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112자)
짓은 앉아
군견이 나보다 계급이 높다 · 진해솔
국산 사료는 한 포대에 삼만 이천 원이었다. 다솜은 그 숫자를 사료 창고 벽에 붙은 단가표에서 읽었다. 네덜란드산 처방식 이십팔만 원짜리가 있던 선반에는 이제 누런 종이 포대가 쌓였고, 포대 겉면에는 웃는 진돗개 그림이 인쇄되어 있었다.
아침 일곱 시, 다솜은 저울에 새 사료를 달아 번개의 밥그릇에 부었다. 연어 기름도 없고 닭가슴살도 없었다. 조리병이 아침마다 삶던 닭가슴살은 어제 저녁 군수과 지시로 끊겼다.
번개는 밥그릇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한 번, 두 번.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다솜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저도 알아요. 저도 아침에 그거랑 비슷한 거 먹었어요.”
번개는 몸을 돌려 매트리스로 갔다. 매트리스는 아직 걷히지 않았다. 피동팔의 명령서가 행정 절차에 걸려 이틀째 오지 않았고, 다솜은 그 이틀이 열흘이 되기를 빌었다. 번개는 매트리스 위에 엎드려 밥그릇 쪽으로 엉덩이를 두었다.
그날 점심시간에 다솜은 생활관 사이버지식정보방, 병사들이 일과 뒤에 쓰는 인터넷 컴퓨터실에 달려가 대형견 관절 영양제를 주문했다. 한 통에 육만 팔천 원, 두 달 치였다. 결제 화면에 찍힌 숫자를 보다가 다솜은 이병 월급 명세를 떠올렸다. 동그랑땡 두 개짜리 식판을 받는 사람이 상사님 영양제를 사고 있었다.
옆자리에서 화면을 훔쳐보던 동기 공두호가 느릿느릿 물었다.
“그거 니 먹는 기가?”
“번개 상사님 거.”
“개 영양제를 니 돈으로?”
“상사님 영양제.”
공두호는 키가 190센티미터였고 어깨가 문짝만 했는데, 견사동 앞을 지날 때마다 벽에 바짝 붙어 걸었다. 다솜은 그걸 첫날부터 봤다. 공두호의 담당은 견사 청소였고, 그는 호스를 최대한 길게 뽑아 철창에서 2미터 떨어진 자리에서 물을 뿌렸다.
*
네덜란드 말 수업은 그날 오후부터였다. 도민철이 훈련장 한가운데 번개를 세워 두고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짓, 앉아. 아프, 엎드려. 히어, 이리 와. 주크, 찾아. 푸이, 안 돼. 브라프, 잘했어. 여섯 개. 오늘 다 외워.”
“아프가 엎드려입니까?”
“아프.”
“아프.”
“끝을 올리지 마. 아프, 하고 내려.”
다솜은 번개 앞에 섰다. 번개는 혀를 빼고 다솜을 올려다보았다. 9월 오후 볕이 훈련장 흙을 하얗게 말렸고, 멀리 장애물 코스에서 셰퍼드 한 마리가 사다리를 오르며 헥헥거렸다. 다솜은 숨을 들이쉬고 손바닥을 바닥으로 내렸다.
“아프!”
번개는 앉아 있었다.
“아프! 아프! 아프으!”
훈련장 가장자리에서 견사 청소를 마치고 지나가던 공두호가 걸음을 멈췄다. 다솜의 목소리가 세 번 연달아 「아프」를 외치는 것을 들은 공두호의 얼굴이 하얘졌다.
“다솜아! 어디 아프나! 의무병 부르까!”
공두호가 의무실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190센티미터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동안 번개는 그쪽을 한 번 보고, 다솜을 한 번 보고, 천천히 엎드렸다. 도민철이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었다. 웃고 있었다.
“봐라. 번개가 엎드렸잖아.”
“제 말 듣고 엎드린 겁니까, 공두호 뛰는 거 보고 엎드린 겁니까?”
“그건 번개 상사님만 아시지.”
공두호는 의무병을 데리고 돌아왔다가 다솜에게 등짝을 한 대 맞았다.
*
열흘 동안 다솜은 혼자 중얼거렸다. 샤워하면서 짓, 아프, 히어. 점호 기다리면서 주크, 푸이, 브라프. 생활관 침상에서 「히어」를 잠꼬대로 외쳐 옆자리 일병을 깨웠고, 그 일병은 다음 날부터 다솜을 「네덜란드」라고 불렀다.
