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171자) · 하리 · 시월 스무닷새

패 없는 손

문세(門稅)를 받는 사람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윗말로 올라가는 길은 돌계단이 이백 개가 넘었다. 아랫말에서 올려다보면 윗말 지붕들은 하늘에 붙어 있는 것 같았는데, 막상 계단을 다 오르고 나면 지붕보다 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윗말 문은 다 안쪽으로 여는 한 냥짜리였다. 참나무 문짝에 놋쇠 징을 박았고, 문설주 눈금이 촘촘하게 차올라 어떤 집은 설주 두 개를 다 채우고 문틀 위 가로대까지 눈금이 넘어가 있었다. 백 해를 한 냥으로 운 문들이었다. 뒤집힌 문은 한 짝도 없었다.

시월 스무닷새 아침, 하리와 소을과 진이 그 계단을 올랐다. 진은 등에 널판 한 조각을 지고 있었다. 곰례네 뒤 성벽에서 석회째 떼어 낸 죽은 문의 한 귀퉁이였다. 소을은 할멈의 빈 물그릇을 무명에 싸서 안았고, 하리는 둘둘 만 종이 한 장을 들었다. 곰례네 방 안쪽 벽의 손톱 자국 위에 종이를 대고 진이 숯으로 문질러 떴다. 종이 위에 손톱 자국이 하얀 줄로 떠 있었다. 하리는 계단을 오르는 내내 그 종이를 펴 보지 않았다.

“계단 하나에 한 푼씩 받으면 권양이 벌써 여기도 샀겠다.”

소을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진이 널판을 추스르며 받았다.

“윗말은 안 사. 윗말 사람들은 한 푼을 안 내고 세 냥을 내거든. 세 냥짜리한테는 한 푼을 못 받는다.”

*

문세청 청사는 종루 곁 삼 층 돌집이었다. 일 층 복도에서 셋은 한 식경을 기다렸다. 복도 끝 서기방에서 젊은 서기가 붓을 귀에 꽂은 채 나와 셋을 아래위로 훑었다.

“판관 어른은 점심 뒤에는 안 들으십니다.”

“지금은 점심 전인데요.”

“점심 전에는 점심 생각을 하십니다.”

진이 등에 진 널판을 복도 바닥에 쿵 내려놓았다. 석회 부스러기가 서기의 신발 코에 튀었다. 서기는 신발을 한 번 내려다보고, 널판을 한 번 보고, 붓을 귀에서 뽑아 들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곧 내려와서 올라오라고 했다. 복도 창밖으로 종루가 보였고, 종루 아래 돌마당에서 청 사령들이 붉은 두건을 벗어 들고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빨래골목에서 병사라고 말하던 사령도 거기 끼어 하품을 했다.

대청은 이 층에 있었다. 대청은 이 층에 있었다. 기둥 대신 돌 벽이 천장을 받쳤고, 벽 세 면을 장부가 채웠다. 누렇게 바랜 장부 등이 천장까지 빼곡히 꽂혀 있어서 대청 안 공기에서 오래된 종이와 먹 냄새가 났다. 높은 창으로 들어온 빛에 먼지가 떠서 천천히 돌았다. 대청 한가운데 긴 탁자 너머에 판관 백온이 앉아 있었다. 쉰다섯이었다. 얼굴이 길고 여위었으며, 붓을 쥔 손가락 셋에 먹물이 배어 손톱이 까맸다.

하리가 곰례 일을 말했다. 봉이 붙은 날, 셋째 밤, 성벽에 난 문, 배와 석회, 벽 안의 세 번 두드림, 엿새째. 진이 널판을 탁자에 올렸고, 소을이 물그릇을 올렸고, 하리가 숯 종이를 폈다. 판관은 널판의 석회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쓸어 보고, 드러난 회색 나무에 코를 가까이 댔다.

“삼문 나무가 아니오. 제가 삼십 년 만졌습니다.”

진이 말하자 판관이 코를 뗐다.

“알고 있소. 스무 해 전에 한 번 맡아 본 냄새요.”

판관은 그 말을 더 잇지 않고, 물그릇 바닥의 물때를 들여다보고, 숯 종이를 오래 봤다. 손톱 자국은 종이 아래쪽 한 뼘 높이에 몰려 있었다.

판관이 붓을 내려놓았다.

“난 문은 스무 해 전부터 청이 벽으로 치오. 벽에 난 것을 도로 벽으로 만드는 일은 청의 방침이오. 미장이가 벽을 바른 것은 방침을 따른 일이지 죄가 아니오.”

