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494자)

조정실

이혼 부부의 고양이 · 윤새벽

입원장 옆 칸에는 늙은 개가 있었다⁠. 털이 회색으로 바랜 진돗개였다⁠. 밤마다 앞발에 꽂힌 수액 줄을 핥다가 간호사에게 혼났다⁠. 나는 진돗개 냄새를 이틀 동안 맡았다⁠. 겁먹은 개의 침이 아니었다⁠. 오래 산 개가 낯선 데서 자는 냄새⁠, 지쳐서 덤덤한 냄새였다⁠. 나도 같은 냄새를 내고 있을 것이었다⁠.

사흘 동안 사람들이 차례로 왔다⁠. 아침 여덟 시에는 다희⁠, 열두 시에는 할머니⁠, 저녁 일곱 시에는 도헌⁠. 세 사람은 서로 시간을 맞추지 않았는데도 겹치지 않았다⁠. 고양이가 영역을 나눌 때 하는 방식이다⁠. 같은 길을 다른 시각에 걷는다⁠. 사람도 그럴 줄 아는 것을 나는 입원장에서 처음 알았다⁠.

다희는 유리문 앞에 쪼그려 앉아 손가락을 창살에 댔다⁠. 밴드가 하나로 줄어 있었다⁠. 할머니는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아 바둑 이야기를 했다⁠. 흑이 이겼는지 백이 이겼는지 나는 모른다⁠. 할머니 목소리의 높낮이가 듣기 좋았다⁠. 도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리문에 이마를 대고 서 있다가⁠, 간호사가 시간이 다 됐다고 하면 고개만 숙이고 갔다⁠.

*

이튿날 저녁 일곱 시⁠, 겹치지 않던 것이 겹쳤다⁠. 다희가 일곱 시에 왔다⁠. 내근으로 옮긴 첫날이라 여섯 시에 퇴근했다고 했다⁠. 도헌이 일곱 시에 왔다⁠. 할머니는 낮에 왔다가 가지 않고 대기실 의자에서 졸고 있었다⁠. 세 사람이 입원장 앞에서 마주쳤다⁠.

도헌이 먼저 말했다⁠. 입원장 유리에 손바닥을 붙인 채⁠.

“⁠나 생각해 봤어⁠. 수의사 선생님이 장거리는 안 된다고 했잖아⁠. 전주는 안 돼⁠. 그럼 집 팔고⁠, 호박은 할머니한테 맡기자⁠. 같은 건물이야⁠. 3층에서 2층⁠. 계단 한 층⁠. 할머니는 낮에도 밤에도 집에 계시고⁠. 병원비는 내가 다 낼게⁠.⁠”

다희가 도헌을 보았다⁠.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딸깍했다⁠.

“⁠내가 받겠다⁠.⁠”

“⁠할머니까지요⁠?⁠”

“⁠네가 번호 뺏은 날 얘가 쓰러졌어⁠.⁠”

할머니의 목소리에 쇳소리가 없었다⁠. 쇳소리 없이 하는 말이 더 아팠다⁠. 다희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다희는 입원장 유리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다가 유리 너머 나를 보았다⁠.

“⁠제가 키워요⁠. 내근으로 옮겼어요⁠. 오늘부터 여섯 시 퇴근이에요⁠. 승진 심사도 미뤘어요⁠.⁠”

“⁠그건 오늘부터고⁠.⁠”

도헌이 말했다⁠.

“⁠다음 달에 또 큰일 생기면⁠? 또 회의실에 폰 맡기고⁠?⁠”

“⁠안 맡겨⁠.⁠”

“⁠지난번에도 안 거른다고 했어⁠.⁠”

“⁠그때는 네가 아침마다 왔잖아⁠. 네가 오니까 나는⁠…⁠…⁠.⁠”

다희가 말을 멈췄다⁠. 도헌이 다희를 보았다⁠. 다희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나는 다희의 숨에서 끝나지 않은 말의 냄새를 맡았다⁠. 도헌이 아침마다 오니까⁠, 다희는 아침 약을 도헌에게 맡기고 마음을 놓았다⁠. 마음을 놓은 사람은 저녁 약도 놓친다⁠. 다희는 끝내 말하지 않았고⁠, 도헌은 알아듣지 못했다⁠.

