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406자)

장모님 오신 날

이혼 숙려 기간 · 여시결

젊은 중개사의 무선 이어폰에서 파란 불이 깜박였다⁠. 4월 19일 월요일 저녁⁠, 길 건너 새봄부동산의 실장은 1101호 거실 한가운데서 휴대전화를 세로로 들고 있었다⁠. 서른둘이라고 했고⁠, 「⁠일산 집 구경⁠」이라는 숏폼 채널을 한다고 했다⁠.

“⁠요즘은 집을 앱으로 안 봐요⁠, 사모님⁠. 영상으로 봐요⁠. 삼십 초 안에 반하게 해야 돼요⁠.⁠”

지애는 소파 끝에 앉아 실장의 손가락을 보았다⁠. 화면 위에서 엄지가 쉬지 않고 움직였다⁠. 희철을 내보내고 처음 부른 중개사였다⁠. 단지 안에서 희철과 상관없는 사람은 이 실장 하나뿐이었다⁠.

“⁠두 분⁠, 소파에 앉아서 하트 한번 해 주세요⁠. 손가락 하트 말고 팔로⁠. 머리 위로⁠.⁠”

“⁠팔로요⁠?⁠”

“⁠네⁠, 둘이 반쪽씩⁠.⁠”

성규가 팔을 들어 머리 위로 반원을 만들었다⁠. 지애도 따라 들었다⁠. 두 사람의 손끝이 머리 위에서 닿지 않았다⁠. 실장이 휴대전화를 내렸다⁠.

“⁠형님⁠, 조금만 더 기울이세요⁠. 사모님 쪽으로⁠. 아⁠, 형님 후드 감성 좋네요⁠. 영포티 감성⁠.⁠”

“⁠이거 열두 해 된 거예요⁠.⁠”

“⁠그러니까요⁠. 빈티지 영포티⁠.⁠”

지애가 웃음을 참느라 팔이 떨렸다⁠. 하트가 찌그러졌다⁠. 실장은 찌그러진 하트를 세 번 더 찍고서야 만족했다⁠. 율비가 방문을 열고 나오자 실장이 반가워하며 휴대전화를 돌렸다⁠.

“⁠따님도 한 컷만⁠!⁠”

“⁠안 돼요⁠.⁠” 지애가 일어나 율비 앞을 막았다⁠. “⁠애는 안 찍어요⁠.⁠”

“⁠얼굴 안 나오게⁠, 뒷모습만⁠…⁠…⁠.⁠”

“⁠안 찍어요⁠.⁠”

실장은 두 손을 들고 물러났다⁠. 율비는 엄마 등 뒤에서 실장의 휴대전화를 빤히 보다가 방으로 도로 들어갔다⁠.

밤 열 시⁠, 영상이 올라왔다⁠. 화면 위에 큰 글씨가 떴다⁠. 「⁠32평 남향 · 사이좋은 부부가 사는 집⁠」 찌그러진 하트 위로 하트 그림이 여러 개 날아다녔다⁠. 한 시간 만에 댓글이 쉰 개 달렸다⁠. 「⁠이 집 이혼 급매 아님⁠?⁠」 「⁠소통방에서 봤음 숙려 중⁠」 「⁠하트 찌그러진 거 봐 ㅋㅋ⁠」 「⁠연기 실화냐⁠」 「⁠남편 후드 영포티 인증⁠」

지애는 휴대전화를 엎어 놓았다⁠. 거실에 실장이 뿌리고 간 섬유 탈취제 냄새가 남아 있었다⁠. 희철의 방향제보다 비싼 냄새였는데⁠, 지애는 희철의 싸구려 화이트 머스크가 조금 그리웠다⁠.

*

화요일 오후 네 시⁠, 성규가 반차를 쓰고 집에 와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 화면에 커다란 김치통이 먼저 보였고⁠, 김치통 뒤에서 장모 곽덕희의 얼굴이 나왔다⁠.

“⁠서방⁠! 문 열어⁠!⁠”

성규는 문을 열고 김치통을 받았다⁠. 무거웠다⁠. 덕희는 파주 금촌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왔다고 했다⁠. 신발을 벗자마자 가방에서 노란 종이 두 장을 꺼냈다⁠. 붉은 글씨가 빼곡했다⁠.

