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6,008자)
징은 한 번만 친다
무림세가 부부의 이혼 비무는 내가 판정한다 · 강묵현
칼등이 칼날을 긁는 소리 사이로 아내의 목소리가 먼저 날아왔다.
“신혼 첫날밤에! 발도 안 씻고! 이불 속으로 들어온 게 누군데!”
“그날은 비가 왔다니까! 우물까지 가는 길이 진창이었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해!”
석교문 문주 백결의 검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고, 이 아내 문채의 검이 이것을 옆으로 쳐냈다. 쇠와 쇠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월하당 마당의 돌담을 한 바퀴 돌아 내 귀로 돌아왔다. 나는 비무대 가장자리, 돌에 판 원의 홈 바로 안쪽에 서서 징채를 쥐고 있었다. 쇠심을 박고 가죽을 감은 징채는 증조할머니가 처음 이 집에 간판을 걸던 해부터 쓰던 것이라 손잡이 가죽이 내 손 모양이 아니라 이 손 모양으로 닳아 있었다.
이혼 비무 첫날이었다. 첫 징은 해 뜰 무렵에 울렸고, 이 소리와 함께 열아홉 해 혼인은 끝났다. 지금 대 위에서 싸우는 것은 부부가 아니라 몫이었다. 오늘 대 위에 오른 몫은 석교문의 검보 한 권과, 낙수 나루 옆 방앗간 땅에서 퍼 온 흙 한 줌이 든 단지 하나였다.
“발 냄새 얘기는 이제 그만해!”
“열아홉 해를 참았는데 오늘 못 하면 언제 해!”
이층 회랑에서 웃음이 터졌다. 관람석은 반쯤 차 있었다. 모란철이라 낙양에 구경 온 사람이 많았고, 남의 부부가 칼 들고 싸우는 구경만큼 싼 구경도 없었다. 회랑 기둥 사이를 노득칠이 참외 바구니를 끼고 오갔다. 쉰 살에 볼이 늘어지고 목소리가 쉰 우리 집 서기 겸 잡일꾼을 사람들은 두꺼비라고 불렀고, 본인은 이 별명을 싫어하지 않았다.
문채의 검이 낮게 들어왔다. 백결이 반걸음 물러서며 칼끝으로 받았는데, 이 반걸음 뒤에 왼발이 돌바닥에 닿는 소리가 늦었다. 아주 조금. 숨 한 번의 반의반쯤.
나는 귀를 그쪽으로 기울였다.
징이 울렸다.
“아니, 두꺼비!”
회랑 아래 회화나무 곁에서 노득칠이 징채를 든 채 어깨를 움츠렸다. 징은 판정인만 친다. 이것이 이 집 법이다. 그런데 노득칠은 판이 끝날 것 같으면 꼭 반 박자 먼저 손이 나갔고, 이 손을 고쳐 보려고 할머니가 십 년을 애썼다.
“당주, 끝난 줄 알았어요. 무릎이 닿을 줄 알았다고요.”
“닿았어?”
“…아뇨.”
대 위의 부부가 칼을 든 채 나와 노득칠을 번갈아 보았다. 나는 손을 들어 계속하라는 뜻을 보였고, 둘은 다시 붙었다. 이번에는 길지 않았다. 문채가 백결의 무릎을 칼등으로 쳤고, 백결이 돌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는 징 앞으로 가서 한 번 쳤다. 놋쇠 징의 울림이 가슴뼈를 지나 발바닥으로 빠져나갔다.
“첫 판, 석교문 검보는 문채에게 가오.”
*
두 번째 판은 나루 땅이었다.
흙 단지를 대 한가운데로 옮기며 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백결은 마흔다섯이고, 문채는 마흔하나였다. 석교문은 낙수 나루 옆에서 제자 일곱을 데리고 뱃사람들에게 검을 가르쳐 온 작은 문파였고, 문파가 가진 것 가운데 돈이 되는 것은 나루 옆 방앗간 땅 하나뿐이었다. 배가 닿는 자리라 낙양 장사꾼이라면 누구나 탐을 냈다.
