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444자)
맹주 부부
무림세가 부부의 이혼 비무는 내가 판정한다 · 강묵현
“손을 보겠소.”
맹주 부인이 감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숯으로 그은 원 안쪽에 서고, 원 바깥에 섰다. 판이 열리기 전이라 아직 원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흰 천을 한 겹씩 풀었다. 천이 손바닥에 말라붙은 자리에서 숨을 짧게 들이켰다. 마지막 겹을 떼어 내자 상처가 드러났다.
손바닥을 가로지른 한 줄이었다. 엄지 뿌리에서 새끼손가락 쪽으로, 처음은 깊고 끝으로 갈수록 얕았다. 짧은 칼날이었다. 칼날이 들어간 쪽이 엄지 뿌리였고, 빠져나간 쪽이 새끼손가락 아래였다. 남이 그은 상처라면 거꾸로였을 것이다. 남의 손을 붙잡고 칼을 대면 칼은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온다. 이 칼은 안에서 바깥으로 나갔다. 제 왼손에 칼을 쥐고 제 오른 손바닥을 그은 줄이었다.
“스스로 그었소.”
“네.”
숨이 들쭉날쭉했다. 부인은 진짜를 말했다.
어젯밤 동쪽 전각 창호지 너머에서 들은 짧은 쇳소리와, 비명이 되기 전에 막힌 숨. 이것은 오라비의 칼이 아니라 부인 자신의 칼이었다. 나는 이 소리를 다시 들었다. 귀 안에서.
“법이 어떻게 다쳤는지를 묻나요?”
맹주 부인이 물었다. 나를 똑바로 보고.
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증조할머니가 이 법을 정할 때 쓴 말은 몸이 상해 칼을 못 드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상했는지는 적지 않았다. 석교문 백결의 손이 누구 쇠장갑에 으스러졌는지 대 위에서 보일 수 없었을 때도 나는 이 법대로 했다. 이때 편하게 쓴 법을 오늘 불편하다고 고치면, 이 법은 처음부터 법이 아니었다.
“묻지 않소.”
나는 흰 천을 도로 감아 주었다. 아까보다 알맞게.
*
해가 비무장 동쪽 담을 넘어오자 사람들이 들어찼다. 총단 비무장은 월하당 마당보다 다섯 배 넓었는데, 관람석은 월하당보다 빨리 찼다. 맹 원로 아홉이 북쪽 단에 앉았고, 형당 당주와 집행관이 이 옆에 섰다. 낙양 세가 사람들이 서쪽에 섰다. 단목현과 공손설이 이 맨 앞에 나란히 섰고, 뒤에 단목 제자 스물아홉이 섰다. 공손 오라비는 이들과 다섯 걸음 떨어져 혼자 섰다. 석교문 사람들은 남쪽 끝에 국밥 솥을 걸었다. 문채가 장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노득칠은 징 옆에 서서 손을 비비고 있었다. 오늘은 판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문지기들에게서 받은 동전 두 닢을 제 손바닥에 올려놓고 들여다보았다.
“두꺼비, 누구한테 걸 거야?”
“당주한테요.”
“나는 판에 안 서.”
“그러니까 아무도 안 걸잖아요. 배당이 제일 커요.”
서쪽 맨 앞줄에서 공손설이 걸어왔다. 노득칠의 손바닥 위에 동전 한 닢을 얹었다.
“나도 판정인한테.”
“부인, 판정인은 판에 안 선다니까요.”
“그 사람은 맨날 대 위에 서 있었어. 우리 판 내내. 칼 맞은 것도 그 사람이고.”
공손설이 돌아가자 단목현이 따라와 제 동전을 한 닢 더 얹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노득칠이 손바닥의 동전 넷을 내려다보다가 이것을 징 옆 돌 위에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동쪽 문으로 가마 하나가 들어왔다. 낡은 가마였다. 월하당 대문간에 늘 세워 두던 가마였고, 가마꾼은 단목 제자 넷이었다. 가마 문이 열리자 할머니가 먼저 내렸다. 그리고 할머니가 가마 안으로 손을 넣어 다른 손 하나를 붙잡아 끌어냈다. 황보 노부인이었다.
두 늙은 여자가 비무장 동쪽 끝 그늘에 나란히 앉았다. 할머니가 대추 주머니를 열어 하나를 노부인에게 건넸고, 노부인은 이것을 받아 들고 먹지 않았다.
“가마가 왜 이리 흔들리냐? 이 집 아이들은 가마도 제대로 못 메냐?”
“언니가 무거워서 그래요.”
“나는 사십 년 동안 살이 빠졌다. 네가 쪘지.”
