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81자)

사십 년 전의 징

무림세가 부부의 이혼 비무는 내가 판정한다 · 강묵현

할머니가 계단을 다 내려오는 데 숨 열 번이 걸렸다⁠. 나는 이 숨을 하나씩 들었다⁠. 열 번 모두 들쭉날쭉했다⁠.

할머니는 비무대 앞 돌바닥에 앉은 늙은 여자 앞으로 갔다⁠. 그리고 이 앞에 마주 앉았다⁠. 일흔과 여든이 원의 홈 바로 바깥에서 무릎을 맞대고 앉았다⁠. 황보진악은 제 어머니 뒤에 섰다⁠. 노득칠은 부엌 문간에서 행주를 쥔 채 움직이지 않았다⁠.

“⁠쳤어요⁠.⁠”

할머니가 말했다⁠.

노부인의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다⁠.

“⁠사십 년 동안 그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다⁠. 네 입으로⁠.⁠”

“⁠언니 숨에서 쇳소리가 났어요⁠. 셋째 판 중간에⁠. 칼이 반 박자 늦게 나오고⁠, 손가락이 칼자루 위에서 펴졌다 오므라들었어요⁠. 나는 그 소리를 들었어요⁠. 듣고도 징을 쳤어요⁠.⁠”

나는 할머니의 등을 보았다⁠. 이틀 전 내가 대 위에서 들은 설의 숨을⁠, 할머니도 이층 난간에서 들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이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게 판정인 자리라고만 했다⁠.

“⁠왜 쳤는지도 말해라⁠.⁠”

노부인의 목소리는 여전히 마른 나뭇잎 같았다⁠. 그런데 이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지 않았다⁠.

할머니가 대추 주머니를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판 사흘 전에 우리 아들이 없어졌어요⁠. 열 살이었어요⁠. 철기보 보주가 사람을 시켜 말 구경을 시켜 준다고 데려갔다고 했어요⁠. 판이 끝나면 데려다주겠다고⁠. 셋째 판 날 아침에 철기보 무사 하나가 관람석에 앉아서⁠, 그 애가 갖고 놀던 나무 말을 손에 쥐고 있었어요⁠.⁠”

나는 숨을 멈췄다⁠. 열 살 난 이 아이는 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내가 일곱 살 때 돌아가셨고⁠, 나는 아버지가 어릴 때 말을 무서워했다는 것만 알았다⁠.

“⁠그 애는 판이 끝난 날 저녁에 돌아왔어요⁠. 말을 실컷 탔다고 웃으면서⁠. 나는 그 애를 안고 밤새 울었고⁠, 이튿날 언니가 철기보를 떠났다는 말을 들었어요⁠. 아이 둘을 데리고⁠, 옷 한 벌만 입고⁠.⁠”

“⁠아이 둘이었지⁠.⁠”

노부인이 고개를 조금 돌려 뒤에 선 아들을 보았다⁠.

“⁠열다섯 난 이 애하고⁠, 젖먹이 딸 하나⁠. 그 딸이 지금 맹주 부인이다⁠.⁠”

나는 황보진악을 보았다⁠. 황보진악은 어머니의 정수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판이 열리는 날마다 맹주 부인의 가마가 황보진악에게서 열 걸음 떨어진 자리에 내려져 있었다⁠. 황보진악은 이 가마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 너무 한 번도⁠.

“⁠돈은 받았냐⁠?⁠”

“⁠안 받았어요⁠.⁠”

“⁠그럼 판 거냐⁠, 안 판 거냐⁠?⁠”

할머니가 대추 주머니를 쥐었다⁠.

“⁠팔았어요⁠. 돈 대신 아들을 받고 판 거예요⁠. 이 집 법은 판정이 팔렸으면 간판을 내리라고 해요⁠. 무엇에 팔렸는지는 묻지 않아요⁠.⁠”

노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업혀 온 뒤 처음으로 몸을 돌려 아들을 올려다보았다⁠.

