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70자)

겹베기

무림세가 부부의 이혼 비무는 내가 판정한다 · 강묵현

횃불 기름이 타는 소리가 마당을 채웠다⁠. 단목 무사 열둘이 비무대를 반쯤 에워쌌고⁠, 이들의 칼끝이 모두 서쪽 행랑을 향해 있었다⁠.

나는 들것과 서쪽 행랑 사이에 섰다⁠.

“⁠첫 징부터 마지막 징까지 부부는 이 문 안에 있소⁠. 누구도 데려가지 못하오⁠. 낙양 세가와 무림맹이 백 년 가까이 지켜 온 약조요⁠.⁠”

“⁠살인자도 말이냐⁠?⁠”

“⁠약조에 살인자는 빼고라는 말은 없소⁠.⁠”

원로 하나가 칼을 반쯤 뽑았다⁠. 칼날이 칼집을 긁는 소리가 길었다⁠. 이 소리가 다 끝나기 전에 동쪽 행랑에서 현이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칼을 차지 않았다⁠. 맨손으로 원로와 서쪽 행랑 사이⁠, 내 옆에 와서 섰다⁠.

“⁠칼 넣으시오⁠.⁠”

“⁠가주가 숙부를 죽인 계집 편을 드오⁠?⁠”

“⁠나는 판정인 편을 드오⁠. 판이 끝나지 않았소⁠.⁠”

원로는 칼을 넣지 않았다⁠. 그러나 더 뽑지도 않았다⁠. 현의 목소리는 낮았는데⁠, 단목 무사들이 이 목소리에 하나씩 칼끝을 내렸다⁠. 오래 이 집 가주였던 목소리였다⁠. 설은 문지방에 선 채 남편의 뒤통수를 보고 있었다⁠. 설의 맨발이 문지방을 조금 넘어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

할머니가 이층에서 내려왔다⁠. 계단을 내려오는 데 한참이 걸렸고⁠, 그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들것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거적을 숙부의 허리까지 걷었다⁠.

“⁠등잔 하나 더 가져와라⁠.⁠”

노득칠이 등잔을 들고 왔다⁠. 손이 떨려 불빛이 시신 위에서 흔들렸다⁠. 할머니가 이 손목을 잡아 고정시켰다⁠.

엇갈린 두 줄은 같은 칼이 그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온 줄은 얕았다⁠. 살갗과 이 아래 기름만 갈랐고⁠, 끝으로 갈수록 살짝 휘어 있었다⁠. 휘어진 칼날이 지나간 자리였다⁠. 왼쪽 어깨에서 내려온 줄은 깊었다⁠. 갈비뼈가 드러날 만큼 깊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곧았다⁠.

할머니가 깊은 줄의 벽을 손톱으로 짚었다⁠.

“⁠봐라⁠. 벽이 두 겹이다⁠. 한 번 그어서 벌어진 자리에 같은 칼을 다시 넣었다⁠. 처음 칼은 살을 열고⁠, 두 번째 칼이 뼈까지 갔어⁠. 쌍도는 두 자루라 두 줄이 나란히 나오지⁠, 한 자리에 두 번 들어가지 않는다⁠.⁠”

“⁠칼이 다르다는 거요⁠?⁠”

“⁠칼도 다르고 손도 다르다⁠. 얕은 줄을 그은 손은 죽일 생각이 없었다⁠. 깊은 줄을 그은 손은 그것만 생각했고⁠.⁠”

할머니가 숙부의 오른손을 들어 보았다⁠. 주먹이 꽉 쥐여 있었다⁠. 할머니가 손가락을 펴려 했지만 펴지지 않았다⁠. 죽은 지 몇 시진이 지난 손은 쇠처럼 굳는다⁠.

“⁠이 주먹은 내일 한낮이 지나야 풀린다⁠. 그때 다시 보자⁠. 죽는 사람이 마지막에 쥔 건 대개 끝까지 놓고 싶지 않은 거다⁠.⁠”

원로가 코웃음을 쳤다⁠.

“⁠월하당 할망구가 시체 손금도 보나⁠?⁠”

할머니가 대추를 하나 꺼내 입에 넣었다⁠.

