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529자)
무릎
이혼 부부의 고양이 · 윤새벽
금요일 아침 여덟 시, 이삿짐 차가 단지 앞에 멈췄다. 디젤 냄새가 화단을 넘어 3층 방충망까지 올라왔다. 작업복 입은 남자 둘이 계단을 올라왔다. 땀과 목장갑과 남의 집 먼지 냄새가 났다. 도헌이 남자들 뒤에서 들어왔다. 오늘은 다희가 번호를 알려 주지 않아도 됐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소파 하나요. 이거 하나만 전주까지.”
나는 소파 속에 있었다. 등받이 쿠션과 앉는 쿠션 사이, 열두 해 동안 동전과 머리핀과 과자 부스러기가 빠져 들어간 틈이었다. 통통한 고양이는 들어가기 어렵지만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는 더 어렵다. 나는 새벽부터 쿠션 틈에 몸을 밀어 넣고 있었다. 영역의 마지막 남은 조각을 지키는 방법을 나는 하나밖에 몰랐다. 깔고 앉는 것.
남자 둘이 소파 양 끝을 잡았다.
“하나, 둘, 셋.”
소파가 들렸다. 나도 들렸다. 쿠션 사이에서 내 몸이 기울었다. 나는 울었다. 아우우.
“어? 소파가 울어요.”
남자 하나가 소파를 내려놓고 쿠션을 들췄다. 주황 줄무늬 엉덩이가 쿠션 틈에 박혀 있었다. 굵은 꼬리가 등받이 위로 삐져나와 흔들렸다. 다희가 입을 막고 몸을 돌렸다. 어깨가 흔들렸다. 도헌은 웃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가 결국 웃었다.
“호박, 나와. 이건 내가 가져가.”
도헌이 쿠션 틈에 손을 넣어 나를 꺼냈다. 나는 몸에서 뼈를 빼고 물처럼 흘러내렸다. 도헌의 팔 사이로 앞발과 배와 꼬리가 빠졌다. 도헌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나를 끝까지 받아 안았다. 끝까지 받는 데 한참이 지났다.
소파가 현관을 나갔다. 계단을 내려갔다. 이삿짐 차 문이 쾅 닫혔다.
거실 바닥에 소파 모양이 남았다. 열두 해 동안 햇빛을 받지 못한 마룻바닥이 둘레보다 한 빛깔 짙었다. 네모난 자국 안에 먼지가 소복했다. 동전 셋, 다희의 머리핀 하나, 도헌의 볼펜 뚜껑 하나, 그리고 내 털 뭉치가 수십 개. 나는 네모 안으로 걸어 들어가 냄새를 맡았다. 소파가 있던 자리에서 소파 냄새가 났다. 왼쪽 끝에 도헌, 오른쪽 끝에 다희, 가운데에 나. 소파는 떠났는데 바닥은 냄새를 놓지 않았다.
집이 문밖으로 나간다는 말을 나는 처음에 이렇게 알아들었다. 냉장고가 계단을 내려가고 창틀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 실제로 나간 것은 소파 하나였다. 소파 하나가 나갔는데 집은 반쯤 나갔다. 나는 네모 가운데에 엎드렸다.
*
법원까지는 도헌의 차로 갔다. 도헌의 짐은 이삿짐 차에 다 실려 있었고, 도헌은 조정이 끝나면 곧장 전주로 내려간다고 했다. 뒷좌석에 담요가 없었다. 담요도 이삿짐 차에 실렸다. 차 안에는 이제 박하와 새 플라스틱 냄새만 났다.
다희는 이동장을 무릎에 올리고 창살 사이로 손가락을 넣었다. 손가락에 밴드가 없었다. 송곳니 자국이 하얗게 아물어 있었다. 할머니는 조수석에서 이번에는 안전띠를 한 번에 맸다.
“오늘 아침 약 먹였냐?”
“먹였어요. 수액도요.”
“새 사료는?”
“어제 들어왔어요. 외국에서 배가 드디어 왔대요. 원래 먹던 거로 다시.”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헌은 운전대를 쥔 손가락으로 아무 박자도 짚지 않았다.
*
조정실은 2주 전과 같았다. 긴 탁자 하나, 의자 넷. 오후 햇빛이 창으로 비스듬히 들어와 바닥에 누웠다. 조정위원이 은테 안경을 쓰고 탁자 끝에 앉아 있었다. 치마에서 오늘도 고양이 셋의 냄새가 났다. 나는 이번에는 털을 세우지 않았다. 한 번 맡은 냄새다.
“시작하기 전에 하나만요.”
조정위원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주머니에 든 거 다 꺼내 주세요. 간식이요.”