“⁠그날 내 숨에서 났던 쇳소리⁠, 그게 무슨 약이었는지 나는 철기보를 나오고 십 년 뒤에 알았다⁠. 네 아비가 쓰던 약이다⁠. 쓴 뿌리를 빻아 약과나 약사발에 넣는⁠.⁠”

황보진악은 입을 열지 않았다⁠.

“⁠단목 집 며느리 숨에서 그 소리가 났다는 말을 나는 어제 장에서 들었다⁠. 낙양 사람들이 다 하는 말이더구나⁠. 그래서 너한테 업어 달라고 했다⁠. 이 마당에 오려고⁠.⁠”

“⁠어머니⁠.⁠”

“⁠네 아비 약을 네가 꺼냈냐⁠?⁠”

마당이 조용했다⁠. 황보진악의 숨이 내 귀에 들어왔다⁠. 바위 같은 숨이었다⁠. 그런데 이 바위 밑에서 무언가 아주 작게 굴렀다⁠.

“⁠아버지가 그 약으로 어머니한테서 다 가져갔습니다⁠. 저는 그 약으로 다 돌려받으려는 겁니다⁠.⁠”

“⁠누구한테서⁠?⁠”

황보진악은 대답하지 않았다⁠. 노부인이 다시 할머니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 등이 아들을 향해 있었다⁠.

*

황보진악이 어머니 뒤에서 앞으로 나섰다⁠. 원의 홈 바로 바깥⁠, 늘 서던 자리였다⁠.

“⁠들었소⁠, 판정인⁠?⁠”

“⁠들었소⁠.⁠”

“⁠그럼 간판을 내리시오⁠. 무림이 보는 앞에서⁠. 내가 맹 원로들을 불러 오리다⁠. 낙양 세가들도⁠, 무림맹 형당도⁠. 월하당 이대째 당주가 판정을 팔았다고⁠, 삼대째 당주가 그 간판을 제 손으로 내리는 걸 다 보게 하겠소⁠.⁠”

“⁠그게 사십 년 동안 하고 싶던 일이오⁠?⁠”

“⁠사십 년 동안 하고 싶던 일은 따로 있소⁠.⁠”

황보진악이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마당에 있는 사람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만⁠.

“⁠판정인이 하나 알아야 할 게 있소⁠. 맹주 부부가 갈라서기로 했소⁠. 내 누이가 청했고⁠, 맹주가 받았소⁠. 맹의 이혼은 낙양 관례대로 월하당이 가르게 될 거요⁠. 그 판에 내 누이가 올릴 것이 있소⁠. 맹 총단이 선 땅이오⁠. 스무 해 전 철기보가 사서 누이의 혼수로 보낸 땅⁠.⁠”

“⁠그 땅을 누이가 이기게 가르라는 거요⁠?⁠”

“⁠그렇게 가르면 오늘 이 마당의 일은 이 마당 안에서 끝나오⁠. 무림은 듣지 못하오⁠. 할머님 이름도⁠, 간판도⁠, 그대로 남소⁠.⁠”

황보진악이 처음 판정비를 내밀던 날처럼⁠, 이 말을 크게 하지 않았다⁠. 크게 하지 않아도 마당이 조용해서 다 들렸다⁠.

나는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나를 보지 않았다⁠. 노부인을 보고 있었다⁠. 노부인은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었다⁠.

“⁠판정을 사겠다는 거요⁠.⁠”

“⁠판정인 집 빚을 갚아 주겠다는 거요⁠. 사십 년 묵은 빚을⁠.⁠”

나는 대 위를 보았다⁠. 돌바닥⁠, 원의 홈⁠, 회화나무의 징⁠. 판을 사겠다는 사람은 늘 판정인이 제일 편해지는 값을 부른다⁠. 증조할머니가 집안 법을 정할 때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을 것이다⁠.

“⁠안 사오⁠.⁠”

“⁠판정인이 안 파는 거겠지⁠.⁠”

“⁠그 말이 그 말이오⁠.⁠”

*

간판은 여드레째 대문 안쪽 벽에 기대 서 있었다⁠. 공손설이 줄을 끊은 이 밤부터⁠. 단목 판의 판정비로 새 줄을 사서 다시 걸 생각이었다⁠. 판이 끝나면⁠.

