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49자)

문

이혼 부부의 고양이 · 윤새벽

월요일 아침⁠, 다희는 물그릇을 세 개 놓았다⁠. 부엌에 하나⁠, 거실에 하나⁠, 베란다 문턱에 하나⁠. 알약을 먹이고⁠, 손가락의 밴드를 새로 갈고⁠, 텔레비전을 켰다⁠. 동물 채널이었다⁠. 화면 속에서 사자가 얼룩말을 쫓았다⁠.

“⁠심심하면 이거 봐⁠. 열 시까지 올게⁠.⁠”

나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텔레비전 속 사자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냄새가 없는 짐승은 짐승이 아니다⁠. 나는 소파 왼쪽 끝에 올라가 쿠션에 코를 묻었다⁠. 도헌의 냄새는 이제 거의 없었다⁠. 실밥 사이에 먼지만 남아 있었다⁠.

열두 시에 나는 현관 매트에 앉았다⁠. 3년 동안 열두 시면 번호 소리가 났다⁠. 오늘은 나지 않았다⁠. 열두 시 반에도 나지 않았다⁠. 발밑에서 할머니 집 텔레비전 소리가 올라왔다⁠. 바둑 돌 소리였다⁠. 탁⁠. 한참 있다가⁠, 탁⁠. 할머니도 열두 시에 현관을 올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나는 돌 소리 사이의 긴 빈틈으로 알았다⁠.

월요일 밤 다희는 열 시 십 분에 들어왔다⁠. 화요일은 열 시 사십 분⁠. 수요일은 열한 시 반⁠. 들어올 때마다 다희의 냄새가 하루씩 짙어졌다⁠. 낯선 회사 회의실의 카펫⁠, 종이컵 커피⁠, 밤새 켜 둔 노트북의 뜨거운 플라스틱⁠. 외국 펀드 사람들과 화상으로 회의를 한다고⁠, 다희는 저녁 약을 먹이며 혼잣말을 했다⁠. 영어로 말하는 남자 목소리가 다희의 휴대전화에서 밤 열두 시까지 새어 나왔다⁠.

*

목요일 저녁 일곱 시⁠, 알람이 울렸다⁠. 다희의 휴대전화가 아니었다⁠. 다희가 식탁 위에 놓고 간 낡은 태블릿이었다⁠. 알람은 다섯 번 울리고 꺼졌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나는 아침부터 물을 덜 먹었다⁠. 물그릇 세 개 가운데 하나도 비우지 못했다⁠. 혀가 물에 닿으면 쇠 맛이 났다⁠. 콩팥이 나쁜 고양이의 입에서 나는 쇠 냄새가 오늘은 내 혀까지 내려와 있었다⁠. 점심때쯤부터 속이 불편했다⁠. 저녁 무렵 나는 부엌 매트 위에서 속이 불편해 몸을 웅크렸다⁠. 아침에 먹은 밥이 도로 넘어왔다⁠. 매트가 젖었다⁠.

나는 욕실로 갔다⁠. 욕실 타일은 집 안에서 가장 차가운 바닥이다⁠. 몸이 뜨거울 때 고양이는 차가운 바닥을 찾는다⁠. 타일에 배를 대고 엎드리자 조금 나아졌다⁠. 조금뿐이었다⁠. 뒷다리가 내 몸에서 멀어졌다⁠. 일어나려고 하자 뒷다리가 미끄러졌다⁠. 앞다리로 몸을 끌었다⁠. 욕실 문턱까지 가지 못했다⁠.

밤 열 시가 지났다⁠. 열 시 반이 지났다⁠. 현관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욕실 환풍기가 웅웅 돌았다⁠. 나는 환풍기 소리 밑에서 내 심장 소리를 들었다⁠. 빨랐다가 느려졌다가 했다⁠.

열한 시쯤 나는 울었다⁠. 늙은 고양이의 울음은 굵다⁠. 배에서 올라와 목에서 한 번 꺾인다⁠. 아우우우⁠. 한 번 울고 숨을 고르고 또 울었다⁠. 울음이 타일에 부딪혀 욕실 안을 돌다가 배수구로 빠져나갔다⁠. 배수구는 아래층과 이어져 있다⁠.