다희가 주머니에서 츄르 두 개를 꺼냈다. 할머니가 카디건 주머니에서 츄르 세 개를 꺼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보았다. 조정위원이 도헌을 보았다. 도헌이 점퍼 안주머니에서 츄르 하나를 꺼냈다. 다희와 할머니가 한꺼번에 도헌을 보았다.
“너도?”
“……혹시 몰라서.”
조정위원이 츄르 여섯 개를 서랍에 넣고 잠갔다.
“부르지도 마세요. 이름도, 무릎도. 손짓도요. 저희 집 애들은 부르면 반대로 갑니다.”
조정위원이 이동장 앞에 쪼그려 앉아 문을 열었다. 철컥. 이번 철컥은 병원이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
나는 이동장 안에 한참 앉아 있었다. 늙은 고양이는 서두르지 않는다. 문이 열렸다고 바로 나가는 고양이는 없다. 문 밖의 냄새를 다 맡은 뒤에야 나간다.
문 밖에 의자 셋이 있었다. 왼쪽 의자에 도헌, 가운데 의자에 할머니, 오른쪽 의자에 다희. 소파와 같은 순서였다. 세 사람의 무릎이 의자 높이에 있었다. 나는 이동장에서 나와 가운데로 걸어가 의자를 올려다보았다. 의자는 침대보다 낮았다. 그래도 높았다. 뒷다리에 힘을 모아 보았다. 뒷다리가 떨렸다. 나는 의자 다리 앞에 앉았다. 앉아서 꼬리로 바닥을 쓸었다.
다희가 의자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소리 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무릎을 펴서 다리를 앞으로 뻗고 앉았다. 무릎이 바닥 높이에 있었다. 다희는 나를 부르지 않았다. 손짓도 하지 않았다. 그냥 앉아 있었다.
할머니가 다희를 내려다보았다. 혀를 찼다. 의자를 짚고 몸을 낮추기 시작했다.
“아이고, 내 무릎. 아이고.”
할머니의 무릎이 딸깍, 딸깍 두 번 울렸다. 할머니는 엉덩이부터 바닥에 내려앉아 다리를 옆으로 접었다. 숨을 몰아쉬었다. 조정위원이 손을 뻗어 할머니의 팔꿈치를 받쳤다.
“할머님, 괜찮으세요?”
“안 괜찮아. 그래도 앉아야지.”
도헌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바닥에 앉은 두 사람을 보았다. 한참 동안 보았다. 도헌의 냄새가 천천히 바뀌었다. 무언가를 정하기 직전의 냄새였다. 열두 해 동안 도헌이 혼자 무언가를 정할 때마다 맡던 냄새. 도헌이 고개를 돌려 다희를 보았다.
“나도 내려가도 돼?”
다희가 도헌을 올려다보았다. 도헌이 무언가를 물은 것이었다. 다희는 한 번 눈을 깜박였다.
“응.”
도헌이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조정위원이 세 사람을 둘러보고 안경을 고쳐 썼다.
“저는 안 내려갑니다.”
*
세 사람이 바닥에 앉아 있었다. 무릎 셋이 바닥 높이에 있었다. 이제 뛰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걸어가기만 하면 됐다.
나는 왼쪽부터 갔다. 도헌의 운동화에서 이삿짐 차의 디젤과 소파와 고속도로 휴게소 커피가 났다. 도헌은 오늘 새벽 전주에 짐을 먼저 내려 두고 올라왔던 것이다. 운동화 밑창에 낯선 흙이 묻어 있었다. 전주의 흙이었다. 처음 맡는 땅 냄새였다. 박하가 흙 냄새 위에 얹혀 있었다.
도헌은 나를 부르지 않았다. 손도 내밀지 않았다. 두 손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나는 도헌의 발목에 뺨을 댔다. 천천히, 귀밑에서 턱 끝까지. 한 번, 그리고 한 번 더.
뺨을 남의 발목에 비비면 너는 내 무리라는 표시가 된다. 도헌은 고양이 말을 몰랐다. 몰라도 알았다. 도헌의 숨이 한 번 끊겼다가 이어졌다. 목덜미에서 짭짤한 땀이 났다. 창피해서 나는 땀이 아니었다. 울음을 참는 사람의 땀도 짭짤하다는 것을 나는 이 방에서 처음 알았다.
나는 가운데로 갔다. 할머니의 손이 바닥을 짚고 있었다. 손끝에서 멸치와 파스와 늙은 흰 고양이가 왔다. 3년 동안 낮마다 내 귀 뒤를 긁은 손이었다. 나는 할머니를 올려다보고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 고양이끼리 하는 말이었다.
할머니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할머니도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사람이 고양이 말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할머니는 3년 동안 내가 졸린 줄로만 알던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면 지금 배웠다.
“알았다. 가라.”