나는 이 간판 앞으로 갔다⁠. 다친 왼팔과 오른팔로 간판 양쪽 끝을 잡았다⁠. 증조할머니가 회화나무 판에 새긴 석 자⁠. 처음 받아 낼 때보다 더 무거웠다⁠. 왼팔 상처가 당겨서 이가 저절로 악물렸다⁠.

“⁠당주⁠, 당주⁠. 뭐 하세요⁠?⁠”

노득칠이 부엌에서 뛰어나왔다⁠. 내 앞을 막지 못하고 간판 아래쪽 귀퉁이에 손을 넣어 무게를 나눠 들었다⁠. 막으러 나와서 같이 들었다⁠.

“⁠간판 없으면 손님이 문을 못 찾아요⁠.⁠”

“⁠손님은 간판 보고 오는 게 아니야⁠. 판 보고 오는 거야⁠.⁠”

“⁠그럼 판은 누가 봐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노득칠과 둘이서 간판을 들고 마당을 가로질렀다⁠. 비무대 앞⁠, 노부인이 앉은 자리까지⁠. 그리고 이 발 앞 돌바닥에 내려놓았다⁠. 석 자가 위를 보게⁠.

황보진악의 숨이 한 번 끊겼다⁠. 황보진악이 바라던 것은 무림이 보는 앞에서 내가 이것을 내리는 일이었다⁠. 무림은 여기 없었다⁠. 늙은 여자 하나와 두꺼비 하나와 이층 난간의 바람뿐이었다⁠.

“⁠이 집 법은 판정이 팔렸으면 제 손으로 간판을 내린다고 했습니다⁠. 내렸습니다⁠.⁠”

나는 노부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판은 할머님이 진 판이 아니라 이 집이 진 판입니다⁠. 이 간판을 다시 걸지 말지는 할머님이 정하십시오⁠. 그 전에는 이 집에 간판이 없습니다⁠.⁠”

노부인이 눈을 떴다⁠. 이 눈이 내 얼굴을 지나 간판으로 내려갔다⁠. 손을 뻗어 석 자 가운데 첫 자를 손끝으로 짚었다⁠. 손끝이 홈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사십 년 전 이 마당에 들어올 때도 이 글자를 올려다보았을 것이다⁠.

“⁠무거운 것을 왜 나한테 주냐⁠?⁠”

“⁠무거워서 드립니다⁠.⁠”

노부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끝을 글자 위에 얹은 채로 있었다⁠.

할머니가 일어섰다⁠. 무릎이 뚝 소리를 냈다⁠. 할머니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 얼굴은 화가 나 있었다⁠. 일흔 해 동안 들었던 어떤 훈수보다 화가 난 얼굴이었다⁠.

“⁠그건 내 빚인데 왜 네가 내리냐⁠?⁠”

“⁠간판은 집 거예요⁠. 할머니 것도 제 것도 아니고⁠.⁠”

“⁠내가 지고 갈 거였다⁠. 무덤까지⁠.⁠”

“⁠그럼 무덤에서도 대추 씹으면서 훈수 두셨겠죠⁠. 판정 팔린 집 간판 아래서⁠.⁠”

할머니가 손을 들었다⁠. 나를 때리려는 손인 줄 알았다⁠. 이 손이 내 정수리에 얹혔다⁠. 아주 무겁게⁠.

*

황보진악은 어머니를 다시 업었다⁠. 노부인은 업히면서도 손을 간판에서 늦게 뗐다⁠. 대문으로 가다가 돌아섰다⁠.

“⁠간판 없는 집 아이가 맹주 부부의 판을 가를 수 있는지 봅시다⁠. 맹 원로들은 간판을 보고 판정인을 부르오⁠.⁠”

“⁠그럼 원로들이 다른 집을 부르겠지⁠.⁠”

“⁠낙양에 이혼을 가르는 집은 월하당 하나요⁠. 이제는 하나도 없고⁠.⁠”

황보진악이 나간 뒤 마당에 간판만 남았다⁠.

