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84자)
이빨 자국 난 공
군견이 나보다 계급이 높다 · 진해솔
2018년 3월, 인천공항 화물 터미널 냉기 속에서 도민철 중사가 처음 본 번개는 철제 운반 상자 안에서 오줌을 싸고 떨고 있었다. 두 살이었고, 네덜란드의 군견 번식장에서 열네 시간을 날아왔다. 상자 문에 붙은 서류에는 네덜란드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도민철은 그걸 읽을 줄 몰랐다. 상자를 열자 갈색 개가 튀어나와 화물 터미널 바닥을 세 바퀴 돌고, 지게차 바퀴에 오줌을 한 번 더 쌌다.
“이름 뭐로 할까요?” 같이 간 병장이 물었다.
개가 지게차 밑으로 들어갔다가 반대쪽으로 튀어나오는 데 일 초도 안 걸렸다.
“번개.”
번개는 한국말을 하나도 몰랐다. 도민철도 네덜란드 말을 하나도 몰랐다. 첫 석 달 동안 도민철은 번식장에서 보내 준 명령어 녹음 파일을 휴대전화에 넣고 다니며 따라 했다. 짓, 아프, 히어, 주크. 번개는 도민철의 발음이 틀릴 때마다 고개를 갸웃했다. 맞을 때만 움직였다. 도민철은 번개에게 네덜란드 말을 가르친 게 아니었다. 번개에게 네덜란드 말을 배웠다.
그해 가을, 도민철은 훈련장 구석에서 털이 보송한 노란 테니스공 하나를 주웠다. 누가 장애물 코스 옆에 놓고 간 공이었다. 그걸 던져 주자 번개는 미친 듯이 뛰어가 물어 왔고, 그날부터 그 공이 번개의 상이 되었다. 탐지 훈련에서 냄새를 찾으면 공 하나. 그 공 하나를 받으려고 번개는 무엇이든 찾았다.
*
2020년 7월, 충남 서해안 쪽 어느 산업단지 조성 공사장에서 굴착기 기사가 흙더미 속에서 녹슨 쇳덩이 모서리를 봤다고 신고했다. 6·25 때 묻힌 포탄이 공사장에서 이따금 나왔다. 군 폭발물 처리반이 출동했고, 주변에 더 묻혀 있는지 훑을 탐지견으로 번개가 불려 갔다.
공사장 흙은 비에 젖어 뻘처럼 질척였다. 번개는 도민철 앞에서 코를 땅에 박고 지그재그로 나아갔다. 이십 분쯤 지났을 때 번개가 굴착기가 다음에 팔 자리로 표시해 둔 깃발 앞에서 멈췄다. 앉았다. 꼼짝하지 않았다. 냄새를 찾았다는 신호였다.
처리반이 그 자리를 손으로 파 내려갔다. 깃발 밑 70센티미터에서 포탄 두 발이 나왔다. 하나는 신관이 살아 있었다. 굴착기가 그 자리를 퍼 올렸다면 기사석이 날아갔을 거라고 처리반장이 말했다.
그날 저녁 도민철은 공사장 옆 컨테이너 사무실 앞에 쭈그려 앉아 번개에게 공을 던져 주었다. 번개는 흙투성이로 공을 물어 왔다. 굴착기 기사가 컨테이너에서 나와 캔커피 두 개를 들고 왔다. 하나를 도민철에게 주고, 하나를 따서 번개 앞에 놓았다.
“개는 커피 못 마십니다.”
“아, 그래요?” 기사가 캔커피를 도로 집어 들었다. 한참 번개를 보다가 말했다. “그럼 내가 대신 마실게. 고마워서.”
기사는 번개 앞에 쪼그려 앉아 캔커피를 다 마셨다. 번개는 그 앞에서 공을 물고 꼬리를 흔들었다.
*
2023년 5월, 충남 내륙에서 열린 농업 박람회 개막 전날이었다. 행사장 뒤편 자재 창고에 누가 수상한 가방을 두고 갔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 특공대와 군이 함께 행사장을 훑었고, 번개와 도민철은 창고 쪽을 맡았다.
창고 안은 합판 냄새와 비료 포대 냄새가 진동했다. 냄새가 그렇게 많은 데서 한 냄새를 골라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번개는 창고 안을 두 바퀴 돌았다. 세 바퀴째에 비료 포대 더미 맨 아래 칸 앞에서 멈췄다. 앉지 않았다. 대신 뒷걸음질을 쳤다. 도민철이 다섯 해 동안 처음 본 동작이었다.