간호사가 와서 면회 시간이 끝났다고 했다⁠. 세 사람이 입원장 앞에서 흩어졌다⁠. 옆 칸 진돗개가 앞발의 수액 줄을 핥았다⁠. 간호사가 또 혼냈다⁠.

*

퇴원은 금요일 열두 시였다⁠. 조정 기일은 금요일 오후 세 시였다⁠. 법원이 날짜를 정할 때 내 콩팥 사정을 보지 않은 것이다⁠.

병원 주차장에서 세 사람이 이동장을 가운데 두고 모였다⁠. 도헌이 차 문을 열어 둔 채 말했다⁠.

“⁠할머니가 집에서 데리고 계시면⁠…⁠…⁠.⁠”

“⁠나도 법원 가⁠.⁠”

“⁠제가 데리고 있을게요⁠. 반차 냈어요⁠.⁠”

“⁠너도 법원 가야지⁠. 당사자잖아⁠.⁠”

아무도 나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 하지 않았다⁠. 셋이 다 법원에 가야 했고⁠, 셋이 다 나를 혼자 두지 않으려 했다⁠. 결국 이동장이 도헌의 차 뒷좌석에 실렸다⁠. 할머니가 이동장 옆에 앉아 창살 사이로 내 등을 쓸었다⁠. 등에는 수액 바늘 자리에 작은 붕대가 붙어 있었다⁠.

가정법원 건물 입구에는 검색대가 있었다⁠. 가방을 컨베이어에 올려 통과시키는 기계였다⁠. 제복 입은 남자가 이동장을 보고 손을 들었다⁠.

“⁠동물은 안 됩니다⁠.⁠”

“⁠얘 오늘 퇴원했어요⁠. 차에 두면 더워서 안 돼요⁠.⁠”

“⁠규정상⁠…⁠…⁠.⁠”

할머니가 이동장을 끌어안았다⁠.

“⁠이 고양이 때문에 조정 받으러 왔어⁠. 고양이를 두고 오라는 게 말이 돼⁠?⁠”

제복 남자가 무전기로 어딘가에 물었다⁠. 한참 뒤 무전기에서 여자 목소리가 짧게 대답했다⁠. 제복 남자가 손을 내렸다⁠.

“⁠조정위원님이 들여보내래요⁠. 이동장 문은 열지 마세요⁠.⁠”

*

법원 복도는 동물병원 대기실과 같은 냄새가 났다⁠. 겁먹은 것들이 줄지어 앉았다 간 냄새⁠. 다른 것은 겁먹은 것이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의자마다 사람들의 땀이 배어 있었다⁠. 시큼한 땀⁠, 짭짤한 땀⁠, 찬 땀⁠. 복도 끝 어딘가에서 아이가 울었다⁠. 아이 우는 소리에 엄마의 목소리가 섞였다⁠. 괜찮아⁠, 금방 끝나⁠.

조정실은 작은 방이었다⁠. 긴 탁자 하나⁠, 의자 넷⁠. 창문으로 오후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탁자 끝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짧은 회색 머리에 은테 안경⁠. 손등에 가는 줄이 몇 개 나 있었다⁠. 고양이 발톱 자국이었다⁠.

조정위원이 일어나 이동장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나는 이동장 안에서 털을 세웠다⁠. 조정위원의 치마에서 고양이 냄새가 났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세 마리였다⁠. 늙은 암컷 둘과 젊은 수컷 하나⁠. 남의 영역 냄새를 잔뜩 묻히고 다가오는 사람에게 고양이가 할 일은 하나다⁠. 나는 꼬리를 부풀리고 낮게 울었다⁠. 우으으⁠.

“⁠아이고⁠, 우리 애들 냄새 맡았구나⁠.⁠”

조정위원이 손을 내밀었다⁠. 창살 앞에 손등을 대고 가만히 있었다⁠. 손을 쑥 들이밀지 않고 내가 맡을 때까지 기다리는 손이었다⁠. 나는 손등 냄새를 맡았다⁠. 세 고양이의 냄새 밑에 사료와 연필과 박하사탕이 있었다⁠. 겁먹은 땀은 없었다⁠. 나는 털을 내렸다⁠.

