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412자)
바닥
이혼 부부의 고양이 · 윤새벽
날마다 수액을 맞는 몸은 아침마다 등이 불룩하다. 다희가 출근 전에 놓고 가면 나는 낙타 혹을 단 채 소파 가운데 꺼진 자리에 누워 혹이 꺼지기를 기다린다. 혹은 점심때쯤 꺼진다. 꺼지고 나면 조금 덜 메슥거린다. 몸이 물을 받아먹은 것이다.
퇴원하고 사흘째 아침, 다희는 바늘을 세 번 꽂았다가 세 번 뺐다. 내가 세 번 다 몸을 비틀었다. 사흘 내내 맞으니 등가죽이 바늘을 기억했다. 다희가 커튼봉 아래 주저앉아 휴대전화를 들었다. 문자를 쓰다가 지우고, 다시 쓰다가 지웠다. 마지막에 짧게 보냈다.
저녁 일곱 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번호 소리가 아니었다. 도헌은 번호를 몰랐고, 다희는 번호를 알려 주지 않았다. 대신 문을 열어 주었다.
“잡아 줘. 나는 바늘만 할게.”
도헌이 소파 앞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나를 무릎에 올리고 두 손으로 내 앞다리와 뒷다리를 가만히 감쌌다. 세게 잡지 않았다. 도헌의 손바닥에서 박하와 담요가 왔다. 다희가 내 목덜미를 집었다. 삼각형. 바늘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나는 몸을 비틀려다가 도헌의 손에 막혔다. 막혀서 화가 나야 하는데 화가 나지 않았다. 도헌의 무릎이 따뜻했다.
수액이 들어가는 동안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봉지에서 방울이 똑, 똑 떨어졌다. 나는 등이 차가워지는 것을 참다가, 참다가, 방귀를 뀌었다. 뿌웅. 늙은 고양이의 방귀는 길다.
도헌이 고개를 돌렸다. 다희가 바늘을 잡은 채 어깨를 떨었다. 두 사람이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참지 않았다. 단 숨이 거실에 가득 퍼졌다. 열두 해 동안 이 소파 앞에서 두 사람이 웃던 냄새와 같았다. 나는 웃음 냄새 속에서 꼬리를 도헌의 손목에 감았다.
“너 일부러 그랬지.”
도헌이 내 코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나는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고백하자면 반쯤은 일부러였다.
수액이 끝나고 다희가 바늘을 뺐다. 도헌은 내 등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피 나지 않게 누르는 법을 도헌도 알고 있었다. 영상을 혼자 찾아본 것이다. 다희가 커튼봉에서 빈 봉지를 내리며 물었다.
“밥 먹었어?”
“아니.”
다희가 컵밥 두 개를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 앉지 않았다. 다희는 식탁에, 도헌은 소파 왼쪽 끝에 앉아 컵밥을 먹었다. 집을 나간 뒤 처음으로 소파 왼쪽에 도헌의 엉덩이가 내려앉았다. 쿠션이 도헌의 무게를 기억하고 깊이 꺼졌다. 나는 소파 가운데 자리로 올라갔다. 오른쪽은 비어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여자 목소리가 국회 소식을 전했다. 동물을 물건으로 보지 않는다는 한 줄을 법에 넣자는 말이 올해도 나왔다고. 다희와 도헌이 숟가락을 멈췄다가 한꺼번에 다시 움직였다.
도헌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중개인이었다. 도헌이 스피커를 누르지 않았지만 중개인의 목소리는 높아서 다 들렸다.
“선생님, 그 부부요. 다른 단지로 계약했대요. 호호. 아기방 보고 나서 마음이 좀……. 다른 손님 또 모실게요. 근데 가격은 좀 내리셔야…….”
도헌이 전화를 끊었다. 다희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컵밥 뚜껑을 닫는 소리만 났다. 나는 소파 가운데에서 도헌의 허벅지에 머리를 기댔다. 집이 문밖으로 나갈 날이 하루 늦어졌다. 고양이는 하루 늦어진 것을 이긴 것으로 친다.
*
열두 시, 할머니가 올라왔다. 바뀐 번호를 한 번에 눌렀다. 높고, 낮고, 높고, 높고, 낮고, 낮고, 높고, 낮고. 할머니는 물그릇을 갈고 모래를 본 뒤, 소파 오른쪽 끝에 앉아 주머니에서 츄르를 꺼냈다.
“무릎. 호박아, 무릎.”
할머니가 자기 무릎을 손바닥으로 탁탁 쳤다. 무릎이 딸깍했다. 나는 츄르 냄새를 따라 소파 위를 걸어가 할머니의 허벅지에 앞발을 올렸다. 할머니가 츄르를 짜 주었다. 닭고기가 혀에 녹았다.