*

발밑에서 소리가 올라왔다⁠. 쿵⁠. 빗자루 자루가 아니었다⁠. 할머니가 욕실 천장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는 소리였다⁠. 할머니 집 욕실과 우리 집 욕실은 같은 자리에 있다⁠.

“⁠호박아⁠? 호박이냐⁠?⁠”

할머니의 목소리가 배수구를 타고 올라왔다⁠.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나는 대답하려고 울었다⁠. 소리가 반쯤만 나왔다⁠.

조금 뒤 계단에서 슬리퍼 소리가 올라왔다⁠. 할머니의 무릎은 계단 하나에 한 번씩 딸깍거린다⁠. 딸깍거리는 소리가 오늘은 빨랐다⁠. 현관 앞에서 멈췄다⁠.

삑⁠, 삑⁠, 삑⁠, 삑⁠, 삑⁠, 삑⁠. 높고⁠, 낮고⁠, 낮고⁠, 높고⁠, 높고⁠, 낮고⁠.

“⁠번호가 틀렸습니다⁠.⁠”

할머니가 한 번 더 눌렀다⁠. 도어락이 같은 말을 했다⁠. 할머니가 문을 두드렸다⁠. 쾅⁠, 쾅⁠, 쾅⁠.

“⁠다희야⁠! 다희 있어⁠?⁠”

할머니의 휴대전화가 신호음을 냈다⁠. 문 너머로 신호음이 길게⁠, 길게 이어지다가 여자 목소리가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한 번 더 걸었다⁠. 같은 목소리였다⁠. 할머니가 다른 번호를 눌렀다⁠.

“⁠도헌아⁠. 나다⁠. 지금 와⁠. 애가 울어⁠. 욕실에서⁠. 문이 안 열려⁠.⁠”

*

삼십 분은 고양이에게 긴 시간이다⁠. 나는 타일 위에서 할머니의 숨소리를 들었다⁠. 할머니는 문 앞 계단에 앉아 문틈에 대고 내 이름을 불렀다⁠. 호박아⁠, 호박아⁠. 부를 때마다 나는 꼬리 끝을 한 번씩 움직였다⁠. 소리는 이제 나오지 않았다⁠. 굵고 긴 꼬리가 타일을 쓰는 소리를 할머니가 들었을 리 없다⁠. 그래도 움직였다⁠.

엘리베이터가 3층에 멈췄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박하 스킨로션이 문틈으로 들어왔다⁠. 도헌이 뛰어오느라 땀이 박하를 덮고 있었다⁠.

“⁠할머니⁠, 애는요⁠?⁠”

“⁠울다가 그쳤어⁠. 그친 게 더 무서워⁠.⁠”

도헌이 번호를 눌렀다⁠. 삑⁠, 삑⁠, 삑⁠, 삑⁠.

“⁠번호가 틀렸습니다⁠.⁠”

“⁠다희 생일⁠.⁠”

삑삑삑삑삑삑⁠. “⁠번호가 틀렸습니다⁠.⁠”

“⁠결혼한 날⁠.⁠”

“⁠번호가 틀렸습니다⁠.⁠”

“⁠호박 데려온 날⁠. 4월 이십⁠…⁠…⁠.⁠”

“⁠번호가 틀렸습니다⁠.⁠”

도어락은 같은 말을 같은 높이로 했다⁠. 도헌이 번호를 누를 때마다 손가락이 더 세게 눌렀다⁠. 삑 소리가 비명처럼 높아졌다⁠. 나는 도헌의 목소리를 향해 앞다리로 몸을 끌었다⁠. 욕실 문턱을 넘었다⁠. 거실 바닥은 타일보다 따뜻했고⁠, 따뜻해서 더 힘이 빠졌다⁠. 소파 다리까지 가서 멈췄다⁠.

“⁠119는요⁠?⁠”

“⁠불렀어요⁠. 사람 없는 집 동물 때문에는 문 못 연대요⁠. 열쇠집 불렀어요⁠.⁠”

도헌이 문을 두드렸다⁠. 할머니보다 세게⁠, 할머니보다 느리게⁠.

“⁠호박⁠. 호박⁠, 아빠 왔어⁠. 조금만⁠.⁠”

아빠라는 말을 도헌이 쓴 것은 두 해 만이었다⁠.