“시작하시오.”
두 번째 판은 첫 판과 소리가 달랐다. 문채는 아까처럼 소리를 지르지 않았고, 백결은 아까보다 칼을 크게 휘둘렀다. 크게 휘두르는데 칼끝이 상대에게 닿기 전에 늘 한 치씩 짧았다. 왼발이 늦게 떨어지는 소리가 세 번 연달아 났다.
일부러 지려는 사람의 발은 늦는다. 몸은 이기려고 앞으로 나가는데 마음이 뒤꿈치를 붙잡는다. 할머니가 열 살 난 내게 처음 가르쳐 준 소리가 이것이었다.
이층 난간에서 대추 씹는 소리가 났다.
“발이 늦은 걸 이제 들었냐?”
할머니 추매화는 일흔이었고, 은퇴한 지 다섯 해째였고, 이 다섯 해 동안 단 한 판도 입을 다물고 본 적이 없었다. 관람석 사람들이 할머니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올려다보지 않았다. 판정인이 관람석에 대꾸하면 이 판은 관람석이 가르는 판이 된다.
나는 징을 쳤다. 이번에는 한 번, 짧게. 판을 세우는 소리였다.
“이 판, 양쪽 말을 따로 듣겠소.”
*
뒷방은 비무장 서쪽 행랑이었다. 창호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방이 둘이라, 한쪽에서 큰 소리를 내면 다른 쪽에 들렸다. 그래서 따로 들을 때는 노득칠이 문 앞에서 참외를 깎으며 크게 콧노래를 불렀다. 이 콧노래가 이 집에서 제일 듣기 싫은 소리였다.
백결은 앉자마자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손등에 굳은살이 박인 뱃사람 손이었다.
“다리가 아파서 그렇소. 아까 첫 판에서 무릎을 맞아서.”
“아까 맞은 건 오른쪽 무릎이오. 늦은 건 왼발이고.”
백결이 입을 다물었다. 숨을 고르는 소리가 났다. 거짓말을 하기 전의 숨은 고르다. 너무 고르다. 사람이 진짜 말을 할 때는 숨이 들쭉날쭉한데, 거짓말은 미리 외워 둔 것이라 숨까지 맞춰 놓는다.
“두꺼비.”
노득칠이 콧노래를 멈추고 들어왔다. 백결의 허리춤에 찬 전대를 눈짓으로 가리키자, 노득칠이 백결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전대를 풀어 은자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이것을 어금니로 깨물었다.
“쇠 맛이 나요, 당주. 은에 쇠를 섞어서 낙인을 깊게 찍으면 혀끝에 이런 맛이 돌아요.”
노득칠이 은자를 뒤집어 보였다. 한 냥짜리 은자 바닥에 말머리 하나가 눌려 있었다. 낙양 서쪽, 장안으로 가는 길목을 쥔 철기보는 제가 내보내는 은자마다 이 말머리를 찍었다. 낙양에서 이 낙인을 모르는 장사꾼은 없었다.
“나루 땅을 아내에게 주면, 아내가 그 땅을 철기보에 팔기로 했소.”
백결이 그렇게 말했다. 숨이 들쭉날쭉했다. 이번 말은 진짜였다.
“그러니까 지면 내가 은자 서른 냥을 받고, 아내는 땅값으로 삼백 냥을 받소. 아무도 손해 보는 사람이 없소. 철기보 사람이 그렇게 말했소.”
나는 창호지 너머 다른 방을 향해 귀를 돌렸다. 이 방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문채의 방에 들어가자 문채는 이미 비녀함을 무릎 위에 꺼내 놓고 있었다. 벽 하나 너머의 말은 다 들렸을 것이다. 문채가 비녀함을 열었다. 안에 비녀는 없고 말머리 낙인 은자 다섯 개가 누워 있었다.
“땅을 이기면 사겠다고 했어요. 지면 그만이고.”
