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281자)

반쪽 검보

무림세가 부부의 이혼 비무는 내가 판정한다 · 강묵현

쌍도 한 자루가 찻쟁반 한가운데를 찍었다⁠.

놋쇠가 찢어지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칼끝이 쟁반을 뚫고 나와 내 손등 한 치 앞에서 멈췄다⁠. 나는 쟁반을 비틀었다⁠. 칼날이 놋쇠에 물린 채 같이 비틀렸고⁠, 설의 오른 손목이 따라 돌았다⁠. 다른 한 자루가 아래에서 올라왔다⁠. 왼팔은 쓸 수 없었다⁠. 나는 무릎을 꺾어 몸을 낮추고⁠, 쟁반 모서리로 이 칼등을 위에서 눌렀다⁠. 두 자루가 쟁반 하나에 엉켰다⁠.

설과 나는 이 쟁반을 사이에 두고 숨을 맞댔다⁠. 설의 숨에서 쇳소리가 났다⁠. 가늘고 높은⁠, 마른 갈대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였다⁠.

“⁠왜 막아⁠? 판도 안 열렸는데⁠.⁠”

“⁠판이 안 열렸으니 막소⁠. 열리면 대 위에서 하시오⁠. 거기서는 이긴 만큼 가져가오⁠. 여기서는 사람을 죽인 만큼 잃고⁠.⁠”

현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내를 올려다보았다⁠. 아내는 남편을 내려다보았다⁠. 둘 사이에 내 쟁반과 쌍도가 있었고⁠, 셋 다 아무도 먼저 놓지 않았다⁠.

문간에서 대추 씹는 소리가 났다⁠.

“⁠밥상을 엎으라 했지⁠, 탁자를 엎으라 했냐⁠?⁠”

설이 칼을 놓았다⁠. 쌍도 두 자루가 쟁반에 박힌 채 남았고⁠, 빈손으로 돌아서 나갔다⁠. 노득칠이 바닥에서 고개를 들고 깨진 찻주전자 조각을 바라보았다⁠.

“⁠당주⁠, 저 주전자 할머님 혼수예요⁠.⁠”

*

이틀 뒤 아침⁠, 월하당 비무장은 발 디딜 데가 없었다⁠.

세가의 이혼은 낙양에 처음이었다⁠. 이것도 맏이 세가와 둘째 세가를 묶은 혼인이었다⁠. 이층 회랑은 동이 트기 전에 찼고⁠, 담 위에도 아이들이 올라앉았다⁠. 노득칠은 회랑 기둥 옆 자리를 동전 서른 닢에 팔았고⁠, 참외 바구니를 세 번 비웠고⁠, 그사이 회화나무 밑에서 몰래 판돈을 받았다⁠.

“⁠두꺼비⁠, 너 누구한테 걸었어⁠?⁠”

“⁠…가주님이요⁠.⁠”

“⁠다들 부인한테 건다며⁠.⁠”

“⁠그러니까 배당이 크잖아요⁠. 당주⁠, 판정인한테 묻는 거 아니에요⁠. 그냥 혼잣말이에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회랑 끝을 보았다⁠. 동쪽 끝 기둥 옆에 가마 하나가 내려져 있었다⁠. 가마 문에 비단 발이 드리워져 안이 보이지 않았는데⁠, 가마 지붕 네 귀퉁이에 금실 술이 달려 있었다⁠. 노득칠이 내 눈길을 따라가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맹 총단 가마예요⁠. 금실 술 단 건 맹주 부인 것밖에 없어요⁠. 맹주 부인이 남의 이혼 구경을 다 오시네⁠.⁠”

황보진악은 가마에서 열 걸음쯤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가마 쪽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너무 한 번도 보지 않았다⁠.

*

현과 설이 대 위로 올라왔다⁠. 현은 단목세가의 곧은 장검 한 자루를⁠, 설은 제 쌍도를 들었다⁠. 쟁반 구멍 자리에 생긴 흠이 칼날에 아직 남아 있었다⁠. 대 한가운데에 검보와 흙 단지와 대문 열쇠가 나란히 놓였다⁠.

