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38자)
간판 줄 하나
무림세가 부부의 이혼 비무는 내가 판정한다 · 강묵현
“받소.”
내가 말하자 공손설이 웃었다. 웃음소리가 짧고 높았고, 끝이 갈라졌다. 오래 기침을 한 목이었다.
“받는대. 그럼 줄은 놔둘게.”
공손설이 칼끝을 줄에서 뗐다. 이 순간 남은 줄이 스스로 끊어졌다. 쌍도가 닿았던 자리가 이미 반쯤 갈라져 있었다. 간판이 대문 기둥을 한 번 더 때리고 아래로 떨어졌고, 설이 뒤를 따라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나는 뛰었다. 다친 왼팔은 쓸 수 없어서 오른팔과 가슴으로 받았다. 증조할머니가 회화나무 판에 새긴 석 자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백 년 가까이 처마 밑에서 비와 해를 먹은 나무라 속까지 단단히 말라 있었고, 받는 순간 갈비뼈가 울렸다. 내 무릎이 꺾이려는 찰나 아래에서 무언가 물컹한 것이 받쳐 주었다.
“당주, 제 발이요. 제 발 위에 있어요.”
노득칠이 간판 모서리 밑에 발등을 넣은 채 울상을 하고 있었다. 셋이서 간판을 대문 안쪽 벽에 기대 세웠다. 설은 그동안 칼을 칼집에 넣지 않았다.
“판정인이 간판도 제대로 못 받네.”
“팔 한쪽이 오늘 낮에 칼을 받았소.”
설이 내 소매 아래로 번진 피를 보았다. 그리고 쌍도를 칼집에 넣었다. 두 자루가 동시에, 한 소리로 들어갔다.
*
부엌에서 설의 말을 들었다. 따로 듣는 자리였고, 노득칠은 문 밖에서 콧노래를 불렀다.
설은 앉자마자 부뚜막 위 소쿠리에 남은 전병을 집어 먹었다. 노득칠이 내일 아침에 먹으려고 남겨 둔 것이었다. 문 밖 콧노래가 잠깐 끊겼다가 더 크게 이어졌다.
“사흘 전 저녁이었어. 그 인간이 밥상 앞에서 국을 한 숟갈 뜨더니, 갈라서자고. 국이 짜다는 말을 하는 얼굴로.”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소?”
“겨울부터 이상했어. 내가 겨우내 앓았거든. 기침하고, 손끝이 저리고. 그때부터 내 방에 안 들어왔어. 약은 꼬박꼬박 챙겨 보내면서.”
설이 전병을 하나 더 집었다.
“여자가 생긴 거지. 마흔둘에. 세가 가주가.”
숨이 들쭉날쭉했다. 설은 믿는 대로 말하고 있었다. 믿는 것과 사실은 다르지만, 판정인이 듣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숨이다.
부엌 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들어왔다. 자다 깬 머리에 대추 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있었다. 설이 벌떡 일어났다.
“할머님.”
“앉아라. 열여덟 해 전에 내가 너희 혼례상 앞에서 뭐라 했냐?”
“…싸울 땐 칼 말고 밥상을 엎으라고요.”
“그래서 엎었냐?”
“세 번이요.”
할머니가 대추를 하나 꺼내 설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놈은 거짓말할 때 왼쪽 귀가 빨개진다. 혼례 날 술 안 마셨다고 할 때도 빨갰다.”
“할머니, 따로 듣는 자리예요.”
“나는 듣는 게 아니라 말하는 거다.”
*
이튿날 아침 나는 세가 거리로 갔다. 단목세가는 낙양 남쪽, 낙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담을 길게 둘렀다. 대문을 들어서자 약재 달이는 냄새가 났다. 감초와 무언가 쓴 뿌리가 섞인 냄새였다. 대청으로 가는 길에 이 냄새가 서쪽 별채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단목현은 대청에서 나를 맞았다. 마흔둘,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말이 적은 사람답게 입가에 주름이 없고 미간에만 깊은 주름이 하나 있었다. 따로 듣는 방으로 나를 데려갔다.
“아내가 내 허벅지를 칼로 찔렀소.”
단목현이 바짓단을 걷었다. 오른쪽 허벅지 바깥에 손가락 길이의 흉터가 있었다. 아문 지 오래된 흉터였다.
“언제 일이오?”
“열한 해 전이오.”
“열한 해 전 일로 이제 갈라서겠다는 거요?”
“그때 갈라섰어야 했는데 미뤘소.”
“왜 찔렀소?”
현이 잠깐 말을 멈췄다.