할머니가 아주 작게 말했다. 조정위원이 부르지 말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부른 것이 아니었다. 보낸 것이었다.
나는 오른쪽으로 갔다. 다희의 무릎이 바닥에 있었다. 다희에게서 아침 수액의 알코올 솜과, 바닥에 편 이불과, 욕실 타일과, 작은방의 연한 노랑 페인트가 났다. 다희는 지난 이틀을 작은방 바닥에서 잤다. 문을 열어 두고, 나와 함께. 복숭아 샴푸는 여러 냄새 맨 밑에 있었다. 열두 해 동안 변하지 않은 밑바닥이었다.
나는 다희의 무릎에 앞발을 올렸다. 뛰지 않았다. 걸어서 올라갔다. 무릎과 배 사이에 몸을 둥글게 말았다. 굵은 꼬리로 다희의 손목을 덮었다.
다희는 나를 끌어안지 않았다. 손바닥을 내 등에 가만히 얹었다. 수액 바늘 자리를 피해서.
*
조정위원이 서류에 무언가를 오래 썼다. 볼펜 소리가 사각사각 났다. 다 쓰고 나서 고개를 들었다.
“아내분이 집에 남으시고, 남편분 몫은 대출로 먼저 드리고 나머지는 다섯 해에 나눠서. 고양이는 아내분이. 맞습니까?”
도헌이 다희를 보았다.
“이렇게 해도 돼?”
다희가 내 등을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는?”
“나도.”
할머니가 바닥에 앉은 채 손을 들었다.
“낮에는 내가 간다. 열두 시.”
“번호 안 바꿀게요.”
다희가 말했다. 할머니가 혀를 짧게 찼다.
조정위원이 서랍을 열어 츄르 여섯 개를 꺼냈다. 하나를 뜯어 내 코앞에 내밀었다. 나는 핥았다. 조정위원의 손등에서 세 고양이의 냄새가 났다. 남의 영역 냄새였지만 오늘은 괜찮았다.
“나머지는 가져가세요. 다섯 개 다 이 친구 거예요.”
할머니가 일어나려다 못 일어났다. 무릎이 딸깍 울리고 엉덩이가 도로 바닥에 붙었다. 도헌이 할머니의 왼팔을, 다희가 오른팔을 잡았다. 다희는 나를 한 팔에 안은 채였다. 두 사람이 한꺼번에 힘을 주었다. 할머니가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일어나고 나서도 할머니는 두 사람의 팔을 한동안 놓지 않았다.
“둘이 이렇게 한 번에 당길 줄 알면서.”
할머니가 혀를 찼다. 이번에는 길게 찼다.
*
저녁에 도헌이 현관 앞에 왔다. 들어오지 않았다. 문틈으로 식탁을 보며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에 작은 열쇠가 하나 있었다. 작은방 열쇠였다. 다희가 열쇠를 받아 식탁 위에 놓았다. 서랍에 넣지 않았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응.”
“호박 수치 나오면…….”
“보낼게.”
도헌이 쪼그려 앉았다. 나는 현관 매트에서 도헌에게 걸어갔다. 발목에 한 번 더 뺨을 비볐다. 도헌이 손을 내 정수리에 얹었다. 손바닥이 따뜻했다가 천천히 식었다. 도헌이 일어나 계단을 내려갔다. 2층에서 멈추지 않았다. 1층까지 한 번에 내려갔다. 차 시동 소리가 화단을 지나 멀어졌다. 박하가 계단에 오래 남았다.
*
밤 열 시, 다희는 커튼봉에 옷걸이를 걸고 수액 봉지를 매달았다. 거실 바닥, 소파가 있던 네모 자국 안에 이불을 폈다. 작은방 문은 열려 있었다. 낮에 작은방 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아직 노란 벽에 남아 있는 것처럼 방 안이 환했다. 문 앞 마룻바닥에 노란 발자국 넷이 그대로 있었다.
방충망 아래, 2층 할머니 집 베란다 밑에서 사료 알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토독, 토독. 고등어가 회양목 그늘에서 나와 할머니의 사료를 먹었다. 할머니 집 바둑 채널이 다시 탁, 탁 울렸다.
나는 네모 자국 한가운데, 소파 가운데 꺼진 자리가 있던 곳에 엎드렸다. 다희가 내 목덜미를 삼각형으로 집었다. 바늘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나는 몸을 비틀지 않았다. 등이 서늘해지며 천천히 불룩해졌다. 다희는 수액이 다 들어갈 때까지 바닥에 앉아 손바닥으로 내 등을 덮고 있었다. 왼쪽 끝은 비어 있었고, 오른쪽 끝에 다희가 있었다. 수액 방울이 똑, 똑 떨어졌다. 다희의 다른 손바닥 위에서 저녁 알약 하나가 차례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