어두워질 무렵 단목현이 왔다⁠. 손에 팥 월병 보자기를 들고⁠,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고⁠. 대문을 들어서다 비무대 앞 돌바닥에 누운 간판을 보고 멈췄다⁠. 한참 이 석 자를 내려다보았다⁠.

“⁠할머님께 청할 일이 있어 왔는데⁠, 오늘은 아닌 것 같소⁠.⁠”

“⁠오늘은 아니오⁠.⁠”

단목현이 보자기를 노득칠에게 건넸다⁠.

“⁠그럼 이건 두꺼비에게⁠. 상은 다음에 차리겠소⁠.⁠”

노득칠이 보자기를 받아 들고 나를 보았다⁠. 먹어도 되느냐는 눈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보자기를 부엌 선반 맨 위에 올렸다⁠. 찬합이 있던 자리였다⁠. 이 자리를 한 번 보고⁠, 보자기를 내려 제 품에 안았다⁠.

현은 돌아서다가 간판 쪽을 한 번 더 보았다⁠.

“⁠판정인⁠, 단목 집 대문에는 이제 말머리 자물쇠 대신 우리 열쇠가 걸려 있소⁠. 그 열쇠를 건넨 손이 간판보다 낫다는 걸 낙양 세가들은 아오⁠.⁠”

“⁠세가들이 아는 것과 맹 원로들이 아는 것은 다르오⁠.⁠”

“⁠그럼 원로들 앞에 세가들을 세우면 되오⁠. 판정인이 대 위에 증인을 세우듯이⁠.⁠”

현은 이 말을 남기고 갔다⁠. 돌바닥 위에⁠, 비무대 앞에⁠, 석 자가 하늘을 보고⁠.

이날 밤 나는 할머니 방에 가지 않았다⁠. 할머니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다만 축시가 넘어 마당에 나가 보니⁠, 할머니가 간판 옆 돌바닥에 앉아 있었다⁠. 무릎에 담요를 덮고⁠, 대추를 씹지 않고⁠. 간판에 이슬이 앉지 않게 소매로 글자를 덮고 있었다⁠.

*

이튿날 아침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철기보 쇠장갑 소리가 아니었다⁠. 나무 패로 문을 세 번 두드리는 소리였다⁠.

노득칠이 빗장을 풀자 흰 옷을 입은 사내가 들어왔다⁠. 허리에 형당 철패가 아니라 무림맹 총단의 은패를 찼다⁠. 맹의 사자였다⁠. 사자가 마당에 놓인 간판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가⁠, 이 옆을 비켜 비무대 앞까지 와서 섰다⁠.

“⁠월하당 추하랑이 누구요⁠?⁠”

“⁠내가 추하랑이오⁠.⁠”

사자가 품에서 나무 패 하나를 꺼냈다⁠. 검게 옻칠한 패에 맹주의 인이 새겨져 있었다⁠. 이 패를 두 손으로 내 앞에 내밀었다⁠.

“⁠맹주와 맹주 부인의 이혼 비무 판정을 맡기오⁠. 월하당에 맡기는 것이 아니오⁠. 맹주께서 이렇게 전하라 하셨소⁠. 간판이 아니라 단목 판을 가른 사람에게 맡긴다고⁠. 맹주 부인께서도 같은 사람을 청하셨소⁠.⁠”

나는 패를 받지 않았다⁠. 아직⁠. 이 패 너머로 대문 밖 골목이 보였다⁠. 골목 끝에 사람 하나가 서 있었다⁠. 쇠가락지 낀 손을 소매 안에 넣고⁠.

황보진악이 이 골목 끝에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황보진악의 숨이 거기까지 들릴 리 없었다⁠. 그런데 나는 들었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고르지도 들쭉날쭉하지도 않은 이 바위 같은 숨이 한 번 갈라지는 소리를⁠.

맹주 부인이 같은 사람을 청했다⁠. 황보진악의 누이가⁠, 황보진악에게 묻지 않고⁠.

나는 패를 받았다⁠. 옻칠한 나무가 손바닥에 차가웠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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