나는 징 앞에 섰다⁠. 첫 징은 판정인이 부부에게 한 번 더 묻고 친다⁠.

“⁠지금 치면 혼인은 끝나오⁠. 판은 나누는 일만 하오⁠. 치겠소⁠?⁠”

“⁠쳐⁠.⁠”

설이 말했다⁠. 현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나는 쳤다⁠. 놋쇠 징의 울림이 마당을 채우고 담을 넘어 골목으로 나갔다⁠. 관람석이 이 소리를 듣는 동안 아무도 숨을 쉬지 않았다⁠. 설의 쌍도 끝이 아주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현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열여덟 해가 징 한 번에 끝났다⁠. 이 소리는 생각보다 짧았다⁠.

이 짧은 소리가 다 사라지기도 전에 대 아래에서 발소리가 몰려왔다⁠.

셋째 숙부가 원로 둘을 거느리고 대 가장자리로 다가왔다⁠. 원의 홈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마른 발이 홈을 넘어 대 위에 올라섰다⁠. 관람석이 술렁였다⁠. 원 안에는 판정인과 부부 말고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한다⁠. 이것은 낙양 아이들도 아는 일이었다⁠.

“⁠검보는 단목 가문의 것이다⁠. 가주 한 사람이 마누라와 칼싸움으로 걸 물건이 아니야⁠.⁠”

숙부가 대 한가운데로 걸어가 검보에 손을 뻗었다⁠. 나는 이 손 앞에 징채를 내렸다⁠. 징채 끝이 검보 표지 한 치 위에서 멈췄다⁠.

“⁠대 위에 오른 것은 징이 정하오⁠. 원로가 정하지 않소⁠.⁠”

“⁠계집애가 단목 조상 칼을 막아⁠?⁠”

숙부의 소매가 펄럭였다⁠. 마른 손이 징채를 쳐내려고 들어왔다⁠. 늙은 손인데 빨랐다⁠. 징채가 옆으로 밀렸고⁠, 나는 밀린 만큼 발을 옮겨 다시 숙부의 손과 검보 사이에 섰다⁠. 다친 왼팔에서 피가 다시 배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숙부의 손가락에서 쓴 뿌리 냄새가 났다⁠.

“⁠숙부님⁠.⁠”

현이 말했다⁠.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말에 숙부의 손이 멈췄다⁠.

“⁠내려가시오⁠. 가주가 올린 것이오⁠.⁠”

“⁠네가 가주로 있을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느냐⁠?⁠”

숙부가 이 말을 남기고 대에서 내려갔다⁠. 내려가서 원로들 자리로 가지 않고⁠, 관람석 아래 철기보 무사들이 선 쪽 기둥에 등을 기댔다⁠. 황보진악은 여전히 숙부를 보지 않았다⁠.

*

판정인은 대 위에서 두 사람의 옆에 선다⁠. 나는 이 자리에서 이 부부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칼 소리보다 말소리가 컸다⁠.

“⁠월병 하나로 열한 해를 울궈 먹어⁠?⁠”

설의 오른 칼이 현의 어깨를 노리고 들어왔고⁠, 현이 장검을 비스듬히 세워 흘렸다⁠.

“⁠열한 해가 아니라 열한 번이오⁠. 중추절마다 그 얘기를 했소⁠.⁠”

“⁠그러니까 다른 여자한테 가서 팥 월병 사 줬어⁠?⁠”

“⁠그 여자는 월병 안 먹소⁠.⁠”

“⁠그럼 뭘 먹는데⁠!⁠”

현의 칼이 멈칫했다⁠. 대답을 지어내야 하는데 지어내지 못한 칼이었다⁠. 설의 왼 칼이 이 틈으로 들어갔다가 현의 소매만 베고 지나갔다⁠. 관람석이 탄식했다⁠. 노득칠의 탄식이 제일 컸다⁠.