관람석 동쪽 사람들이 웃었다. 할머니가 나를 보았다. 노부인도 나를 보았다. 노득칠이 동쪽 끝에서 달려온 단목 제자에게서 말을 전해 받아 내게 옮겼다.
“당주, 노부인 말씀이요. 간판 일은 이 판 보고 정하신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대답은 판으로 해야 했다.
맹주 부인이 원 앞을 떠나 동쪽 그늘로 걸어갔다. 판이 열리기 전이라 어디로든 걸어갈 수 있었다. 노부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노부인이 대추를 할머니 손에 도로 쥐여 주고, 마른 두 손으로 딸의 감긴 손을 감쌌다. 천 위로 배어 나온 붉은 자리를 엄지로 쓸었다.
“누구를 닮아 이러냐?”
“어머니요.”
“나는 내 손은 안 그었다.”
“그래서 다 잃으셨잖아요.”
노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딸의 손을 놓지도 않았다. 할머니가 이 옆에서 대추 주머니를 묶었다 풀었다 했다. 사십 년 전 이 모녀를 철기보 밖으로 걸어 나가게 한 징을 친 손이었다. 이 손이 지금은 대추 주머니 끈 하나를 제대로 묶지 못했다.
이때 산 아래에서 소리가 올라왔다. 말발굽 소리였다. 한두 필이 아니었다. 쇠 갑옷이 말 등에서 출렁이는 소리가 이 발굽 소리에 섞여 있었다. 북쪽 단의 원로 하나가 일어나 담 너머를 내려다보았다. 망산 기슭 길에 철기보 기병이 모여들고 있었다. 깃발마다 말머리였다. 이들은 총단 담을 넘지 않았다. 담 아래 길에 줄을 지어 섰을 뿐이었다. 판이 끝나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나는 비무장 동쪽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 그늘에 황보진악이 서 있었다. 오늘 관람석에 앉지 않았다.
“산 아래 기병은 몇이오?”
“삼백이오. 판정인은 그런 것도 세오?”
“판정인은 칼 수를 세지 않소. 판을 세오. 다만 판이 끝나기 전에 저 말들이 담을 넘으면, 그건 밖의 손이오.”
“넘지 않소. 판이 끝난 뒤에 땅 임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러 올라올 뿐이오. 땅을 산 사람이 제 땅을 보러 오는 건 장사요. 판정인이 처음 그렇게 말하지 않았소?”
황보진악은 석교문 판 날 내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나는 이 말을 한 적이 있었고, 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어젯밤 동쪽 전각에서 들은 소리는 판정인이 옮기지 않겠지.”
“옮기지 않소. 잊지도 않소.”
“그럼 잘 기억해 두시오. 그 소리를 낸 건 내 칼이 아니었소.”
황보진악의 숨이 들쭉날쭉했다. 처음 들어 보는 황보진악의 진짜 숨이었다. 황보진악은 진짜를 말하고 있었고, 이 진짜가 자신에게도 달갑지 않은 것 같았다.
*
맹주와 맹주 부인이 원 앞에 마주 섰다. 같이 듣는 자리였다.
“같이 듣는 자리에서 한 가지씩 물을 수 있소. 부인부터.”
맹주 부인이 감긴 손을 옆구리에 붙였다.
“스무 해 동안 나한테 묻고 싶었던 거 있었어요?”
맹주가 부인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단목현이 공손설을 보던 것처럼 처음 보는 얼굴을 보듯이가 아니었다. 스무 해 동안 한 번도 제대로 보지 않은 얼굴을 이제야 보는 사람처럼 보았다.
“있었소. 매일.”
“그런데 왜 안 물었어요?”
“물으면 당신이 대답할 거고, 대답을 들으면 내가 이 집에 산 값을 알게 되니까.”
맹주 부인이 웃었다. 이 웃음에 쇳소리는 없었다. 다만 끝이 갈라졌다. 오래 참은 목이었다.
“맹주께서 물으시오.”
맹주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묻지 않겠소. 스무 해 동안 내가 물을 자격이 있던 날은 없었소.”
관람석이 조용했다. 서쪽에서 공손설이 단목현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낮게 말했는데 내 귀에는 들렸다.
“당신은 열여덟 해 동안 맨날 물었지. 국 짜냐고.”
“짰으니까 물었소.”
*
나는 대 위에 올릴 것을 받았다.
맹주가 먼저 원 안으로 들어와 몸을 숙였다. 총단 비무장 흙을 맨손으로 한 줌 떠서 작은 단지에 담았다. 총단이 선 땅의 흙이었다. 다음에 허리의 검을 풀어 흙 단지 옆에 눕혔다. 맹주의 검이었다. 스무 해 동안 맹주의 허리에 있던 검이 흙 위에 누우니 관람석 북쪽 원로들 사이에서 신음 같은 소리가 났다.