“그렇지. 무릎. 무릎에 오면 츄르.”
할머니는 이것을 다섯 번 했다. 다섯 번째에 나는 부르기도 전에 할머니의 허벅지에 올라가 있었다. 할머니가 혀를 짧게 찼다. 웃는 소리였다.
“너 이거 다희한테 말하면 안 된다.”
저녁 여섯 시 반, 다희가 퇴근해서 들어왔다. 신발을 벗자마자 주머니에서 츄르를 꺼냈다.
“호박, 무릎.”
다희가 거실 바닥에 앉아 자기 무릎을 탁탁 쳤다. 할머니와 똑같은 소리였다. 나는 다희에게 갔다. 츄르를 먹었다. 다희는 이것을 일곱 번 했다. 할머니보다 두 번 많았다.
밤에 다희가 사료 봉지를 들고 부엌에서 혼잣말을 했다.
“너 왜 이렇게 배가 나왔어. 수액 때문인가.”
츄르 때문이었다. 하루에 열두 개를 먹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소파 가운데 꺼진 자리에 배를 깔았다. 꺼진 자리가 배를 다 받아 주지 못했다.
*
수요일 열두 시, 할머니가 번호를 누르고 들어왔을 때 집에는 다희가 있었다. 동물병원 재검 날이라 반차를 냈다고 했다. 두 사람이 현관과 거실에서 마주 보았다. 둘 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주머니 안에서 같은 소리가 났다. 츄르 봉지 구겨지는 소리.
“무릎.”
“무릎.”
두 사람이 한꺼번에 말했다. 할머니는 소파 오른쪽에서, 다희는 거실 바닥에서 자기 무릎을 탁탁 쳤다. 나는 거실 한가운데에 앉아 두 무릎을 번갈아 보았다. 두 츄르 냄새가 똑같았다. 같은 가게에서 산 것이었다. 나는 어느 무릎에도 가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다. 고양이는 기다리면 츄르가 온다는 것을 안다.
할머니가 먼저 졌다. 츄르를 짜서 내 코앞에 내밀었다. 다희도 졌다. 나는 두 츄르를 번갈아 핥았다.
“할머니, 그거 반칙이에요.”
“네가 먼저 짰어.”
“할머니가 먼저 내밀었잖아요.”
할머니가 혀를 차다가 웃었다. 다희도 웃었다. 웃다가 두 사람 다 내 배를 보았다.
“얘 배 좀 봐라.”
동물병원에서 수의사는 수치가 조금 내려왔다고 했다. 날마다 맞는 수액 덕이라고. 그러고는 내 뒷다리를 쥐어 보며 고개를 저었다. 뒷다리 근육이 많이 빠졌다고, 높은 데 뛰어오르는 것은 이제 힘들 수 있다고. 몸무게는 늘었는데 다리는 가늘어졌다고. 다희는 츄르 봉지를 주머니 깊이 밀어 넣었다.
*
수요일 저녁, 도헌이 퇴근길에 상자 몇 개를 들고 왔다. 작은방을 비우겠다고 했다. 아기 침대 상자는 도헌의 회사 동료가 받기로 했다고. 다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작은방 문을 열어 두었다. 이번에는 다희가 열었다.
도헌이 선반의 보랭 가방을 집었다. 지퍼를 열지 않고 상자에 넣었다. 다희가 문틀에 기대 서 있었다. 나는 노란 발자국 위에 앉아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다섯 번째 날짜, 왜 취소했는지 이제 말해.”
다희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도헌은 상자에 테이프를 붙이다 멈췄다.
“네가 주사 맞고 나서 밤마다 화장실에 들어갔잖아. 물 틀어 놓고.”
“…….”
“나도 들었어. 물소리 밑에서. 석 달 동안 날마다. 호박도 들었어. 호박이 밤마다 화장실 문 앞에 앉아 있었어. 너 나올 때까지.”
나는 기억한다. 화장실 문 밑 틈으로 물소리와 다희의 숨이 같이 새어 나왔다. 물소리는 숨을 덮으려고 틀어 둔 것이었다. 고양이 귀는 물소리 밑의 숨을 듣는다. 나는 문 앞에 앉아 꼬리로 문을 쓸었다. 다희가 나오면 다희의 종아리에 뺨을 비볐다. 다희는 늘 나를 안아 들고 웃었다. 웃는 얼굴에서 소금 냄새가 났다.
“그래서 내가 끝냈어. 너한테 물으면 또 하자고 할 거니까. 네 배를 내가 지키고 싶었어.”
“네가 지킨 건 네가 그 소리 안 듣는 거였어.”
