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576자)

미끼

이혼 숙려 기간 · 여시결

토요일 아침 여덟 시⁠, 식탁 위에 머그잔 두 개와 휴대전화 두 대와 볼펜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성규는 냉장고 문에 붙은 메모지들을 하나씩 떼어 뒤집어 놓았다⁠. 지애가 혼자 정한 일들이 식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부녀회장님한테는 6억 1천에 팔렸다고 하자⁠.⁠” 지애가 말했다⁠. “⁠그분은 들으면 십 분 안에 소통방에 올려⁠.⁠”

“⁠그럼 미끼가 아니라 방송이잖아⁠.⁠”

“⁠방송도 미끼야⁠. 그 여자가 소통방에서 보고 말하는지⁠, 따로 듣고 말하는지 보면 돼⁠.⁠”

성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향료를 섞을 때 일부러 넣는 대조군 같은 것이었다⁠.

“⁠약국장님한테는⁠?⁠”

“⁠당신이 집을 사기로 했다고⁠. 대출이 나왔다고⁠.⁠”

“⁠전세 집주인한테는⁠?⁠”

“⁠잔금을 7월로 미룬다고⁠.⁠”

“⁠소장님한테는⁠?⁠”

지애가 볼펜 끝으로 식탁을 두드렸다⁠. 희철의 이름이 나오자 둘 다 잠깐 조용해졌다⁠. 지난 삼 주 동안 이 집에 가장 자주 드나든 사람이었다⁠. 원두를 사 오고⁠, 은단을 씹고⁠, 손을 잡으라고 시킨 사람⁠.

“⁠다음 주 화요일까지 안 팔리면 5억 5천까지 내린다고⁠. 우리 둘이 같이 정했다고⁠.⁠”

“⁠같이 정했다는 말은 왜 붙여⁠?⁠”

“⁠소장님은 우리가 같이 정하는 걸 한 번도 못 봤으니까⁠. 그 말을 그대로 옮기면 소장님한테서 나온 거야⁠.⁠”

성규가 지애를 보았다⁠. 지애가 이런 계산을 하는 얼굴을 열한 해 동안 많이 보았다⁠. 대개는 성규 몰래 하는 계산이었다⁠. 이번에는 성규 앞에서 하고 있었다⁠.

율비가 잠옷 바람으로 방에서 나왔다⁠. 머리가 한쪽으로 뻗쳐 있었다⁠.

“⁠엄마 아빠 뭐 해⁠? 둘이 속닥거려⁠.⁠”

“⁠작전⁠.⁠”

“⁠무슨 작전⁠?⁠”

“⁠집 작전⁠.⁠”

율비가 식탁 위에 엎어진 메모지들과 엄마 아빠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둘이 같이 작전하는 거 처음 봐⁠.⁠”

율비가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지애와 성규는 서로를 보지 않고 각자 머그잔을 들었다⁠. 지애가 든 것은 이가 나간 손잡이 쪽 잔이었다⁠. 들고 나서야 알았고⁠, 내려놓지는 않았다⁠.

*

부녀회장은 놀이터 벤치에서 흰 개에게 간식을 먹이고 있었다⁠. 지애가 6억 1천이라고 말하자 부녀회장은 간식 봉지를 떨어뜨렸다⁠. 개가 봉지에 머리를 박았다⁠.

“⁠어머⁠, 어머⁠. 누가⁠? 언제⁠?⁠”

“⁠아직 비밀이에요⁠, 회장님⁠.⁠”

“⁠그럼⁠, 그럼⁠. 비밀이지⁠.⁠” 부녀회장은 이미 휴대전화를 꺼내 엄지를 놀리고 있었다⁠. “⁠비밀이니까 소통방에는 내가 조심해서 쓸게⁠.⁠”

지애가 놀이터를 나서기도 전에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물푸레4단지 소통방⁠」 「⁠경축 1101호 6억대 거래 소식 들림(⁠비밀⁠)⁠」 답글이 줄줄이 붙었다⁠. 「⁠역시 우리 단지⁠」 「⁠비밀인데 여기 왜 써요⁠」 「⁠비밀은 공유해야 지켜집니다⁠」

약국장에게는 조제실에서 말했다⁠. 약국장은 성규가 대출을 받았다는 말에 “⁠잘됐네⁠” 하고는 다시 약을 세었다⁠. 손이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약국장의 관심은 6월의 임대료에 가 있었다⁠.

