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613자)

작은방

이혼 부부의 고양이 · 윤새벽

일요일 아침 일곱 시⁠, 할머니는 알약을 손가락에 끼우고 내 입을 벌렸다⁠. 한 손으로 아래턱을 누르고⁠, 다른 손으로 혀 안쪽 깊이 알약을 밀어 넣고⁠, 입을 다물게 한 뒤 목을 아래로 쓸어내렸다⁠. 나는 혀끝으로 밀어낼 틈이 없었다⁠. 꿀꺽⁠. 열두 해 갈고닦은 재주가 삼 초 만에 졌다⁠.

“⁠흰 애가 열여섯 해 동안 나한테 배운 거야⁠. 너도 금방 배운다⁠.⁠”

할머니는 손가락을 앞치마에 닦고 내 턱을 긁었다⁠. 나는 분해서 할머니의 슬리퍼에 털을 묻혔다⁠. 할머니는 웃었다⁠.

여덟 시에 다희가 내려왔다⁠. 눈두덩이 부어 있었다⁠. 눈가의 소금이 밤새 마르고 또 젖어서 겹겹이 앉아 있었다⁠. 다희는 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할머니⁠, 어제 죄송했어요⁠.⁠”

“⁠문 닫는 것만 잘해⁠.⁠”

할머니가 나를 안아 다희에게 건넸다⁠. 건네기 전에 한 번 더 꼭 안았다⁠. 할머니의 팔에서 힘이 빠지는 데 한참이 지났다⁠.

“⁠낮에는 내가 계속 올라간다⁠. 번호 또 바꾸면 안 된다⁠.⁠”

“⁠네⁠.⁠”

“⁠어젯밤에 그 방 열었지⁠. 천장이 다 울리더라⁠.⁠”

다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안은 팔이 조금 조였다⁠.

*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작은방 문 앞으로 갔다⁠. 문은 도로 닫혀 있었다⁠. 문틈 냄새가 바뀌어 있었다⁠. 오래된 페인트와 새 나무 위에 다희의 무릎 냄새가 얹혀 있었다⁠. 사람의 무릎은 바닥에 오래 닿으면 살갗이 데워져서 냄새가 짙어진다⁠. 다희는 어젯밤 이 방 바닥에 오래 앉아 있었다⁠. 휴지 냄새와 젖은 소금도 있었다⁠.

나는 앞발로 문을 긁었다⁠. 다희가 내 앞발을 잡았다⁠.

“⁠거긴 안 돼⁠.⁠”

안 돼는 안다⁠. 열두 해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 가운데 하나다⁠. 식탁⁠, 싱크대⁠, 화분⁠, 도헌의 노트북 위⁠, 그리고 이 문⁠. 다른 안 돼는 다 어겨 보았다⁠. 이 문만 두 해째 지켰다⁠. 지킨 까닭은 문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희는 안방 화장대 서랍을 열고 작은 열쇠 하나를 꺼내 손바닥에 쥐었다⁠. 그러고는 도로 넣었다⁠. 서랍이 닫히는 소리가 평소보다 컸다⁠.

열두 시에 할머니가 올라왔다⁠. 번호 소리는 어제와 같았다⁠. 높고⁠, 낮고⁠, 낮고⁠, 높고⁠, 높고⁠, 낮고⁠. 다희가 소파에서 일어나 할머니를 맞았다⁠. 할머니는 물그릇을 갈고 모래를 보고⁠, 다희를 부엌으로 불렀다⁠.

“⁠저녁 약은 네가 해 봐⁠. 내가 보는 데서⁠.⁠”

다희가 알약을 손가락에 끼웠다⁠. 할머니가 다희의 손목을 잡고 각도를 고쳐 주었다⁠. 아래턱을 누르고⁠, 혀 안쪽 깊이⁠. 다희의 손가락이 내 입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이를 다물었다⁠. 다희가 비명을 질렀다⁠. 손가락에 내 송곳니 자국 둘이 찍혔다⁠. 알약은 다희의 손가락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아파⁠!⁠”

“⁠물려야 배워⁠. 나는 흰 애한테 백 번 물렸다⁠.⁠”

두 번째에 다희는 손가락을 더 깊이 넣었다⁠. 알약이 목구멍 안쪽에 닿았다⁠. 할머니가 내 목을 쓸어내렸다⁠. 꿀꺽⁠. 다희가 손가락을 털며 웃었다⁠. 오늘 처음 웃는 냄새였다⁠. 할머니는 웃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하루 두 번⁠. 한 번도 빼먹지 말고⁠. 약은 사람 사정 안 봐 준다⁠.⁠”

열한 시에 중개인이 전화를 했다⁠. 다희가 스피커를 눌렀다⁠.

