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508자)

대 위의 증인들

무림세가 부부의 이혼 비무는 내가 판정한다 · 강묵현

복면의 칼이 낮게 왔다⁠. 기와 위에서는 발을 넓게 벌릴 수 없어서⁠, 복면은 칼을 크게 휘두르지 않고 무릎 높이로 짧게 그었다⁠. 나는 뒤로 물러섰고⁠, 내 발밑에서 기와 한 장이 미끄러져 마당으로 떨어졌다⁠. 기와 깨지는 소리가 밤을 갈랐다⁠.

복면이 같은 자리에 다시 칼을 넣었다⁠. 처음 칼이 지나간 바로 이 길로⁠. 할머니가 짚었던 두 겹 벽이 떠올랐다⁠. 나는 징채를 칼날 앞에 세웠다⁠. 쇠심이 칼을 받는 소리가 귀를 찢었고⁠, 두 번째 칼의 무게가 징채를 타고 내 오른 손목까지 내려왔다⁠. 손목이 꺾일 뻔했다⁠.

복면은 나를 죽이러 온 사람이 아니었다⁠. 복면의 숨은 조급했다⁠. 내 뒤의 기와 구멍⁠, 이 아래 방에 누운 사람을 향한 숨이었다⁠. 나는 이 사이에 있었다⁠. 판정인이 선 자리는 늘 칼과 사람 사이다⁠.

복면의 왼손이 내 멱살을 잡으러 들어왔다⁠. 쇠장갑 비늘이 달빛에 번쩍였다⁠. 나는 피하지 않고 징채를 이 팔뚝에 내리쳤다⁠. 징채 머리에 두른 쇠테가 소매를 찢고 살을 긁었다⁠. 복면이 짧게 신음했다⁠. 비명이라기보다 이를 악문 소리였다⁠.

아래에서 문이 열렸다⁠. 동쪽 행랑에서 현이 맨손으로 뛰쳐나왔고⁠, 서쪽 행랑에서는 쌍도를 든 설이 맨발로 뛰쳐나왔다⁠. 둘이 마당 한가운데서 마주쳤다가 동시에 지붕을 올려다보았다⁠.

복면이 몸을 돌렸다⁠. 현은 용마루를 타고 북쪽으로 달렸다⁠. 북쪽 담 위에는 철기보 무사들이 열 걸음마다 서 있었다⁠. 복면이 이 담을 넘었다⁠. 무사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쇠장갑 하나 들어 올리지 않았다⁠.

나는 지붕 위에 주저앉았다⁠. 왼팔 상처가 다시 벌어져 소매가 젖어 있었다⁠. 아래 마당에서 설이 남편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있었다⁠.

“⁠당신 왜 방에서 자고 있었어⁠! 지붕에 칼 든 놈이 있는데⁠!⁠”

“⁠잠을 자야 하니까 방에서 자지⁠, 어디서 자오⁠?⁠”

“⁠나 같으면 안 자⁠!⁠”

“⁠당신도 방에서 자고 있었잖소⁠!⁠”

둘은 서로의 멱살을 잡은 채 한참 그렇게 서 있었다⁠. 이혼한 지 나흘째인 부부였다⁠. 마당 끝에서 노득칠이 굳은 혀로 중얼거렸다⁠.

“⁠…당두⁠, 내려오세요⁠. 사다리 가져갈게요⁠.⁠”

*

날이 밝자 대문간이 시끄러워졌다⁠. 내가 새벽에 노득칠을 보내 부른 사람들이 문 앞에 와 있었다⁠. 백결과 노득칠의 아우⁠, 그리고 공손 오라비와 공손가 사람들⁠. 철기보 무사들이 대문 앞을 쇠장갑으로 막고 서 있었다⁠.

“⁠판이 열리는 날은 부부 말고 아무도 안 들인다는 게 보주 명이오⁠.⁠”

“⁠판정인이 부른 증인이오⁠.⁠”

“⁠증인인지 자객인지 누가 아오⁠? 어젯밤에도 지붕에 자객이 들었다면서⁠.⁠”

무사의 목소리에 웃음이 섞였다⁠. 나는 이 무사의 쇠장갑을 보았다⁠. 비늘이 고르게 엮인 손등이었다⁠. 이 너머 대문 밖 의자에서 형당 집행관이 일어섰다⁠.

