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513자)

망산의 두 사람

무림세가 부부의 이혼 비무는 내가 판정한다 · 강묵현

망산 오르는 길 내내 노득칠의 등에서 징이 울었다⁠.

월하당 회화나무에 걸려 있던 놋쇠 징이었다⁠. 맹 총단에도 징은 있다고 했지만⁠, 나는 우리 징을 가져가기로 했다⁠. 판정인은 제 귀에 익은 소리로 판을 가른다⁠. 노득칠은 이 징을 새끼줄로 등에 묶고 올랐고⁠,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징 가장자리가 엉덩이를 쳐서 낮게 웅 하고 울었다⁠.

“⁠당주⁠, 산 오르는 내내 판이 끝났다고 알리는 것 같아요⁠.⁠”

“⁠그럼 천천히 걸어⁠.⁠”

“⁠천천히 걸으면 더 길게 울어요⁠.⁠”

낙양 성 북쪽⁠, 망산 기슭에 무림맹 총단이 있었다⁠. 회색 돌담이 산허리를 반 바퀴 둘렀고⁠, 이 안에 전각 아홉 채가 층층이 올라앉았다⁠. 문지기들이 노득칠의 등에 매달린 징을 보고 창을 겨누었다가⁠, 내가 옻칠한 맹주의 패를 꺼내자 창을 거두었다⁠. 노득칠이 문지기 하나에게 무언가 속삭였고⁠, 문지기가 동전 두 닢을 맹주의 손에 쥐여 주었다⁠.

“⁠두꺼비⁠, 뭘 판 거야⁠?⁠”

“⁠판을 판 거예요⁠. 맹주님 판에 누가 이길지⁠. 저는 아직 안 걸었어요⁠. 받기만 했어요⁠.⁠”

*

맹주는 쉰여덟이었다⁠. 키가 작고 어깨가 둥글었으며⁠, 손등에 검버섯이 앉아 있었다⁠. 무림 일을 스무 해 넘게 맡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오래된 서당 훈장 같은 얼굴이었다⁠. 총단 뒤뜰 정자에서 나를 맞았고⁠, 따로 듣는 자리에 시중드는 사람 하나 두지 않았다⁠.

“⁠스무 해 전⁠, 맹은 집이 없었소⁠.⁠”

맹주가 말했다⁠.

“⁠그 전 맹주가 세가들 사이에서 쫓겨나듯 물러난 뒤⁠, 맹은 이 세가 저 세가 대청을 빌려 회의를 했소⁠. 집 없는 맹은 맹이 아니었소⁠. 그때 철기보가 이 망산 기슭 땅을 사서 제 누이의 혼수로 보내겠다고 했소⁠. 혼인을 하면 그 땅에 총단을 세울 수 있었소⁠.⁠”

“⁠그래서 혼인했소⁠?⁠”

“⁠그래서 혼인했소⁠. 나는 마흔이었고 그 사람은 스물이었소⁠.⁠”

맹주의 숨은 들쭉날쭉했다⁠. 맹주는 부끄러운 일을 부끄러운 그대로 말하고 있었다⁠.

“⁠스무 해 동안 나는 나쁜 남편이 아니었소⁠. 좋은 남편도 아니었고⁠. 그 사람은 스무 해 동안 나에게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소⁠. 옷 한 벌도⁠, 사람 하나도⁠. 지난달 처음 청한 것이 이혼이었소⁠. 처음 청한 것을 어찌 안 들어주겠소⁠.⁠”

“⁠대 위에 무엇을 올리겠소⁠?⁠”

“⁠그 사람이 올리자는 것은 다 올리겠소⁠. 총단 땅⁠, 내 검⁠, 혼례 때 그 사람이 꽂고 왔던 비녀⁠.⁠”

“⁠총단 땅을 잃으면 맹은 다시 집이 없어지오⁠.⁠”

맹주가 정자 기둥에 기댔다⁠.

“⁠스무 해 전에 집을 사려고 사람을 받았소⁠. 이제 그 사람을 돌려보내는데 집만 지키겠다고 하면⁠, 나는 스무 해 전보다 더 나쁜 사람이 되오⁠.⁠”

*

맹주 부인은 총단 동쪽 전각에 있었다⁠. 마흔⁠. 오라비를 닮아 키가 컸고⁠, 오라비와 달리 손가락에 가락지가 하나도 없었다⁠. 나를 보자 웃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웃는 웃음이 아니라⁠, 오래 기다린 사람을 보는 웃음이었다⁠.