“⁠사모님⁠, 어제 밑에서 난리가 나서 못 봤잖아요⁠. 호호⁠. 오늘 오후 두 시에 오신대요⁠. 작은방 꼭 보고 싶으시대요⁠. 계약하려면 다 보셔야죠⁠.⁠”

다희는 대답 대신 숨을 길게 내쉬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중개인이 한 번 더 호호 웃었다⁠.

*

두 시⁠. 도헌이 먼저 왔고⁠, 중개인이 왔고⁠, 부부가 왔다⁠. 남자는 오늘 마스크를 썼다⁠. 마스크 위로 눈이 벌써 빨갰다⁠. 여자의 가방 속 흰 개는 오늘은 오지 않았다⁠. 여자에게서 아기 로션 냄새가 여전히 났다⁠. 나는 남자의 바지부터 확인했다⁠. 오늘은 매끈한 검은 바지였다⁠. 털이 잘 붙는 바지다⁠. 나는 남자에게 다가가 바짓단에 옆구리를 대고 한 바퀴 돌았다⁠.

“⁠아⁠, 아⁠, 또⁠.⁠”

남자가 마스크 안에서 재채기를 했다⁠. 마스크가 부풀었다가 꺼졌다⁠. 여자가 남자의 팔을 잡아 끌고 작은방 앞으로 갔다⁠.

“⁠여기요⁠.⁠”

“⁠창고라서 짐이 많아요⁠. 다음에⁠…⁠…⁠.⁠”

“⁠다음이 벌써 두 번째예요⁠, 사모님⁠. 호호⁠.⁠”

중개인의 웃음이 얇아졌다⁠. 다희가 작은방 문을 등지고 버텼다⁠. 문과 여자 사이에 다희의 등이 있었다⁠. 다희의 등에서 찬 땀이 솟았다⁠.

도헌이 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냈다⁠. 짤랑⁠. 주머니 속에서 두 달 동안 울던 소리가 밖으로 나왔다⁠. 도헌은 다희를 보지 않았다⁠. 다희의 어깨 너머로 손을 뻗어 문고리에 열쇠를 꽂았다⁠.

“⁠열지 마⁠.⁠”

딸깍⁠.

“⁠도헌아⁠, 열지 마⁠.⁠”

끼이익⁠.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다희의 다리 사이로 빠져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늙은 고양이는 서두르지 않는다⁠. 두 해 동안 기다린 문 앞에서는 예외다⁠.

*

방 안 공기는 두 해 동안 고여 있었다⁠. 창이 닫힌 방의 공기는 냄새를 버리지 않는다⁠. 들어오는 순간 두 해 전이 한꺼번에 내 코를 덮었다⁠.

벽은 연한 노랑이었다⁠. 나는 색을 흐리게 보지만 냄새로는 또렷하다⁠. 도헌이 칠한 페인트였다⁠. 두 해 전 봄⁠, 도헌은 이 방에서 사흘 동안 롤러를 굴렸다⁠. 코끝에 페인트를 묻히고 콧노래를 불렀다⁠. 나는 도헌의 발치를 맴돌다가 페인트 판을 밟았다⁠. 흰 발끝 넷이 노랗게 물들었다⁠. 도헌이 나를 안아 들기 전에 나는 바닥을 네 걸음 걸었다⁠.

발자국은 아직 있었다⁠. 문 앞 마룻바닥에 노란 발자국 넷이 찍혀 있었다⁠. 아무도 지우지 않았다⁠. 나는 내 발을 내 발자국 위에 하나씩 올려 보았다⁠. 두 해 사이에 발이 조금 커졌거나⁠, 몸이 무거워져서 발가락이 더 벌어졌다⁠. 맞지 않았다⁠.