그 열흘 사이 번개의 걸음이 달라졌다. 다솜이 병원에서 본 대로였다. 처방식을 끊은 지 사흘째부터 번개는 아침에 매트리스에서 일어날 때 앞다리를 먼저 펴고 엉덩이를 한참 뒤에 들었다. 닷새째에는 훈련장 계단 세 칸 앞에서 멈춰 서서 다솜을 보았다. 다솜은 번개의 엉덩이 밑에 두 팔을 넣고 계단을 올려 주었다. 서른두 킬로그램이었다. 다솜의 허리에서 소리가 났다.
영양제가 오자 다솜은 캡슐을 열어 가루를 사료에 뿌렸다. 번개는 사료 냄새를 맡고, 다솜의 손 냄새를 맡고, 그제야 먹었다.
열흘째 오후였다. 훈련장에서 다솜이 번개에게 브라프, 하고 말했을 때 번개가 다솜 앞으로 걸어왔다. 입에 테니스공을 물고 있었다. 원래 노란색이었을 공은 털이 다 빠져 회색 고무가 드러났고, 이빨 자국이 겹겹이 패어 있었다. 번개가 탐지에 성공하면 상으로 받던 공이라고 도민철이 말했었다. 다섯 해 넘게 문 공이었다. 번개는 그 공을 지금까지 도민철에게만 내주었다.
번개는 공을 다솜의 군화 앞코에 떨어뜨렸다. 침에 젖은 공이 흙을 한 바퀴 묻히고 멈췄다.
다솜은 공을 내려다보았다. 집지 않았다. 집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번개가 공을 코로 한 번 더 밀었다. 군화 앞코에 공이 닿았다.
다솜이 공을 집었다. 축축하고 따뜻했다. 다솜이 공을 던지자 번개는 뛰지 않고 걸어서 공을 가지러 갔다. 왼쪽 뒷다리를 조금 끌면서, 그래도 꼬리를 흔들면서.
훈련장 울타리에 기대 있던 도민철이 담배를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
그 주 내내 다솜은 목이 부어 있었다. 견사동 마흔 칸 청소를 한 날 젖은 양말로 밤바람을 맞은 게 탈이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에 모래알이 걸렸고, 밤에는 기침이 나서 「네덜란드」라고 부르던 일병이 이번에는 「폐병 네덜란드」라고 고쳐 불렀다.
다음 날 아침 다솜은 의무실에 갔다. 의무병은 다솜의 입을 벌려 보지도 않고 서랍에서 알약 두 개를 꺼냈다.
“타이레놀. 물 많이 마시고.”
“목 안 보십니까?”
“보면 뭐가 달라져? 타이레놀이야.”
다솜은 알약 두 개를 쥐고 의무실을 나왔다. 의무실과 수의실은 한 건물에 붙어 있었고,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문이 마주 보았다. 수의실 문에는 「진료 예약」 칠판이 걸려 있었다. 거기에 분필로 적힌 오늘 일정은 이랬다. 번개 상사, 고관절 엑스레이, 혈액 검사, 진통제 조정, 발톱 손질. 맨 아래 칸에 조그맣게 하나가 더 있었다. 귀 청소.
다솜은 손바닥의 타이레놀 두 알을 내려다보았다. 귀 청소까지 예약된 상사님 맞은편에서, 이병은 목구멍도 못 보여 주고 나왔다. 다솜은 알약을 한꺼번에 삼켰다. 목이 아파서 눈물이 났다. 목이 아파서였다.
그러고는 수의실 문을 두드렸다.
*
다솜은 번개를 데리고 수의실에 들어갔다. 수의장교 염다인 대위는 서른하나였고, 진료대 옆 모니터에 번개의 옛 엑스레이를 띄워 놓고 있었다. 지난봄 사진이었다.
“걸음이 나빠졌다고요?”
“사료 바꾸고 사흘째부터입니다. 일어날 때 앞다리부터 펴고, 계단 앞에서 멈춥니다.” 다솜은 수첩도 안 보고 말했다. “왼쪽 뒷다리 근육이 오른쪽보다 얇아졌습니다. 손가락 하나 정도요.”
염다인이 다솜을 보았다. 놀란 얼굴이었다.
“동물병원 있었어요?”
“1년 반 있었습니다.”
“다시 찍어 보죠.”
방사선 촬영실은 납 앞치마 냄새가 났다. 다솜과 염다인이 번개를 촬영대에 눕히고 뒷다리를 쭉 펴서 잡았다. 번개는 싫어하지 않았다. 다솜의 손목에 코를 대고 가만히 있었다. 몇 분 뒤 모니터에 새 사진이 떴다.