“⁠저도 셋 키워요⁠. 제일 큰 애가 열여섯 살이에요⁠. 콩팥이 안 좋아요⁠.⁠”

조정위원이 탁자로 돌아가 앉았다⁠.

*

“⁠시작하겠습니다⁠.⁠”

조정위원의 목소리는 낮고 느렸다⁠. 서류를 넘기는 손가락이 정확했다⁠.

“⁠재산분할부터요⁠. 아파트 하나⁠, 공동명의⁠. 남편분은 팔아서 반씩⁠, 아내분은 남편분 몫을 사서 계속 사시겠다⁠. 맞습니까⁠?⁠”

“⁠네⁠.⁠”

“⁠네⁠.⁠”

“⁠그리고 고양이⁠. 법에서는 고양이를 재산으로 봅니다⁠. 집이나 차처럼 나누는 물건이에요⁠. 그렇게 정해져 있어요⁠.⁠”

다희가 고개를 들었다⁠.

“⁠호박은 물건이 아니에요⁠.⁠”

“⁠법이 그렇다는 거예요⁠. 저도 저희 집 애들을 물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방에서는 법이 쓰는 말로 이야기해야 해요⁠. 국회에서 몇 해째 바꾸자는 말은 나오는데 아직 안 바뀌었어요⁠.⁠”

나는 재산이라는 말을 몰랐다⁠. 조정위원이 재산이라고 말할 때 도헌과 다희가 한꺼번에 이동장을 보았다는 것만 알았다⁠. 사람은 법의 말을 들을 때 가장 아끼는 것을 쳐다본다⁠.

도헌이 자기 생각을 말했다⁠. 수의사가 장거리 이동을 막았다는 것⁠, 아랫집 할머니가 낮에도 밤에도 집에 있다는 것⁠, 같은 건물이라 계단 한 층만 옮기면 된다는 것⁠. 도헌은 숫자를 많이 말했다⁠. 7월 보증금⁠, 대출 한도⁠, 다섯 해⁠.

다희가 가방에서 종이를 꺼냈다⁠. 은행 종이였다⁠. 한도가 조금 나왔다고 했다⁠. 모자라는 만큼은 다섯 해에 나눠 주겠다고 했다⁠.

“⁠7월에 보증금 내야 된다고 했잖아⁠.⁠”

“⁠전세 말고 월세로 가면 되잖아⁠. 지사 앞 오피스텔⁠.⁠”

“⁠네가 내 집을 정해⁠?⁠”

“⁠네가 내 고양이를 정하잖아⁠.⁠”

조정위원이 볼펜으로 탁자를 톡 쳤다⁠. 두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밖에 할머니 계시죠⁠. 진술서 내신 분⁠.⁠”

할머니가 들어왔다⁠. 의자가 넷이라 할머니는 이동장 옆 의자에 앉았다⁠. 조정위원이 진술서를 소리 내지 않고 읽었다⁠.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 났다⁠. 다 읽고 다희를 보았다⁠.

“⁠아내분⁠, 여기 적힌 것 중에 틀린 게 있습니까⁠?⁠”

다희가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다희를 보지 않고 이동장 창살만 보았다⁠.

“⁠없어요⁠. 다 맞아요⁠.⁠”

다희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할머니의 손이 이동장 창살을 한 번 쥐었다가 놓았다⁠.

*

조정위원이 안경을 벗어 탁자에 놓았다⁠. 안경을 벗자 눈이 작아졌다⁠. 피곤한 눈이었다⁠. 고양이 셋을 키우는 사람의 눈은 대개 피곤하다⁠.

“⁠세 분 다 고양이가 자기한테 온다고 하셨죠⁠. 서류에 그렇게 쓰셨어요⁠. 남편분은 대기실에서 무릎에 올라왔다고⁠, 아내분은 부르지 않아도 무릎에 온다고⁠, 할머님은 3년 동안 낮마다 귀 뒤를 내밀었다고⁠.⁠”

세 사람이 한꺼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기일이 2주 뒤입니다⁠. 그날 이 친구 다시 데려오세요⁠. 이 방에서 이동장 문을 열겠습니다⁠. 이 친구가 아내분한테 가면⁠, 아내분이 집에 남고 남편분은 나눠 받으시는 걸로⁠. 남편분이나 할머님한테 가면⁠, 집은 팔고 고양이는 할머님 댁으로⁠. 받아들이시겠어요⁠?⁠”

“⁠그게 법이에요⁠?⁠”

도헌이 물었다⁠.