*

열쇠공은 열두 시 사십 분에 왔다⁠. 공구 가방에서 쇠와 기름 냄새가 났다⁠. 열쇠공이 문을 보더니 도헌에게 물었다⁠.

“⁠집주인 맞으세요⁠? 신분증이랑 주소 확인되는 거요⁠. 요즘 확인 안 하고 열면 저희가 큰일 나서요⁠.⁠”

“⁠공동명의예요⁠. 주소는 지금 옮겨서⁠…⁠…⁠.⁠”

“⁠그럼 주인이 아니신⁠…⁠…⁠.⁠”

“⁠반은 주인이에요⁠.⁠”

할머니가 끼어들었다⁠.

“⁠반이면 됐어⁠. 뚫어⁠. 안에서 고양이 죽어⁠.⁠”

열쇠공이 도헌의 신분증과 할머니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도헌이 휴대전화에서 무언가를 찾아 내밀었다⁠. 집 서류 사진이었다⁠. 열쇠공은 한참 들여다보다가 공구 가방을 열었다⁠. 드릴이 윙 하고 돌기 시작했다⁠. 쇠가 쇠를 긁는 소리가 문을 뚫고 들어왔다⁠. 소파 밑 내 수염이 소리에 맞춰 떨렸다⁠.

드릴 소리 사이로 계단 아래에서 다른 소리가 올라왔다⁠. 맨발이 시멘트를 때리는 소리였다⁠. 구두를 벗어 손에 든 사람이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오르는 소리⁠. 복숭아 샴푸와 회의실 카펫과 식은 커피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멈춰요⁠! 열지 마세요⁠! 제가 열어요⁠!⁠”

드릴이 멈췄다⁠. 다희의 숨이 문 앞에서 거칠게 오르내렸다⁠.

“⁠전화 왜 안 받았어⁠.⁠”

도헌의 목소리였다⁠. 낮았다⁠.

“⁠회의실에 폰 맡겨야 돼⁠. 외부 기기 반입 금지라서⁠. 열한 시 반에 나와서 봤어⁠. 할머니 전화 열네 통⁠, 네 전화 아홉 통⁠.⁠”

“⁠번호 바꾸지 말라고 할머니가⁠…⁠…⁠.⁠”

“⁠알아⁠.⁠”

“⁠네가 할머니 번호 뺏었잖아⁠.⁠”

“⁠알아⁠! 비켜⁠.⁠”

삑삑삑삑삑삑삑삑⁠. 여덟 번⁠. 띠리릭⁠.

*

문이 열리자 세 사람의 냄새가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도헌이 가장 먼저 소파 밑의 나를 찾았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소파 밑으로 넣어 나를 꺼냈다⁠. 도헌의 손바닥이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으려고 이를 물고 있었다⁠. 이 사이로 박하가 샜다⁠.

“⁠차 대 놨어⁠. 큰 병원 가자⁠.⁠”

다희가 이동장을 가지러 베란다로 뛰었다⁠. 도헌이 새로 사 온⁠, 바퀴 달린 이동장이었다⁠. 다희는 이동장을 들고 잠깐 멈췄다가 그대로 들고 나왔다⁠. 할머니가 내 담요를 찾아 이동장에 깔았다⁠. 소파 담요가 아니라 내 방석에 덮던 작은 담요였다⁠. 할머니의 손이 담요 귀퉁이를 세 번 접었다 폈다⁠.

*

도헌의 차 안은 소파 담요 냄새로 가득했다⁠. 도헌은 담요를 뒷좌석에 늘 실어 두었던 것이다⁠. 다희가 뒷좌석에 앉아 이동장을 무릎에 올렸다⁠. 할머니는 조수석에 앉아 안전띠를 매다가 세 번 놓쳤다⁠.

“⁠신호 무시해⁠. 내가 벌금 내 줄게⁠.⁠”

“⁠할머니⁠, 그러다 사고 나면 어떡해요⁠?⁠”

“⁠사고 나면 둘이 같이 병원 가겠네⁠. 잘됐네⁠.⁠”

도헌이 웃지 않았다⁠. 다희도 웃지 않았다⁠. 할머니는 웃으라고 한 말이 아니었다⁠. 빨간불에서 차가 멈출 때마다 이동장이 앞으로 쏠렸고⁠, 다희의 손이 이동장 창살을 잡았다⁠.

