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39자)
팔뚝으로 막은 칼
무림세가 부부의 이혼 비무는 내가 판정한다 · 강묵현
나는 대 위에서 백결의 손을 풀었다.
무명을 한 겹씩 벗길 때마다 백결이 숨을 들이켰고, 관람석이 같이 숨을 들이켰다. 마지막 겹이 떨어지자 손등이 드러났다. 부어오른 살갗 위에 비늘 모양 자국이 엇갈려 찍혀 있었다. 손톱만 한 쇠비늘을 겹쳐 엮은 것이 손등을 위에서 덮고 눌러 쥐어짠 자국이었다. 비늘 끝마다 살이 조금씩 찢겨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대 가장자리에 선 아우의 손을 보았다. 쇠장갑 손등에 같은 비늘이 엮여 있었다. 이후 관람석 계단 아래 선 철기보 무사 넷의 손에도 같은 장갑이 있었다. 철기보에는 이런 장갑을 낀 무사가 사백이 넘는다고 했다.
“누가 그랬소?”
백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우 쪽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밖의 손이 든 판은 판정인이 대 위에서 보이면 무효다. 보여야 한다. 손등의 비늘 자국은 쇠장갑을 보여 줄 뿐, 이 장갑을 낀 손이 누구 것인지는 보여 주지 않았다. 지금 무효를 외치면 나는 사백 개의 장갑 가운데 하나를 아무렇게나 집어 드는 판정인이 된다.
“아우의 말을 따로 듣겠소.”
아우는 뒷방에 앉아서도 쇠장갑을 벗지 않았다. 형보다 열 살 아래라고 했다. 열 해 전에 나루를 떠나 철기보에 들어갔고, 이후로 형제는 설에도 만나지 않았다.
“형 손은 내가 안 했소.”
숨이 들쭉날쭉했다. 진짜였다.
“그럼 누가 했는지는 아시오?”
“모르오.”
이번에는 숨이 골랐다. 나는 아우를 오래 보았다. 아우는 내 눈을 피하지 않았고, 쇠장갑 낀 손가락으로 무릎을 문지르기만 했다.
*
“판정인이 정하오. 아우를 대신 세우는 것을 허락하오.”
관람석이 웅성거렸다. 문채가 나를 노려보았다. 할머니는 이층 난간에서 대추 씨를 뱉었다. 이 소리가 내게는 혀를 차는 소리로 들렸다.
나는 법을 고치지 않았다. 판정인이 편할 때 고치는 법이면, 다음 판에서 남이 불편할 때도 고친다.
문채가 검을 들어 올렸다. 아까 늘어져 있던 칼끝이 이번에는 똑바로 섰다.
“좋아. 열 해 동안 설에 얼굴 한 번 안 비친 시동생이 형 대신 형수 땅을 뺏으러 왔다 이거지.”
“형수님, 땅은 뺏는 게 아니라 나누는 거라던데요.”
“너 그 말 누구한테 배웠어? 너희 형도 그 말 했어. 열아홉 해 전 혼례 날 밤에, 이불은 나누는 거라고!”
관람석에서 웃음이 터졌고, 아우는 웃지 않았다. 나는 징을 쳤다.
아우의 칼은 형의 칼과 달랐다. 무겁고, 짧고, 곧았다. 첫 합에 문채의 검이 옆으로 밀렸고, 두 번째 합에 문채의 발이 원의 홈 쪽으로 반 자 물러났다. 문채의 칼은 나루 뱃사람들에게 가르치던 검이라 물 위에서 균형을 잡는 데 능했지만, 쇠 갑옷을 입은 기병의 칼을 받아 본 적은 없었다.
나는 원 안을 따라 돌았다. 판정인은 대 위에서 늘 두 사람의 옆에 선다. 앞에 서면 칼을 가리고, 뒤에 서면 칼을 못 본다.
세 번째 합, 네 번째 합. 문채가 버텼다. 숨을 내쉴 때마다 낮게 욕이 섞여 나왔는데, 내 귀에는 이 욕이 다 남편 이름이었다.
그리고 관람석 동쪽 끝에서 이 소리가 났다.
똑, 똑.
쇠가락지가 무릎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어제 회랑 기둥을 두드리던 소리와 박자가 같았다. 아우의 어깨가 아주 조금, 숨 반 번만큼 굳었다. 칼을 쥔 손목이 안으로 꺾였다. 베는 칼이 찌르는 칼로 바뀌는 손목이었다.
나는 이 손목이 다 꺾이기 전에 움직였다.
아우의 칼끝이 문채의 목을 향해 곧게 들어왔다. 나는 이 사이로 몸을 넣으며 징채를 세워 칼날을 위로 쳐 올렸다. 쇠심 박은 징채가 칼날을 받는 소리가 비무장을 갈랐다. 칼날은 위로 튀었다가 미끄러져 내 왼팔 팔뚝을 긁고 지나갔다. 가죽 토시가 갈라지는 소리가 먼저 났고, 뜨거운 것이 손목 쪽으로 흘러내렸다.
