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490자)
마흔 제자의 발
무림세가 부부의 이혼 비무는 내가 판정한다 · 강묵현
제자들의 발소리는 칼 소리보다 조용했다. 그래서 더 잘 들렸다.
맨 앞에 선 것은 단목의 대사형이었다. 서른을 갓 넘긴 사내로, 열두 살에 단목 대문을 들어와 현에게 첫 칼을 받았다고 했다. 현이 대 앞에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뗐다. 이 발은 망설이지 않았다. 현은 현의 뒤를 지나쳐 설의 뒤에 가서 섰다.
현이 대사형을 돌아보았다. 대사형이 말했다.
“사부님 칼은 반쪽이 사모님께 있습니다. 저는 뒤의 여섯 식을 아직 못 배웠습니다.”
설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코웃음을 쳤다. 이 코웃음 끝이 젖어 있었다.
뒤이어 하나씩 걸었다. 설의 뒤로, 현의 뒤로. 나는 대 가장자리에서 이 발들을 들었다. 대부분은 곧게 걸었다. 몇은 반 박자씩 멈췄다가 걸었다. 열여덟 해 같은 마당에서 두 사람에게 칼을 배운 사람들이 이 둘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소리였다.
그리고 열하나가 다르게 걸었다.
이 열하나는 대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원의 홈을 따라 반 바퀴를 돌아, 대 밖으로, 관람석 아래 철기보 무사들이 선 쪽으로 걸었다. 이 앞에 셋째 숙부를 따르던 원로 둘이 먼저 가서 서 있었다. 열하나의 발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 발은 오늘 정한 발이 아니었다. 오래전에 정해 두고 오늘 걷기만 하는 발이었다.
한 사람만 늦었다. 스물 남짓한 여제자 하나가 현의 뒤와 철기보 무사들 사이, 마당 한가운데서 멈춰 섰다. 설이 현을 보았다. 현은 설을 보지 않으려고 했으나 보았다. 철기보 무사들 쪽에서 누가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여제자는 고개를 숙이고 철기보 쪽으로 걸어갔다.
설의 뒤에 열여섯, 현의 뒤에 열셋. 대 밖에 열하나.
관람석은 이 셈을 소리 내어 세었다. 노득칠도 세었다. 굳은 혀로 세어서 열하나가 여라나로 들렸다.
셈이 끝나자 노득칠이 회화나무 밑으로 달려가 판돈 주머니를 풀었다. 세 번째 판에 또 가주에게 걸었고, 이번에는 가주가 이겼다. 다들 부인에게 걸었던 터라 배당이 다섯 곱절이었다. 동전을 세다가 손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당주, 판 셋 중에 하나 맞혔어요. 그런데 왜 기쁘지가 않죠?”
“열하나가 나가는 걸 봤잖아.”
“…예. 그거 보면서 세니까 돈이 안 세져요.”
노득칠은 딴 돈의 반을 덜어 단목 제자들 가운데 맨 끝에 선 어린 제자의 손에 쥐여 주었다. 철기보 쪽으로 걸어가던 여제자의 동생이라고 했다.
*
황보진악이 원로 둘과 제자 열하나를 데리고 대문으로 갔다. 담 위의 철기보 무사들이 하나씩 내려와 뒤를 따랐다. 사흘 만에 월하당 담에서 쇳소리가 걷혔다.
대문간에서 현이 이 앞을 막았다. 설이 이 옆에 섰다. 갈라선 지 한 시진도 안 된 부부가 한쪽을 겨누고 섰다. 열여덟 해 동안 그랬던 것처럼.
“단목 제자를 데려가는 값은 무엇이오?”
“값은 저들이 이미 받았소. 작년 가을부터 숙부의 약재와 함께.”
“저들이 단목검법 앞의 여섯 식을 다 아오.”
“그래서 데려가오. 뒤의 여섯 식은 부인 손에 있고.”
황보진악이 설을 보았다.
“부인, 부두는 부인 것이오. 판정인이 그렇게 갈랐고 나는 판정을 존중하오. 다만 부두 앞 물길은 누구 것도 아니오. 낙수는 흐르는 물이니.”
황보진악은 이 말을 남기고 나갔다. 형당 집행관이 뒤이어 대문을 나섰다. 접은 의자를 하인에게 들리고. 문간에서 한 번 돌아보았다.
“판정인, 맹에서 월하당 이름을 다시 듣게 될 거요.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는 나도 모르오.”
*
이긴 물건은 판정인이 이긴 사람 손에 건넨다. 이것이 이 집 마지막 일이었다. 나는 단목 저택 대문 열쇠를 들고 현과 단목 제자 열셋을 따라 세가 거리로 갔다.
