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51자)

진술서

이혼 부부의 고양이 · 윤새벽

여섯 시 오십 분에 현관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는 현관 매트에 앉아 기다렸다⁠. 일곱 시가 되어도 나지 않았다⁠. 도헌은 작은방이 열린 날 이후로 아침에 오지 않았다⁠. 번호가 틀려서가 아니었다⁠. 도헌은 이제 번호를 누르러 오지도 않았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것은 3층 맞은편 집의 된장국 냄새뿐이었다⁠.

아침밥이 한 번으로 줄었다⁠. 나는 열엿새 동안 두 번 먹던 밥을 한 번 먹고 나서 빈 그릇 앞에 오래 앉아 있었다⁠. 배는 부른데 무언가 모자랐다⁠. 아침밥이 둘이던 때는 두 사람의 냄새가 부엌에서 부딪혔다⁠. 이제는 복숭아 샴푸 하나만 왔다⁠.

다희는 휴대전화에 알람을 다섯 개 맞춰 두었다⁠. 여섯 시 반⁠, 여섯 시 사십 분⁠, 일곱 시⁠, 저녁 일곱 시⁠, 밤 아홉 시⁠. 처음 사흘 동안 알람이 울리면 나는 소파 밑으로 숨었다⁠. 알람 소리 뒤에 꼭 다희의 손가락이 내 입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흘째부터는 숨지 않았다⁠. 다희의 손가락에는 내 송곳니 자국이 다섯 쌍으로 늘어 있었다⁠. 자국 하나에 한 번씩 다희는 깊이 넣는 법을 배웠다⁠. 아래턱을 누르고⁠, 혀 안쪽⁠, 목을 쓸어내리기⁠. 나는 이 집에서 처음으로 알약 싸움에서 지는 날들을 보냈다⁠.

“⁠잘했다⁠, 호박⁠. 우리 둘 다 잘했다⁠.⁠”

다희는 손가락에 밴드를 붙이고 출근했다⁠. 현관문이 닫힐 때 다희의 구두 굽 소리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 번 멈췄다⁠. 알약을 먹였는지 한 번 더 생각하는 발소리였다⁠. 다희는 돌아오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먹였다는 것을 기억해 낸 것이다⁠.

*

월요일 오전에 화단에서 플라스틱 긁는 소리가 났다⁠. 관리사무소 작업복을 입은 남자 둘이 급식소 그릇을 자루에 담았다⁠. 할머니가 2층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며 소리쳤지만 남자들은 고개를 숙인 채 일했다⁠. 화단 말뚝에 하얀 종이가 붙었다⁠. 할머니가 화단까지 내려가 돋보기를 끼고 소리 내어 읽었다⁠.

“⁠화단 내 길고양이 먹이 주기를 금합니다⁠. 입주자대표회의⁠.⁠”

할머니가 종이를 손톱으로 긁었다⁠. 종이는 비닐로 덮여 있어서 긁히지 않았다⁠.

해 질 무렵 고등어가 3층 베란다 밑에 왔다⁠. 회양목 그늘에서 나와 방충망을 올려다보았다⁠. 고등어는 사흘째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털에서 생선 비린내가 빠지고 쓰레기통 비닐 냄새가 났다⁠. 꼬리 끝이 꺾이지 않았다⁠. 꺾을 힘이 없는 꼬리였다⁠.

방충망 왼쪽 아래 구석이 찢어져 있다⁠. 내가 세 살 때 발톱으로 찢었다⁠. 도헌이 테이프를 붙였다가 떨어지고⁠, 다희가 다시 붙였다가 떨어지고⁠, 두 사람이 서로 네가 고치라고 미룬 지 아홉 해가 지난 구멍이다⁠. 사료 알 하나가 겨우 빠지는 크기였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밥그릇을 앞발로 밀었다⁠. 그릇은 무거웠다⁠. 매트 끝까지 밀고⁠, 거실 바닥을 밀고⁠, 베란다 문턱에서 멈췄다⁠. 문턱을 넘길 수는 없었다⁠. 나는 그릇에 얼굴을 묻고 사료를 한 입 물었다⁠. 베란다까지 걸어가 찢어진 구석에 입을 대고 뱉었다⁠. 사료 알이 구멍으로 빠져 3층 아래로 떨어졌다⁠. 토독⁠.

