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939자)
두 번째 아침밥
이혼 부부의 고양이 · 윤새벽
소파 왼쪽 끝 쿠션에는 도헌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박하 향 스킨로션과 볼펜 잉크, 자동차 히터에서 묻어 온 먼지, 맨 밑바닥에는 씻어도 빠지지 않는 땀. 열두 해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냄새였다. 나는 쿠션에 배를 붙이고 엎드려 코끝을 천에 묻었다. 도헌이 이 집에서 자지 않은 지 열엿새째였고, 박하는 벌써 날아가고 없었다. 먼지와 땀만 실밥 사이에 조금 남아 있었다.
이 집 거실은 열두 해 동안 반은 도헌의 것이고 반은 다희의 것이었다. 소파 왼쪽이 도헌, 오른쪽이 다희, 가운데 움푹 꺼진 자리가 나였다. 고양이는 냄새로 집을 나눈다. 뺨을 문틀에 비비면 문틀이 내 것이 되고, 사람이 오래 누운 자리는 사람의 것이 된다. 겨울이 끝날 무렵 오른쪽에서 다희의 냄새가 먼저 빠졌다. 다희는 안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고, 도헌은 소파 왼쪽에서 혼자 잤다. 그러다 도헌마저 가방 두 개를 들고 나갔다.
사람의 말은 반쯤만 알아듣는다. 밥, 약, 츄르, 안 돼, 이리 와, 병원, 무릎. 그리고 내 이름 호박. 나머지는 소리째 귀에 넣어 두었다가, 같은 소리가 같은 냄새와 함께 여러 번 오면 뜻을 맞춘다. 겨울 내내 두 사람 사이에서 가장 자주 오간 소리는 이혼이었다. 이혼이라는 소리가 날 때마다 다희의 겨드랑이에서 시큼한 땀이 났고, 도헌은 냉장고 문을 세게 닫았다. 나는 뜻을 맞췄다. 수컷 둘이 담장 위에서 꼬리를 부풀리고 울면 하나는 떠나고 하나는 담장을 갖는다. 이혼은 영역 다툼이다. 진 사람이 떠나고, 이긴 사람이 집을 갖는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때 아무 편도 들지 않기로 했다. 이긴 사람이 집을 갖는다면 나는 집에 붙어 있으면 된다. 창틀과 문틀과 냉장고 위는 전부 열두 해 동안 내 뺨이 닿은 곳이었다. 사람은 떠나도 고양이는 영역을 떠나지 않는다.
*
여섯 시 오십 분에 현관에서 소리가 났다. 삑, 삑, 삑, 삑. 네 번 누르고 띠리릭.
도헌은 집을 나가고도 아침마다 왔다.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이 다희보다 무거워서 삑 소리가 한 박자씩 늦었다. 문이 열리자 편의점 삼각김밥의 김 냄새와 낯선 세제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도헌이 지금 사는 방의 냄새다. 섬유유연제는 아끼지 않는 곳인데, 사람이 오래 산 냄새는 하나도 없었다.
“호박, 밥 먹자.”
밥이라는 소리는 머리보다 배가 먼저 안다. 나는 소파에서 내려 부엌 매트까지 가는 동안 기지개를 두 번 켰다. 늙은 고양이는 서두르지 않는다. 서두르면 다리가 먼저 알고 삐걱댄다.
도헌은 싱크대 아래에서 사료 봉지를 꺼냈다. 동물병원에서 파는 처방식이다. 콩팥이 나빠진 고양이가 먹는 밥이라 싱겁고 비싸다. 봉지 뒷면에 바다 건너 공장 이름이 적혀 있다고 다희가 말한 적이 있다. 지난달부터 배가 늦게 들어와 봉지 하나 가격이 또 올랐다고, 도헌은 봉지를 뜯을 때마다 혀를 찼다.