“⁠이거⁠, 금촌 보살님한테 받아 왔어⁠. 하나는 집 팔리는 부적이고⁠, 하나는 부부 화합 부적이야⁠.⁠”

“⁠장모님⁠, 저희 집 파는 거 아세요⁠?⁠”

“⁠다 알지⁠. 지애가 말을 안 해도 다 알아⁠.⁠” 덕희는 현관 신발장에 부적 한 장을 붙였다⁠. “⁠집 팔리는 거는 현관에 붙여야 사람이 들어와⁠.⁠”

덕희가 안방으로 들어가 남은 한 장을 침대 머리맡에 붙였다⁠. 성규는 부적 두 장의 글씨를 번갈아 보았다⁠. 한자를 읽을 줄은 몰랐지만⁠, 현관에 붙은 부적 귀퉁이에 덕희가 볼펜으로 작게 써 둔 글씨는 읽을 수 있었다⁠. 「⁠화합⁠」 안방 부적 귀퉁이에는 「⁠매매⁠」라고 적혀 있었다⁠.

“⁠장모님⁠, 바뀐 것 같은데요⁠.⁠”

“⁠뭐가⁠?⁠”

“⁠현관이 화합이고 안방이 매매예요⁠.⁠”

덕희가 안경을 이마로 올리고 부적 귀퉁이를 들여다보았다⁠. 한참 들여다보더니 손을 휘저었다⁠.

“⁠놔둬⁠. 안방에서 집이 팔리고 현관에서 화합하면 되지⁠. 순서만 바뀐 거야⁠.⁠”

덕희는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고 김치를 옮겨 담기 시작했다⁠. 성규가 옆에서 김치통 뚜껑을 들어 주었다⁠. 덕희가 손을 멈추고 목소리를 낮췄다⁠. 마늘과 젓갈 냄새가 둘 사이에 고였다⁠.

“⁠서방⁠, 혹시 이번 일⁠, 그것 때문에 그런 거면⁠…⁠…⁠.⁠”

“⁠장모님⁠.⁠”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가게 보증금이라도⁠…⁠…⁠.⁠”

“⁠장모님⁠, 그 얘기 여기서 하지 마세요⁠.⁠” 성규는 김치통 뚜껑을 덮었다⁠. “⁠지애 곧 와요⁠.⁠”

덕희가 입을 다물었다⁠. 김치 국물이 덕희의 손등을 타고 흘렀다⁠. 성규는 행주를 건넸다⁠. 덕희는 행주로 손등을 닦다가 성규의 손등을 한 번 두드렸다⁠.

*

저녁 식탁에 칼국수가 올라왔다⁠. 덕희가 파주에서 반죽을 밀어 비닐에 싸 들고 온 면이었다⁠. 멸치 육수 냄새가 부엌을 가득 채웠다⁠. 율비는 할머니 칼국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며 두 그릇째를 받았다⁠.

지애는 젓가락을 들지 않고 덕희를 보았다⁠. 덕희는 성규의 그릇에만 면을 두 번 더 얹었다⁠.

“⁠엄마⁠.⁠”

“⁠응⁠.⁠”

“⁠엄마는 왜 맨날 성규 씨 편이야⁠?⁠”

“⁠편은 무슨⁠.⁠”

“⁠내가 이혼한다는데 이유도 안 물어봐⁠. 전화로도 안 물었고⁠, 지금도 안 물어⁠.⁠”

덕희가 국자를 내려놓았다⁠. 국자가 냄비 가장자리에 부딪혀 맑은 소리를 냈다⁠.

“⁠이유는 뭐 하러 물어⁠. 안 하면 되지⁠. 성규 서방 같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엄마가 성규 씨를 얼마나 안다고⁠.⁠”

“⁠알지⁠, 왜 몰라⁠.⁠” 덕희의 목소리가 커졌다⁠. “⁠금요일마다 그 고생을 하는⁠…⁠…⁠.⁠”

덕희가 말을 멈췄다⁠. 성규의 젓가락이 그릇 위에서 멈췄다⁠. 지애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금요일⁠?⁠”

“⁠금요일마다 회사에서 늦게까지 고생한다고⁠. 서방이 그러더라⁠.⁠”

“⁠할머니⁠, 아빠 금요일에 회사 안 가⁠.⁠” 율비가 면을 후루룩 빨아들이며 말했다⁠. “⁠밤에 나가⁠. 아홉 시에⁠.⁠”

덕희가 국물을 마시다 사레가 들렸다⁠. 기침이 한참 이어졌다⁠. 성규가 물컵을 내밀었고⁠, 지애는 덕희의 등을 두드렸다⁠. 등을 두드리면서 지애는 성규를 보았다⁠. 성규는 물컵을 든 채 지애의 눈을 피했다⁠.