고등어가 고개를 들었다⁠. 떨어진 알을 찾아 회양목 잎 사이를 헤집었다⁠.

나는 다시 부엌으로 갔다⁠. 한 입 물었다⁠. 베란다로 걸어갔다⁠. 가는 동안 입안의 사료 반이 내 배로 넘어갔다⁠. 늙은 고양이의 입은 사료를 오래 물고 있지 못한다⁠. 한 알을 떨어뜨리려면 두 알을 먹어야 했다⁠. 열 번을 왕복하는 동안 고등어는 사료 여덟 알을 먹었고⁠, 나는 열여섯 알쯤 먹었다⁠. 배가 다시 부풀었다⁠.

고등어가 마지막 알을 먹고 3층을 올려다보았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처음으로 고등어가 먼저 감았다⁠.

*

수요일 밤 열 시⁠, 다희는 커튼봉에 옷걸이를 걸고 수액 봉지를 매달았다⁠. 이번에는 영상을 틀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도헌이었다⁠. 다희는 받지 않으려다 스피커를 눌러 바닥에 내려놓았다⁠.

“⁠오늘 수액 날이지⁠.⁠”

“⁠지금 해⁠.⁠”

“⁠목덜미 너무 세게 잡지 마⁠. 삼각형으로⁠. 바늘은 비스듬히⁠.⁠”

“⁠알아⁠.⁠”

다희가 내 목덜미를 집었다⁠. 세지 않았다⁠. 바늘이 들어왔다⁠. 따끔했지만 반대편으로 삐져나오지 않았다⁠. 등이 서늘해지며 불룩해졌다⁠. 나는 도망가지 않았다⁠. 다희의 무릎 위에 엎드려 있었고⁠, 무릎이 떨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들어갔어⁠?⁠”

“⁠들어갔어⁠.⁠”

전화기 너머에서 도헌이 숨을 내쉬었다⁠. 박하는 전화기를 타고 오지 않는다⁠. 숨소리만 왔다⁠. 다희가 처음으로 혼자 해낸 수액이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수액 봉지에서 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똑⁠, 똑 났다⁠.

“⁠다음 주 현장 간다며⁠. 일주일⁠. 저녁 약 누가 줘⁠?⁠”

“⁠내가 열 시까지 올게⁠.⁠”

“⁠내가 갈게⁠. 퇴근하고 일곱 시면 가⁠.⁠”

“⁠번호 몰라⁠.⁠”

“⁠알려 주면 되잖아⁠.⁠”

“⁠할머니 데리고 들어오는 사람한테⁠?⁠”

“⁠그거랑 이거랑 같아⁠?⁠”

다희가 전화를 끊었다⁠. 수액 봉지가 다 비었다⁠. 다희는 바늘을 빼고 내 등을 손바닥으로 오래 눌렀다⁠. 피가 나지 않게 누르는 것이라고 수의사가 말했다⁠. 다희의 손바닥은 내 등이 다 식을 때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

목요일 열두 시⁠. 번호 소리가 났다⁠. 높고⁠, 낮고⁠, 낮고⁠, 높고⁠, 높고⁠, 낮고⁠. 할머니였다⁠. 그런데 문이 열리자 냄새가 둘 들어왔다⁠. 멸치와 파스⁠, 그리고 박하 스킨로션⁠.

“⁠들어와⁠. 내가 열어 주는 거니까 괜찮아⁠.⁠”

도헌이 할머니 뒤에서 신발을 벗었다⁠. 겨울옷을 가지러 왔다고 했다⁠. 도헌은 안방 장롱을 열어 두꺼운 점퍼 둘을 꺼내 쇼핑백에 넣었다⁠. 다희의 옷 사이에서 도헌의 옷을 하나씩 골라내는 손이 느렸다⁠. 나는 장롱 아래 칸에 들어가 앉았다⁠. 도헌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너 거기 있으면 옷 못 꺼내⁠.⁠”

나는 나오지 않았다⁠. 도헌의 스웨터 하나를 깔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도헌이 옷을 고르는 동안 식탁에 앉아 볼펜을 꺼냈다⁠. 종이 한 장을 펴고 돋보기를 꼈다⁠. 볼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사각사각 났다⁠. 할머니는 글을 쓰면서 소리를 냈다⁠. 늙은 사람은 쓰는 글을 입으로도 한 번 읽는다⁠.