도헌은 밥그릇을 채우고, 약통에서 알약 하나를 꺼내 말랑한 간식 속에 숨겼다. 약을 감싸 먹이는 간식이다. 나는 간식만 먹고 알약은 혀끝으로 밀어내는 재주가 있다. 열두 해 갈고닦은 재주다. 알약이 바닥을 굴러 냉장고 밑으로 들어갔다. 도헌은 보지 못했다.
밥을 반쯤 먹었을 때 안방 문이 열렸다.
다희의 냄새는 아침마다 조금씩 다르다. 오늘은 복숭아 샴푸와 어젯밤 커피, 프린터 토너, 눈가에 남은 짠 냄새였다. 다희는 부엌 입구에서 멈췄다. 밥그릇을 보고, 도헌을 보고, 다시 밥그릇을 보았다.
“내가 준다고 했잖아.”
“일곱 시에 준다며. 여섯 시 반이 밥때야. 병원에서 그랬어.”
“병원에서 일곱 시라고 했어.”
“여섯 시 반.”
다희가 도헌의 손에서 사료 봉지를 빼앗았다. 봉지 입구가 찢어지면서 사료 알이 매트 위로 튀었다. 다희는 남은 밥 위에 사료를 한 줌 더 부었다. 내 밥그릇이 무덤처럼 솟았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올려다보았다. 아침밥이 두 번이었다. 어제도 두 번이었고 그제도 두 번이었다. 두 사람은 밥때마다 서로 먼저 내 밥그릇을 채우려고 다퉜고, 나는 두 번 다 먹었다. 밥을 먼저 주는 사람이 영역 다툼에서 이긴다면, 나는 양쪽 밥을 똑같이 먹어 주어야 공평했다. 공평하게 다 먹었다.
“호박 살쪄.”
“처방식이야. 안 쪄.”
“두 번 먹이면 쪄.”
“그럼 네가 오지 마.”
배가 무거워졌다. 나는 트림을 한 번 하고 부엌 바닥에 모로 누웠다. 두 사람이 동시에 나를 내려다보았다. 다투던 사람들은 고양이가 트림을 하면 잠깐 조용해진다. 열두 해 동안 몇 번 써먹은 방법이다.
다희가 쪼그려 앉아 물티슈로 내 앞발을 닦았다. 사료 가루가 묻은 흰 발끝이었다. 나는 주황 바탕에 진한 주황 줄무늬가 들어간 고양이인데, 가슴과 배와 네 발끝만 희다. 도헌은 이 흰 발을 처음 본 날 양말 신은 호박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오븐 유리에 내 얼굴이 비쳤다. 통통하게 둥근 얼굴에 노란빛 도는 연둣빛 눈이 반쯤 감겨 있었다. 사람들은 내 눈이 늘 심드렁하다고 하는데, 반쯤 감은 눈으로도 볼 것은 다 본다.
*
“약은?”
다희가 물었다. 도헌이 간식 봉지를 흔들었다.
“먹였지.”
다희가 무릎을 꿇고 냉장고 밑으로 휴대전화 불빛을 비췄다. 하얀 알약 하나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다희가 알약을 집어 도헌의 눈앞에 들었다.
“먹였다며?”
“……뱉었네.”
“열엿새 동안 아침마다 이렇게 먹였어?”
도헌의 목덜미에서 뜨거운 땀이 솟았다. 거짓말하는 땀과 창피한 땀은 냄새가 다르다. 거짓말하는 땀은 시큼하고, 창피한 땀은 짭짤하다. 도헌의 땀은 짭짤했다.
도헌은 대답 대신 식탁 위의 약통을 집었다. 동물병원에서 한 달 치씩 주는 하얀 통이다. 뚜껑을 열고 알약을 손바닥에 쏟아 손가락으로 한 알씩 밀었다. 다 밀고 나서 한 번 더 쏟았다.
“3월 통이야. 아직 안 버렸더라. 세 알 남았어.”
다희의 손이 알약을 쥔 채 멈췄다.
“한 달 치 받아 왔는데 세 알이 남았으면, 세 번 안 먹였다는 거잖아.”