“⁠엄마⁠, 성규 씨 금요일에 뭐 하는지 알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덕희가 기침 사이로 말했다⁠. “⁠서방이 하는 일을 내가 어떻게 알아⁠.⁠”

“⁠방금 고생한다며⁠.⁠”

“⁠사위가 금요일에 고생하는 건 다 그렇지⁠. 원래 다 고생해⁠.⁠”

율비가 할머니와 엄마를 번갈아 보다가 그릇을 내밀었다⁠.

“⁠할머니⁠, 국수 더 줘⁠. 할머니 거짓말할 때 국수 많이 줘⁠.⁠”

덕희가 웃음인지 기침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면을 한 움큼 율비 그릇에 얹었다⁠. 지애는 끝내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육수가 식으면서 멸치 냄새가 비리게 변했다⁠.

*

설거지는 지애가 했다⁠. 덕희가 옆에서 행주를 들고 그릇을 받아 닦았다⁠. 물소리 사이로 거실 텔레비전 소리가 들렸다⁠. 성규가 율비 수학 숙제를 봐 주고 있었다⁠. 뉴스 자막이 화면 아래로 흘렀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 다시 올라⁠… 폐업 뒤 빚 남은 가게 늘어⁠」

“⁠엄마⁠, 금촌 가게는 어떻게 했어⁠?⁠”

“⁠닫았지⁠. 여섯 해 전에 닫았잖아⁠.⁠”

“⁠그건 아는데⁠. 가게 자리는⁠?⁠”

“⁠아직 보증금이 묶여 있어⁠. 주인이 새 사람 들어와야 준대⁠.⁠” 덕희가 그릇을 찬장에 올리다 말고 지애를 보았다⁠. “⁠그건 왜 물어⁠?⁠”

“⁠그냥⁠.⁠”

덕희는 대답 대신 다음 그릇을 받았다⁠. 지애가 수세미를 내려놓고 고무장갑 낀 손으로 개수대 가장자리를 짚었다⁠.

“⁠엄마⁠, 나 열 살 때 기억나⁠? 냉장고에 딱지 붙었을 때⁠.⁠”

덕희의 손이 멈췄다⁠. 행주에서 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기억나지⁠. 네가 딱지를 떼려고 했어⁠. 손톱으로⁠. 손톱이 다 일어났는데도 계속 긁었어⁠. 엄마가 말려도 안 들었어⁠.⁠”

“⁠그랬어⁠?⁠”

“⁠그랬지⁠. 그다음부터 너는 뭐든 엄마보다 먼저 정했어⁠. 이사 갈 집도 네가 골랐고⁠, 학교도 네가 골랐고⁠. 열 살이⁠.⁠” 덕희가 그릇을 찬장에 넣고 문을 닫았다⁠. “⁠엄마가 아무것도 못 정하는 사람이라서 그랬지⁠. 엄마 탓이야⁠.⁠”

지애는 개수대의 물을 내려다보았다⁠. 세제 거품이 배수구로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엄마 탓이라고 하면 내가 할 말이 없잖아⁠.⁠”

“⁠그러니까 할 말 없게 하는 거야⁠.⁠” 덕희가 행주를 짜서 걸었다⁠. “⁠서방한테는 할 말 많이 하고⁠.⁠”

덕희는 그렇게 말하고 율비 방으로 들어갔다⁠. 지애는 행주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세다가 고무장갑을 벗었다⁠. 금요일 이야기는 끝내 다시 꺼내지 못했다⁠.

*

밤 열한 시⁠, 덕희는 율비 방에서 율비와 같이 잠들었다⁠. 성규는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들고 현관을 나갔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내려가려고 비상구 문을 밀었다⁠. 10층과 11층 사이 계단참에 희철이 앉아 있었다⁠.

희철은 원두 봉지를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옆에 파란 서류철이 있었다⁠. 비상구 조명이 희철의 포마드 머리를 하얗게 비췄다⁠.