“⁠3월 둘째 주 목요일⁠…⁠… 열두 시에 올라가 보니 호박이가 물그릇 앞에 엎드려 있었고⁠…⁠… 불러도 고개를 못 들었음⁠…⁠… 식탁 위 약통에 그날 아침 약이 그대로 있었음⁠…⁠…⁠.⁠”

나는 장롱에서 나와 식탁 다리 옆에 앉았다⁠. 3월 둘째 주 목요일을 나는 날짜로는 모른다⁠. 몸은 안다⁠. 아침부터 속이 불편했고⁠, 물그릇까지 가는 데 다리가 무거웠다⁠. 물그릇 앞에서 엎드린 뒤로는 일어날 수 없었다⁠. 할머니가 와서 내 입을 벌리고 혀 색을 보았다⁠. 할머니의 손이 떨렸다⁠. 할머니가 다희에게 전화를 걸었고⁠, 다희는 받지 않았다⁠. 할머니가 나를 안고 동물병원까지 걸어갔다⁠. 밤늦게 다희는 병원에서 나를 데려가며 할머니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도헌이 쇼핑백을 들고 나와 식탁 앞으로 왔다⁠.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할머니⁠, 이거 제가 써 달라고 한 거 아니에요⁠.⁠”

“⁠알아⁠. 내가 쓰겠다고 한 거다⁠.⁠”

“⁠다희가 알면⁠…⁠…⁠.⁠”

“⁠알아야지⁠. 법원에 낼 거니까⁠.⁠”

할머니는 볼펜을 내려놓고 돋보기 너머로 도헌을 보았다⁠.

“⁠우리 흰 애 죽을 때 나는 몰랐어⁠. 몰라서 못 봤어⁠. 이 집 애는 내가 봤어⁠. 본 걸 안 쓰면⁠, 나는 두 번 못 본 사람이 돼⁠.⁠”

도헌은 쇼핑백을 내려놓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엉덩이를 반만 걸치지 않고 깊이 앉았다⁠. 집을 나간 뒤로 처음이었다⁠.

“⁠할머니⁠. 발령⁠, 제가 신청한 거예요⁠.⁠”

“⁠다희한테 들었다⁠.⁠”

“⁠이 집에 들어오면 작은방 문부터 보여요⁠. 다희는 밤 열한 시 넘어야 들어오고⁠. 제가 안 나가면 다희가 안 들어와요⁠. 제가 없으면⁠, 일찍 들어올 줄 알았어요⁠.⁠”

“⁠그걸 다희한테 말해⁠.⁠”

“⁠말하면 또 제가 정한 게 되잖아요⁠.⁠”

할머니가 혀를 찼다⁠. 길게 찼다⁠.

“⁠정한 걸 말 안 하는 것도 혼자 정하는 거다⁠, 이 사람아⁠.⁠”

*

삑⁠, 삑⁠, 삑⁠, 삑⁠, 삑⁠, 삑⁠. 높고⁠, 낮고⁠, 낮고⁠, 높고⁠, 높고⁠, 낮고⁠.

할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도헌도 들었다⁠. 이 시각에 이 소리를 낼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문이 열리고 복숭아 샴푸가 들어왔다⁠. 다희는 노트북 충전기를 놓고 갔다며 한 시간 일찍 점심을 먹고 들렀다고 했다⁠. 말하다가 멈췄다⁠. 현관에 도헌의 신발이 있었다⁠.

다희가 식탁으로 왔다⁠. 종이를 보았다⁠. 할머니가 종이를 손바닥으로 덮지 않았다⁠. 다희가 종이를 집어 소리 내어 읽었다⁠. 첫 줄을 읽고⁠, 둘째 줄을 읽다가 목소리가 갈라졌다⁠.