“⁠당신 겨울에 내 방에 한 번도 안 왔어⁠.⁠”

“⁠당신이 기침하는 소리에 내가 잠을 못 잤소⁠.⁠”

“⁠그러니까 잠 못 잘 거면 와서 등이라도 두드리든가⁠!⁠”

설이 기침을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 기침에서 설의 발이 반 박자 늦었다⁠. 현의 칼끝이 설의 목 앞 반 자까지 갔다가⁠, 거기서 아래로 꺾였다⁠. 죽이는 수가 아니었다⁠. 현은 칼을 꺾을 때 설의 목에서 가장 먼 쪽으로 꺾었다⁠. 나는 징채를 쥔 손을 풀었다⁠.

나는 현의 발을 들었다⁠. 늦지 않았다⁠. 지려는 발이 아니었다⁠. 현은 이기려고 싸우고 있었다⁠. 다만 아내의 몸에 칼날이 닿는 자리마다 칼등을 돌렸다⁠. 이기되 베지 않으려는 칼이 얼마나 무거운지⁠, 현의 숨이 말해 주었다⁠.

설은 그런 것을 듣지 않았다⁠. 설의 쌍도는 다 베려고 들어왔다⁠. 그리고 열여덟 해 같은 집에서 산 사람의 칼을 너무 잘 알았다⁠. 현의 장검이 오른쪽으로 흘릴 때 이 끝이 늘 한 치 낮게 떨어진다는 것을⁠.

설의 오른 칼이 이 한 치 아래로 파고들어 장검의 날밑을 걸었다⁠. 왼 칼이 칼등을 쳤다⁠. 장검이 현의 손을 떠나 돌바닥에 떨어졌다⁠. 칼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가 길게 미끄러졌다⁠.

나는 징을 쳤다⁠.

“⁠첫 판⁠, 단목검보는 공손설에게 가오⁠.⁠”

*

설이 대 한가운데로 가서 검보를 집었다⁠. 쪽빛 비단 표지에 단목세가 시조의 이름이 금박으로 박혀 있는 책이었다⁠. 원로들 자리에서 신음 같은 소리가 났다⁠.

설은 검보를 들고 남편 앞으로 갔다⁠. 그리고 책등을 두 손으로 쥐고 비틀었다⁠. 실로 꿰맨 책등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벌어졌다⁠. 설이 힘을 더 주었다⁠.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이층 회랑 끝까지 갔다⁠. 검보가 반으로 갈라졌다⁠.

“⁠위자료는 필요 없어⁠. 위자료 대신이야⁠.⁠”

설이 반쪽을 현의 가슴팍에 던졌다⁠. 종이가 현의 가슴을 치고 떨어지려는 것을 현이 손으로 받았다⁠.

“⁠반은 당신 가져⁠. 반쪽짜리 검법으로 그 여자 지켜 봐⁠.⁠”

관람석이 뒤집혔다⁠. 웃음과 고함과 손뼉이 한꺼번에 터졌다⁠. 원로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질렀고⁠, 이 소리는 웃음에 묻혔다⁠. 노득칠은 회화나무 밑에서 판돈 주머니를 끌어안고 울상을 지었다⁠.

나는 판정인으로서 한 가지를 말해야 했다⁠. 원로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검보는 공손설의 것이오⁠. 제 것을 제가 찢은 일은 판정할 일이 아니오⁠.⁠”

현은 반쪽 검보를 두 손에 들고 서 있었다⁠. 펼친 쪽은 단목검법 열두 식 가운데 앞의 여섯 식이었다⁠. 설의 손에 남은 것이 뒤의 여섯 식이었다⁠. 아내를 보았다⁠. 현의 왼쪽 귀는 붉지 않았다⁠. 그런데 눈가가 붉었다⁠.

관람석 동쪽 끝에서 황보진악이 일어섰다⁠. 대 쪽을 향해 크게 말했다⁠.