“⁠사십 년 전에는 산 사람 손금도 봤다⁠.⁠”

*

해가 뜨자 공손 오라비가 왔다⁠. 공손가 무사 스물을 데리고⁠.

오라비는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서쪽 행랑으로 곧장 걸어갔고⁠, 단목 무사들이 이 앞을 막았다⁠. 공손가 무사들이 칼을 뽑았다⁠. 단목 무사들도 뽑았다⁠. 마당에서 마흔 자루 칼이 한꺼번에 칼집을 떠나는 소리가 났다⁠. 담 위에 올라앉았던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골목으로 떨어졌다⁠.

“⁠누이를 데려가겠소⁠. 살인 누명을 쓴 누이를 단목 놈들 칼 밑에 두고 볼 수는 없소⁠.⁠”

“⁠혼수 팔아먹은 오라비가 이제 와서 누이 걱정이오⁠?⁠”

현이 그렇게 말했다⁠. 아까 원로 앞에서 낮던 목소리가 이번에는 높았다⁠. 공손 오라비의 얼굴이 붉어졌다⁠.

“⁠단목 집에서 내 누이가 겨우내 앓았소⁠. 누가 알았겠소⁠, 이 집 숙부가 먼저 죽을 줄은⁠.⁠”

열여덟 해 한쪽을 겨누던 두 집의 칼이 이제 서로를 겨누고 있었다⁠. 나는 이 칼들 한가운데 서 있었고⁠, 내 손에는 징채 하나뿐이었다⁠. 마흔 자루 칼 앞에서 징채는 젓가락만 했다⁠.

이때 대문에서 쇠장갑 부딪는 소리가 났다⁠. 쩔걱⁠, 쩔걱⁠.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황보진악이 철기보 무사 서른을 거느리고 들어왔다⁠. 황보진악의 곁에 검은 관복 같은 옷을 입은 사내가 하나 따라왔다⁠. 허리에 무림맹 형당의 철패가 매달려 있었다⁠. 맹 안에서 죄를 묻고 벌을 집행하는 곳이 형당이고⁠, 이 철패를 찬 사람은 형당의 집행관이었다⁠.

“⁠두 집이 서로 칼을 들면 낙양이 시끄러워지오⁠.⁠”

황보진악이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오며 말했다⁠. 두 집 무사들 사이를⁠, 칼끝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아무도 황보진악을 베지 않았다⁠.

“⁠철기보가 중간에 서겠소⁠. 오늘부터 마지막 징까지 내 무사들이 이 집 담을 두르고 대문을 지키겠소⁠. 단목도 공손도 이 문 안에 칼을 들이지 못하게⁠. 판정인이 지키려는 약조를 철기보가 대신 지켜 드리는 거요⁠.⁠”

“⁠그럴 필요 없소⁠.⁠”

“⁠필요한지는 저 두 집이 정할 일이오⁠.⁠”

황보진악이 공손 오라비를 보았다⁠. 오라비는 단목 원로를 보았다⁠. 단목 원로는 공손 무사들의 칼끝을 보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가 서로를 철기보보다 더 믿지 못했다⁠.

형당 집행관이 앞으로 나섰다⁠.

“⁠낙양 세가 사이의 살인은 무림맹이 묻는 일이오⁠. 판정인의 약조는 맹도 아오⁠. 그러니 마지막 징까지는 기다리겠소⁠. 마지막 징이 울리는 그 순간 공손설을 데려가겠소⁠.⁠”

집행관은 대문 밖⁠, 문간 바로 바깥에 의자를 놓게 하고 거기 앉았다⁠. 철기보 무사들이 담을 따라 늘어섰다⁠. 쇠장갑이 담장 기와를 짚을 때마다 쇳소리가 났다⁠. 월하당 담 안에서 이 쇳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은 없었다⁠.

나는 황보진악에게 다가갔다⁠.