다희가 창살 사이로 손가락을 넣었다⁠. 밴드 붙은 손가락이었다⁠. 나는 손가락에 코를 댔다⁠. 내 송곳니 자국 위에 밴드가 있었고⁠, 밴드 밑에서 다희의 피 냄새가 아주 조금 났다⁠. 나는 혀를 내밀어 밴드를 핥았다⁠. 혀가 말라서 까끌하지 않았다⁠.

다희가 작게 노래를 불렀다⁠. 열두 해 전⁠, 새끼였던 내가 밤마다 울면 다희가 불러 준 노래였다⁠. 가사는 모른다⁠. 높낮이는 안다⁠. 운전석에서 도헌의 숨이 노래의 높낮이에 맞춰 한 번 흔들렸다⁠. 도헌은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았다⁠. 대신 운전대를 쥔 손가락으로 박자를 짚었다⁠. 열두 해 전에도 도헌은 그렇게 했다⁠.

할머니가 창밖을 보며 혀를 찼다⁠.

“⁠이럴 거면 왜 갈라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차가 병원 앞에 멈췄다⁠.

*

밤에 여는 큰 동물병원은 낮의 동네 병원보다 밝고 시끄러웠다⁠. 형광등이 하얗고⁠, 어딘가에서 개가 끊이지 않고 울었다⁠. 야간 수의사는 중년 여자였다⁠. 커피와 소독약과 손등에 바른 연고 냄새가 났다⁠. 수의사가 내 잇몸을 눌러 보고⁠, 피를 뽑고⁠, 등에 바늘을 꽂았다⁠. 나는 몸을 비틀 힘도 없었다⁠.

“⁠수치가 많이 뛰었어요⁠. 오늘부터 사흘 입원하시고 수액을 계속 맞을게요⁠. 퇴원해도 이제 날마다 수액이 필요하실 거예요⁠.⁠”

세 사람이 진료실 벽에 붙어 서 있었다⁠. 한 사람씩 떨어져서⁠.

“⁠하나 더 말씀드릴게요⁠. 이 정도면 큰 변화는 견디기 어렵습니다⁠. 이사나 장거리 이동은 권하지 않아요⁠. 몇 시간씩 차를 타는 것만으로도 다시 이렇게 될 수 있어요⁠.⁠”

도헌의 몸에서 냄새가 빠져나갔다⁠. 오래 품고 다니던 무언가가 빠져나갈 때 사람의 몸은 잠깐 텅 빈 냄새를 낸다⁠. 전주까지 세 시간⁠. 도헌이 이동장에 넣어 둔 쪽지가 생각났다⁠. 나는 글자를 모르지만⁠, 다희가 읽어 준 소리는 기억한다⁠.

다희는 진료실 밖으로 나가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 새벽 세 시였다⁠. 상대는 한참 만에 받았다⁠. 다희의 목소리가 복도 유리를 넘어 들어왔다⁠.

“⁠팀장님⁠, 죄송해요⁠. 저 이번 건 빠질게요⁠. 그리고 다음 달부터 내근으로 옮겨 주세요⁠. 네⁠. 야근 없는 데로요⁠. 네⁠. 알아요⁠. 승진 심사 미뤄지는 거 알아요⁠.⁠”

*

나는 입원장 안에 누웠다⁠. 앞발에 수액 줄이 붙었다⁠. 입원장 유리문 너머로 대기실 의자가 보였다⁠. 긴 의자 하나에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왼쪽 끝에 도헌⁠, 오른쪽 끝에 다희⁠, 가운데에 할머니⁠. 할머니와 도헌 사이에 한 사람 앉을 자리⁠, 할머니와 다희 사이에 또 한 사람 앉을 자리가 비어 있었다⁠.

소파와 같은 모양이었다⁠. 왼쪽이 도헌⁠, 오른쪽이 다희⁠. 가운데 꺼진 자리에는 원래 내가 있었다⁠. 오늘은 할머니가 앉아 무릎에 내 담요를 개켜 올려놓고 있었다⁠.

할머니가 가끔 고개를 끄덕이며 졸았다⁠. 할머니의 고개가 기울 때마다 도헌과 다희가 한꺼번에 할머니에게 손을 뻗었다가⁠, 서로의 손을 보고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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