“⁠반쪽 검보 값은 철기보가 치르겠소⁠. 어느 쪽 반이든 한 권 값으로⁠.⁠”

설이 그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밑씻개로도 안 팔아⁠.⁠”

웃음이 다시 터졌다⁠. 황보진악은 웃지 않고 앉았다⁠. 앉을 때 동쪽 끝 기둥 옆의 가마 발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바람은 불지 않았다⁠.

*

첫 징이 울린 날부터 부부는 이 집 문 안에서 먹고 잔다⁠. 현은 동쪽 행랑에⁠, 설은 서쪽 행랑에 들었다⁠. 저녁상은 노득칠이 따로 차려 날랐고⁠, 둘 다 반도 먹지 않았다⁠.

해 질 녘에 공손가 하인 하나가 옻칠한 이층 찬합을 들고 대문 앞에 왔다⁠. 찬합 뚜껑에 공손가의 학 문양이 금으로 박혀 있었다⁠. 가주께서 누이에게 보내는 보약이라고 했다⁠. 부부를 데려가는 것은 막아도 밥이 들어오는 것까지 막는 법은 없었다⁠. 노득칠이 찬합을 받아 서쪽 행랑에 날랐다가 금방 도로 들고 나왔다⁠.

“⁠부인이 오라비 것은 안 먹는대요⁠. 혼수 판 입으로 보낸 약은 개도 안 먹인대요⁠.⁠”

“⁠그럼 두꺼비 네가 먹으려고⁠?⁠”

“⁠아뇨⁠, 당주⁠. 보약은 쓰잖아요⁠.⁠”

노득칠이 찬합을 부엌 선반 맨 위에 올려 두었다⁠. 설의 방에서는 밤늦도록 기침 소리가 났다⁠.

나는 팔의 열 때문에 깊이 잠들지 못했다⁠. 축시 무렵⁠, 서쪽에서 문지방이 낮게 우는 소리가 났다⁠. 오래된 문을 아주 천천히 열면 나는 소리였다⁠. 다음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발소리도⁠, 기왓장 소리도⁠.

나는 신을 꿰고 마당에 나갔다⁠. 서쪽 행랑은 불이 꺼져 있었다⁠. 댓돌 위에 설의 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신이 거기 있으니 사람도 방 안에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돌아섰다⁠. 돌아서는데 뒷담 쪽에서 아주 작게⁠, 맨발이 젖은 흙을 밟는 소리가 났던 것 같기도 했다⁠. 열 때문인지 귀 때문인지 나는 가리지 못했다⁠.

새벽이 밝기 전에 대문이 울렸다⁠.

노득칠이 빗장을 풀자 횃불 여럿이 마당으로 밀려 들어왔다⁠. 단목의 원로 둘과 단목 무사들이었다⁠. 이들이 들것 하나를 메고 있었다⁠. 들것은 비무대 앞⁠, 원의 홈 바로 바깥에 내려졌다⁠. 거적이 걷혔다⁠.

셋째 숙부였다⁠. 마른 몸이 반듯하게 누워 있었고⁠, 가슴에 칼자국 두 줄이 엇갈려 있었다⁠. 한 줄은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옆구리로⁠, 한 줄은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옆구리로⁠. 피는 이미 검게 굳었다⁠. 쓴 뿌리 냄새 위로 피 냄새가 덮였다⁠.

원로 하나가 서쪽 행랑을 향해 손가락을 들었다⁠.

“⁠쌍도 자국이다⁠. 칼 두 자루가 엇갈려 그은 자국이야⁠. 낙양에 쌍도를 쓰는 사람이 몇이나 있나⁠?⁠”

서쪽 행랑의 문이 열렸다⁠. 설이 문지방에 서 있었다⁠. 머리를 풀어 내렸고⁠, 맨발이었다⁠. 설의 발등에 마른 흙이 묻어 있었다⁠. 동쪽 행랑에서도 문이 열렸다⁠. 현이 아내의 발을 보았다⁠. 나도 이 발을 보았다⁠.

원로가 다시 소리쳤다⁠.

“⁠공손설을 내놓아라⁠. 판정인⁠,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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