부동산 문을 열자 은단 냄새가 났다⁠. 희철은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지애가 혼자 온 것을 보고 희철이 웃었다⁠.

“⁠사모님 혼자 오셨네요⁠. 남편분은요⁠?⁠”

“⁠율비 학원 데려다줬어요⁠.⁠”

희철이 종이컵에 커피를 따라 내밀었다⁠. 지애는 컵을 받아 들고 탁자 앞에 앉았다⁠. 커피는 1101호에서 내리는 것과 같은 원두였다⁠. 희철이 이 집 저 집 들고 다니는 원두였다⁠. 지애는 컵을 내려다보며 미끼를 꺼냈다⁠.

“⁠소장님⁠, 다음 주 화요일까지 안 팔리면 5억 5천까지 내릴게요⁠. 성규 씨랑 같이 정했어요⁠.⁠”

희철의 손이 은단 통 위에서 멈췄다⁠.

“⁠두 분이 같이요⁠?⁠”

“⁠네⁠. 같이요⁠.⁠”

“⁠잘하셨어요⁠.⁠” 희철이 은단 통을 열었다⁠. 알갱이 몇 개가 탁자 위로 굴렀다⁠. “⁠같이 정하신 거면 잘하신 거예요⁠. 그게 어렵거든요⁠.⁠”

희철은 탁자 위에 흩어진 은단을 손바닥으로 쓸어 모았다⁠. 지애는 커피를 반쯤 마시고 일어났다⁠. 문을 나서기 전에 뒤를 돌아보았다⁠. 희철은 모은 은단을 입에 넣지 않고 손바닥에 쥔 채 앉아 있었다⁠.

*

지애가 나가고 문에 달린 종이 멎은 뒤에도 희철은 한참 앉아 있었다⁠. 손바닥 안에서 은단이 땀에 녹아 끈적해졌다⁠. 희철은 휴지로 손을 닦고 책상 서랍을 열었다⁠.

서랍 맨 위에 하얀 봉투가 있었다⁠. 상가 관리사무소 이름이 찍힌 임대료 고지서였다⁠. 여덟 달치가 밀려 있었다⁠. 고지서 밑에는 차용증 사본이 있었다⁠. 3천만 원⁠, 빌려준 사람 석묘진⁠. 사무실이 한창 안 될 때 묘진이 먼저 와서 빌려준 돈이었다⁠. 묘진은 늘 제일 먼저 왔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1101호 소식 있어요⁠?⁠」

희철은 답을 치지 않고 창밖을 보았다⁠. 상가 유리문 너머로 4단지 7동이 보였다⁠. 열두 해 전까지 희철이 살던 동이었다⁠. 12층 끝 집⁠. 아내와 둘이 대출을 받아 산 집이었고⁠, 아들이 거기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열두 해 전 봄에도 숙려 기간이 있었다⁠. 한 달이었다⁠. 희철은 그때도 이 단지의 중개사였고⁠, 자기 집을 자기 손으로 내놓았다⁠. 손님이 올 때마다 아내와 다퉜다⁠. 손님 앞에서는 참으려고 했는데⁠, 참는 얼굴은 손님이 먼저 알아보았다⁠. 한 달 동안 아무도 사지 않았다⁠. 숙려 기간이 끝나는 날 아침⁠, 검은 코트를 입은 여자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금보다 열두 해 젊은 묘진이었다⁠. 묘진은 시세보다 칠천 싸게 불렀고⁠, 희철은 도장을 찍었다⁠. 아내는 판 돈의 절반을 들고 아들과 부산으로 내려갔다⁠. 희철은 남았다⁠.

사이좋은 집이 팔린다⁠. 희철은 이후로 손님마다 이 말을 했다⁠. 자기가 못 한 것을 남에게 시켰다⁠. 시키면 집이 팔렸다⁠. 집이 팔리면 묘진에게 연락했다⁠. 이 집은 안 팔리고 있다고⁠, 저 집은 급하다고⁠. 묘진은 늘 제일 먼저 갔다⁠.