“⁠우리 집 담을 철기보가 둘렀소⁠.⁠”

“⁠판정인 집을 지켜 드리는 거요⁠.⁠”

“⁠우리 집에 드나드는 사람이 이제 다 철기보 무사들 사이를 지나오오⁠.⁠”

“⁠그러니 안전하지 않겠소⁠?⁠”

황보진악은 웃지 않았다⁠. 웃지 않는 얼굴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할머니가 말한 적이 있었다⁠. 황보진악이 고개를 들어 이층을 보았다⁠. 할머니는 난간에 없었다⁠.

*

이 담이 무엇인지는 한낮이 되기 전에 드러났다⁠. 노득칠이 장에 가려고 참외 바구니를 끼고 대문을 나서자⁠, 철기보 무사 둘이 바구니를 빼앗아 참외를 하나씩 꺼내 쪼갰다⁠. 칼을 숨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참외 열두 개가 문간 돌바닥에 쪼개져 굴렀다⁠. 노득칠은 쪼개진 참외 앞에 쪼그려 앉아 한참 말이 없다가⁠, 무사의 쇠장갑을 올려다보았다⁠.

“⁠이거 다 사 가요⁠. 쪼갠 건 판 거예요⁠. 낙양 법이 그래요⁠.⁠”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월하당 문 앞 법이요⁠. 여기가 판 가르는 집이잖아요⁠.⁠”

무사가 발로 밀었다⁠. 노득칠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쪼개진 참외 위에 앉았다⁠. 담 위의 무사들이 웃었다⁠. 나는 대문간에 서서 이 웃음소리를 하나씩 들었다⁠. 서른 사람의 웃음 가운데 셋이 웃지 않았다⁠. 이 셋은 숨만 쉬면서 노득칠이 아니라 서쪽 행랑 쪽을 보고 있었다⁠.

노득칠은 일어나서 참외 값을 받지 못한 채 쪼개진 참외를 도로 바구니에 주워 담았다⁠. 그리고 부엌으로 들어가며 내게만 들리게 말했다⁠.

“⁠당주⁠, 저 사람들 이 집 밥을 다 세고 있어요⁠. 누가 몇 그릇 먹는지까지⁠.⁠”

*

나는 판정인이라 문 밖에 나갈 수 있었다⁠. 철기보 무사들 사이를 지나 대문을 나서는데⁠, 형당 집행관이 의자에서 고개를 들었다⁠.

“⁠판정인⁠, 증인이라도 구하러 가오⁠?⁠”

“⁠국밥 먹으러 가오⁠.⁠”

나루 방앗간 앞에서 백결의 아우는 쌀가마 대신 소금 자루를 지고 있었다⁠. 맨손바닥에 굳은살 대신 물집이 잡혀 있었다⁠. 내가 불러도 자루를 내려놓지 않았다⁠.

“⁠철기보 일에는 다시 안 끼오⁠.⁠”

부엌에서 문채가 국자를 들고 나왔다⁠.

“⁠끼어⁠. 판정인이 내 목 대신 팔을 내준 집이야⁠. 안 끼면 품삯 없어⁠.⁠”

아우는 소금 자루를 내려놓았다⁠. 문채가 아우의 등을 국자로 한 대 쳤다⁠.

월하당으로 돌아와 아우가 들것 앞에 섰을 때⁠, 철기보 무사들이 담 위에서 아우를 내려다보았다⁠. 열 해를 같이 쇠장갑을 꼈던 얼굴들이었다⁠. 아우는 이 눈들을 등에 지고 시신 위로 몸을 숙였다⁠. 그리고 깊은 줄을 한참 보았다⁠.

“⁠겹베기요⁠.⁠”

아우가 말했다⁠. 크지 않게⁠.

“⁠외당 무사들이 쓰는 수요⁠. 쇠 갑옷 입은 상대를 한 번에 못 가르니까⁠, 한 번 그어 벌린 자리에 다시 칼을 넣소⁠. 외당에 들면 첫 해에 배우오⁠. 나도 배웠소⁠. 쌍도로는 이렇게 안 나오오⁠.⁠”

마당이 조용해졌다⁠. 황보진악이 담 그늘에서 걸어 나왔다⁠.