“⁠소장님⁠, 여기서 뭐 하세요⁠?⁠”

“⁠초인종 누를 자신이 없어서요⁠.⁠” 희철이 원두 봉지를 들어 보였다⁠. “⁠이거 드리려고요⁠. 이 집 커피 맛이 바뀌면 안 되잖아요⁠.⁠”

성규는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계단 난간에 걸어 두고 희철 옆에 앉았다⁠. 계단이 차가웠다⁠. 희철이 서류철을 펼쳤다⁠.

“⁠5동은 쉰 살 부부예요⁠. 숙려 중이고요⁠. 9동은 식당 하다 망한 집이고⁠, 12동은 남편이 투석을 받아요⁠. 세 집 다 그분이 제일 먼저 갔어요⁠. 제가 알려 드렸고요⁠.⁠” 희철의 손가락이 서류 위에서 멈췄다⁠. “⁠어제부터 그분한테 아무것도 안 보냈어요⁠. 문자가 열한 개 왔는데 하나도 안 열었어요⁠.⁠”

“⁠왜요⁠?⁠”

“⁠두 분이 같이 정했다는 말을 제가 전했잖아요⁠. 전하고 나서 보니까⁠, 그 말을 전하는 게 제가 할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럼 그분은요⁠? 사무실이랑⁠, 빌린 돈이랑⁠.⁠”

“⁠다음 달에 나가라고 하겠죠⁠. 그분은 숫자로 사는 분이니까⁠.⁠” 희철이 원두 봉지를 성규 무릎 위로 옮겼다⁠. “⁠다시 맡겨 주세요⁠. 수수료 안 받을게요⁠. 이번 한 번은⁠.⁠”

성규는 원두 봉지를 내려다보았다⁠. 늘 이 집 커피에서 나던 냄새가 봉지 틈으로 새어 나왔다⁠. 성규가 입을 열었다⁠.

“⁠아내가 정할⁠…⁠…⁠.⁠”

말을 하다 말고 성규는 입을 다물었다⁠. 열한 해 동안 같은 말을 했다⁠. 아내가 정할 거예요⁠. 아내한테 물어보세요⁠. 이 말을 하면 아무것도 안 정해도 되었다⁠.

“⁠아니요⁠. 같이 정할게요⁠.⁠”

*

비상구 문이 끼익 열렸다⁠. 지애가 서 있었다⁠. 맨발에 슬리퍼를 꿰고⁠, 잠옷 위에 성규의 회색 후드 집업을 걸치고 있었다⁠. 성규의 소매가 지애의 손등을 다 덮었다⁠.

“⁠다 들었어요⁠.⁠”

희철이 일어나려다 계단에 도로 주저앉았다⁠. 지애가 계단을 두 칸 내려와 성규 옆으로 왔다⁠. 성규를 내려다보았다⁠. 성규가 지애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같이 정한다는 것은 이런 모양이었다⁠. 말 한마디 없이 고개 하나로⁠.

“⁠소장님⁠, 다시 하세요⁠.⁠”

“⁠사모님⁠…⁠…⁠.⁠”

“⁠대신 하나만 해 주세요⁠.⁠” 지애가 후드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 여자한테 거짓말 하나만 더 흘려 주세요⁠. 이번에는 우리가 정한 거짓말로요⁠.⁠”

희철이 지애를 올려다보았다⁠. 비상구 조명 아래에서 희철이 처음으로 손님 앞의 웃음이 아닌 웃음을 웃었다⁠. 입꼬리 한쪽만 올라가는 웃음이었다⁠.

“⁠무슨 거짓말이요⁠?⁠”

지애가 성규를 보았다⁠. 성규가 지애를 보았다⁠. 둘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가⁠, 동시에 다물었다⁠. 지애가 열어 둔 비상구 문틈으로 덕희의 얼굴이 빼꼼 나왔다⁠. 손에 현관 신발장에서 떼어 온 노란 부적이 들려 있었다⁠. 덕희는 세 사람을 한 번 훑어보더니 아무 말 없이 비상구 문 안쪽에 부적을 꾹 눌러 붙이고 쏙 들어갔다⁠. 귀퉁이의 볼펜 글씨가 비상구 조명 아래에서 또렷했다⁠. 「⁠화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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