저택 대문에 낯선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말머리가 새겨진 쇠 자물쇠였다. 대문을 나간 원로 둘이 걸어 두고 간 것이었다. 현이 내 손에서 열쇠를 받아 단목의 옛 자물쇠 구멍에 넣었다. 맞지 않았다. 열쇠가 맞는 자물쇠는 이 밑에 떨어져 있었다. 쇠 자물쇠가 이것을 부수고 대신 걸렸다.
제자 하나가 도끼를 가져왔다. 현이 이 도끼를 받아 말머리 자물쇠를 내리쳤다. 세 번 만에 부서졌다. 대문이 열리자 안에서 탄 냄새가 났다. 서쪽 별채는 기둥만 남았고, 대청 뒤 사당의 문이 열려 있었다. 사당 안 칼걸이가 비어 있었다. 단목 시조가 쓰던 칼이 걸려 있던 자리였다.
현은 이 빈 칼걸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래 꿇고 있었다. 제자들이 뒤에 섰다. 나는 사당 문밖에 섰다. 판정인은 판이 끝난 집 사당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저택은 지켰소.”
현이 일어서며 말했다.
“칼은 철기보에 갔고. 판정인, 이것도 판이었소?”
“대 위에 오르지 않은 것은 판이 아니오.”
“그럼 다음에는 다 대 위에 올리겠소.”
현이 웃었다. 현의 웃음을 처음 보았다. 미간의 깊은 주름은 그대로였다.
*
물길이 무슨 말이었는지는 저녁에 알았다.
단목 부두 앞 낙수 한가운데에 철기보 배 여섯 척이 닻을 내렸다. 뱃전을 서로 쇠사슬로 묶어 부두로 들어오는 물길을 가로로 막았다. 쌀배도 소금배도 부두에 닿지 못하고 강 한가운데서 돌았다. 부두는 설의 것이 되었는데, 이 부두에 배가 닿지 않았다. 배가 닿지 않는 부두는 돌무더기다.
설은 마지막 징이 울린 이날 밤 월하당을 나가 부두 창고로 옮겼다. 나는 판정이 끝난 부부를 따라가지 않는다. 그런데 노득칠을 보내 나를 불렀다. 판정인 말고 낙양 사람으로 와 달라고.
부두 창고 앞에는 문채가 먼저 와 있었다. 국자 대신 장대를 들고. 뒤에 백결과 아우와 석교문 제자 일곱이 서 있었다. 나루 방앗간은 단목 부두에서 물길로 오백 걸음 위였다.
“철기보 배가 부두 앞을 막으면 우리 나루로 대.”
문채가 말했다.
“나루에서 부두까지 물가로 수레 길을 내면 돼. 짐은 우리 나루에서 내리고, 뱃삯은 반씩 나눠. 반은 나루 거, 반은 부두 거.”
“그럼 철기보가 나루 앞도 막을 거요.”
“그럼 둘 다 막혀서 낙양에 쌀이 안 들어오지. 낙양 사람들이 굶으면 누구한테 화를 낼 것 같아? 쌀배 막은 쇠사슬한테지.”
설이 장대를 하나 받아 들었다. 두 여자는 이날 처음 말을 섞었는데, 열 해 같이 장사한 사람들처럼 뱃삯 얘기부터 했다. 백결의 아우가 소금 자루를 지고 물가 길을 따라 걸어갔다. 맨손바닥의 물집이 터져 굳은살이 되어 가고 있었다.
밤이 되자 석교문 제자 일곱과 단목 제자 열여섯이 물가에 나란히 서서 횃불을 들었다. 강 한가운데 철기보 배 위에서도 횃불이 올랐다. 물 위에서 두 줄의 불이 서로를 보았다.
맨 앞 배의 뱃전에 쇠 갑옷을 입은 사내가 올라서서 소리쳤다. 물 위라 소리가 멀리 왔다.
“부두 주인, 보주께서 전하라 하셨소! 하루 은자 열 냥이면 쇠사슬 한 칸을 풀어 물길을 열어 주겠다고!”
설이 장대를 물가 돌에 꽂고 소리쳤다.
“쇠사슬 값은 내가 받아야지! 내 부두 앞에 그걸 매어 놨잖아! 하루 스무 냥!”
문채가 이 옆에서 국자 대신 장대를 휘두르며 거들었다.
“우리 나루 앞에 닻 내리면 하루 서른 냥이야! 나루 앞은 물이 깊어서 더 비싸!”
배 위의 사내가 잠시 말을 잃었다. 단목 제자들과 석교문 제자들이 물가에서 웃었다. 사내가 다시 소리쳤는데, 이번에는 웃음이 없는 소리였다.
“보주께서 하나 더 전하라 하셨소! 배 안 닿는 부두는 열흘이면 굶는다고!”
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횃불을 높이 들었다. 뒤로 서른 개 가까운 횃불이 따라 올라갔다.
