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29자)

새 담당은 밥을 못 먹인다

군견이 나보다 계급이 높다 · 진해솔

공두호는 일곱 살 여름에 경남 함양의 외갓집 동네에서 누렁이 한 마리에게 쫓겨 개울에 빠졌다. 누렁이는 개울가에서 공두호가 물 밖으로 나올 때까지 한 시간을 짖었고, 공두호는 물속에서 바위를 붙잡고 울다가 외삼촌 경운기 소리를 듣고서야 나왔다. 그 뒤로 열다섯 해 동안 공두호는 개가 있는 골목을 돌아서 다녔다. 키가 190센티미터가 되고 어깨가 문짝만 해진 뒤에도 그랬다.

그 공두호를 군견훈련소로 보낸 것은 신병교육대 면담관의 질문 하나였다. “동물 좋아합니까?” 공두호는 “예”라고 대답했다. 외갓집 외양간의 소를 생각하고 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9월 26일 아침 여섯 시 반, 공두호는 번개 상사의 밥그릇을 들고 견사동 맨 끝 남향 칸 앞에 서 있었다.

“버, 번개 상사님. 아침 진지 드시이소.”

철창 안 매트리스 위에서 번개가 고개를 들었다. 공두호는 숨을 멈췄다. 번개는 공두호를 한 번 보고 도로 턱을 앞발에 얹었다.

공두호는 철창 고리를 아주 천천히 풀었다. 문을 한 뼘만 열었다. 그러고는 밥그릇을 바닥에 내려놓고 대걸레 자루로 밀었다. 그릇이 콘크리트 바닥을 긁으며 매트리스 앞까지 미끄러져 갔다. 공두호는 문을 닫고 고리를 걸고 한 걸음 물러났다. 2미터였다.

번개는 밥그릇을 보지 않았다.

“짙. 짙! 상사님, 짙!”

도민철이 적어 준 쪽지에는 「짓」이라고 적혀 있었다. 공두호 입에서는 그 말이 자꾸 「짙」이 되었다. 번개는 공두호가 「짙」을 다섯 번 외치는 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여섯 번째에 눈을 감았다.

점심때 밥그릇은 그대로였다. 저녁때도 그대로였다. 공두호는 아침 밥그릇을 치우고 새 밥그릇을 대걸레로 밀어 넣었다. 그것도 그대로였다.

*

다솜이 밀려난 강아지 견사는 견사동 반대쪽 끝 열두 칸이었다. 생후 석 달에서 다섯 달 사이 군견 후보 강아지들이 칸마다 두세 마리씩 살았다. 다솜이 첫날 칸에 들어가자 셰퍼드 강아지 세 마리가 한꺼번에 덤벼들어 바짓단을 물고 늘어졌다. 이빨이 바늘처럼 가늘고 날카로웠다.

“야, 야. 바지는 국가 재산이야.”

한 마리가 다솜의 무릎을 타고 올라와 가슴팍 이름표를 물었다. 「문다슴」. 강아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이름표를 잡아당겼다. 찍 소리가 나면서 벨크로가 떨어졌다. 강아지가 이름표를 물고 칸 구석으로 달아났다.

다솜은 강아지를 쫓아가다가 멈췄다. 이름표는 세 번을 바꿔 달라고 했는데도 안 바뀐 이름표였다.

“……잘했다. 너 이름 뭐야?”

칸 철창에 「봄비」라고 적힌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다솜은 봄비에게 이름표를 그냥 주었다.

그날 오후 비가 왔다. 강아지 견사 지붕에서 물이 샜다. 다솜은 피동팔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천장 이음매를 타고 내려온 빗물이 칸마다 서너 군데씩 떨어졌다. 다솜은 창고에서 양동이 열한 개를 꺼내 날랐다. 강아지들은 양동이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앞발로 치며 놀았고, 놀다가 양동이를 엎었다. 젖은 바닥에서 강아지 털 냄새가 비릿하게 올라왔다. 봄비의 배에 빨간 반점 몇 개가 있었다. 습한 데서 사는 개에게 생기는 피부염이었다.

다솜은 봄비의 배를 닦아 주며 피동팔의 숫자를 떠올렸다. 지붕 이천이백만 원. 은퇴견 한 마리 1년 칠백만 원. 숫자는 맞았다. 다솜이 아는 건, 그 숫자를 맞추려고 고른 길이 틀렸다는 것뿐이었다.

