 고개를 들었다.
소을이 끈 아홉 가닥을 두 손에 받쳐 들었다.
“목이 할아범 문 값. 아홉 냥. 셈해 봐. 하리한테 배웠으니까 틀림없어.”
무하는 받지 말라는 권양의 말을 생각했다. 초닷새를 생각했다. 연이가 궤짝에서 아홉 냥을 꺼내던 손을 생각했다. 그 손을 무하는 본 적이 없었다. 본 적이 없는데 스무 해 동안 눈을 감으면 그 손이 보였다.
무하가 끈 아홉 가닥을 받았다. 받아서 무게를 쟀다. 굽은 손가락 사이로 쇠돈 모서리가 하나하나 박혔다. 그리고 뒷문 앞으로 가서 문 가슴을 찾았다. 문설주에서 한 뼘 안쪽. 무하는 패 찬 손으로 세 번 쳤다.
둥 텅.
난 문이 처음으로 울었다. 무하의 팔꿈치까지 울림이 올라와서 한참 떨었다. 스무 해 전 연이가 연 문도 이렇게 울었을 것이다. 무하는 그 울림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청이 셈에 넣지 않는 문은 두드리지 않았으니까. 부엌에 있던 사람들이 숨을 멈췄다. 목이 할아범이 걸상에서 일어섰다. 강둑의 하리가 입을 벌렸고, 진이 하리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무하는 뒷문 너머 하리를 봤다. 삼 년 전 처음 문을 가르칠 때, 하리가 한 냥짜리 문을 세 번 치고 울림이 팔꿈치까지 올라왔다며 소리를 지르던 얼굴이 거기 있었다.
무하는 허리에서 끌을 뽑아 문설주 하리의 눈금 옆에 눈금 하나를 팠다. 두 번째 눈금이었다. 그걸로 그 문은 청 셈에 들었다.
소을이 다음 아홉 가닥을 들어 올렸다.
“쇠메 대장간 문.”
*
무하는 그날 해가 질 때까지 아홉 문을 다 돌았다. 소을이 끈 꾸러미를 들고 따라왔다. 아홉 문이 다 두 번씩 울었다. 쇠메 대장간 문은 울릴 때 안에서 돌이가 풀무를 한 번 눌러서 대답했고, 열 오른 아이가 나왔던 문 앞에서는 아이 어미가 무하 손을 잡고 한참 놓지 않았다. 다섯째 문은 빨래골목 끝 과부네였다. 과부는 문설주의 새 눈금을 손가락으로 한참 쓸더니, 영감이 죽고 나서 이 집에 새로 생긴 것은 이 문 하나뿐이라고 했다. 봉 붙은 이레 동안 난 문으로 나가 강물을 떠다 먹은 사람이 그 과부였다. 여섯째 문에서 무하의 약지가 마디에서 모래 소리를 냈다. 일곱째 문에서는 가운뎃손가락이 떨려서 두 번째 두드림이 약했다. 소을이 옆에서 물었다.
“할아버지, 손 아파요?”
“손은 원래 아프다.”
“그럼 제가 대신 두드릴까요?”
“네 손으로 치면 문이 그냥 나무 소리를 낸다.”
“그럼 제가 아프다고 소리라도 낼게요.”
소을이 입으로 아야, 하고 소리를 냈다. 무하는 웃지 않으려고 했는데 코에서 바람이 새 나왔다. 아홉째 문을 다 치고 나서 무하는 손을 겨드랑이에 끼웠다. 손가락 열 개가 따로따로 욱신거렸다.
*
해가 지고 무하는 셈방에 들어갔다. 권양이 탁자 앞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무하는 끈 여든한 가닥을 탁자 위에 쏟았다. 쇠돈이 약도 위로 흩어져 붉은 점 아홉 개를 덮었다. 셈방 서기 둘이 붓을 멈추고 이쪽을 봤다.
“문이 두 번 울었소. 아홉 냥씩 냈소. 여든한 냥, 청 도장 찍힌 문세요.”
권양은 흩어진 쇠돈을 한참 내려다봤다. 서기들 앞에서 청 문세를 도로 밀어낼 수는 없었다. 권양은 쇠돈 한 줌을 손바닥에 쥐어 보았다가 도로 쏟았다.
“잘 받았네. 초닷새 뒤에 보세.”
무하는 뒤채 방으로 돌아가 쇠 패 둘을 탁자에 다시 나란히 놓았다. 제 패는 오늘 아홉 번 울린 패였고, 하리 패는 오늘 한 번도 안 울린 패였다. 무하는 식은 물 대야에 손을 담갔다. 물이 차서 손가락이 조금 펴졌다. 그 손으로 무하는 탁자를 세 번 쳤다. 탁자는 울지 않았다. 무하는 그래도 한 번 더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