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56자)

칼국숫집

이혼 숙려 기간 · 여시결

금촌 시장 골목 끝⁠, 「⁠덕희네 손칼국수⁠」 간판은 여섯 해째 불이 꺼져 있었다⁠. 셔터는 무릎 높이까지만 올라가 있었다⁠. 지애는 허리를 굽혀 셔터 밑으로 들어갔다⁠. 밀가루 냄새가 먼저 코에 들어왔고⁠, 멸치와 다시마를 우리는 냄새가 뒤따랐다⁠. 문 닫은 가게에서 나면 안 되는 냄새였다⁠.

덕희가 가게 안쪽 넓은 도마 앞에 서서 반죽을 치대고 있었다⁠. 들통 하나가 가스 불 위에서 끓었다⁠. 손님 탁자 다섯 개 위에는 의자가 거꾸로 올려져 있었다⁠.

“⁠엄마⁠, 가게 닫았잖아⁠.⁠”

“⁠닫았지⁠. 손이 안 닫혀⁠.⁠” 덕희가 반죽을 뒤집었다⁠. “⁠토요일마다 와서 육수 끓여⁠. 옆집 미용실이랑 철물점에 면 나눠 주고⁠. 안 하면 손이 근질거려⁠.⁠”

지애는 거꾸로 올려진 의자 하나를 내려 앉았다⁠. 의자 다리가 바닥 타일에 부딪혀 덜컥 소리를 냈다⁠. 벽에 붙은 메뉴판이 누렇게 바래 있었다⁠. 칼국수 칠천 원⁠, 수제비 칠천 원⁠, 김치만두 오천 원⁠.

지애는 오는 내내 할 말을 골랐다⁠. 엄마가 숨긴 것을 따질 말⁠, 남편이 숨긴 것을 따질 말⁠. 고른 말을 전부 내려놓고 하나만 물었다⁠.

“⁠엄마⁠, 금요일마다 성규 씨 어디 가⁠?⁠”

덕희의 손이 반죽 위에서 멈췄다⁠. 들통이 끓는 소리만 가게를 채웠다⁠. 덕희는 다시 반죽을 치대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세게⁠.

“⁠엄마⁠.⁠”

“⁠대리운전⁠.⁠”

덕희가 반죽을 도마에 내리쳤다⁠. 밀가루가 하얗게 피어올랐다⁠.

“⁠금요일마다 대리운전 해⁠. 두 해째⁠. 금리 오르고부터⁠.⁠”

“⁠왜⁠?⁠”

“⁠내 빚 갚느라고⁠.⁠”

지애는 의자 등받이를 쥐었다⁠. 덕희는 지애를 보지 않고 반죽만 보며 말했다⁠. 한 번 시작하자 말이 멈추지 않았다⁠.

“⁠여섯 해 전에 가게 닫을 때 빚이 있었어⁠. 은행 돈은 안 나와서 사채를 썼어⁠. 이자가 이자를 낳아서 사천이 됐어⁠. 어느 날 사람들이 가게에 와서 탁자를 발로 찼어⁠. 그날 밤에 서방한테 전화했어⁠.⁠”

“⁠왜 나한테 안 했어⁠?⁠”

“⁠너는 그달에 집 계약했잖아⁠. 대출 받고⁠. 너한테 말하면 네가 다 떠안을 거잖아⁠. 집도 무르고⁠, 대출도 더 받고⁠, 혼자 다⁠.⁠” 덕희가 반죽을 반으로 접었다⁠. “⁠서방이 그러더라⁠. 지애가 알면 지애가 다 떠안는다고⁠. 그러니까 자기가 하겠다고⁠. 신용대출을 오천 받아서 사채를 다 갚았어⁠. 그 뒤로 여섯 해 동안 다달이 서방이 갚아⁠. 지애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서방이 그랬어⁠. 나도 그러자고 했고⁠.⁠”

“⁠엄마가 그러자고 했어⁠?⁠”

“⁠엄마가 부끄러워서⁠.⁠” 덕희가 처음으로 지애를 보았다⁠. 눈가가 밀가루로 하얬다⁠. “⁠딸한테 빚 갚아 달라는 엄마가 되기 싫었어⁠. 사위한테는 되더라⁠. 그게 더 부끄러운 건데⁠, 그때는 몰랐어⁠.⁠”

지애는 일어나서 도마 앞으로 갔다⁠. 덕희가 반죽 한 덩이를 떼어 지애에게 내밀었다⁠. 지애는 받아서 치대기 시작했다⁠. 손바닥 밑에서 반죽이 차갑고 끈적했다⁠. 치댈수록 손에 힘이 들어갔다⁠.