도민철은 번개의 목줄을 잡아당기며 무전을 쳤다. 그 순간 포대 더미 밑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덜 만들어진 장치가 타기 시작했다. 도민철은 번개를 안아 들고 창고 문으로 뛰었다. 문 손잡이가 쇠였다. 연기 속에서 그 손잡이를 맨손으로 잡아 돌렸고, 손잡이는 벌써 뜨거웠다. 문이 열렸다. 도민철과 번개가 바깥 흙바닥에 굴러떨어지고 몇 초 뒤 창고 안에서 불길이 솟았다. 폭발은 크지 않았다. 다친 사람은 도민철의 오른손 하나였다.
손바닥과 손등에 화상 자국이 남았다. 병원에서 붕대를 감는 동안 도민철은 번개가 뒷걸음질 친 장면을 계속 떠올렸다. 번개가 앉았다면, 신호대로 앉아서 기다렸다면, 도민철은 그 앞에 쪼그려 앉아 포대를 들춰 봤을 것이다.
그해 가을 훈련소장이 번개를 상사로 올렸다. 명예 계급은 훈련소장 마음이었다. 도민철의 상사 진급 발표는 그 석 달 뒤에 났다. 진급 신고하는 날, 훈련소장은 도민철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도 상사, 축하해요. 근데 번개 상사가 석 달 선임인 거 알죠?”
이듬해 봄 도민철은 교관이 되었다. 교관은 담당견을 둘 수 없었다. 번개는 새 담당병에게 넘어갔고, 사흘을 먹지 않았다. 도민철은 사흘째 밤에 견사에 가서 철창 사이로 공을 넣어 주었다. 첫 공이 다 닳아 2021년부터 쓰던 두 번째 공이었다. 번개는 그 공을 물고 그제야 밥을 먹었다. 두 번째 공은 그 뒤로 담당병이 몇 번 바뀌는 동안에도 번개의 칸에 있었다. 털이 다 빠지고 고무가 드러날 때까지.
*
2026년 9월 7일, 도민철은 번개의 칸 철창 밖에서 팔짱을 끼고 새 담당병을 보았다. 이름표가 「문다슴」으로 잘못 박힌 이병이었다. 한국말로 「앉아」를 세 번 하고, 「앉으세요」를 하고, 「앉으십시오」까지 했다. 도민철은 웃음을 참느라 볼 안쪽을 깨물었다.
그런데 번개가 「짓」에 앉자, 그 이병이 숨을 멈췄다. 무릎을 꿇고 번개의 뒷발 발톱을 들여다보았다. 지난 두 해 동안 번개의 담당병이 셋 바뀌었다. 그 셋 중 누구도 발톱을 본 적이 없었다. 도민철 자신도 지난봄 엑스레이를 보고서야 알았다.
그날 밤 도민철은 관사에서 번개의 공적 기록을 꺼내 오래 들여다보았다. 넉 달 뒤 번개가 어디로 갈지 군수과에서 아무 말이 없었다. 도민철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지만 계급장 두 개 위의 사람에게 물을 말을 찾지 못했다. 그 이병은 첫날 벌써 소령에게 물었다. 반납하면 어디로 가느냐고.
*
2026년 10월 12일 월요일 아침, 훈련소장실 앞 복도에서 도민철은 그 공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솜이 소장실 안에 들어가 있었다. 피동팔도 안에 있었다. 문틈으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백무영이 무언가를 묻고, 피동팔이 길게 대답하고, 다솜이 짧게 대답했다.
삼십 분 뒤 문이 열렸다. 다솜이 먼저 나왔다. 얼굴이 하얬지만 울지는 않았다.
“어떻게 됐어?”
“경고요.” 다솜이 말했다. “군기교육은 안 간대요. 소장님이 장갑 얘기를 물으셨는데, 소령님이 군수과 비품이라고 하셨고요.”
피동팔이 뒤따라 나왔다. 그는 도민철을 보고 고개만 까딱했다.
“군수과장님.” 도민철이 불러 세웠다. “잠깐 시간 내 주십시오. 사무실로 가겠습니다.”
*
군수과 사무실은 행정동 2층이었다. 책상 위에 서류가 탑처럼 쌓여 있었고, 벽에 견사 신축 조감도가 붙어 있었다. 지붕이 새지 않는 새 견사였다. 조감도 아래 의자에 피동팔이 앉았다. 도민철과 다솜은 책상 앞에 섰다.