“야근이었어.”
“알아.”
“결산 감사 기간이었어. 회사에서 잤다고.”
“알아.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도헌은 알약을 통에 도로 넣고 뚜껑을 딸깍 닫았다.
“6월 말에 전주로 가. 발령 났어. 2년.”
전주라는 소리를 나는 몰랐다. 낯선 소리는 대개 낯선 냄새를 데려오는데, 전주에서는 아무 냄새도 오지 않았다. 다희의 냄새만 바뀌었다. 복숭아 샴푸가 가라앉고 찬 땀이 솟았다.
“그래서.”
“집 내놓을 거야. 공동명의니까 반은 내 거고. 호박은 내가 데려가.”
내놓는다는 소리는 안다. 밤마다 안방에서 다희가 “호박 내놔” 하면 도헌이 나를 안아 거실로 내놓았다. 내놓는다는 것은 문밖으로 내보낸다는 말이었다. 집을 내놓는다면 도헌은 이 집을 문밖으로 내보낼 생각이었다. 집이 어떻게 현관을 나가는지 나는 그려 볼 수가 없었다. 냉장고가 계단을 내려가고 창틀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만 떠올랐다.
“호박은 여기 살아.”
“약도 못 챙기면서?”
“세 번이야.”
“콩팥은 세 번이면 충분해.”
다희가 손바닥으로 식탁을 쳤다. 약통이 굴러떨어졌다. 나는 통을 쫓아가 앞발로 한 번 쳐서 소파 밑으로 밀어 넣었다. 증거는 영역 안에 숨겨 두는 것이 좋다.
*
쿵, 쿵. 이번에는 현관이 아니라 발밑에서 소리가 올라왔다. 아랫집 할머니가 빗자루 자루로 천장을 치는 소리다. 조금 뒤 초인종이 울렸다.
아랫집 할머니에게서는 멸치 육수와 파스와 길고양이 사료 냄새가 났다. 카디건 소매 끝에는 냄새가 하나 더 있었다. 늙은 흰 고양이의 침 냄새. 지난겨울에 죽은 고양이다. 할머니는 고양이가 죽고 나서도 카디건을 빨지 않았다.
“아침부터 뭘 그렇게 쳐 싸. 우리 집 형광등이 흔들려.”
“죄송해요, 할머니.”
다희가 고개를 숙였다. 도헌도 숙였다. 두 사람이 한꺼번에 고개를 숙인 것은 열엿새 만에 처음이었다. 할머니는 두 사람 사이로 손을 뻗어 내 귀 뒤를 긁었다. 손톱은 짧고 손끝은 버석했다. 나는 목을 길게 뺐다.
“이 뚱땡이 콩팥 나쁜 거 알지? 집에서 사람이 싸우면 고양이가 물을 안 먹어. 물 안 먹으면 콩팥이 먼저 가.”
“네.”
“싸울 거면 얘는 나 줘. 낮에 내가 보는 거나 밤에 내가 보는 거나 매한가지야.”
할머니는 반쯤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나머지 반은 웃지 않았다. 코는 웃지 않은 반을 맡는다. 할머니의 숨에서 진짜로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의 단내가 났다.
도헌이 물었다.
“낮에요?”
“몰랐어? 다희 출근하면 내가 열두 시에 올라와. 물 갈고 모래 보고. 3년 됐어.”
“3년이요?”
“번호도 내가 알아.”
할머니가 도어락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도헌의 귀가 벌게졌다. 아랫집 할머니가 3년째 아는 번호를, 도헌은 집을 나간 뒤에도 아침마다 몰래 들어오는 사람처럼 누르고 있었다. 다희는 대답하지 않고 할머니 손에 귤 두 개를 쥐여 보냈다.
*
낮에는 베란다에 나간다. 방충망 아래 화단에 고등어 무늬 암컷이 산다. 등에 회색 줄이 물결처럼 흐르고 오른쪽 귀 끝이 잘려 있다. 수술을 받은 길고양이는 표시로 귀 끝을 조금 자른다고, 할머니가 다희에게 말한 적이 있다.