창가에 큰 상자가 서 있었다⁠. 새 나무와 비닐 냄새가 상자 안에서 났다⁠. 상자 옆면에 그림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림을 보고 무엇인지 알겠지만 나는 냄새로 안다⁠. 한 번도 조립하지 않은 나무 침대⁠. 침대 상자 옆에 작은 상자가 하나 더 있었다⁠. 상자를 흔들면 딸랑 소리가 날 물건이었다⁠. 두 해 전 도헌이 작은 상자를 흔들어 보고 나를 놀렸다⁠. 호박⁠, 이거 네 장난감 아니다⁠.

선반 위에 은색 보랭 가방이 있었다⁠. 지퍼가 반쯤 열려 있었다⁠. 소독용 알코올 솜과 빈 주사기 냄새가 가방에서 흘러나왔다⁠. 이 냄새를 나는 안다⁠. 두 해 전 겨울에서 봄까지⁠, 밤 아홉 시가 되면 식탁 위에서 이 냄새가 났다⁠. 다희가 윗옷을 걷고 배를 손가락으로 꼬집어 쥐면⁠, 도헌이 다희의 배에 주사를 놓았다⁠. 다희가 눈을 감았고⁠, 도헌은 다희보다 먼저 숨을 참았다⁠. 나는 식탁 의자 위에 앉아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다희의 배에서 매일 밤 작은 멍이 하나씩 늘었다⁠. 멍에서는 쇠 냄새가 났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식탁에서 주사 냄새가 나지 않았다⁠. 다음 날 밤에도 나지 않았다⁠. 다희가 이 방에 보랭 가방을 넣고 문을 잠갔다⁠. 도헌이 소파 왼쪽에서 자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

문간에서 여자가 작게 말했다⁠.

“⁠아⁠…⁠… 아기방이었구나⁠.⁠”

중개인이 웃으려다 웃지 않았다⁠. 남자가 마스크 안에서 기침을 했다⁠. 다희는 문틀에 손을 짚고 서 있었다⁠. 손가락 끝이 하얬다⁠.

“⁠죄송해요⁠. 저희가 오늘은⁠…⁠… 다음에 연락드릴게요⁠.⁠”

여자가 남자의 팔을 끌고 현관으로 갔다⁠. 중개인이 도헌에게 눈짓을 하고 따라 나갔다⁠. 현관문이 닫혔다⁠. 이번에는 우산이 끼지 않았다⁠.

방에 셋이 남았다⁠. 다희와 도헌과 나⁠.

“⁠왜 열었어⁠.⁠”

다희의 목소리는 낮았다⁠. 낮은 목소리 밑에서 이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언제까지 잠가 둘 건데⁠. 이 방 때문에 집이 안 팔려⁠. 이 방 때문에 아무것도 안 돼⁠.⁠”

“⁠네 거라서 연 거야⁠? 네 열쇠니까⁠?⁠”

“⁠내가 칠한 방이야⁠.⁠”

“⁠내가 주사 맞던 방이야⁠.⁠”

도헌이 입을 다물었다⁠. 도헌의 목덜미에서 짭짤한 땀이 솟고⁠, 곧 시큼한 땀이 섞였다⁠. 창피한 땀과 화난 땀이 한꺼번에 났다⁠. 처음 맡는 냄새였다⁠.

“⁠네 번째 끝나고⁠. 다섯 번째 날짜까지 잡아 놨었잖아⁠. 병원 갔더니 예약이 없대⁠. 남편분이 전화해서 취소하셨대⁠.⁠”

“⁠네 배에 멍이 안 빠졌어⁠. 하루에 세 대씩 맞았잖아⁠. 석 달을⁠.⁠”

“⁠그래서 네가 혼자 정했어⁠. 나한테 안 묻고⁠.⁠”

“⁠물으면 너는 또 하자고 했을 거야⁠.⁠”

“⁠그래⁠. 했을 거야⁠. 그게 내 배였어⁠.⁠”

다희가 보랭 가방을 집어 도헌에게 던졌다⁠. 가방이 도헌의 가슴에 맞고 떨어졌다⁠. 빈 주사기 몇 개가 바닥에 흩어졌다⁠. 나는 주사기 하나를 앞발로 건드렸다⁠. 데굴데굴 굴러 내 노란 발자국 위에서 멈췄다⁠.