피가 돌바닥에 떨어졌다. 한 방울, 두 방울, 다음은 셀 수 없었다.
나는 팔을 내리지 않았다. 판정인이 몸으로 막은 칼은 판정인이 내릴 때까지 거기 있다. 아우의 칼이 내 팔뚝 위에 얹힌 채 멈춰 있었다. 아우의 숨이 거칠었다. 거친 숨 사이로 아우가 아주 작게 말했다.
“…판정인이 막을 줄 알고 낸 칼이오.”
나는 이 말을 들었다. 관람석은 듣지 못했다. 지려고 낸 죽이는 수였다. 형 쪽이 판을 다 잃어야 땅이 형수에게 가고, 형수에게 간 땅은 약조대로 철기보에 팔린다. 이걸 알고도 나는 법대로 말해야 했다. 판정인은 들은 말을 옮기지 않는다.
“죽이는 수요.”
나는 크게 말했다.
“죽이는 수를 낸 쪽은 이 판과 남은 판을 다 잃소. 나루 땅은 문채에게 가오.”
징을 쳤다. 왼팔을 들 수가 없어서 오른손으로 쳤다. 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
황보진악이 계단을 내려왔다. 또 원의 홈 바로 바깥에서 멈췄다.
“죽이는 수였는지 누가 정하오?”
“판정인이 정하오.”
“판정인은 무엇으로 정하오?”
나는 피가 흐르는 팔을 들어 보였다.
“이걸로 정했소. 목을 향한 칼이 아니었으면 내 팔은 어깨 높이에 있었을 거요. 내 팔이 지금 어디 있었는지는 관람석 백 사람이 보았소.”
황보진악은 내 팔을 보았다. 오래 보지 않았다. 그리고 이 눈길이 내 뒤의 문채에게로 갔다.
“판은 끝났소. 이제 장사 얘기를 합시다. 나루 땅값으로 약조한 삼백 냥, 오늘 치르겠소.”
문채가 비녀함을 들고 대 가장자리로 걸어왔다. 비녀함을 열어 말머리 은자 다섯 개를 손바닥에 쏟았다. 그리고 이것을 황보진악의 발 앞에 던졌다. 은자가 돌바닥에 튀어 황보진악의 비단신 코에 하나가 맞았다.
“우리 집 양반 손을 저 꼴로 만든 집에 땅을 팔아? 내가 미쳤어요?”
“부인, 남편 손은 내가 한 일이 아니오.”
“그럼 누가 했는데요? 낙양에 쇠장갑 끼고 다니는 집이 철기보 말고 또 있어요?”
황보진악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숙여 제 발 앞의 은자를 하나씩 주웠다. 다섯 개를 다 주울 때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은자를 소매에 넣고 일어섰다.
그리고 대 아래로 내려와 있던 아우 앞으로 갔다.
“장갑.”
아우가 황보진악을 보았다. 황보진악은 한 번 더 말하지 않았다. 아우가 쇠장갑을 벗었다. 오른쪽, 그리고 왼쪽. 쇠장갑을 받아 든 황보진악이 이것을 뒤에 선 무사에게 넘겼다.
“철기보 무사는 진 판에 남지 않는다. 오늘부터 너는 철기보 사람이 아니다.”
황보진악은 이 말을 크게 하지 않았다. 크게 할 필요가 없었다. 비무장이 조용해서 이층 끝까지 들렸다. 맨손이 된 아우가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열 해를 쇠장갑을 끼고 산 손이라 손바닥이 하얗고 손가락 마디마다 비늘 자국이 눌려 있었다.
*
마지막 징 뒤에 제자들이 대 앞에 섰다.
제자는 나누지 않는다. 부부의 몫이 다 갈린 뒤에 제자들은 제 발로 따라갈 사람 뒤에 서거나, 대 밖으로 걸어 나가 사문을 떠난다. 석교문 제자는 일곱이었다. 다 나루 뱃사람의 아들딸이었고, 다 문채보다 백결에게 먼저 칼을 배웠다.
다섯이 문채 뒤에 섰다. 땅과 검보를 가진 편이었다. 아무도 탓하지 않았다.
둘이 백결 뒤에 섰다. 백결은 가진 것이 없었다. 땅도 검보도 없고, 칼을 쥘 손도 없었다. 백결의 뒤에 선 두 제자 가운데 하나는 열여섯 살 난 계집아이였는데, 이 아이가 백결의 다친 손을 감싸고 있던 무명을 주워 들고 와서 다시 감기 시작했다. 서툴게. 너무 세게.