“⁠판정인의 증인을 문에서 막는 것은 판정인의 약조를 막는 것이오⁠. 그 약조는 맹이 백 년 가까이 지켜 온 것이고⁠.⁠”

집행관이 철패를 허리에서 풀어 손에 쥐었다⁠. 형당 집행관은 맹의 이름으로 말할 때 철패를 손에 쥔다⁠. 무사가 이 철패를 보고 비켜섰다⁠. 집행관은 나를 보지 않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나는 판정인 편이 아니오⁠. 약조 편이오⁠.⁠”

*

세 번째 판 날 아침⁠, 나는 징을 치기 전에 대 위에 섰다⁠.

관람석은 첫 판 날보다 더 찼다⁠. 철기보 무사들은 여전히 담 위에 있었고⁠, 형당 집행관은 대문 밖 의자에 있었다⁠. 동쪽 끝 기둥 옆에는 금실 술 달린 가마가 또 내려져 있었다⁠. 황보진악은 가마에서 열 걸음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셋째 판 전에 판정인이 보일 것이 있소⁠.⁠”

내 목소리가 담에 부딪혀 돌아왔다⁠.

“⁠어젯밤 이 집 지붕에 칼을 든 사람이 올라왔소⁠. 셋째 판에 설 사람을 노렸소⁠. 대 위에 설 사람이 대 위에 서지 못하면 그 판은 칼을 든 사람이 가르는 판이오⁠. 밖의 손이오⁠. 판정인은 그 손을 대 위에서 보이겠소⁠.⁠”

형당 집행관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나는 집행관을 불렀다⁠.

“⁠형당 집행관⁠, 원 바로 바깥까지 오시오⁠. 맹이 물을 일이면 맹이 보아야 하오⁠.⁠”

집행관은 잠시 서 있다가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철기보 무사들 사이를 지나 원의 홈 앞에 섰다⁠.

나는 증인을 하나씩 불렀다⁠.

석교문 백결이 올라왔다⁠. 오른손을 감은 무명을 풀자 손등의 비늘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딱지가 앉은 자리가 엇갈린 비늘 모양 그대로였다⁠. 뒤이어 백결의 아우가 올라왔다⁠. 맨손이었다⁠.

“⁠이 손을 누가 눌렀는지는 이 사람도 모르오⁠. 다만 쇠장갑이었소⁠. 그리고 이 사람이 그 쇠장갑의 수를 아오⁠.⁠”

아우가 말했다⁠. 이번에는 담 위의 얼굴들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셋째 숙부 가슴의 깊은 줄은 겹베기요⁠. 외당 무사의 수요⁠. 어젯밤 지붕에서 판정인에게 들어간 칼도 같은 자리에 두 번 들어갔다고 들었소⁠.⁠”

“⁠쫓겨난 자의 말이오⁠.⁠”

황보진악이 말했다⁠. 나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

노득칠이 올라왔다⁠. 혀는 아직 반쯤 굳어 있었다⁠.

“⁠어제 대 위에서 보인 혀요⁠. 겨울에 단목 가주의 혀도 이랬소⁠. 숙부가 달인 약사발과 철기보 찬합에서 나온 약과가 같은 혀를 만들었소⁠.⁠”

공손 오라비가 올라왔다⁠. 나는 어제 내 손에 쥐여 준 말머리 낙인 은자 꾸러미를 오라비의 발 앞에 내려놓았다⁠.

“⁠그 찬합을 내 손에 쥐여 준 사람이 철기보 보주요⁠. 공손가 대청에서⁠. 그때 대청에 있던 공손가 사람 열하나가 다 들었소⁠. 그 열하나가 다 이 마당에 와 있소⁠.⁠”

관람석 서쪽에서 공손가 사람들이 하나씩 일어섰다⁠. 열하나⁠. 늙은 집사부터 어린 하녀까지⁠.

황보진악이 처음으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나는 품 안쪽에서 기름종이를 꺼냈다⁠. 종이를 펴자 쇠비늘 하나가 내 손바닥 위에 놓였다⁠. 가장자리에 고리 구멍 둘이 뚫린⁠, 손톱만 한 쇠조각⁠.