희철은 은단을 한 알 꺼내 씹었다⁠. 화하고 쌉쌀한 냄새가 입 안에 퍼졌다⁠. 엄지가 화면 위에서 오래 멈춰 있다가 움직였다⁠.

「⁠다음 주 화요일까지 안 팔리면 5억 5천까지 내린답니다⁠. 부부가 같이 정했대요⁠.⁠」

보내고 나서 희철은 같이 정했대요⁠, 라는 글자를 오래 보았다⁠. 이런 말을 남에게 전한 것도 열두 해 만에 처음이었다⁠.

*

토요일 밤⁠, 율비가 잠든 뒤 지애와 성규는 거실 소파에 앉았다⁠. 손님도 희철도 없는데 소파에 나란히 앉은 것은 숙려 기간이 시작되고 처음이었다⁠. 둘 사이에 쿠션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누가 놓았는지는 둘 다 묻지 않았다⁠.

텔레비전 리모컨은 지애 손에 있었다⁠. 지애는 주말 드라마를 틀었다⁠. 성규가 손을 내밀었다⁠.

“⁠향신료 다큐 해⁠. 후추가 어떻게 유럽까지 갔는지⁠.⁠”

“⁠후추는 다음 주에도 유럽에 있어⁠.⁠”

“⁠드라마도 다음 주에 재방송해⁠.⁠”

지애가 주먹을 내밀었다⁠. 성규가 주먹을 마주 내밀었다⁠. 성규가 또 가위를 냈고⁠, 지애는 또 보를 냈다⁠. 지애는 펼친 손바닥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리모컨을 넘겼다⁠.

“⁠당신 가위만 내지⁠?⁠”

“⁠당신은 보만 내⁠.⁠”

“⁠언제부터 알았어⁠?⁠”

“⁠열한 해 전부터⁠.⁠”

화면에서 후추 상인들이 낙타를 몰았다⁠. 둘은 후추 이야기를 하나도 듣지 않았다⁠. 다큐 사이로 뉴스 속보 자막이 지나갔다⁠. 「⁠전국 아파트 거래 중 급매 비중 석 달째 늘어⁠… 미국 금리 동결에 대출 부담 여전⁠」 성규는 자막이 지나가는 것을 보며 5억 5천이라는 숫자를 생각했다⁠. 지애의 휴대전화는 소파 팔걸이 위에서 화면을 위로 한 채 조용했다⁠.

“⁠소장님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지애가 말했다⁠.

“⁠왜⁠?⁠”

“⁠손잡으라고 한 사람이잖아⁠.⁠”

성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쿠션 너머로 지애의 손이 보였다⁠. 소파 천을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성규는 손을 뻗지 않았다⁠. 손님이 없는 밤에 손을 잡는 것은 연기가 아니었고⁠, 연기가 아닌 것을 해도 되는지 성규는 몰랐다⁠.

*

일요일 아침 아홉 시⁠, 성규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가 아니었다⁠. 성규는 지애를 불러 스피커를 켰다⁠.

“⁠남편분⁠, 5억 5천까지 내리신다면서요⁠.⁠” 묘진의 목소리였다⁠. “⁠화요일까지 기다리실 필요 없어요⁠. 5억 4천에 지금 하시죠⁠. 오늘 오후에 가계약금 넣을게요⁠.⁠”

성규는 지애를 보았다⁠. 지애는 식탁 모서리를 쥐고 있었다⁠.

“⁠누구한테 들으셨어요⁠?⁠”

“⁠동네 분이요⁠.⁠”

“⁠생각해 볼게요⁠.⁠”

“⁠생각은 화요일까지만 하세요⁠.⁠”

전화가 끊겼다⁠. 지애가 소통방을 열어 보였다⁠. 6억 1천 이야기는 이백 개의 답글을 달고 아직도 달리고 있었다⁠. 묘진은 6억 1천을 말하지 않았다⁠. 7월 잔금도⁠, 성규의 대출도 말하지 않았다⁠. 5억 5천과 화요일만 말했다⁠.

성규는 눈을 감았다⁠. 목요일 오후⁠, 아무 냄새도 없던 상가 2층 방⁠. 공기청정기 두 대 사이로 아주 희미하게 코끝을 붙잡던 냄새⁠. 화하고 쌉쌀하고⁠, 끝이 조금 달았다⁠. 이름이 혀끝까지 왔다가 이번에는 내려가지 않았다⁠.