“남편이 은자를 받은 건 알았소?”
“몰랐어요.”
숨이 들쭉날쭉했다. 문채가 비녀함 뚜껑을 쾅 닫았다.
“그 인간이 나한테 지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고요? 나한테 지는 데 돈이 든다고?”
“그건 지금 따질 일이 아니오.”
“나한테는 그게 제일 따질 일이에요!”
*
나는 두 사람을 다시 대 위에 세웠다. 그리고 이 사이에 은자 여섯 개를 내려놓았다. 백결의 전대에서 나온 것 하나와 문채의 비녀함에서 나온 것 다섯, 말머리 낙인이 다 위를 보게.
관람석이 조용해졌다. 은자가 돌바닥에 닿을 때 나는 가는 소리까지 이층에 들렸을 것이다.
“밖의 손이 든 판은 판정인이 대 위에서 보이면 무효요. 이 둘째 판은 한쪽이 지는 대가를 받았고, 다른 쪽이 이긴 뒤 팔 대가를 받았소. 이긴 쪽도 진 쪽도 정해져 있던 판이오. 무효로 하고, 내일 아침 다시 하오.”
징을 치려고 몸을 돌렸을 때, 관람석 동쪽 끝에서 손뼉 소리가 났다. 천천히 세 번.
“판정인 말씀이 다 옳소.”
사내는 회랑 난간에 팔꿈치를 걸치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쉰 남짓한 얼굴에 머리는 반쯤 셌고, 비단 옷 위로 쇠 비늘을 엮은 조끼를 걸쳤다. 열 손가락 가운데 넷에 쇠가락지가 끼워져 있었다. 사내가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뒤를 철기보 무사 넷이 따랐다. 무사들의 쇠장갑이 걸을 때마다 허벅지에 닿아 쩔걱거렸다.
“철기보 황보진악이오. 그 은자는 내가 냈소.”
“알고 있소.”
“그럼 이것도 아시겠구려. 부부가 제 몫을 파는 것은 이 나라 어느 법에도 걸리지 않소. 나는 장사를 했을 뿐이오. 판이 끝나면 저 땅은 누가 이기든 내 손에 오오.”
황보진악은 대 가장자리, 돌에 판 원의 홈 바로 바깥에 섰다. 한 발만 들이면 대 위였다. 판정인과 부부 말고는 누구도 이 원 안에 들어오지 못한다. 황보진악도 이것을 알고 원 바깥에서 멈췄다.
“판이 끝난 뒤에 사는 건 장사요. 판이 끝나기 전에 산 건 판정이오. 판정은 내가 하오.”
“판정비는 얼마요?”
관람석에서 누가 웃었다. 황보진악은 웃지 않았다.
“월하당이 요즘 손님이 없다고 들었소. 이 판 하나에 매달려 지붕을 고칠 셈이라고. 나는 판정에 돈을 내겠다는 것이 아니오. 판정인에게 일을 주겠다는 것이오. 낙양에는 이제 갈라설 부부가 줄을 설 거요.”
“그 줄 맨 앞에 철기보 은자가 서 있겠지.”
황보진악이 처음으로 나를 오래 보았다. 그리고 쇠가락지 낀 손가락으로 난간 기둥을 두 번 두드렸다. 쇳소리가 나무에 먹혀 둔하게 울렸다. 똑, 똑. 황보진악의 뒤에 서 있던 무사 하나가 고개를 아주 조금 숙였다.
“그럼 내일 아침에 다시 보십시다.”
황보진악은 돌아서 나갔다. 대문을 나서기 전에 한 번 멈춰 이층 난간을 올려다보았는데, 이 자리에는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대추를 씹다가 멈췄다. 황보진악이 나간 뒤에도 할머니는 한참 대추를 다시 씹지 않았다.