“⁠셋째 숙부가 죽으면서 쥐고 있던 것이오⁠. 할머니가 어제 한낮에 그 손가락을 폈소⁠.⁠”

나는 담 위를 보았다⁠. 북쪽 담 모퉁이⁠. 이 무사는 오늘도 거기 서 있었다⁠. 오른손을 허리에 붙이고⁠, 왼손을 소매 안에 넣고⁠.

“⁠북쪽 모퉁이 철기보 무사⁠, 내려오시오⁠. 판정인이 증인으로 부르오⁠.⁠”

무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담 위의 다른 무사들이 무사를 보았다⁠. 관람석이 무사를 보았다⁠. 형당 집행관이 무사를 보았다⁠. 황보진악은 무사를 보지 않았다⁠.

“⁠내려가라⁠.⁠”

황보진악이 말했다⁠. 낮게⁠. 무사가 담에서 뛰어내려 대 앞으로 걸어왔다⁠. 원의 홈을 넘을 때 무사의 발이 잠깐 멈췄다⁠. 왼발이 무거웠다⁠. 어젯밤 기와 위에서 들었던 이 무게였다⁠.

“⁠왼팔 소매를 걷으시오⁠.⁠”

황보진악이 소매를 걷었다⁠. 팔뚝 바깥쪽에 손가락 두 개 길이의 상처가 있었다⁠. 붉게 부어 있었고⁠, 가장자리가 고르지 않았다⁠. 칼이 아니라 둥근 쇠테가 긁고 지나간 자국이었다⁠. 나는 징채를 들어 이 머리의 쇠테를 상처 옆에 댔다⁠. 쇠테의 둥근 모양이 상처의 휜 모양과 같았다⁠.

“⁠쇠장갑도⁠.⁠”

황보진악이 왼손을 내밀었다⁠. 손등 비늘 줄 하나에 이가 빠진 자리가 있었다⁠. 고리 둘이 벌어진 채 남아 있었다⁠.

나는 쇠비늘을 이 빈자리에 갖다 댔다⁠. 고리 구멍이 고리 끝에 걸렸다⁠. 손끝으로 눌렀다⁠.

딸깍⁠.

이 소리는 작았다⁠. 놋쇠 징 소리의 백분의 일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런데 이층 회랑 맨 끝까지 들렸다⁠. 관람석에 숨 쉬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

다음 일은 숨 한 번 사이에 일어났다⁠.

황보진악이 일어섰다⁠. 일어서는 소리를 나는 들었고⁠, 이 소리가 내 귀에 닿았을 때 이미 원의 홈 바로 바깥에 와 있었다⁠. 쉰다섯 사내의 걸음이 아니었다⁠. 황보진악의 허리에서 칼이 나왔다⁠. 곧고 넓은 칼이었다⁠. 원 안으로 발을 들이지 않고 홈 바깥에서⁠, 홈 바로 안쪽에 선 제 무사의 등을 그었다⁠. 한 번⁠, 그리고 같은 자리에 한 번 더⁠.

무사가 앞으로 쓰러졌다⁠. 무사의 몸이 돌바닥에 닿기 전에 내 징채가 반쯤 올라가 있었다⁠. 판정인은 대 위에서 죽이는 수를 몸으로 막는다⁠. 부부 사이의 칼을⁠. 이 칼은 부부 사이의 칼이 아니었다⁠. 원 밖에서 원 안으로 들어온 칼이었다⁠. 내 몸은 거기까지 가지 못했다⁠.

피가 원의 홈을 따라 흘렀다⁠. 홈은 둥글어서 피도 둥글게 흘렀다⁠.

“⁠철기보 외당 무사가 제 마음대로 저지른 일이오⁠.⁠”

황보진악이 칼을 닦으며 말했다⁠. 형당 집행관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철기보는 제 사람의 죄를 제 손으로 끝내오⁠. 맹의 손을 빌리지 않고⁠. 판정인 덕에 철기보 안의 썩은 쇠를 도려냈소⁠. 고맙소⁠.⁠”

나는 황보진악을 보았다⁠. 황보진악은 나를 보았다⁠. 황보진악의 숨은 고르지도 들쭉날쭉하지도 않았다⁠. 처음 들어 보는 숨이었다⁠. 숨이 아니라 바위가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보주가 시켰다고 말할 입을 보주가 닫았소⁠.⁠”

“⁠판정인은 들은 말만 판정한다고 했지⁠. 이제 아무도 아무 말도 안 하오⁠.⁠”

동쪽 끝 기둥 옆에서 금실 술 가마가 들렸다⁠. 가마꾼 넷이 소리 없이 가마를 메고 대문을 나갔다⁠. 아무도 이 가마를 막지 않았다⁠.