“안에 사람이 있는 줄 알고 발랐습니다. 안에서 두드리는데 발랐습니다.”

“안에 사람이 있는 줄 알았다는 걸 누가 보았소?”

소을이 탁자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제가요. 제가 그 문 앞에 있었어요. 할머니가 세 번 두드리는 걸 들었고, 갑쇠가 제 입을 막았어요. 그 사람 손등에 제 이빨 자국이 있어요.”

판관이 소을을 봤다. 오래 봤다. 그러고는 먹물 밴 손가락으로 탁자를 한 번 두드렸다.

“빨래꾼 아이의 말 하나와 도급방 봉꾼의 손등 하나로는 청이 사람을 못 묶소. 벽을 바른 손이 와서 말해야 하오. 누가 바르라 했고, 안에 사람이 있는 줄 누가 알았는지.”

“판관 어른은 그 벽 안에 누가 있었는지 아셨습니까?”

하리가 물었다. 판관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

“나는 아랫말 문을 하나도 모르오. 다섯 해 전에 아랫말을 도급 줬으니까. 청 수문꾼이 넷밖에 안 남았던 해였소. 아랫말 문 사백을 넷이 두드리면 한 달에 두 번도 못 돌아. 권양이 한 해 팔천 냥을 먼저 낸다고 했고, 그 돈으로 서문 성벽을 다시 쌓았소. 그해 가을 강이 넘쳤을 때 성벽이 버텼지.”

판관이 장부 벽을 턱으로 가리켰다.

“문세가 성벽을 쌓소. 삼문이 성인 까닭은 문을 셀 수 있어서요. 사만 이천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성주부가 성벽 돌 값을 내주는 거요. 그런데 수문꾼, 자네가 지금 아랫말에 문을 몇 개 열었소?”

“넷이요.”

“청 장부에 없는 문 넷이오. 셀 수 없는 문이 넷이면 나는 삼문 문을 사만 이천이라고 못 쓰오. 스물이 되면 나는 성주부에 무엇이라고 올리오?”

대청 문이 열렸다. 권양이 들어왔다. 털 깃 겉옷을 벗어 팔에 걸쳤고, 등 뒤에 무하가 따라 들어왔다. 무하는 대청 문 옆에 서서 굽은 손을 앞으로 모았다.

“판관 어른, 제 미장이는 청 방침대로 벽을 발랐습니다. 제 봉꾼은 강둑에서 소리 지르며 강물 쪽으로 가는 아이를 안아서 떼어 놓았고요. 밤 강은 위험하니까요.”

권양이 소을을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그 아이가 고맙다는 말 대신 제 봉꾼 손을 물었지요. 그 자국은 저도 봤습니다.”

소을의 턱이 떨렸다. 진이 소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권양은 판관 쪽으로 돌아서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 수문꾼 하나가 청 장부에 없는 문에 눈금을 파고 다닙니다. 청 도장 없는 눈금이지요. 청 패를 찬 손으로 그러니, 청 패를 욕보이는 일입니다. 패를 거두겠습니다.”

판관이 하리를 봤다. 하리 오른 손목의 쇠 패를 봤다. 판관은 한참 말이 없다가 붓을 들어 벼루에 눕혔다.

“패는 청의 것이지만 아랫말 수문꾼은 도급인이 부리오. 도급 문서에 그렇게 적혀 있소.”

하리는 손목에서 쇠 패를 풀었다. 삼 년 동안 손목뼈에 닿아 있던 자리가 하얗게 눌려 있었다. 탁자에 패를 내려놓자 쇠가 나무에 닿는 소리가 대청 장부 벽까지 울렸다. 권양이 패를 집어 무하에게 건넸다. 무하가 받았다. 굽은 손가락이 패를 쥐다가 한 번 미끄러졌다.

판관이 붓끝을 세웠다.

“곰례 일은 동짓달 초닷새에 다시 듣겠소. 벽을 바른 손을 데려오시오. 그 손이 안 오면 이 일은 병사로 닫소.”

그리고 판관은 붓끝으로 문 옆을 가리켰다.

“하나 더 알아 두시오, 수문꾼. 스무 해 전에 난 문을 벽으로 치자고 청에 처음 올린 사람이 저기 서 있소. 그때는 청 수문꾼이었지. 나는 그 말을 받아서 방침으로 적은 사람이오.”

무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

돌계단을 반쯤 내려왔을 때 뒤에서 누가 불렀다. 무하였다. 권양은 판관과 남아 있었다. 무하는 계단 서너 개 위에 서서 하리를 내려다봤다. 굽은 손에 하리의 패가 쥐여 있었다.

