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417자)
무너진 시장
군견이 나보다 계급이 높다 · 진해솔
해령 구도심에 들어서자 공기에서 먼지 맛이 났다. 시멘트 가루와 깨진 간장 독과 젖은 생선 상자 냄새가 한데 엉켜 트럭 방수포 틈으로 밀려들었다. 11월 5일 아침 아홉 시, 지진이 나고 열 시간 가까이 지난 뒤였다. 도로 양쪽으로 기와가 쏟아진 집들이 이어졌고, 신호등이 꺼진 교차로에서 경찰이 손으로 차를 보냈다.
해령중앙시장은 그 끝에 있었다. 아니, 있던 자리였다. 사십 년 된 삼층 상가 건물이 가운데부터 주저앉아 있었다. 층과 층이 겹쳐 내려앉아서 삼층 건물이 일층 높이로 낮아졌고, 그 위로 철근이 엿가락처럼 휘어 솟아 있었다. 무너진 콘크리트 사이로 떡집 간판 반쪽, 빨간 고무 대야, 국숫발이 엉킨 채반이 보였다.
번개는 짐칸에서 내리자마자 코를 들었다. 콧구멍이 쉬지 않고 벌름거렸다.
현장 지휘 천막 앞에서 경북소방 특수구조대 대장 한기석 소방경이 다솜 일행을 맞았다. 쉰쯤이었고, 헬멧 아래 얼굴이 먼지로 회색이었다. 그는 번개의 조끼를 보았다. 훈련소에서 출동견 조끼마다 붙이는 이름표 옆에, 누가 장난으로 달았는지 상사 계급장 패치가 하나 붙어 있었다. 공두호의 짓이었다. 출발 전날 밤 다솜 몰래 꿰매 놓았다.
“이 개 상사요?”
“명예 상사입니다.”
“허.” 한기석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야, 상사님 오셨다!”
잔해 위에서 철근을 자르던 젊은 소방관 둘이 고개를 들었다. 하나가 장갑 낀 손을 헬멧 옆에 붙였다. 장난 경례였다. 다른 하나도 따라 했다. 번개는 그쪽을 보고 하품을 했다. 소방관 둘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대원들 이틀째 잠을 못 자서 웃을 일이 없었는데.” 한기석이 말했다. “상사님 덕에 웃네.”
피동팔이 서류 가방을 든 채 한기석에게 다가가 경례했다. “가람 군견훈련소 군수과장 피동팔 소령입니다. 이 개 물자 책임관입니다.”
“물자?” 한기석이 피동팔을 위아래로 보았다. “개를 물자라고 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
*
첫 수색은 오전 열 시였다. 다솜은 번개의 네 발에 보호 신발을 신겼다. 번개는 신발 신은 발을 하나씩 들었다 놓으며 어색해했다. 처음 몇 걸음은 말 탄 사람처럼 무릎을 높이 들고 걸었다. 지켜보던 소방관들이 또 웃었다.
다솜은 번개의 목줄을 풀었다. 목줄이 철근에 걸리면 위험했다.
“주크.”
번개가 잔해 위로 올라갔다. 무너진 콘크리트 판들은 기울어 있었고, 판과 판 사이에 틈이 시커멓게 벌어져 있었다. 번개는 왼쪽 뒷다리를 조심스럽게 디디며 판에서 판으로 건너갔다. 엉덩이가 좌우로 흔들렸다. 다솜은 잔해 가장자리에서 숨을 죽이고 그 엉덩이를 보았다. 염다인의 말이 귀에 울렸다. 엉덩이 떨리기 시작하면 무조건.
번개는 코를 틈에 박고 냄새를 맡았다. 틈에서 틈으로. 시장 건물의 동쪽 끝, 원래 분식집과 떡집이 붙어 있던 자리로 갔다. 그쪽에서는 소방관 셋이 무너진 슬래브 밑에 생긴 빈 공간으로 들어가는 길을 내려고 유압 절단기로 철근을 자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절단기 날이 철근에 닿기 직전이었다.
번개가 그 앞에서 멈췄다. 앉지 않았다. 사람 냄새를 찾았을 때처럼 앉아서 기다리지 않았다. 대신 뒷걸음질을 쳤다. 한 걸음, 두 걸음. 귀를 뒤로 눕히고, 꼬리를 다리 사이로 말고, 절단기 쪽을 보며 뒤로 물러났다.
다솜의 머릿속에서 도민철의 목소리가 울렸다. 계단참에서 들은 박람회장 창고 이야기였다. 번개가 앉지 않고 뒷걸음질 쳤다고. 다섯 해 동안 처음 본 동작이었다고.
“멈추세요!”
다솜이 소리쳤다. 소방관 셋이 돌아보았다.