“⁠법은 아니에요⁠. 조정이에요⁠. 두 분이 받아들이면 그게 합의가 됩니다⁠.⁠”

조정위원이 안경을 다시 썼다⁠.

“⁠말씀드려 둘게요⁠. 저희 집 애들은 제가 부르면 안 와요⁠. 고양이는 부르는 사람한테 가지 않아요⁠. 저도 이 친구가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그래도 하시겠어요⁠?⁠”

도헌이 다희를 보았다⁠. 다희가 도헌을 보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정면으로 본 것은 작은방 이후 처음이었다⁠. 할머니가 혀를 찼다⁠.

“⁠한다⁠.⁠”

“⁠할게요⁠.⁠”

“⁠…⁠…할게요⁠.⁠”

나는 이동장 안에서 몸을 돌려 누웠다⁠. 굵은 꼬리가 창살 밖으로 삐져나왔다⁠. 조정위원이 꼬리 끝을 보다가⁠, 손가락 하나로 아주 살짝 건드렸다⁠. 나는 꼬리를 거두지 않았다⁠.

*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사흘 만이었다⁠. 현관문이 열리자 내 영역의 냄새가 한꺼번에 왔다⁠. 소파⁠, 냉장고 위⁠, 식탁 다리 넷⁠, 작은방 문틀⁠. 사흘 사이 내 뺨 냄새가 조금씩 옅어져 있었다⁠. 나는 이동장에서 나오자마자 신발장 모서리부터 다시 비볐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한 군데 비비고 한 번 쉬었다⁠.

도헌은 현관 밖에 서 있었다⁠. 들어오지 않았다⁠. 다희도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다⁠. 도헌이 문틈으로 수액 봉지 꾸러미를 건넸다⁠. 사흘 치였다⁠.

“⁠내일 아침부터 날마다야⁠. 혼자 할 수 있어⁠?⁠”

“⁠해⁠.⁠”

도헌이 계단을 내려갔다⁠. 2층에서 발소리가 잠깐 멈추었다가 1층까지 이어졌다⁠.

할머니는 아직 3층 계단참에 있었다⁠. 무릎을 짚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다희가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의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숫자 여덟 개였다⁠. 나는 숫자를 모르지만 높낮이는 안다⁠. 높고⁠, 낮고⁠, 높고⁠, 높고⁠, 낮고⁠, 낮고⁠, 높고⁠, 낮고⁠.

“⁠2주 동안만이라도 낮에 와 주세요⁠.⁠”

할머니가 다희를 올려다보았다⁠.

“⁠2주 뒤엔 내 고양이일 수도 있는데⁠?⁠”

“⁠그러니까 와 주세요⁠. 할머니한테 가더라도⁠, 할머니 손 냄새는 알아야죠⁠.⁠”

할머니가 혀를 찼다⁠. 짧게 찼다⁠. 짧은 혀 차기는 할머니가 웃을 때 내는 소리다⁠.

“⁠너도 고양이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할머니가 계단을 내려갔다⁠. 다희가 문을 닫고 현관에 쪼그려 앉아 내 정수리에 코를 댔다⁠. 사람이 고양이 냄새를 맡는 것은 드문 일이다⁠. 다희는 오래 맡았다⁠.

나는 베란다로 갔다⁠. 방충망 찢어진 구석 아래 회양목 그늘에서 고등어가 올려다보고 있었다⁠. 사흘 동안 3층에서 아무 냄새도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고등어의 꼬리가 높이 솟았다⁠. 끝이 갈고리처럼 한 번 꺾였다⁠. 반갑다는 꼬리였다⁠. 나는 꼬리를 들어 대답하려 했다⁠. 굵은 꼬리가 반쯤 올라가다 내려왔다⁠. 고등어는 반쯤 올라간 꼬리로 충분하다는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8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