*
첫 징부터 마지막 징까지 부부는 월하당 문 안에서 먹고 잔다. 이것은 이 집 법이기 전에 낙양 세가들과 무림맹이 오래 지켜 온 약조였다. 판이 다 끝나기 전에 한쪽이 친정이나 사문으로 돌아가 사람을 데려오면 이 판은 판이 아니게 된다. 그래서 이 밤 백결은 동쪽 행랑에서, 문채는 서쪽 행랑에서 잤다. 마당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열아홉 해 산 부부가 서로의 코 고는 소리를 들었다.
자정이 넘어 담장 쪽에서 기왓장 하나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일어나 신을 꿰었다. 마당에 나가 보니 노득칠이 동쪽 담 밑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노득칠의 발치에 빈 술병 하나가 굴러다녔다.
“두꺼비, 그 술병 뭐야?”
“백 문주님이 한 병만 달라고 해서요. 제 돈 주고 산 거예요, 당주. 반 냥 받았어요.”
“그래서, 문주는 어디 갔는데?”
노득칠이 담 위를 가리켰다. 기왓장 하나가 비어 있었다.
“한 병으로는 안 된다고, 나루 주막에 가서 한 잔만 더 하고 온다고…. 나루 주막 국밥이 맛있거든요. 안 막았어요. 저도 한 그릇 부탁했고요.”
나는 대문 빗장을 풀었다. 판이 끝나기 전에 문 밖에 나간 사람을 끌고 들어올 법은 없었다. 끌고 들어오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대문을 열자 백결이 이 앞에 서 있었다.
백결은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감싼 손가락 사이로 검은 것이 뚝뚝 떨어졌다. 국밥 냄새 대신 피 냄새가 났다. 오른손 손가락이 다섯 개 다 바깥쪽으로 꺾여 있었다. 칼에 베인 손이 아니었다. 무언가 무겁고 단단한 것이 손등을 위에서 눌러 쥐어짠 손이었다.
“누가 그랬소?”
백결은 대답 대신 이를 딱딱 부딪쳤다. 서쪽 행랑의 문이 열리고, 문채가 맨발로 마당을 건너왔다. 남편의 손을 보고 한 걸음 멈췄다가, 다음 걸음에는 뛰었다.
“이 미친 인간아, 국밥 먹으러 나갔다며!”
*
아침에 비무장에는 어제보다 사람이 두 배로 늘어 있었다. 소문은 국밥보다 빨랐다. 노득칠은 참외 대신 자리를 팔았다. 회랑 기둥 옆 자리가 동전 열 닢이었다.
황보진악은 어제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쇠가락지 낀 손을 무릎 위에 포개고.
백결이 대 위로 올라왔다. 오른손은 흰 무명으로 감겨 가슴 앞에 매달려 있었고, 왼손에는 검 대신 아무것도 없었다. 문채는 맞은편에서 검을 쥐고 있었는데, 이 검끝이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
“판정인.”
백결이 나를 불렀다.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칼을 못 드는 몸이 되면 피붙이 하나를 세울 수 있다고 들었소.”
부부는 제 손으로 싸운다. 몸이 상해 칼을 못 드는 쪽만 피붙이 하나를 대신 세운다. 증조할머니가 이 집 문을 열면서 정한 법이었고, 이후로 백 년 가까이 바뀐 적이 없었다.
“세울 수 있소.”
“그럼 세우겠소.”
백결이 고개를 돌려 대문 쪽을 보았다. 사람들이 이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대문 안으로 한 사내가 걸어 들어왔다. 백결보다 열 살쯤 젊고, 키가 한 뼘 크고, 비단 옷 위에 쇠 비늘 조끼를 입었다. 손에 쇠장갑을 꼈다. 백결이 걸을 때마다 쇠장갑이 허벅지에 닿아 쩔걱거렸다. 어제 황보진악의 뒤에 서서, 가락지 두 번 소리에 고개를 숙이던 이 무사였다.
“내 아우요.”
백결이 말했다. 백결의 아우는 대 가장자리 원의 홈 앞에 서서 형을 보지 않고 나를 보았다. 관람석 동쪽 끝에서 쇠가락지가 무릎을 두 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