“자르지 마세요! 거기서 불꽃 내지 마세요! 번개가 뒷걸음질 쳤어요!”
소방관 하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한기석을 보았다. 한기석이 무전기를 들었다. “작업 중지. 가스 측정기 가져와.”
가스 측정기를 든 대원이 슬래브 틈에 측정기 끝을 넣었다. 삼 초 뒤 측정기에서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렸다. 대원의 얼굴이 하얘졌다.
“대장님, 가스 농도 높습니다. 폭발 하한 근처예요.”
틈 아래 분식집 자리에서 짓눌린 가스통이 샜다. 빈 공간에 가스가 고여 있었다. 절단기 날이 철근에 닿는 순간 튀는 불꽃 하나면 충분했다. 소방관 셋은 그 틈 바로 위에 서 있었다.
현장이 조용해졌다. 가스 차단 팀이 뛰어갔다. 소방관 셋이 잔해에서 내려오며 번개를 돌아보았다. 아까 장난 경례를 했던 젊은 소방관이 이번에는 손을 헬멧 옆에 천천히 붙였다. 장난이 아니었다.
번개는 다솜에게 돌아왔다. 다솜은 번개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번개의 털에서 시멘트 가루가 풀썩 일었다.
“브라프. 브라프, 상사님.”
다솜은 배낭에서 테니스공을 꺼내 번개의 입에 물려 주었다. 번개는 공을 문 채 꼬리를 흔들었다.
*
두 번째 수색에서 번개가 미끄러졌다. 기울어진 콘크리트 판 위에서 왼쪽 뒷다리가 버티지 못하고 미끄러지며, 판 모서리에 삐져나온 유리 조각에 앞발이 쓸렸다. 번개가 짧게 깨갱 소리를 냈다. 보호 신발 하나가 찢어져 있었다. 신발을 벗기자 발바닥 볼록살 한쪽이 베여 피가 배어 나왔다.
다솜이 소독약을 꺼내는 동안 피동팔이 잔해 위로 올라왔다. 방한 점퍼에 먼지가 하얗게 앉아 있었다. 그는 번개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철수.”
“베인 겁니다. 깊지 않습니다. 소독하고 붕대 감고 사십 분 쉬면 됩니다.”
“철수라고 했어. 그건 내가 정해.” 피동팔이 휴대전화를 꺼내 번개의 발바닥을 찍었다. 찰칵 소리가 났다. “발바닥 열상. 이제 그만해. 관절에 진통제, 발에 붕대, 잔해 위에서 미끄러지는 거 다 봤어. 다음엔 뼈야.”
다솜은 붕대를 감던 손을 멈추고 일어섰다. 잔해 위라 발밑이 기울었다. 둘의 눈높이가 거의 같았다.
“지금 사진 찍으신 거, 세진에 보내실 겁니까? 흠집 났다고요?”
“문 이병.”
“번개가 방금 소방관 세 명 살렸습니다. 소령님 계산기에 그건 얼마로 찍힙니까?”
“그래서 그만하라는 거야!” 피동팔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잔해 아래 소방관들이 돌아보았다. “한 건 했잖아. 공 세웠잖아. 이제 다치기 전에 내려가. 왜 꼭 다칠 때까지 해야 돼?”
다솜은 그 말을 듣고 잠깐 멈췄다. 피동팔의 목소리에 숫자가 없었다. 처음이었다.
“아직 사람이 묻혀 있어서요.” 다솜이 말했다. “여기 아직 스물두 명이 안 나왔습니다.”
한기석이 잔해 아래에서 올라왔다. 그는 피동팔과 다솜을 번갈아 보았다.
“군 개는 군이 정하쇼. 나는 민간이니까.” 그가 말했다. “근데 소령님, 저 개가 아까 내 대원 셋을 살렸소. 해 지기 전에 한 번만 더 돌려 주쇼. 동쪽 끝은 우리 열 감지 카메라랑 음향 탐지기로 다 훑었는데, 사람 코로는 아직 못 봤소. 개 코로는 안 봤고.”
피동팔은 한기석을 보았다. 번개의 붕대 감긴 앞발을 보았다. 오래 말이 없었다.
“한 번.” 피동팔이 말했다. “해 지기 전에 한 번. 이십 분. 엉덩이 떨리면 내가 직접 내려.”
“예.”
*
임시 대피소는 시장 옆 초등학교 체육관이었다. 사십 분 동안 다솜은 체육관 구석 매트 위에 번개를 눕히고 엉덩이 근육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번개는 눈을 감고 다솜의 손에 엉덩이를 맡겼다.
자원봉사 천막에서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왔다. 손에 은박 쟁반을 들고 있었다. 쟁반 위에 김이 오르는 삶은 소고기 한 덩이가 놓여 있었다.