비가 그칠 무렵 강아지 견사 출입문이 열렸다. 피동팔이 작업복 차림의 시설 업자 하나를 데리고 들어왔다. 업자가 사다리를 펴고 천장 이음매를 올려다보는 동안, 피동팔은 양동이 열한 개를 하나씩 세었다. 셋째 칸에서 그는 다솜과 눈이 마주쳤다.

“이제 보이지?”

다솜은 봄비를 안은 채 일어섰다. “보입니다.”

“지붕 전체를 걷어야 한대. 이천이백이 이천오백이 됐어.” 피동팔은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 숫자를 말했다. 처음이었다. “난 이 칸에 사는 서른 마리 편이야, 문 이병. 넌 저쪽 끝 한 마리 편이고.”

“소령님은 그 서른 마리도 열 살 되면 세진에 보내실 겁니까?”

피동팔은 대답 대신 양동이 하나를 발로 밀어 빗방울 떨어지는 자리에 맞췄다. 물방울이 양동이 바닥을 쳤다. 텅, 하는 소리가 견사에 울렸다. 그는 업자에게 견적서를 내일까지 달라고 말하고 나갔다.

*

둘째 날에도 번개는 먹지 않았다. 공두호는 아침마다 밥그릇을 밀어 넣고 저녁마다 그대로인 그릇을 끌어냈다. 사료가 공기 중에 하루를 묵어 눅눅해졌고, 그 냄새가 견사 칸에 고였다.

공두호는 밤에 침상에 누워 천장을 보았다. 옆 침상에서 다솜이 강아지 이빨 자국이 난 손등에 연고를 바르고 있었다.

“다솜아.”

“어.”

“상사님이 안 묵는다.”

다솜의 손이 멈췄다.

“이틀째?”

“이틀째. 물만 쪼매 묵고.” 공두호가 천장을 보며 말했다. “내가 무서버서 그런 거 아이가? 내가 무서버하는 거 상사님이 아는 거 아이가?”

“개는 알아. 근데 그것 때문 아니야.”

“그라믄 뭔데?”

다솜은 대답하지 않았다. 연고 뚜껑을 닫고 돌아누웠다. 공두호는 다솜의 등이 한 번 크게 들썩이는 것을 보았다.

*

셋째 날 밤 열한 시 사십 분이었다. 공두호는 야간 견사 순찰을 돌다 번개의 칸 앞에서 멈췄다. 밥그릇은 그대로였다. 번개는 매트리스에 엎드려 있지 않았다. 철창 앞에 앉아 복도 반대쪽을 보고 있었다. 왼쪽 다리를 바깥으로 빼고.

공두호는 물그릇이라도 갈아 주려고 고리를 풀었다. 문을 한 뼘 열었다.

번개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 한 뼘을 머리로 밀었다. 문이 열렸다. 번개는 공두호의 다리 옆을 그냥 지나갔다. 몸이 공두호의 정강이에 스쳤다. 공두호는 그 자리에서 굳었다. 소리를 지르려고 입을 벌렸는데 소리가 안 나왔다.

번개는 뛰지 않았다. 걸었다. 왼쪽 뒷다리를 끌며, 견사동 복도를 걸어 나가 열린 출입문을 지나 바깥으로 나갔다. 공두호는 열을 셀 동안 굳어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뒤를 쫓았다.

“사, 상사님! 상사님 어데 가십니꺼!”

달빛 아래 훈련장 흙길을 번개가 걸어가고 있었다. 엉덩이가 좌우로 흔들렸다. 다섯 걸음마다 한 번씩 멈춰 서서 숨을 골랐고, 다시 걸었다. 공두호는 번개 뒤로 2미터를 두고 따라갔다.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멀어질 수도 없었다. 번개가 멈추면 공두호도 멈췄다.

번개는 훈련장을 가로질러, 수의실 건물을 돌아, 견사동 반대쪽 끝까지 걸었다. 사백 미터쯤이었다. 그 끝에 강아지 견사가 있었다. 비 새는 지붕 밑에 불이 하나 켜져 있었다. 야간 강아지 당번이 앉아 있는 당번실 창이었다.

번개는 강아지 견사 출입문 앞에 엎드렸다. 문에 옆구리를 대고, 앞발 위에 턱을 얹고. 숨이 거칠었다. 갈비뼈가 크게 오르내렸다.

공두호는 그 뒤에서 섰다. 번개가 문틈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 소리가 들렸다. 킁, 킁, 길게 한 번. 그러고는 꼬리가 바닥을 쓸었다. 한 번, 또 한 번.