“⁠금요일마다 나한테서 향수 냄새가 난다고 했어⁠. 모르는 여자 냄새⁠.⁠”

“⁠손님 냄새지⁠. 서방이 그러더라⁠. 금요일마다 미용실 원장이 회식을 한대⁠. 그 원장 향수가 독해서 옷을 빨아도 안 빠진대⁠.⁠” 덕희가 지애의 손을 잡아 멈췄다⁠. “⁠반죽은 세게 치대면 질겨져⁠. 살살 해⁠.⁠”

지애는 손을 멈췄다⁠. 반죽에 손가락 자국이 깊게 패어 있었다⁠.

셔터 밑으로 누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옆집 철물점 할아버지였다⁠.

“⁠덕희 씨⁠, 오늘 장사해⁠?⁠”

“⁠안 해요⁠! 여섯 해째 안 해⁠!⁠”

“⁠그럼 면이나 좀 줘⁠.⁠”

덕희가 비닐에 면을 담아 셔터 밑으로 밀어 주었다⁠. 할아버지가 지애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딸이야⁠? 서방은⁠? 금요일마다 오던 그 덥수룩한 서방⁠.⁠”

지애는 반죽을 쥔 채로 서 있었다⁠. 금요일마다 왔다는 말이 손바닥 안 반죽보다 무거웠다⁠.

해가 기울 무렵 덕희가 면을 비닐에 나눠 담아 지애의 손에 쥐여 주었다⁠. 봉지가 아직 따뜻했다⁠.

“⁠서방한테 미안하다고 해⁠. 엄마 대신⁠.⁠”

“⁠엄마가 해⁠.⁠”

“⁠엄마는 여섯 해 동안 했어⁠. 매달⁠. 서방이 이체했다고 문자 보내면⁠, 엄마가 미안하다고 답장했어⁠.⁠” 덕희가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보여 주었다⁠. 위아래로 「⁠장모님⁠, 이번 달 넣었습니다⁠」와 「⁠미안하네 서방⁠」이 번갈아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이제는 네가 해⁠. 엄마 말은 서방이 너무 많이 들었어⁠.⁠”

*

같은 시각⁠, 1101호 초인종이 울렸다⁠. 성규가 문을 열자 희철이 원두 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거실에서 율비가 슬라임을 주무르다 고개를 들었다⁠.

“⁠사모님은요⁠?⁠”

“⁠금촌 갔어요⁠. 장모님 댁⁠.⁠”

희철이 눈을 크게 떴다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거실로 들어왔다⁠. 식탁에 앉으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어제 보낸 거⁠, 그분이 안 믿었어요⁠. 답장이 이거예요⁠.⁠” 희철이 화면을 내밀었다⁠. 「⁠방 소장님⁠, 다음엔 좀 덜 달게 하세요⁠.⁠」

“⁠알아요⁠. 어젯밤에 그분 차를 몰았어요⁠.⁠”

희철이 휴대전화를 떨어뜨릴 뻔했다⁠. 성규가 짧게 이야기했다⁠. 대리운전⁠, 운정⁠, 딸기 방향제⁠, 5동 9동 12동⁠. 희철이 듣는 동안 은단 통을 열지 않았다⁠.

율비가 슬라임을 든 채 식탁으로 왔다⁠. 희철 앞에 서서 희철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아저씨가 우리 집 소문 냈어⁠?⁠”

희철이 율비를 보았다⁠. 손님 앞에서 쓰는 웃음을 지으려다 그만두었다⁠.