“⁠할머니가 어떻게⁠…⁠…⁠.⁠”

“⁠내가 본 거 쓴 거다⁠. 거짓말 한 줄도 없다⁠.⁠”

“⁠알아요⁠. 거짓말 없는 거 알아요⁠.⁠”

다희의 겨드랑이에서 시큼한 땀이 솟지 않았다⁠. 대신 손끝이 차가워졌다⁠. 화가 나서 나는 냄새가 아니었다⁠. 들킨 사람의 냄새였다⁠. 3월 둘째 주 목요일 밤⁠, 병원 대기실로 뛰어 들어온 다희의 휴대전화에는 할머니의 부재중 전화가 일곱 통 떠 있었다⁠. 다희의 손끝은 3월의 밤에도 지금처럼 차가웠다⁠.

“⁠제가 야근하는 동안 3년 봐 주신 거⁠, 고마웠어요⁠. 진짜로요⁠.⁠”

다희가 종이를 내려놓았다⁠. 할머니 앞에 반듯하게⁠.

“⁠내일부터 안 오셔도 돼요⁠.⁠”

할머니의 손이 식탁 위에서 오므라들었다⁠. 마른 손등에 핏줄이 불거졌다가 가라앉았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종이를 반으로 접어 카디건 주머니에 넣었다⁠. 돋보기도 주머니에 넣었다⁠.

도헌이 일어났다⁠.

“⁠다희야⁠, 할머니가⁠…⁠…⁠.⁠”

“⁠너는 빠져⁠. 할머니 데리고 들어온 거 너잖아⁠.⁠”

“⁠내가 연 거다⁠.⁠”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는 현관으로 가다가 식탁 다리 옆에 앉은 나를 보고 멈췄다⁠. 쪼그려 앉으려다 무릎이 펴지지 않아 허리만 굽혔다⁠. 손을 뻗어 내 귀 뒤를 긁었다⁠. 손끝이 오늘은 따뜻했다⁠.

“⁠물 잘 먹어라⁠, 뚱땡이⁠.⁠”

할머니가 나갔다⁠. 도헌이 쇼핑백을 들고 따라 나갔다⁠. 계단에서 두 사람의 발소리가 2층까지 함께 내려갔다⁠. 거기서 하나만 멈추고⁠, 하나는 1층까지 계속 내려갔다⁠.

*

밤 열한 시⁠, 다희는 도어락 뚜껑을 열었다⁠. 이번에는 휴대전화를 보지 않았다⁠. 손이 순서를 기억하고 있었다⁠.

삑삑삑삑삑삑삑삑⁠. 여덟 번⁠.

“⁠등록되었습니다⁠.⁠”

다희는 아무에게도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식탁에 앉아 휴대전화로 무언가를 오래 찾았다⁠. 반려동물 돌봄⁠, 방문 돌봄⁠, 일주일⁠. 다희가 낱말을 중얼거렸다⁠. 화면을 넘기다가 멈추고⁠, 넘기다가 멈췄다⁠. 결국 화면을 껐다⁠.

“⁠다음 주에 일주일 현장이래⁠. 아침에 약 먹이고 나가서 밤 열 시까지 들어올게⁠. 저녁 약 세 시간 늦는 거야⁠. 괜찮지⁠?⁠”

나는 괜찮다는 말을 모른다⁠. 다희가 내게 묻고 나서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만 안다⁠. 사람은 고양이에게 물을 때 대개 답을 정해 두고 묻는다⁠.

나는 베란다로 나갔다⁠. 방충망 찢어진 구석에 코를 댔다⁠. 화단은 어두웠다⁠. 2층 할머니 집 베란다에 불이 꺼져 있었다⁠. 할머니는 늘 밤 열두 시까지 바둑 채널을 켜 두는 사람이다⁠. 오늘은 바둑 돌 소리도 올라오지 않았다⁠.

회양목 그늘에서 고등어가 나와 3층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사료를 한 입 물어 왔다⁠. 찢어진 구석에 뱉으려는데 사료가 입에서 먼저 흘러내렸다⁠. 오늘따라 물고 있을 힘이 없었다⁠. 사료 알이 베란다 바닥에 굴렀다⁠. 고등어는 한참 기다리다가 회양목 밑으로 들어갔다⁠.

나는 사료 알 옆에 엎드렸다⁠. 저녁 약은 오늘 네 시간 늦게 왔다⁠. 몸이 먼저 알았다⁠. 속이 조금 메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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