“…중추절에 아내 몫의 월병을 내가 먹었소. 팥이 든 것이었소. 아내는 팥 월병만 먹소.”
나는 웃음을 참느라 혀를 깨물었다. 현의 숨은 들쭉날쭉했다. 월병은 진짜였다.
“다른 까닭은 없소?”
“없소.”
숨이 골랐다. 너무 골랐다. 그리고 현의 왼쪽 귀가 귓불부터 천천히 붉어졌다. 할머니는 일흔이 되어도 틀리는 법이 없었다.
나는 이 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대청으로 돌아오자 손님이 와 있었다.
황보진악이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고, 이 옆에 쉰 가까운 사내가 서 있었다. 공손가 가주, 설의 오라비였다. 누이를 닮아 눈매가 날카로웠는데, 누이와 달리 이 눈이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대청 한쪽에는 단목의 원로 셋이 앉아 있었다. 이 가운데 가장 마른 노인에게서 서쪽 별채의 약재 냄새가 났다. 가주의 셋째 숙부라고 했다.
“판정인, 마침 잘 왔소.”
공손 오라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누이가 시집올 때 가져온 혼수가 있소. 남시 비단 점포 셋. 공손가 돈으로 산 것이니, 갈라서면 공손가로 돌아와야 하오. 그것도 대 위에 올리시오.”
“혼수는 부인 것이오. 공손가 것이 아니오.”
“누이가 공손가로 돌아오면 공손가 것이오.”
“대 위에는 부부 둘이 함께 올린 것만 오르오. 부인이 올리겠다고 하면 오르고, 오라비가 올리겠다고 하면 안 오르오.”
황보진악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잔 바닥이 탁자에 닿는 소리가 작았다.
“그럼 대 밖에서 하면 되겠구려.”
황보진악이 소매에서 무언가 꺼내 공손 오라비에게 건넸다. 오라비가 이것을 받아 품에 넣었다. 은자 꾸러미 부딪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오라비가 단목 원로들을 향해 말했다.
“공손가는 누이 혼수 점포 셋을 돌려받을 권리를 오늘 철기보에 넘겼소. 판이 끝나면 철기보가 받으러 올 거요.”
대청이 조용해졌다. 단목의 원로 하나가 일어섰다가 다시 앉았다. 단목현은 움직이지 않았다. 공손 오라비를 보지 않고 대청 바깥, 낙수 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황보진악을 보았다.
“점포 셋은 철기보에 무슨 쓸모가 있소?”
“점포는 쓸모가 없소. 남시 한가운데 철기보 깃발이 셋 서는 게 쓸모가 있지.”
단목현이 일어섰다.
“그리고 판정인이 하나 잊었소. 대 위에 오르는 것은 부부가 정하지만, 대에서 내려온 것을 누가 사는지는 아무도 못 정하오. 나는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이오. 판정을 사는 게 아니라.”
현은 대청을 나가다 셋째 숙부 곁에서 걸음을 늦췄다. 둘은 서로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숙부의 마른 손이 탁자 아래에서 무릎을 한 번 쥐었다 놓았다.
*
대문을 나서려는데 셋째 숙부가 행랑 모퉁이에서 나를 불러 세웠다. 가까이서 보니 손가락 끝이 누렇게 물들어 있었다. 약재를 오래 만진 손이었다.
“판정인 팔에 피가 배었구려. 이걸 바르시오. 단목 별채에서 내가 손수 달인 고약이오.”
숙부가 기름종이에 싼 것을 내밀었다. 나는 받지 않았다.
“판 앞에서는 양쪽 집 물건을 안 받소.”
“철기보 은자는 받았다던데.”
이 말을 할 때 숙부의 숨은 들쭉날쭉하지도 고르지도 않았다. 그냥 차가웠다.
“검보는 단목 가문의 것이오. 가주 한 사람 것이 아니오. 그걸 대 위에 올려 계집 칼에 넘기면, 단목 조상들 칼이 공손가 부엌칼이 되오. 판정인이 그 판을 받으면 단목 원로들은 대 앞에 서서 막을 거요.”
“막으시오. 대 앞에서 막는 것까지는 법에 걸리지 않소. 대 위로 올라오는 것만 걸리오.”
숙부는 기름종이 꾸러미를 소매에 도로 넣었다. 그리고 서쪽 별채 쪽으로 걸어갔다. 쓴 뿌리 달이는 냄새가 숙부를 따라갔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낙수 나루를 지났다. 어제까지 석교문 것이었고 오늘부터 문채 것인 방앗간 앞에서, 쇠장갑을 벗은 백결의 아우가 쌀가마를 어깨에 지고 배에서 뭍으로 걷고 있었다. 맨손이 가마 끈에 쓸려 벌겋게 부어 있었다. 방앗간 문간에 앉은 백결이 왼손으로 아우를 가리키며 무어라 소리쳤고, 문채가 부엌에서 국자를 들고 나와 이 둘에게 무어라 소리쳤다. 셋이 동시에 떠드는 소리가 강물 소리를 덮었다.