맹주 부인이 원 안으로 들어왔다. 감긴 손 대신 왼손으로 머리에서 무언가를 뽑았다. 낮게 튼 머리 안쪽에 숨겨 꽂았던 비녀였다. 금으로 만든 봉황 비녀였는데, 봉황의 날개 한쪽이 부러져 있었다.
“혼례 날 꽂았던 거예요. 첫날밤에 내가 부러뜨렸어요. 이 사람이 내 얼굴을 한 번도 안 보고 잠들어서.”
부인이 비녀를 검 옆에 놓았다. 흙 단지, 검, 부러진 비녀. 셋이 숯으로 그은 원 한가운데 나란히 놓였다.
나는 징 앞에 섰다. 노득칠이 징채를 내게 건네다가, 제 손이 징 쪽으로 반 박자 먼저 나가는 것을 느꼈는지 얼른 이 손을 제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았다.
“이 징이 울리면 스무 해 혼인이 끝나오. 남는 것은 나누는 일뿐이오. 치겠소?”
“치세요.”
“치시오.”
나는 쳤다.
월하당 회화나무에서 떼어 온 놋쇠 징이 망산 기슭에서 울었다. 이 울림이 총단 담을 넘어 산 아래 철기보 기병들의 말 귀까지 갔다. 말 몇 필이 머리를 쳐들었다. 스무 해 혼인이 징 한 번에 끝났다. 이 소리는 월하당 마당에서보다 길었다. 넓은 데서 치는 징은 오래 남는다.
*
징 소리가 다 사라지기 전에 맹주 부인이 감긴 손을 들었다.
“판정인. 칼을 못 드는 손이에요. 피붙이 하나를 세우겠어요.”
관람석이 술렁였다. 원로들이 일어섰다. 형당 당주가 집행관을 돌아보았다. 동쪽 그늘에서 황보 노부인이 대추를 쥔 손을 무릎 위에 떨어뜨렸다.
나는 법대로 말해야 했다.
“칼을 못 드는 몸이면 피붙이 하나를 세울 수 있소. 판정인은 그 손을 보았소. 어떻게 다쳤는지는 법이 묻지 않소.”
맹주가 부인을 보았다.
“부인, 누구를 세우려 하오?”
맹주 부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동쪽 그늘 쪽을 보았다. 거기 부인의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여든 넘은 몸으로는 칼을 들 수 없는 피붙이였다. 이 옆에 대추를 씹다가 멈춘 할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비무장 동쪽 문 그늘에서 사람 하나가 걸어 나왔다.
쇠 비늘 조끼를 입었다. 반쯤 센 머리. 열 손가락 가운데 넷에 쇠가락지. 허리에 곧고 넓은 칼. 사내가 걷는 동안 아무도 사내를 막지 않았다. 원로들도, 형당도, 맹주도. 쇠가락지가 소매 안에서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비무장 동쪽에서 서쪽으로 건너왔다.
황보진악은 숯으로 그은 원 바로 바깥에서 멈췄다. 늘 서던 자리였다. 이번에는 내 맞은편이 아니라, 원 안에 선 제 누이의 바로 뒤였다. 한 발만 들이면 원 안이었다. 발을 들이지 않았다. 대신 손을 들어 누이의 어깨 위에 얹었다. 쇠가락지 낀 손가락이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똑, 똑.
맹주 부인의 어깨가 이 소리에 아주 조금 굳었다. 숨 반 번만큼.
맹주가 나를 보았다. 그리고 북쪽 단의 원로들이 다 들을 수 있게 말했다.
“판정은 월하당 추하랑이 하오. 이 판이 어디로 가든.”
맹주 부인이 감긴 손을 내렸다. 부인도 나를 보았다. 오라비의 손을 어깨에 얹은 채로.
“판정은 그 사람이 해요. 내가 누구를 세우든.”
나는 징채를 쥐었다. 손잡이 가죽이 증조할머니 손 모양으로 닳아 있었다. 이 손 모양 안에 내 손을 넣고, 원 바로 바깥에 선 사내의 숨을 들었다. 고르지도 들쭉날쭉하지도 않은, 바위 같은 숨이었다.
그리고 이 앞, 원 안에 선 여자의 숨을 들었다. 들쭉날쭉했다. 부인이 입을 열었다.
“제가 세울 피붙이는….”
어깨 위의 쇠가락지가 멈췄다. 동쪽 그늘에서 노부인이 딸을 향해 몸을 일으키려 했고, 할머니가 이 팔을 붙잡았다. 나는 징채를 들어 올렸다. 누구의 이름을 대든, 다음 소리는 내가 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