고양이끼리는 소리를 거의 내지 않는다. 꼬리를 세우면 반갑다는 말이고 부풀리면 물러나라는 말이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는 것은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방충망 틀에 뺨을 비비면 내 냄새가 바람을 타고 화단까지 내려가고, 남의 발목에 뺨을 비비면 너는 내 무리라는 표시가 된다. 사람들은 이걸 하나도 못 알아듣는다. 다희는 내가 눈을 감았다 뜨면 졸린 줄 안다.
화단의 고등어가 회양목 그늘에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고등어도 감았다 떴다. 고등어는 꼬리를 낮게 깔고 화단 끝 급식소로 갔다. 할머니가 놓아둔 플라스틱 그릇 두 개가 거기 있다. 고등어의 꼬리 끝이 한 번 꺾였다. 오늘 아침 위층 싸움 소리가 화단까지 내려왔다고 알리는 꼬리였다. 길고양이는 위층 소리만 듣고도 위층 사람들의 기분을 안다.
나는 꼬리를 꼿꼿이 세웠다. 굵고 긴 줄무늬 꼬리가 방충망에 스쳤다. 괜찮다고, 이 집은 내 영역이고 나는 아무 데도 안 간다고.
*
밤 열한 시에 다희가 들어왔다. 컵밥 하나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식탁에서 먹으며 텔레비전을 켰다. 뉴스에서 남자 목소리가 말했다. 갈라서는 부부가 반려동물을 두고 다투는 일이 늘고 있고, 법은 아직 동물을 물건으로 본다고. 다희는 채널을 돌리지 않았고, 컵밥은 반이 남았다.
다희는 숟가락을 놓고 현관으로 갔다.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며 도어락 뚜껑을 열었다.
“설정 버튼 길게…… 새 번호 입력…… 한 번 더 입력.”
삑삑삑삑삑삑. 여섯 번이었다. 도헌의 네 번보다 둘이 많았다. 도어락이 여자 목소리로 말했다.
“등록되었습니다.”
다희는 할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손톱이 화면을 두드리는 소리가 길게 이어지고, 한참 뒤에 한 번 더 났다. 도헌에게는 보내지 않았다. 나는 현관 매트 위에 앉아 새 번호 소리를 귀에 담았다. 숫자는 몰라도 소리의 높낮이는 안다. 높고, 낮고, 낮고, 높고, 높고, 낮고.
*
여섯 시 오십 분.
삑, 삑, 삑, 삑. 띠리리. 도어락이 낮은 소리로 울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삑, 삑, 삑, 삑. 띠리리.
도헌이 같은 번호를 한 번 더 눌렀다. 문틈으로 삼각김밥 냄새와 낯선 세제 냄새가 들어왔고, 냄새들 밑에 깔린 땀은 오늘 아침 유난히 짰다.
도헌이 문을 두드렸다.
“다희야. 문 열어. 호박 밥 줘야 돼.”
안방 문이 열렸다. 다희가 맨발로 현관까지 걸어 나왔다. 손에 사료 봉지가 들려 있었다. 다희는 문 앞에 서서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번호 바꿨어.”
“집 반은 내 거야.”
“반은 내 거고. 내 반에 고양이가 살아.”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숨이 같은 높이에서 흔들렸다. 나는 현관 매트로 걸어가 문과 다희 사이에 엎드렸다. 문틈 바람에 도헌의 땀이 실려 오고, 등 뒤에서는 복숭아 샴푸가 왔다. 수염 끝이 양쪽으로 한 번씩 떨렸다. 다희가 사료 봉지를 흔들었다. 문 너머에서 도헌도 봉지를 흔들었다. 같은 처방식 봉지 소리가 문 안팎에서 났다.
나는 두 번째 아침밥을 기다리며 꼬리로 매트를 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