“이게 그 가스 찾은 개여? 아이고, 장하다. 이거 먹어라. 간 안 했다.”
할머니는 소고기를 손으로 찢어 번개 입에 넣어 주었다. 번개는 붕대 감은 발을 할머니 무릎에 얹고 받아먹었다. 다솜은 그 소고기를 오래 보았다. 아침부터 건빵 한 봉지 먹은 게 다였다.
할머니가 다솜을 돌아보았다.
“아가씨는 군인이지? 군인은 아무거나 잘 먹지?”
할머니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초코바 하나를 꺼내 다솜 손에 쥐여 주고 다시 번개에게 소고기를 찢어 주었다. 다솜은 초코바 포장을 뜯으며 번개에게 속삭였다.
“해령까지 와서도 상사님이 소고기예요.”
번개는 다솜을 한 번 보고 소고기를 마저 먹었다.
체육관 뒷문 밖 계단에서 피동팔이 전화를 하고 있었다. 다솜은 번개의 물그릇을 채우러 수돗가로 가다가 그 목소리를 들었다. 스피커폰이 아니었는데도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다정한 목소리였다. 오보미였다.
“사진 받았어요, 소령님. 발바닥 열상이면 연구 등급이 한 단계 내려가요. 협력금도 거기 맞춰서 조정해야 하고요. 더 다치기 전에 빼 주시면 좋겠어요.”
피동팔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계단 밑 시멘트 바닥에 담배꽁초 하나가 굴러다녔다. 그는 그걸 군화 끝으로 밀었다.
“오 이사님. 이 개가 아까 소방관 셋을 살렸어요.”
“그건 정말 대단하네요. 근데 그거랑 연구 등급은 별개잖아요.”
피동팔은 전화를 끊었다.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는 계단에 앉아 계산기를 꺼냈다가, 두드리지 않고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다솜은 물그릇을 든 채 수돗가 기둥 뒤에 서 있다가, 피동팔이 일어서기 전에 체육관으로 돌아갔다.
체육관 입구 쪽에서 마흔 중반의 사내 하나가 벽에 붙은 실종자 명단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이틀째 그 자리에 서 있다고 자원봉사 할머니가 말했다. 시장 떡집 주인 박순례 할머니의 아들이었다. 일흔둘의 박순례 할머니는 지진이 나던 밤, 떡집 안쪽 방에서 늙은 개 한 마리와 잠들어 있었다. 떡집은 시장 동쪽 끝이었다.
사내가 다솜에게 걸어왔다. 휴대전화 화면을 내밀었다. 하얀 머리의 할머니가 떡판 앞에서 누런 잡종 개를 안고 웃는 사진이었다.
“우리 엄마예요. 개 이름은 누룽지. 열네 살.” 사내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동쪽 끝은 다 찾아봤는데 반응이 없대요. 열 감지에도 안 나오고 두드려도 소리가 없대요. 그래도 개 코로 한 번만 더 봐 주실 수 있어요?”
다솜은 번개의 엉덩이에서 손을 뗐다. 번개가 고개를 들어 사내의 휴대전화 화면에 코를 댔다.
*
해 질 녘, 마지막 이십 분이었다. 동쪽 끝 잔해에는 소방관들이 스프레이로 그린 표시가 있었다. 콘크리트 판 위에 커다란 엑스 자, 그 옆에 「수색 완료」 「생존 반응 없음」.
다솜이 번개의 붕대 위에 새 보호 신발을 신겼다. 피동팔이 잔해 아래에서 팔짱을 끼고 섰다. 손목시계를 보고 있었다.
“주크.”
번개가 올라갔다. 걸음이 아침보다 느렸다. 엉덩이가 좌우로 더 크게 흔들렸다. 번개는 엑스 자가 그려진 판 위를 지나 떡집 간판 반쪽이 박힌 자리까지 갔다. 거기서 멈췄다.
그리고 앉았다.
뒷걸음질이 아니었다. 사람 냄새를 찾았을 때의 신호였다. 왼쪽 다리를 바깥으로 빼고, 엑스 자 바로 옆에, 콘크리트 틈에 코를 대고, 꼼짝하지 않았다.
“여기 다 훑은 데요.” 소방관 하나가 말했다. “열 감지 반응 없었어요.”
번개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솜이 「히어」 하고 불러도 일어나지 않았다. 틈에 코를 댄 채 꼬리만 한 번 바닥을 쓸었다.
피동팔이 손목시계에서 눈을 들었다. “이십 분 됐어.”
그 순간 발밑이 흔들렸다. 여진이었다. 잔해가 우르르 소리를 내며 한 뼘쯤 내려앉았다. 소방관들이 몸을 낮췄다. 다솜은 잔해 가장자리에서 번개를 보았다. 번개는 흔들리는 판 위에 앉아 있었다. 엉덩이가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