“⁠응⁠. 아저씨가 냈어⁠. 미안해⁠.⁠”

“⁠어른도 미안하다고 해⁠?⁠”

“⁠잘못하면 해야지⁠.⁠”

“⁠우리 엄마 아빠는 서로 미안하다고 안 하던데⁠.⁠”

희철이 성규를 보았다⁠. 성규는 머그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율비가 슬라임을 희철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이거 만져⁠. 만지면 마음이 좀 나아져⁠. 우리 반 선생님이 그랬어⁠.⁠”

희철은 초록색 슬라임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 주물렀다⁠. 은단 대신이었다⁠. 슬라임이 손가락 사이로 늘어지자 희철이 당황해서 성규를 보았다⁠.

“⁠이거 언제까지 주물러야 돼요⁠?⁠”

“⁠마음이 나아질 때까지⁠.⁠” 율비가 대답했다⁠.

“⁠아저씨는 좀 오래 걸릴 것 같은데⁠.⁠”

“⁠그럼 가져가⁠. 대신 돌려줘⁠. 그거 내 거 중에 제일 좋은 거야⁠.⁠”

희철은 슬라임을 통에 담아 양복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가 불룩해졌다⁠. 은단 통이 들어 있던 자리였다⁠. 거실 텔레비전에서 오후 뉴스가 흘렀다⁠. 「⁠다음 달 대출 규제 앞두고 수도권 급매 쏟아져⁠」 희철이 화면을 보며 말했다⁠.

“⁠다음 주가 고비예요⁠. 그분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월요일에 약국장님을 또 만난대요⁠. 상가 관리사무소에서 들었어요⁠.⁠”

*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도 지애는 한참 내리지 않았다⁠. 시동을 끄자 환풍기 소리만 남았다⁠. 열 해 된 회색 승합차 안에는 오래된 시트 냄새와 율비 과자 부스러기 냄새가 섞여 있었다⁠. 비 오는 날 창문을 닫으면 아기 분유 냄새가 난다고 성규는 우겼고⁠, 지애는 그럴 리 없다고 했다⁠. 지애는 창문이 다 닫힌 것을 확인하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분유 냄새는 나지 않았다⁠. 대신 운전석 머리받침에서 성규의 샴푸 냄새가 났다⁠. 지애가 운전한 날이 훨씬 많았는데도⁠.

맞은편 주차 칸에서 차 문이 쾅 닫혔다⁠. 쉰 살쯤 된 남자가 트렁크에서 종이 상자 세 개를 꺼내고 있었다⁠. 여자 하나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팔짱을 끼고 남자를 보았다⁠. 둘은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자가 상자를 안고 엘리베이터에 타자 여자는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 버튼 위 안내판에 「⁠5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희철의 서류철이 떠올랐다⁠. 5동은 쉰 살 부부⁠, 숙려 중⁠. 지애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것을 보았다⁠. 숫자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와 아직 내려오지 않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여자는 끝까지 팔짱을 풀지 않았다⁠. 지애는 핸들 위에 이마를 대고 한참 있다가 차에서 내렸다⁠.

*

지애는 저녁 아홉 시가 넘어 돌아왔다⁠. 손에 덕희가 싸 준 면 봉지를 들고 있었다⁠. 율비는 잠들어 있었다⁠. 성규가 거실 소파 끝에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지애는 면 봉지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밀가루가 식탁 위에 하얗게 묻었다⁠. 지애는 소파 반대편 끝에 앉았다⁠. 둘 사이에 쿠션 두 개가 있었다⁠. 지애가 쿠션을 하나 집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성규가 지애를 보았다⁠. 대답 대신 커피를 내리러 일어나려다가⁠, 다시 앉았다⁠.