나는 이 불을 보다가 돌아섰다. 판정인이 낄 자리가 아니었다. 돌아서는데 부두 창고 이층 창에 등잔이 하나 켜졌다. 그리고 물가 길을 따라 사람 하나가 창고 쪽으로 걸어왔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칼을 차지 않았다.
*
새벽에 노득칠이 부두 창고에 쌀 두 말을 지고 갔다. 설이 부탁한 것이었다. 한 시진 만에 돌아와 부엌 문지방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혀는 다 풀려 있었다.
“당주, 당주. 할머님, 할머님.”
할머니가 아침 대추를 씹다가 멈췄다.
“숨넘어가겠다. 천천히 해라.”
“부두 창고 이층 문이 열리더니요. 부인이 나오셨어요. 머리를 다 풀고요. 그런데 그 뒤에서 가주님이 나오셨어요. 옷고름을 다시 매면서요. 저를 보더니 둘이 동시에 문을 닫았어요. 쾅. 그리고 다시 열더니 가주님이 쌀을 받아 가셨어요. 아무 말도 없이요.”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두꺼비, 이건 판정할 일이 아니야.”
“판정해 달라는 게 아니라요, 당주. 이혼한 사람끼리 그래도 되는 거예요? 법에 있어요?”
“법에 없어.”
“없으면 되는 거예요?”
할머니가 대추 씨를 뱉었다. 웃음을 참느라 씨가 멀리 날아갔다.
“이혼 비무 법은 나누는 법이다. 나눈 걸 도로 합치는 법은 이 집에 따로 있지.”
이날 낮에 설이 월하당에 왔다. 머리를 단정히 틀어 올렸고, 쌍도는 차지 않았다. 손에 보자기 하나를 들고 있었다. 나를 지나쳐 곧장 할머니 방으로 갔다. 나는 문 밖에서 들었다. 판정인으로서가 아니었다. 그냥 귀가 그쪽으로 갔다.
“할머님, 다시 맺어 주세요.”
“무엇을?”
“혼인이요. 그 인간이랑.”
할머니가 웃었다. 오래 웃었다. 일흔 먹은 목에서 그렇게 큰 웃음이 나오는 것을 나는 처음 들었다.
“판 끝난 지 하루 만에 혼인 중매를 서라고? 열여덟 해 전 혼례상 앞에서 칼 대신 밥상을 엎으라고 했더니, 이번엔 상 대신 지붕을 엎었구나.”
“그 인간이 저를 살리려고 갈라섰대요. 그럼 살았으니까 다시 합쳐야죠.”
“그 말을 그놈이 했냐?”
“…아뇨. 대 위에서 소리 질렀어요.”
“그럼 그놈한테 다시 말하라고 해라. 대 위 말고 상 앞에서. 혼인은 징으로 하는 게 아니다. 상을 차리고 하는 거다. 단목 집 원로 자리가 둘 비었고 제자 열하나가 철기보로 갔다. 그 집 상을 다시 차리려면 너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야.”
설이 보자기를 풀었다. 안에 팥 월병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상은 이걸로 차려요.”
할머니가 또 웃었다.
*
해 질 녘에 대문 밖이 소란해졌다.
노득칠이 빗장을 풀자 철기보 무사 넷이 대문 양쪽에 갈라서 섰다. 이 사이로 황보진악이 들어왔다. 혼자 걷지 않았다. 황보진악의 등에 사람 하나가 업혀 있었다.
늙은 여자였다. 아주 늙었다. 할머니보다 열 살은 더 되어 보였고, 몸이 아이처럼 작게 말라 있었다. 흰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겼고, 검은 비단 옷을 입었다. 이 옷은 오래되어 소매 끝이 반들반들했다. 쉰다섯 먹은 철기보 보주가 이 늙은 여자를 업고 월하당 마당을 가로질렀다. 걸음이 아주 천천히, 업힌 사람이 흔들리지 않게 놓였다.
황보진악은 비무대 앞에서 멈췄다. 원의 홈 바로 바깥. 그리고 이층을 올려다보았다.
“추매화 당주, 내려오시오.”
할머니는 이미 계단에 서 있었다. 대추 주머니를 손에 쥐고. 할머니의 얼굴이 내가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늙은 얼굴이 더 늙어 보였다.
황보진악이 무릎을 꿇고 등의 사람을 돌바닥에 내려놓았다. 조심스럽게. 제 무사를 벨 때의 손과 같은 손이었다.
“사십 년 전, 이 마당에서 다 잃은 사람이오. 내 어머니요.”
늙은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이 눈이 비무대를 보았다. 돌바닥과 원의 홈과 회화나무의 징을. 그리고 계단 위의 할머니를 보았다.
“매화야.”
목소리가 마른 나뭇잎 같았다.
“네가 그날 그 징을 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