나는 이날까지 이 다툼이 집을 두고 하는 다툼인 줄 알았다⁠. 소파 왼쪽과 오른쪽⁠, 현관 번호⁠, 밥그릇을 누가 먼저 채우는지⁠. 이긴 사람이 집을 갖는다고 믿었다⁠. 아니었다⁠. 두 사람이 싸우는 자리는 집 전체가 아니었다⁠.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방 하나였다⁠. 두 해 동안 두 사람은 이 방을 서로에게서 지키고 있었다⁠.

*

도헌이 바닥에 흩어진 주사기를 하나씩 주워 가방에 넣었다⁠. 손이 떨려서 주사기가 두 번 미끄러졌다⁠. 다희는 문틀에 기대어 도헌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다희의 숨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가라앉은 자리에서 다른 냄새가 올라왔다⁠. 오래 참았던 말을 꺼내기 직전의 마른 입술 냄새였다⁠.

“⁠하나만 물어볼게⁠.⁠”

도헌이 가방 지퍼를 닫았다⁠.

“⁠발령⁠. 회사가 보낸 거야⁠?⁠”

도헌의 손이 지퍼 위에서 멈췄다⁠.

“⁠지난주에 너네 설계팀 차장님 부인이랑 마트에서 마주쳤어⁠. 전주 지사 자리 공고 났을 때 신청한 사람이 너 하나였대⁠. 2년 다녀오면 승진 점수 준다고⁠.⁠”

차장님이 누구인지 나는 몰랐다⁠. 다희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는 것은 알았다⁠. 다희는 가장 아픈 말을 가장 차분하게 했다⁠.

“⁠네가 신청했지⁠.⁠”

방 안이 조용해졌다⁠. 냉장고 소리가 거실에서 건너왔다⁠. 창밖에서 아이 하나가 자전거 벨을 울렸다⁠. 도헌은 보랭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고 한참 내려다보았다⁠. 도헌의 냄새가 천천히 바뀌었다⁠. 박하도 땀도 아니었다⁠. 사람이 오래 들고 다니던 짐을 내려놓을 때 어깨에서 나는⁠, 식은 쇠 같은 냄새⁠.

“⁠응⁠.⁠”

다희가 문틀에서 손을 뗐다⁠. 방을 나가지는 않았다⁠. 도헌도 일어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연한 노랑 벽 사이에서 서로를 보지 않았다⁠.

나는 노란 발자국 위에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웠다⁠. 두 해 전 내 발이 남긴 자리였다⁠. 굵은 꼬리로 주사기 하나를 덮었다⁠. 방 안에서 이 집의 냄새가 다 났다⁠. 나는 처음으로 이 방이 내 영역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지키지 못한 방이었다⁠.

*

해가 지고 도헌이 갔다⁠. 보랭 가방은 작은방 선반에 도로 놓였다⁠. 문은 잠그지 않았다⁠. 도헌은 열쇠 꾸러미를 식탁 위에 한참 올려 두었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는 조용했다⁠.

다희는 작은방 바닥에 앉았다⁠. 나는 다희의 무릎에 올라갔다⁠. 부르지 않아도 열리는 무릎이었다⁠. 다희가 손가락으로 노란 발자국 하나를 문질렀다⁠. 페인트는 마루 결 사이에 박혀서 지워지지 않았다⁠.

“⁠너 이거 기억나⁠? 아빠가 너 들고 욕실까지 뛰었잖아⁠. 발 씻긴다고⁠.⁠”

아빠라는 말은 다희가 두 해 동안 쓰지 않던 말이었다⁠. 도헌을 가리키는 말인지 나는 다희의 숨으로 알았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회사였다⁠. 다희가 스피커를 누르지 않고 귀에 댔다⁠. 그래도 나는 다 들었다⁠. 외국 펀드가 국내 회사 하나를 사들이기 전에 회사 살림을 샅샅이 뒤지는 일이 다음 달 초에 잡혔다고⁠, 일주일 내내 현장에 나가야 한다고⁠. 다희는 네⁠, 네⁠, 하고 대답했다⁠. 대답할 때마다 내 등에 놓인 손이 무거워졌다⁠.

전화를 끊고 다희는 노랗게 칠한 벽에 머리를 기댔다⁠. 나는 다희의 턱 밑으로 머리를 밀어 넣었다⁠. 다희가 내 머리 위에 턱을 얹었다⁠. 두 해 동안 아무도 앉지 않던 방에 둘이 앉아 있었다⁠.

5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