도헌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도헌의 냄새가 시큼하게 변했다가 짭짤하게 변했다. 화난 땀과 창피한 땀이 번갈아 났다.
“둘 다야.”
“나는 그 소리 내면서 그래도 하고 싶었어. 내 몸이었으니까. 끝내도 내가 끝내고 싶었어. 근데 병원에서 남한테 들었어. 남편분이 취소하셨어요.”
다희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다희는 가장 아픈 말을 할 때 목소리를 낮추고 또박또박 말한다.
“그다음부터 너는 소파에서 잤고, 나는 이 방에 들어와서 잤어. 네가 소파에서 잠들고 나면. 네가 깨기 전에 나왔어.”
도헌이 상자를 내려놓았다.
“이번 발령도 그래. 너 혼자 정하고 나한테 통보했어. 이 집도 혼자 내놨어. 호박도 혼자 데려간다고 했어.”
“내가 안 나가면 너는 이 집에 안 들어왔어. 밤 열한 시까지. 나 때문에 네가 집에 못 오는 거, 그게 더 싫었어.”
“그러니까 그걸 물어봤어야지.”
“물으면 너는 괜찮다고 했을 거야.”
“그래. 괜찮다고 했을 거야. 그래도 물어봤어야지.”
두 사람은 노랗게 칠한 벽 사이에서 서로를 보았다. 이번에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노란 발자국 위에서 두 사람의 냄새를 오래 맡았다. 시큼한 땀도 짭짤한 땀도 아니었다. 두 사람에게서 같은 냄새가 났다. 소금기 섞인, 오래 참은 숨.
나는 열두 해 동안 두 사람을 영역을 다투는 수컷 둘처럼 보았다. 하나가 떠나고 하나가 담장을 갖는 다툼. 틀렸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이 집을 빼앗으려 한 적이 없었다. 하나는 상대를 이 방에서 꺼내려고 집을 팔려 했고, 하나는 상대가 비운 자리를 지키려고 집에 남으려 했다. 둘 다 지키고 있었다. 지키는 것이 서로였다.
도헌이 테이프를 다시 들었다.
“이 집에 너 혼자 두면, 너 또 이 방에 들어와 살 거야.”
“그럼 이 방을 열어 두면 되잖아.”
“열어서 뭐 해.”
다희가 내 쪽으로 턱을 들었다.
“호박 줘. 해 제일 잘 드는 방이야.”
도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기 침대 상자를 들고 방을 나갔다. 다희가 도헌의 등에 대고 말했다.
“소파 가져가. 네 거잖아.”
“금요일 아침에 이삿짐 차 와. 조정 날.”
“알아.”
*
밤에 나는 안방 침대에 올라가려 했다. 열두 해 동안 밤마다 다희의 발치에서 잤다. 침대 높이는 내 몸이 기억한다. 뒷다리에 힘을 모으고, 앞다리를 들고, 뛴다.
뒷다리가 바닥을 밀지 못했다. 앞발이 이불 끝에 닿았다가 미끄러졌다. 나는 침대 옆 바닥으로 떨어졌다. 엉덩이가 마룻바닥에 쿵 부딪혔다. 아프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고양이는 뛰다가 떨어지면 아무 일도 없었던 척 털을 고른다. 나는 털을 골랐다. 앞발 흰 발끝부터 꼼꼼히.
다희가 불을 켰다. 침대에서 내려다보았다. 털을 고르는 나와, 이불 끝의 내 발톱 자국을.
“호박.”
나는 털 고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다희가 침대에서 내려와 내 옆 바닥에 앉았다. 내 뒷다리를 손으로 조심스레 쥐어 보았다. 뒷다리가 다희의 손바닥 안에서 가늘게 떨렸다.
“너 이제 못 올라오는구나.”
다희의 목소리가 낮았다. 다희는 한동안 내 뒷다리를 쥐고 있다가 무릎을 세워 끌어안았다.
“모레 조정실에서 무릎에 어떻게 올라와.”
다희는 일어나 침대에서 이불을 끌어 내렸다. 베개도 끌어 내렸다. 바닥에 이불을 펴고 이불 위에 누웠다. 이불 끝을 들어 올리고 나를 보았다.
“내가 내려가면 되지.”
나는 이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희의 무릎이 바닥 높이에 있었다. 뛰지 않아도 되는 무릎이었다. 나는 다희의 무릎과 배 사이에 몸을 둥글게 말았다. 굵은 꼬리가 다희의 손목을 덮었다.
새벽에 현관 밖에서 박하 냄새가 잠깐 났다. 번호 소리는 나지 않았다. 신발이 문 앞에 한참 머물다가 계단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