도민철은 서류철 하나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번개의 공적 기록이었다. 2020년 공사장, 2023년 박람회장. 처리반장과 경찰 특공대장의 확인서가 붙어 있었다.
“번개 은퇴 처리 때 이것도 같이 봐 주십시오. 공적견은 민간 입양 공고를 따로 냅니다. 전에는 그렇게 했습니다.”
피동팔은 서류철을 펼쳐 보지 않았다.
“도 상사, 그 공적 다 알아요. 박람회 건은 나도 그때 있었어.” 그는 책상 서랍에서 다른 서류를 꺼냈다. 「세진라이프랩 노령 군견 연구 협력 협약서」. 맨 아래 서명란 두 개가 다 채워져 있었다. “근데 이거 지난주에 맺었어요. 다섯 마리 일괄. 협력금 일천오백. 견사 지붕 예산에 이미 잡혔어.”
다솜이 한 걸음 나섰다. “공격성 판정이 보류됐습니다. 보류 중인 개를 어떻게 넘깁니까?”
“재평가는 기관에서 해요. 거기 수의사가 더 많아.” 피동팔이 다솜을 보았다. “문 이병은 오늘 아침에 경고 받았지? 오늘은 조용히 있는 게 좋겠는데.”
도민철이 오른손을 책상 위에 얹었다. 손바닥을 펴서. 화상 자국이 형광등 불빛 아래 번들거렸다.
“과장님. 이 손이 지금 붙어 있는 건 번개가 앉지 않고 뒷걸음질 쳐서입니다. 신호대로 앉았으면 저는 그 포대 앞에 쪼그려 앉았을 겁니다.” 도민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개를 실험실에 보내십니까?”
피동팔은 도민철의 손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었다.
“도 상사. 그 손 나도 알아요. 그래서 그 개 사료를 3년 동안 이십팔만 원짜리로 대 줬어. 내가 결재했어.” 그는 벽의 조감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공적은 공적이고, 예산은 예산이야. 저 지붕 밑에 들어갈 서른 마리도 언젠가 누구 손을 구할 거야. 걔들한테 비 새는 칸을 주면서 공적견 대접을 해 달라고? 공적은 지난 일이고 지붕은 오늘 새.”
“그럼 다섯 마리 값이 일천오백입니까?” 다솜이 물었다. “한 마리에 삼백. 번개 상사님이 삼백만 원입니까?”
“문 이병.”
“소령님 운동화는 얼마였습니까?”
사무실이 얼어붙었다. 도민철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피동팔은 알았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가, 천천히 돌아왔다.
피동팔이 일어섰다. 협약서를 서랍에 넣고 잠갔다.
“인계 날짜 바꿉니다. 1월 말 말고 11월 20일. 다섯 마리 전부.” 그는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 “재평가 보류니 공적이니, 1월까지 끌면 끌수록 이 훈련소 사람들 마음만 다쳐. 도 상사, 문 이병, 둘 다 나가 봐요.”
“과장님!”
“나가요, 도 상사. 상사가 소령 책상에 손바닥 얹은 것도 오늘은 없던 걸로 할게.”
*
행정동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도민철은 말이 없었다. 다솜도 말이 없었다. 계단참 창으로 견사동이 보였다. 맨 끝 남향 칸 철창 앞에 갈색 개 하나가 앉아 행정동 쪽을 보고 있었다.
“교관님.” 다솜이 말했다. “11월 20일이면 39일 남았어요.”
“세지 마라.”
“세는 버릇이 있어서요.”
도민철이 계단참에 멈춰 섰다. 화상 입은 오른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가 뺐다. 손에 털 빠진 테니스공 하나가 들려 있었다. 번개의 공보다 더 낡은 공이었다. 고무가 갈라지고 한쪽이 찌그러졌다.
“이게 첫 공이다. 2018년 가을에 주운 거. 번개가 지금 무는 건 두 번째고.” 도민철이 공을 다솜에게 내밀었다. “공사장에서 포탄 찾던 날 받은 게 이거야.”
다솜은 공을 받았다. 가벼웠다. 이빨 자국이 너무 많아서 원래 모양을 알 수 없었다.
“왜 저를 주십니까?”
“나는 상사라서 소령 책상에 손바닥까지만 얹을 수 있어.” 도민철이 계단을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넌 이병이잖아. 이병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아직 아무도 몰라.”
견사동 쪽에서 번개가 짧게 한 번 짖었다. 도민철의 발소리를 알아들은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