공두호는 그때 처음으로 개가 무섭지 않았다. 대신 목이 메었다. 일곱 살 여름 개울가에서 한 시간을 짖던 누렁이가 떠올랐다. 그 누렁이도 어쩌면 그때 자기를 지키느라 짖었는지 몰랐다. 개울 건너에 그 누렁이의 강아지들이 있었다는 걸 공두호는 열다섯 해 만에 기억해 냈다.

문이 열렸다. 다솜이었다. 다솜은 문 앞에 엎드린 번개를 내려다보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상사님.”

번개가 다솜의 무릎에 머리를 얹었다.

*

손전등 불빛이 셋을 비췄다. 피동팔이었다. 그날 밤 훈련소 당직사령, 일과 뒤 부대를 책임지는 당번 간부가 그였다. 당직 완장을 찬 팔로 손전등을 들고 그는 강아지 견사 앞에 섰다.

“군견 이탈. 열한 시 오십이 분.” 그가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공두호 이병, 담당견을 놓쳤네. 문다솜 이병, 이전 담당이 불러냈나?”

“안 불렀습니다.” 다솜이 번개의 머리를 무릎에 얹은 채 말했다. “소령님. 번개가 사흘 굶었습니다.”

“개는 사흘 굶어도 안 죽어.”

“열 살 노견은 사흘 굶으면 간에 지방이 낍니다. 관절 진통제도 빈속에 못 먹입니다. 사흘 동안 약을 한 알도 못 먹었다는 말입니다.” 다솜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상사님이 사흘을 굶으시는데 소령님은 보고도 안 받으셨습니까?”

“보고는 담당이 하는 거야.” 피동팔의 손전등이 공두호에게 갔다. “공 이병, 왜 보고 안 했어?”

공두호는 입을 열었다. 꼬였다.

“지, 지가, 예, 보고를 했심더, 아니 안 했십니다, 그게, 소령님.” 그는 숨을 들이쉬었다. 번개가 다솜의 무릎 위에서 공두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공두호는 그 눈을 보며 말했다. “소령님. 지는 번개 상사님 몬 먹입니다. 지가 개를 무서버합니다. 상사님은 문다솜이 아니면 안 묵습니다.”

피동팔이 손전등을 내렸다. 개를 무서워한다고 말한 190센티미터 병사를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때 수의실 쪽에서 염다인이 뛰어왔다. 체육복 차림이었다. 도민철이 뒤따라왔다. 공두호가 번개를 쫓아가며 도민철의 관사로 전화를 걸었다는 것을 공두호 자신도 그때까지 기억하지 못했다.

염다인이 번개의 잇몸을 뒤집어 보고, 배를 눌러 보고, 다솜을 보았다.

“탈수 왔어요. 수액 맞혀야 해요.” 그녀가 피동팔에게 돌아섰다. “소령님. 수의 소견으로 말씀드립니다. 이 개는 담당이 바뀌면 안 먹습니다. 평가 전에 쓰러지면 평가도 못 합니다. 원래 담당으로 돌려 주십시오.”

피동팔은 한참 말이 없었다. 손전등 불빛이 바닥의 흙을 비췄다. 강아지 견사 안에서 봄비가 철창에 매달려 낑낑댔다. 입에 「문다슴」 이름표를 아직 물고 있었다.

“좋아요. 원복.” 피동팔이 말했다. “대신 문다솜 이병 10월 휴가는 평가 끝날 때까지 보류. 담당이 자리 비우면 또 이럴 거 아냐?”

다솜의 첫 정기 휴가는 10월 9일이었다. 엄마가 미역국을 끓여 놓겠다고 했던 날이었다.

“……알겠습니다.”

“공 이병은 강아지 견사로. 무서우면 작은 것부터 해.” 피동팔이 돌아섰다가 멈췄다. “문다솜. 평가 날 이 개가 이빨 보이면, 오늘 이 장면도 다 기록에 들어가. 담당 아니면 밥도 안 먹는 개. 그게 입양 가서 새 주인을 어떻게 대할 것 같아?”

손전등 불빛이 멀어졌다.

수의실에서 수액이 번개의 앞다리 혈관으로 떨어지는 동안, 다솜은 사료를 손바닥에 한 줌씩 덜어 번개의 입 앞에 댔다. 번개는 다솜의 손바닥을 핥으며 사료를 먹었다. 한 줌, 두 줌, 세 줌. 손바닥이 침으로 미끈거렸다.

진료실 구석 의자에서 공두호가 그 모습을 보다가 물었다.

“다솜아. 나도 강아지들 밥 그래 주면 되나?”

“봄비는 손까지 먹어.”

공두호가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문짝만 한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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