형당 집행관이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셋째 숙부를 죽인 깊은 줄은 이 자의 칼이오⁠. 맹은 그렇게 보겠소⁠. 그럼 얕은 줄은⁠?⁠”

설이 대 위로 올라왔다⁠. 세 번째 판에 오를 사람이라 원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맨발이 아니었다⁠. 신을 신고 있었다⁠.

“⁠얕은 줄은 내가 그었어⁠. 그 영감이 내 약사발에 뭘 넣었는지 웃으면서 말할 때⁠. 살갗만⁠. 죽이려면 그때 죽였어⁠.⁠”

관람석이 술렁였다⁠. 집행관이 단목 원로들 쪽을 보았다⁠. 원로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이 대 위로 올라와 아내 옆에 섰다⁠.

“⁠단목 가주로서 말하오⁠. 숙부 살갗 벤 일은 단목 집안 일이오⁠. 단목은 묻지 않겠소⁠.⁠”

집행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문 밖 의자로 돌아가지 않았다⁠. 의자를 접게 했다⁠.

*

세 번째 판은 이 피가 홈에서 다 마르기도 전에 열렸다⁠. 노득칠이 물을 길어다 돌바닥을 씻었고⁠, 판정인이 판을 미룰 까닭은 없었다⁠.

대 위에는 단목 저택의 대문 열쇠 하나만 남아 있었다⁠.

징이 울렸다⁠.

이번에는 아무도 늦지 않았다⁠. 현의 발도⁠, 설의 발도⁠. 둘 다 이기려고 싸웠다⁠. 반쪽 검법끼리 맞붙었다⁠. 앞의 여섯 식과 뒤의 여섯 식이 대 위에서 만나 한 권이 되었다가 다시 갈라졌다⁠.

“⁠저택은 당신 가져⁠! 거기 숙부 냄새 나⁠!⁠”

“⁠그럼 왜 이렇게 세게 하오⁠!⁠”

“⁠마지막이니까⁠!⁠”

설의 숨이 빨랐다⁠. 쇳소리는 없었다⁠. 다만 겨우내 앓은 몸이라 숨이 칼보다 먼저 지쳤다⁠. 현의 장검이 설의 오른 칼을 감아 돌렸고⁠, 설의 발이 원의 홈 쪽으로 한 걸음 밀렸다⁠. 한 걸음 더⁠. 설의 뒤꿈치가 홈 위에 걸렸다⁠.

현이 칼을 거두었다⁠. 밀지 않았다⁠. 설이 스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신발 뒤꿈치가 홈 너머 돌바닥에 닿았다⁠.

나는 징을 쳤다⁠.

“⁠셋째 판⁠, 단목 저택은 단목현에게 가오⁠.⁠”

그리고 한 번 더 쳤다⁠. 길게⁠. 마지막 징이었다⁠. 판이 다 갈렸다는 소리였다⁠.

*

마지막 징이 다 사라지기 전에 대 앞으로 발소리가 몰려왔다⁠. 이번에는 횃불도 칼도 없었다⁠. 단목세가 제자 마흔이 대 앞에 섰다⁠. 스물 남짓부터 서른 남짓까지⁠, 열여덟 해 동안 현에게 칼을 배우고 설에게 쌍도를 배운 사람들이었다⁠.

판이 다 갈리면 제자들 차례였다⁠. 제자는 나눌 몫이 아니라 제 발로 걷는 사람이다⁠.

관람석 동쪽 끝에서 황보진악이 다시 앉아 있었다⁠. 칼을 닦은 수건을 무릎 위에 개켜 놓고 말했다⁠.

“⁠판정인⁠, 하나 알려 드리리다⁠. 저 마흔 가운데 몇은 이미 내 사람이오⁠. 언제부터인지는 저들이 제 발로 보여 줄 거요⁠.⁠”

8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