“이건 내가 맡아 둔다. 도급방 궤짝에 넣으면 권양이 탁 목수 조카한테 채울 거다.”

“맡아서 뭐 하시게요?”

“모르겠다. 맡아 두기만 한다.”

무하가 계단을 두 개 더 내려왔다.

“초닷새까지 벽을 바른 손을 데려오라고 했지. 그 손은 미장이 양이다. 양은 딸이 하나 있다. 여섯 살이다.”

무하는 그 말만 하고 도로 계단을 올라갔다. 소을이 무하의 등을 한참 노려보다가 하리에게 물었다.

“저 할아버지는 누구 편이야?”

“몰라. 저분도 모르는 것 같아.”

*

해가 기울 때 하리는 목이 할아범 부엌 뒷문 앞 강둑에 앉아 있었다. 뒷문을 맨손으로 세 번 쳤다. 문은 울지 않았다. 널판 치는 나무 소리만 났다. 다시 쳤다. 손마디만 아팠다. 삼 년 동안 문이 값을 말해 주었는데, 패를 풀자 문들이 전부 입을 다물었다. 강에서 올라온 저녁 안개가 바짓단을 적셨고, 빨래터 돌판에 누가 두고 간 방망이 하나가 물기를 머금고 까맣게 젖어 있었다.

뒷문이 열리고 목이 할아범이 기침을 하며 나왔다. 걸상을 들고 나와 하리 곁에 놓고 앉았다. 둘은 한참 강만 봤다. 강 건너 천막 마을에 저녁 불이 하나둘 켜졌는데, 천막 불은 성벽 등롱과 달리 바람에 천이 흔들릴 때마다 같이 흔들려서 멀리서 보면 물 위에 등불이 떠내려가는 것 같았다. 하리는 셋째 천막 불을 찾으려다 그만두었다. 거기서 저녁을 짓는 어머니가 오늘 아들이 패를 잃은 줄은 모를 것이다.

“자네 어머니가 저기 있다고 했나?”

“예. 강 아래 셋째 천막이요.”

“다섯 해 전, 서문 앞에서 사흘 잔 아이가 있었지.”

하리가 할아범을 돌아봤다. 할아범은 강 쪽만 보고 있었다.

“첫날은 성벽에 등을 붙이고 자더군. 둘째 날은 비가 와서 처마를 찾아 이백 걸음을 걸었어. 셋째 날은 아무 데서나 잤고. 그 아이가 성문 돌 틈에 손가락을 넣고 문세 값을 읽더라고. 아홉 냥. 입술로 여러 번 읽더군. 나흘째 아침에 내가 그 아이 몫을 냈네.”

하리의 손이 무릎 위에서 움츠러들었다. 누가 냈는지 물었을 때 문지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섯 해 동안 하리는 그 문지기 얼굴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 아홉 냥은 내가 뒷문 값으로 모으던 거였네. 이 집 뒷벽에 강 쪽으로 나가는 문을 하나 내고 싶었어. 목수를 부르고 청에 값을 내고. 서른 해 강 소리를 벽 너머로만 들었거든. 그런데 그 아이가 성문 값을 입술로 읽는 걸 보니까, 내 뒷문은 다음 해에 내도 되겠다 싶더군.”

할아범이 기침을 하고, 웃었다.

“다음 해에도 못 냈지. 그다음 해에도. 그러다 이번 그믐에 누가 내 뒷문을 아홉 냥에 사 주더라고.”

하리는 대답을 못 했다. 목이 막혀서 숨을 코로만 쉬었다. 코로 들어온 저녁 강 냄새가 차가웠다.

“제 아홉 냥은 어머니 성문세였어요.”

“그럼 우린 셈이 맞은 거군.”

할아범이 손가락을 꼽다가 멈췄다.

“아니다. 자네 어머니 몫이 비는구먼. 그건 내가 갚을 셈이 아니라 자네가 다시 모을 셈이야. 이번엔 천천히 모으게. 이 늙은이가 갚을 날까지 살아 있게.”

하리는 웃으려다 말고 고개를 숙였다. 할아범이 하리의 오른손을 끌어다 손목의 하얀 자국을 엄지로 한 번 문질렀다.

“패가 없어도 손은 남았지.”

할아범이 일어나서 뒷문 안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닫았다. 하리는 닫힌 문을 맨손으로 세 번 쳤다. 문은 울지 않았다. 대신 문 안쪽에서 할아범이 주먹으로 세 번을 쳐서 돌려주었다. 둥, 둥, 둥. 값은 없는 소리였다. 하리는 한 번 더 쳤고, 문 안에서 또 세 번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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