백결이 이 아이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무언가 말하려다 그만두고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쪽에 문채가 서 있었다.
문채가 걸어와 백결의 뺨을 쳤다. 짝, 하는 소리가 회화나무 가지의 징을 아주 조금 울렸다.
“그건 국밥 값이야.”
그리고 문채는 계집아이에게서 무명을 받아 들고 남편의 손을 처음부터 다시 감았다. 이번에는 알맞게.
“나루 방앗간에 방 하나 비어. 저 애 둘이랑 거기서 지내. 땅은 내 거니까 방세는 받을 거야.”
“…얼마요?”
“한 달에 국밥 한 그릇.”
문채가 고개를 들어 대문 쪽을 보았다. 맨손의 아우가 아직 거기 서 있었다.
“너도. 나루에 짐 질 사람 모자라. 시동생이라고 품삯 더 주는 거 없어.”
*
판이 끝나고 사람들이 빠져나갈 때 황보진악이 다시 왔다. 이번에는 대 위가 아니라 내게로.
“판정비를 미리 내러 왔소.”
황보진악이 손짓하자 무사 하나가 묵직한 주머니를 내 앞의 돌 위에 내려놓았다. 은자 부딪는 소리가 두툼했다.
“낙양 단목세가 가주 단목현이 이혼 비무를 청했소. 세가의 이혼은 낙양에서 월하당이 가르는 것이 오랜 관례라 들었소. 나는 단목 가주의 보증인으로 왔소. 판정비 백 냥이오.”
단목세가는 낙양 세가 셋 가운데 맏이였다. 낙수 남쪽 기슭에 부두를 쥐었고, 제자가 마흔이었다. 이 집 가주의 아내 공손설은 낙양 둘째 세가 공손가 가주의 누이였다. 열여덟 해 전 이 혼인으로 두 집은 칼을 한쪽으로 겨누게 되었고, 이후로 낙양에 들어오려던 바깥 세력은 이 두 집의 담을 넘지 못했다. 이 혼인을 맺어 준 사람이 우리 할머니였다는 것은 낙양 아이들도 알았다.
“단목 가주가 왜 철기보를 보증인으로 세웠소?”
“그건 판정인이 따로 들어 보시오. 양쪽 말을 다 듣는 것이 이 집 법 아니오?”
노득칠이 어느새 옆에 와서 주머니 끈을 풀고 은자 하나를 깨물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았다. 말머리 낙인이었다.
월하당 지붕은 장마 전에 고치지 않으면 동쪽 행랑이 내려앉는다. 노득칠의 품삯은 석 달째 밀려 있었다. 할머니 약값도 있었다. 그리고 판정비는 판정비였다. 누가 내든 판정인은 같은 귀로 듣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받겠소. 받은 만큼 똑같이 듣겠소.”
황보진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서다가 이층 난간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할머니는 자리에 없었다.
“이 마당에 서 본 것이 사십 년 만이오. 그때도 징은 한 번 울렸지.”
황보진악은 이 말만 남기고 나갔다.
*
이 밤 나는 부엌에서 노득칠이 데운 물에 팔을 씻었다. 칼자국은 손목에서 팔꿈치 쪽으로 세 치쯤, 뼈에는 닿지 않았다. 노득칠은 내 팔에 약을 바르는 내내 은자를 하나씩 깨물어 세고 있었고, 마흔 개쯤 세었을 때 어금니를 붙잡고 끙끙거렸다.
“당주, 이빨이 쇠 맛을 못 이겨요.”
“그럼 깨물지 마.”
“안 깨물면 가짜인지 모르잖아요.”
이때 대문 쪽에서 삐걱 하는 소리가 났다. 밧줄이 무게를 못 이기고 늘어나는 소리였다. 다음에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 그리고 나무가 나무를 세게 때리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나는 젖은 팔을 소매로 덮고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대문 위 처마에 걸어 둔 월하당 간판이 한쪽 줄만 남은 채 비스듬히 매달려 대문 기둥을 때리고 있었다. 증조할머니가 쓴 석 자가 달빛에 기울어 있었다.
대문 지붕 위에 여자 하나가 서 있었다. 양손에 짧은 도를 하나씩 쥐었다. 마흔을 앞둔 나이에 머리를 높이 틀어 올렸고, 비단 치마를 무릎까지 걷어 허리끈에 질러 넣었다. 여자가 남은 줄 하나에 칼끝을 갖다 댔다.
“단목현이 이혼하자고 했대. 열여덟 해 산 마누라한테 저녁상 앞에서. 그리고 그 판을 이 집이 받는다며?”
다른 한 자루가 달빛을 끊으며 나를 가리켰다. 칼끝 아래에서 남은 줄이 가늘게 떨었다.
“나 공손설이야. 하나 남았어. 받을 거야, 말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