“⁠월하당 손녀⁠.⁠”

“⁠판정인이오⁠.⁠”

“⁠그래⁠, 판정인⁠. 우리 어머니 판을 가른 집 손녀가 내 판을 가르는 걸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맹주께 그 사람을 청했어요⁠. 간판 말고 그 사람을⁠.⁠”

“⁠총단 땅을 올리겠다고 들었소⁠.⁠”

“⁠내 혼수예요⁠. 스무 해 동안 내 땅 위에 남의 집이 서 있었어요⁠. 이제 내 땅으로 돌려받겠어요⁠. 땅이 내 것이 되면 맹은 내 땅 위에 세 든 집이 되죠⁠.⁠”

“⁠그 땅이 부인 것이 되면⁠, 그다음엔 누구 것이 되오⁠?⁠”

부인이 웃음을 거두었다⁠. 창밖으로 총단 전각 지붕들이 층층이 내려다보였다⁠.

“⁠오라비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숨이 골랐다⁠. 너무 골랐다⁠. 그런데 이 고른 숨 끝에 아주 작게 다른 것이 붙어 있었다⁠. 거짓말 앞의 숨이 아니라⁠, 거짓말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의 숨이었다⁠. 나는 그런 숨을 처음 들었다⁠.

부인이 다시 웃었다⁠.

“⁠판정인⁠, 우리 어머니가 간판을 받으셨다면서요⁠.⁠”

“⁠발 앞에 놓아 드렸소⁠.⁠”

“⁠어머니가 어젯밤 사람을 보냈어요⁠. 그 간판⁠, 아직 돌바닥 위에 있다고⁠. 이슬 맞지 말라고 그 집 할망구가 밤새 소매로 덮고 있었다고⁠.⁠”

*

원로회는 해가 기울 무렵 의사청에 모였다⁠.

맹 원로 아홉이 긴 탁자 저편에 앉았다⁠. 형당 당주가 이 오른쪽 끝에⁠, 대문 밖 의자에 앉아 있던 이 집행관이 당주 뒤에 섰다⁠. 탁자 이편에 내가 섰고⁠, 노득칠이 징을 등에 진 채 내 뒤에 섰다⁠. 의사청 문가 기둥 옆에 황보진악이 앉아 있었다⁠. 맹 원로도 아니고 맹 사람도 아닌데 거기 앉아 있었고⁠, 아무도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가장 늙은 원로가 먼저 말했다⁠.

“⁠월하당 이대째 당주가 사십 년 전 판정을 팔았다는 말이 낙양에 돌고 있소⁠. 그 집이 간판을 내렸다는 것도⁠. 그리고 판정인은 단목 판에서 철기보 판정비 백 냥을 받았소⁠. 간판 없는 집⁠, 그것도 한쪽 집안 돈을 받은 판정인에게 맹주의 판을 맡길 수는 없소⁠.⁠”

“⁠맹주와 맹주 부인이 둘 다 나를 청했소⁠.⁠”

“⁠부부는 판정인을 청할 수 있소⁠. 판정인이 그 판을 가를 자격이 있는지는 원로회가 보오⁠.⁠”

다른 원로가 덧붙였다⁠.

“⁠원로회가 따로 판정인을 세우겠소⁠. 맹 안에도 비무를 가를 눈은 있소⁠.⁠”

나는 문가 기둥 쪽을 보았다⁠. 황보진악은 원로들 쪽도 나도 보지 않고 제 무릎을 보고 있었다⁠. 쇠가락지 낀 손가락이 무릎 위에 가만히 얹혀 있었다⁠. 두드리지 않았다⁠. 두드릴 필요가 없었다⁠. 원로들이 할 말을 대신 하고 있었다⁠.

나는 노득칠을 돌아보았다⁠. 노득칠이 등에서 징을 내리고⁠, 품에서 묵직한 주머니를 꺼내 내게 건넸다⁠. 나는 이 주머니를 탁자 위에 거꾸로 쏟았다⁠.