염다인은 지난봄 사진과 새 사진을 나란히 띄웠다. 개 엉덩이뼈의 둥근 소켓에 넓적다리뼈 머리가 들어가 있었는데, 왼쪽은 그 머리가 소켓 밖으로 반쯤 빠져 있었고 가장자리가 울퉁불퉁하게 자라 있었다. 엉덩이 관절이 꽉 맞물리지 않고 헐겁게 노는 고관절 이형성이었고, 헐거운 자리를 뼈가 덧자라 메우는 관절염이 넉 달 사이 더 번져 있었다.
“나빠졌네요.” 염다인의 말이 빨라졌다. “왼쪽 관절 가장자리 덧자란 뼈가 봄보다 두 배예요. 처방식 다시 먹이고 진통제 넣고, 수중 운동까지 하면 1월까지는 걷게 할 수 있어요. 은퇴하고 집에서 살면 몇 년은 더 편하게 걸을 거고.”
“집에서 살면요.”
“집에서 살면.”
그때 수의실 문이 열렸다. 피동팔이 서류철을 옆구리에 끼고 들어왔다.
“염 대위, 마침 잘 있네. 은퇴 예정견 평가서 좀 봤는데.” 그는 다솜을 보고 눈썹을 올렸다. “문다슴도 있고.”
“다솜입니다.”
피동팔은 서류철을 진료대 위에 펼쳤다. 은퇴견 다섯 마리의 평가서였다. 번개의 장 맨 아래 「특이 행동」 칸이 비어 있었다.
“여기 번개. 공격성 경향 있다고 한 줄 넣어 줘요.”
염다인이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공격성 소견은 없는데요.”
“있잖아. 나한테 했잖아. 견사에서.” 피동팔이 다솜을 보았다. “내 줄자에 오줌 쌌어. 계급 높은 사람한테 그게 공격 아니면 뭐야?”
다솜은 웃음을 참으려다 실패했다. 콧바람이 새어 나왔다. 피동팔의 눈이 다솜에게 박혔다.
“웃겨?”
“아닙니다. 군수과장님, 그건 영역 표시입니다. 개가 낯선 냄새를 덮으려고 하는 겁니다. 공격성이 아닙니다.”
“이병이 진단을 해?”
“진단이 아니라 기본입니다.” 다솜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공격성이 있다고 적으면 민간 입양이 안 됩니다. 그럼 갈 데가 업체밖에 없습니다. 소령님 그거 알고 적으라고 하시는 거 아닙니까?”
수의실 공기가 굳었다. 염다인이 다솜의 소매를 살짝 잡았다.
피동팔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진료대 위에 엎드린 번개 쪽으로 손을 뻗었다. 손바닥을 아래로, 번개의 코앞으로.
“그럼 봅시다. 공격성 없는 개가 어떻게 하는지.”
번개가 피동팔의 손 냄새를 맡았다. 코끝이 피동팔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따라갔다. 한 번 맡고, 고개를 뒤로 뺐다가, 다시 맡았다. 그러다 번개의 윗입술이 천천히 말려 올라갔다. 누렇게 닳은 송곳니가 드러났다. 목 깊은 데서 낮은 소리가 울렸다. 진료대가 그 소리에 아주 조금 떨렸다.
피동팔이 손을 거두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봤죠, 염 대위?”
다솜은 피동팔의 손을 보았다. 아침에 어디를 다녀왔는지, 손등에 소독약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병원 소독약이 아니었다. 더 맵고 더 시큼한 냄새였다. 귓속에 번호 문신이 있던 비글들이 병원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 개들 털에서 나던 냄새였다.
“소령님 손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부터 확인하셔야 합니다.”
“무슨 냄새?”
“오늘 아침에 어디 다녀오셨습니까?”
피동팔의 얼굴에서 웃음이 아주 잠깐 빠졌다가 돌아왔다. 그는 서류철을 덮었다.
“염 대위가 못 적겠다면 정식으로 하죠. 공격성 평가. 두 주 뒤, 군수과 주관으로. 외부 평가관도 부르고.” 그는 문 앞에서 돌아보았다. “문다슴. 그날 번개가 이빨 한 번만 더 보이면, 그때는 내가 안 적어도 다들 적을 거야.”
문이 닫혔다. 번개는 진료대 위에서 다솜의 손목을 핥았다. 다솜의 주머니 안에서 털 빠진 테니스공이 아직 축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