“⁠보에서 쫓겨난 자의 말이오⁠. 철기보에 원한이 있는 자요⁠.⁠”

형당 집행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쫓겨난 자의 말은 증언이 되지 않소⁠. 판정인⁠, 사람 말 말고 다른 것을 보이시오⁠.⁠”

아우가 입을 다물었다⁠. 담 위의 쇠장갑들을 한 번 올려다보고⁠, 다시 나루로 돌아갔다⁠. 문간을 나서다 내 쪽을 돌아보았다⁠.

“⁠얕은 줄은 겹베기가 아니오⁠. 그건 다른 손이오⁠.⁠”

*

저녁에 나는 할머니 방에 갔다⁠. 할머니는 창가에 앉아 대추를 한 알도 씹지 않고 손에 쥐고만 있었다⁠.

“⁠사십 년 전에 그 사람이 이 마당에 섰다고 했어요⁠. 그때도 징이 울렸다고⁠.⁠”

“⁠울렸지⁠.⁠”

“⁠누구 판이었어요⁠?⁠”

할머니가 대추를 쥔 손을 폈다⁠. 대추가 손바닥 위에서 굴렀다⁠.

“⁠그 집 일은 내가 진 빚이다⁠. 지금은 묻지 마라⁠. 지금 네 대 위에는 다른 부부가 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판정인은 판 하나를 끝내기 전에 다른 판을 열지 않는다⁠. 이것도 할머니가 가르친 일이었다⁠.

나는 동쪽 행랑으로 가서 현의 말을 따로 들었다⁠. 현은 반쪽 검보를 무릎 위에 펴 놓고 앉아 있었다⁠. 앞의 여섯 식이 그려진 쪽이었다⁠. 그림 속 사람은 칼을 들고 있었고⁠, 이 칼끝이 찢어진 자리에서 끊겨 있었다⁠.

“⁠어젯밤 축시쯤 서쪽 문지방 소리를 들었소⁠?⁠”

“⁠못 들었소⁠.⁠”

숨이 골랐다⁠. 현은 거짓말을 할 때 귀만 붉어지는 것이 아니라 손이 멈췄다⁠. 검보 귀퉁이를 만지던 손가락이 이 말과 함께 멈춰 있었다⁠.

“⁠가주는 축시에 깨어 있었소⁠. 동쪽 행랑 등잔 기름이 반 넘게 줄었소⁠.⁠”

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다시 움직이지도 않았다⁠. 한참 뒤에 현이 말했다⁠.

“⁠판정인⁠, 내가 그 소리를 들었다고 하면 내 아내가 대문 밖 의자로 가오⁠. 못 들었다고 하면 판정인이 거짓말을 들은 것이 되고⁠. 판정인은 들은 말을 옮기지 않는다고 했소⁠. 그럼 나는 아무 말도 안 한 거요⁠.⁠”

현이 반쪽 검보를 덮었다⁠. 덮는 손이 아주 조심스러웠다⁠. 찢어진 자리가 더 찢어지지 않게⁠.

*

밤이 깊어 서쪽 행랑에서 나를 불렀다⁠. 노득칠이 전한 말이었다⁠. 부인이 판정인만 혼자 오라고 했다고⁠.

설은 등잔 하나를 켜 두고 앉아 있었다⁠. 설 앞에 쌍도가 칼집에서 나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오른쪽 칼을 들어 등잔 불에 비쳤다⁠. 칼끝 가까이 날 위에 가는 선 하나가 검게 말라붙어 있었다⁠. 닦았는데 날과 칼등 사이 홈에 스민 것은 다 닦이지 않은 자국이었다⁠.

설이 발을 등잔 쪽으로 내밀었다⁠. 발바닥에 가시에 긁힌 자국이 셋 있었다⁠. 단목세가 서쪽 별채로 가는 뒷길에는 탱자 울타리가 있었다⁠.

“⁠어젯밤에 신 안 신고 나갔어⁠. 신 신으면 기와 밟는 소리가 나니까⁠.⁠”

설이 칼을 내려놓았다⁠. 손끝이 떨렸다⁠. 겨우내 저렸다는 이 손끝이었다⁠.

“⁠두 줄 가운데 한 줄은 내가 그었어⁠.⁠”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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