은자가 탁자 위에 쏟아져 굴렀다⁠. 백 개⁠. 하나도 빠짐없이 말머리 낙인이 찍혀 있었다⁠. 원로들이 몸을 뒤로 젖혔다⁠.

“⁠단목 판의 판정비요⁠. 간판 줄을 새로 사려고 받았소⁠. 간판을 다시 걸 날이 오지 않아서 한 푼도 쓰지 않았소⁠. 두꺼비⁠, 몇 개야⁠?⁠”

“⁠백 개요⁠, 당주⁠. 제가 깨물어 세었어요⁠. 어금니가 아직 아파요⁠.⁠”

나는 은자 더미를 두 손으로 밀었다⁠. 탁자 끝까지⁠, 문가 기둥 쪽 끝까지⁠. 은자 몇 개가 탁자에서 떨어져 황보진악의 발치로 굴러갔다⁠.

“⁠돌려드리오⁠, 철기보 보주⁠. 판정비는 판이 끝나면 판정인 것이지만⁠, 이 돈이 판정인을 갈 까닭이 된다면 판정인 것이 아니오⁠.⁠”

황보진악이 발치의 은자를 내려다보았다⁠. 석교문 판 때 문채가 던진 은자를 하나씩 줍던 , 이번에는 줍지 않았다⁠.

“⁠돈을 돌려준다고 판정인이 깨끗해지오⁠?⁠”

“⁠깨끗해지려는 게 아니오⁠. 판정인은 깨끗한 사람이 아니라 양쪽을 다 듣는 사람이오⁠. 그걸 보일 사람들을 데려왔소⁠.⁠”

나는 의사청 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노득칠이 문을 열었다⁠.

*

맨 먼저 들어온 것은 단목현과 공손설이었다⁠. 나란히⁠. 둘 사이가 한 뼘쯤 떨어져 있었는데⁠, 문지방을 넘을 때 설이 현의 소매를 잡아당겨 이 한 뼘을 반 뼘으로 줄였다⁠.

“⁠단목세가 가주요⁠. 월하당 판정인은 내 집 부두를 아내에게 주고 저택을 나에게 주었소⁠. 그 판에서 판정인은 철기보 돈을 받고 철기보 살수를 대 위에서 드러냈소⁠. 판정이 철기보 쪽으로 기울었다면 그 살수는 지금 살아 있었을 거요⁠.⁠”

“⁠전 아내요⁠.⁠”

설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달 다시 아내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고⁠.⁠”

“⁠상을 아직 안 차렸소⁠.⁠”

“⁠월병 사 왔잖아⁠.⁠”

“⁠그 월병은 두꺼비가 가지고 있소⁠.⁠”

원로 하나가 헛기침을 했다⁠. 노득칠이 품속 보자기를 꼭 끌어안았다⁠.

뒤이어 공손 오라비가 들어왔다⁠. 원로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공손가 가주요⁠. 나는 철기보 은자를 받고 누이를 팔았소⁠. 판정인은 그걸 대 위에서 보였고⁠, 내 입으로 말하게 했소⁠. 판정인이 돈에 기울었다면 나 같은 놈은 대 위에 서지 않았을 거요⁠.⁠”

석교문 백결과 문채가 들어왔다⁠. 백결의 오른손은 아직 무명에 감겨 있었다⁠. 뒤이어 맨손의 아우가 들어와 문가에 섰다⁠. 황보진악이 앉은 기둥과 세 걸음 떨어진 자리였다⁠. 아우는 옛 보주를 보지 않았다⁠.

“⁠나루 땅 판정이요⁠.⁠”

문채가 말했다⁠.

“⁠판정인 팔뚝에서 피가 났어요⁠. 내 목 대신⁠. 그 판정인이 돈에 팔리는 사람이면⁠, 낙양에 안 팔리는 사람은 없어요⁠.⁠”

마지막으로 형당 집행관이 당주 뒤에서 한 걸음 나왔다⁠. 증인으로 부른 사람이 아니었다⁠.

“⁠형당 집행관이오⁠. 단목 판 나흘을 대문 밖에서 지켜봤소⁠. 판정인은 판정인 편도 철기보 편도 아니었소⁠. 약조 편이었소⁠. 나도 그랬고⁠.⁠”

형당 당주가 집행관을 돌아보았다⁠. 집행관은 이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의사청이 조용해졌다⁠. 원로들이 서로를 보았다⁠. 가장 늙은 원로가 탁자 위에 남은 은자 몇 개를 손가락으로 밀어냈다⁠.