“⁠당신이 알면 당신이 혼자 정하니까⁠.⁠”

“⁠뭘⁠?⁠”

“⁠다⁠. 장모님 빚도⁠, 갚는 법도⁠, 나도⁠.⁠” 성규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끊기지 않았다⁠. “⁠여섯 해 전에 당신은 이 집을 정했어⁠. 대출도 정하고⁠. 장모님 일을 알면 당신은 집을 무르든 대출을 더 받든 또 혼자 정했을 거야⁠. 그리고 혼자 미안해했겠지⁠. 나는 당신이 미안해하는 거 보기 싫었어⁠. 당신은 미안하면 더 혼자 정해⁠.⁠”

“⁠당신이 말을 안 하니까 내가 혼자 정했어⁠.⁠” 지애가 안경을 벗었다⁠. “⁠열한 해 동안⁠. 물어보면 당신은 그래⁠, 하고 커피를 내렸어⁠. 그래⁠, 라는 말로는 아무것도 같이 정할 수가 없어⁠.⁠”

“⁠알아⁠.⁠”

“⁠금요일마다 향수 냄새를 묻혀 오는데⁠, 나는 물어보지도 못했어⁠. 물어봤다가 진짜면 어떡해⁠. 그래서 내가 먼저 정했어⁠. 이혼⁠.⁠”

성규가 숨을 들이마셨다⁠. 거실 불빛 아래 지애의 맨눈이 작아 보였다⁠. 안경을 벗은 지애를 성규는 오랜만에 보았다⁠.

“⁠미용실 원장님이야⁠.⁠” 성규가 말했다⁠. “⁠금요일마다 회식해⁠. 향수를 두 번 뿌려⁠.⁠”

“⁠알아⁠. 엄마가 그러더라⁠.⁠”

“⁠장모님이 그것까지 말했어⁠?⁠”

“⁠철물점 할아버지도 알더라⁠. 금요일마다 오는 덥수룩한 서방⁠.⁠”

성규가 웃었다⁠. 지애도 웃음이 났는데⁠, 웃음 끝에서 콧날이 시큰했다⁠. 지애는 안경을 다시 썼다⁠.

“⁠그 오천⁠, 집 팔면 내 몫에서 갚을게⁠. 우리 엄마 빚이니까⁠.⁠”

말을 하고 나서 지애는 성규의 얼굴을 보았다⁠. 성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애는 방금 자기가 한 말을 귀로 다시 들었다⁠. 갚을게⁠. 묻지 않고⁠, 정했다⁠.

“⁠또 정했네⁠.⁠” 지애가 먼저 말했다⁠.

“⁠응⁠.⁠”

지애는 바닥에 내려놓은 쿠션을 내려다보았다⁠. 상담위원의 숙제를 떠올렸다⁠. 정하지 말고 묻기만⁠.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어⁠?⁠”

성규가 소파 가운데로 조금 옮겨 앉았다⁠. 남은 쿠션 하나만 둘 사이에 있었다⁠.

“⁠같이 정하자⁠. 하나만⁠.⁠”

“⁠뭘⁠?⁠”

“⁠숙려 끝나는 날까지 그분한테는 안 판다⁠. 5억 3천이든 5억 4천이든⁠. 율비가 그 방에서 자게 해 준다고 해도⁠.⁠” 성규가 지애를 보았다⁠. “⁠5동⁠, 9동⁠, 12동 사람들은 미안하지만⁠, 우리 집은 우리가 정한 값에 팔자⁠. 그 사람들 집은 그 사람들이 정하게 두고⁠.⁠”

지애는 오래 생각했다⁠. 예전 같으면 이미 정했을 시간이 지나도록 생각했다⁠. 냉장고 모터가 한 번 돌고 멈췄다⁠.

“⁠같이 정한 거야⁠?⁠”

“⁠같이 정한 거야⁠.⁠”

지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규도 끄덕였다⁠. 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누가 보았다면 희철처럼 손뼉을 쳤을 것이다⁠.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정이 조금 넘어 지애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약국장이었다⁠.

「⁠약사님⁠, 월요일 아침에 조금 일찍 나와요⁠. 상가 주인이 재계약 조건을 걸었어요⁠. 약사님 일이에요⁠. 미안해요⁠.⁠」

지애는 화면을 성규에게 보여 주었다⁠. 성규가 문자를 읽는 동안 지애는 성규의 얼굴을 보았다⁠. 이번에는 놀란 얼굴인지 놀란 척하는 얼굴인지 가려낼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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