“⁠은단⁠.⁠”

“⁠뭐⁠?⁠”

“⁠그 여자 방에서 은단 냄새가 났어⁠. 아무 냄새도 없는 방에서⁠.⁠”

지애가 식탁 모서리를 놓았다⁠.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

일요일이라 부동산 문에는 「⁠휴무⁠」 팻말이 걸려 있었지만 불이 켜져 있었다⁠. 지애가 문을 두드렸다⁠. 희철이 문을 열고 두 사람을 보더니⁠, 아무것도 묻지 않고 길을 비켜 주었다⁠.

셋은 탁자에 앉았다⁠. 지난 토요일 계약서를 펴 놓았던 탁자였다⁠. 희철이 습관처럼 커피를 내리려고 일어났다⁠. 성규가 말렸다⁠.

“⁠소장님⁠, 커피 말고요⁠.⁠”

희철은 다시 앉았다⁠. 지애가 휴대전화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묘진과의 통화 기록이 화면에 떠 있었다⁠.

“⁠5억 5천은 소장님한테만 말했어요⁠.⁠”

희철은 화면을 보지 않았다⁠. 대신 책상 서랍을 열어 하얀 봉투와 차용증 사본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임대료 여덟 달치⁠. 3천만 원⁠.

“⁠제가 말했습니다⁠. 두 분 서류 내신 날부터요⁠. 사흘도⁠, 5월 6일도⁠, 남편분 대출 안 나온 것도요⁠.⁠”

지애가 숨을 들이마셨다⁠. 성규는 고지서를 보았다⁠. 희철의 목소리는 손님 앞에서 쓰는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왜요⁠?⁠”

“⁠저도 열두 해 전에 숙려 기간을 보냈어요⁠. 7동 12층⁠. 제 집을 제 손으로 내놨고⁠, 한 달 내내 안 팔렸어요⁠. 손님 앞에서 아내랑 싸워서요⁠. 숙려 끝나는 날 아침에 그분이 왔어요⁠. 칠천 싸게⁠. 제가 도장 찍었어요⁠.⁠” 희철이 차용증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그 뒤로 사무실이 어려울 때마다 그분이 제일 먼저 와서 빌려줬어요⁠. 이 상가도 그분이 샀고요⁠. 그분한테 갚을 수 있는 건 소식밖에 없었어요⁠.⁠”

“⁠우리한테 손잡으라고 한 건요⁠?⁠” 지애가 물었다⁠. “⁠그것도 그 여자가 시켰어요⁠?⁠”

“⁠아니요⁠.⁠” 희철이 고개를 들었다⁠. “⁠그건 진짜예요⁠. 사이좋은 집이 팔려요⁠. 이십 년 봤어요⁠. 저는 그걸 못 해서 제 집을 그분한테 팔았어요⁠. 두 분은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손잡는 거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어요⁠.⁠”

지애가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었다⁠.

“⁠오늘부터 소장님한테 안 맡겨요⁠.⁠”

“⁠알겠습니다⁠.⁠”

희철은 고개를 숙였다⁠. 성규도 따라 일어났다⁠. 문 앞에서 희철이 두 사람을 불러 세웠다⁠.

“⁠하나만 더요⁠. 그분이 왜 1101호를 그렇게 원하는지 아세요⁠?⁠”

지애와 성규가 돌아보았다⁠. 희철이 서랍에서 서류 세 장을 꺼내 탁자 위에 나란히 놓았다⁠. 가계약서 사본이었다⁠. 5동⁠, 9동⁠, 12동⁠.

“⁠그분이 가계약 걸어 둔 급매가 세 채 있어요⁠. 한 집은 숙려 중이고⁠, 한 집은 사업하다 망했고⁠, 한 집은 남편이 아파요⁠. 세 집 다 잔금 가격 칸에 이렇게 적혀 있어요⁠.⁠” 희철이 손가락으로 한 줄을 짚었다⁠. 「⁠1101호 실거래가와 같은 금액으로 한다⁠.⁠」

희철이 고개를 들었다⁠.

“⁠1101호가 5억에 팔리면 그 세 집도 5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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