“⁠맹주 부부가 청한 판정인을 원로회가 갈 까닭이 없소⁠.⁠”

문가 기둥 옆에서 황보진악이 일어섰다⁠. 발치의 은자를 줍지 않고 그냥 밟고 지나갔다⁠. 은자가 황보진악의 신발 밑에서 돌바닥에 긁히는 소리를 냈다⁠. 의사청 문을 나서기 전에 나를 돌아보았다⁠.

“⁠판정인⁠, 판은 대 위에서 갈리는 거요⁠. 의사청에서 갈리는 게 아니라⁠.⁠”

*

이 밤 나는 총단 객당에서 잠들지 못했다⁠. 노득칠은 마루에서 징을 끌어안고 잤다⁠. 코를 골 때마다 징이 이 숨을 받아 아주 낮게 웅웅거렸다⁠. 객당 문지기가 두 번이나 와서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자정 무렵 나는 객당을 나와 총단 뜰을 걸었다⁠. 동쪽 전각 앞을 지날 때 창호지 너머로 목소리 둘이 들렸다⁠. 하나는 낮고 느렸다⁠. 다른 하나는 높았다가 끊겼다⁠.

“⁠오라비 판이 아니라 내 판이에요⁠.⁠”

“⁠네 판이 내 판이다⁠. 사십 년 전부터⁠.⁠”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 안 하세요⁠. 어머니가 그 간판에 손을 얹었대요⁠.⁠”

“⁠어머니는 늙으셨다⁠.⁠”

“⁠나는 스무 해 동안 오라비가 산 땅 위에서 살았어요⁠. 그 땅을 내 손으로 돌려받고 싶어요⁠. 오라비 손 말고⁠.⁠”

한참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다음에 쇠가 무언가를 가르는 짧은 소리가 났다⁠. 칼이 칼집을 떠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보다 짧고 작았다⁠. 그리고 숨을 들이켜는 소리⁠. 비명이 되기 전에 이를 악물어 막은 숨이었다⁠.

나는 창호지 앞에서 멈췄다⁠. 판정인은 판 앞에서 양쪽 말을 다 듣는다⁠. 다만 문을 열고 들어가 듣지는 않는다⁠. 판이 열리기 전에 부부 한쪽의 방에 판정인이 들어가면⁠, 이 판은 판정인이 먼저 고른 판이 된다⁠.

전각 문이 열렸다⁠. 황보진악이 나왔다⁠. 나를 보았고⁠, 놀라지 않았다⁠. 황보진악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매 끝이 젖어 있었다⁠.

“⁠판정인⁠, 밤 산책이 기시구려⁠.⁠”

“⁠귀가 밝아서 잠이 안 오오⁠.⁠”

“⁠그 귀로 내일 잘 들으시오⁠.⁠”

황보진악은 객당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쇠가락지가 소매 안에서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멀어졌다⁠.

*

판정 날 아침⁠, 총단 비무장에 해가 들기 전에 나는 노득칠과 함께 징을 걸었다⁠. 총단 비무장은 월하당 마당보다 다섯 배는 넓었고⁠, 대는 둥근 돌 대가 아니라 네모난 흙 대였다⁠. 나는 노득칠에게 숯을 가져오게 해서 흙 대 위에 원을 그렸다⁠. 판정인과 부부 말고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원⁠. 월하당 돌바닥의 홈과 같은 크기로⁠.

이 원을 다 그렸을 때 비무장 동쪽 문으로 맹주 부인이 들어왔다⁠. 혼자였다⁠. 혼례 비녀를 꽂지 않고 머리를 낮게 틀었다⁠. 원 앞까지 걸어와 섰다⁠.

부인의 오른손이 흰 천에 감겨 있었다⁠. 손목부터 손가락 끝까지⁠, 여러 겹⁠. 천 바깥으로 붉은 것이 아주 조금 배어 나와 있었다⁠. 어젯밤까지 없던 천이었다⁠.

“⁠판정인⁠.⁠”

부인이 감긴 손을 들어 보였다⁠.

“⁠칼을 못 드는 손이에요⁠.⁠”

1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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