강 건너편, 단목 부두에는 낯선 배 두 척이 매여 있었다. 뱃전에 말머리 깃발이 꽂혀 있었다. 배에 실린 것은 쇠였다. 부두 일꾼들이 이것을 내리지 않고 둘러서서 구경만 했다. 판이 열리기도 전에 철기보 배가 단목 부두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
판은 셋으로 정했다. 단목세가의 검법을 적은 단목검보 한 권, 낙수 남쪽 기슭 단목 부두의 흙 한 줌, 단목 저택의 대문 열쇠. 단목현이 셋을 올리겠다고 했고, 간밤부터 월하당 부엌에 눌러앉아 있던 설도 셋을 올리겠다고 했다. 오라비가 혼수 점포 셋을 받을 권리를 철기보에 넘겼다는 말을 전하자, 설은 들고 있던 찻잔을 쥐어 깨뜨렸다. 잔 조각이 손바닥에 박혔는데 이것을 뽑으면서 말했다.
“점포 셋은 안 올려. 그건 내가 시집올 때 우리 어머니가 손수 고른 거야. 판 위에 올릴 물건이 아니라 내가 들고 나갈 물건이야. 오라비가 판 건 오라비 입이지, 내 점포가 아니고.”
“철기보가 받으러 올 거요.”
“오라고 해. 쌍도가 문간에서 기다린다고 전해.”
셋째 숙부는 검보가 가주 것이 아니라 가문 것이라며 대에 올리는 것을 반대했지만, 이 말은 아직 단목 대청과 행랑 모퉁이에서만 나왔다.
해가 질 무렵, 둘을 같이 들었다. 양쪽 말을 따로 한 번, 같이 한 번. 같이 듣는 자리는 월하당 안채 대청이었다. 긴 탁자 한쪽 끝에 현이, 다른 쪽 끝에 설이 앉았다. 가운데에 내가 앉았고, 노득칠이 찻주전자를 들고 서 있었다.
“판은 모레 아침이오. 첫 징이 울리면 혼인은 끝나고, 마지막 징까지 두 분은 이 집 문 안에서 먹고 자오. 서로 다른 행랑에서.”
“다른 행랑이면 됐어. 같은 지붕 아래서 저 인간 코 고는 소리는 이제 못 들어.”
“나는 코를 안 고오.”
“열여덟 해 동안 내가 잠을 몇 번 깼는지 세어 줄까?”
“그건 당신이 잠꼬대로 칼 이름을 불러서 깬 거요.”
“칼 이름 부르는 게 코 고는 거보다 낫지!”
노득칠이 찻잔을 내려놓다가 엎을 뻔했다. 나는 손을 들어 두 사람의 말을 끊었다. 탁자 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 정적 속에서 설의 숨이 거칠어지는 것이 들렸다. 기침을 참는 숨이었다.
“판정인은 같이 듣는 자리에서 한 가지씩 물을 수 있게 하오. 부인부터.”
설이 탁자 위에 두 손을 올렸다. 손끝이 하얗게 떨렸다. 겨우내 저렸다는 손끝이었다.
“다른 여자 있어?”
현은 아내를 보았다. 열여덟 해를 본 얼굴을 처음 보는 것처럼 오래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있소.”
현의 숨이 골랐다. 너무 골랐다. 왼쪽 귀가 붉었다. 등잔 불빛 아래에서 이 귀는 거의 검게 보였다.
나는 판정인이었다. 들은 것을 옮기지 않는다.
탁자가 뒤집혔다. 찻주전자가 날아가 벽에 부딪혀 깨졌고, 노득칠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드렸다. 쌍도가 칼집을 떠나는 소리가 두 번 겹쳐 하나로 들렸다. 설이 뒤집힌 탁자를 밟고 넘어 남편에게로 갔다. 현은 일어서지도 않았다. 칼을 뽑지도 않았다. 의자에 앉은 채 아내의 쌍도가 제 목을 향해 오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나는 이 사이에 있었다. 판정인은 대 위에서만 칼을 막는다는 법은 없었다. 첫 징이 울리기 전이었고, 여기는 대 위도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이 사이에 있었고, 오른손에 징채가 없었다. 손에 잡힌 것은 노득칠이 떨어뜨린 놋쇠 찻쟁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