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53자)

소문이 청첩장보다 빠르다

이혼식 플래너 · 석다감

10월 23일 토요일 새벽 네 시 오십 분⁠, 성수동 밀과달 본점은 주방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가게 유리문에 걸린 「⁠영업 전⁠」 팻말 너머로 스테인리스 조리대가 하얗게 빛났다⁠. 주희가 뒷문을 두드리자 남보란이 앞치마 차림으로 문을 열었다⁠. 가슴께에 「⁠보란⁠」이라고 수놓인 앞치마였다⁠. 지난번 걸이에서 손을 뻗다 거뒀던 앞치마를 아무도 없는 새벽에는 입고 있었다⁠.

“⁠들어와요⁠. 반죽 멈추면 안 돼요⁠.⁠”

큰 볼에 달걀이 서른 개쯤 깨져 있었다⁠. 보란이 거품기를 돌렸다⁠. 기계 소리가 주방을 채웠다⁠. 꿀 냄새와 달걀 비린내가 섞여 코끝에 닿았다⁠. 보란은 볼 가장자리를 손바닥으로 한 번 쳐서 거품 높이를 보고⁠, 꿀을 가늘게 흘려 넣었다⁠. 손목 안쪽의 하얀 수술 자국이 형광등 아래 드러났다⁠.

주희는 휴대전화를 조리대에 올려놓았다⁠. 화면에 노랗게 칠한 줄이 떠 있었다⁠. 「⁠무편집 원본 2부⁠: 1부 하늬⁠, 1부 윤 변호사님 제출용⁠」⁠.

보란은 화면을 보았다⁠. 거품기를 끄지 않았다⁠.

“⁠사촌 동생이 전체 답장을 눌렀죠⁠. 어제 밤에 걔가 울면서 전화했어요⁠.⁠”

“⁠알고 계셨네요⁠.⁠”

“⁠네⁠. 오실 줄도 알았어요⁠.⁠” 보란이 거품기를 껐다⁠. 주방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냉장고 모터 소리만 남았다⁠. “⁠실장님⁠, 저 거짓말은 하나도 안 했어요⁠. 정면에서 찍어 달라고 했잖아요⁠. 인사할 때 얼굴 잘 나오게⁠. 숨길 게 뭐 있냐고도 했고요⁠.⁠”

“⁠식을 증거 모으는 자리로 쓰시면⁠…⁠.⁠”

“⁠증거 모으려는 게 아니라 들으려는 거예요⁠.⁠” 보란이 체를 들어 밀가루를 쳤다⁠. 하얀 가루가 볼 위로 눈처럼 떨어졌다⁠. “⁠한 번이라도⁠.⁠”

*

보란은 반죽을 틀에 붓는 동안 말했다⁠. 손은 쉬지 않았다⁠.

“⁠2018년 3월 10일에 문 열었어요⁠. 반달 카스텔라는 그 전날 밤에 제가 처음 구웠어요⁠. 오븐 2번에서요⁠. 저 문 아래를 발로 차는 거⁠, 그때부터 그랬어요⁠.⁠” 보란이 틀을 오븐에 밀어 넣고 문 아래 모서리를 구두 굽으로 찼다⁠. 문이 딸깍 닫혔다⁠. “⁠사업자등록증엔 그 사람 이름만 있어요⁠. 보증금은 어머님 돈이고요⁠. 저는 레시피 노트랑 이 손목이 있어요⁠. 근데 윤 변호사님이 그러더라고요⁠. 법원은 노트 글씨보다 그 사람 입에서 나온 말을 더 무겁게 본다고⁠.⁠”

“⁠그래서 감사 인사를 하게 만드셨어요⁠?⁠”

“⁠제가 하게 만든 거 아니에요⁠. 그 사람이 하겠다고 했어요⁠. 저는 하늬한테 아빠가 인사하면 좋겠다고 한 번 말했을 뿐이에요⁠.⁠” 보란이 오븐 타이머를 돌렸다⁠. 「⁠40⁠:00⁠」⁠. “⁠십 년 동안 그 사람은 한 번도 ‘⁠우리 가게⁠’라고 안 했어요⁠. 손님한테도⁠, 어머님한테도⁠, 저한테도⁠. ‘⁠가게⁠’라고만 했어요⁠. 변호사님이 원고에서 ‘⁠우리⁠’를 지웠죠⁠? 저 그거 알아요⁠. 그 사람이 그 말을 할 수 있게 하려면 사람들 앞이어야 했어요⁠. 마이크가 있어야 했고요⁠.⁠”

주희는 조리대 모서리를 잡았다⁠. 스테인리스가 차가웠다⁠.

“⁠실장님⁠.⁠” 보란이 처음으로 반죽에서 눈을 떼고 주희를 보았다⁠. “⁠말하지 마세요⁠. 변호사님한테도⁠, 그 사람한테도⁠.⁠”

“⁠두 분 다 제 의뢰인이에요⁠.⁠”

“⁠알아요⁠. 그러니까 부탁드리는 거예요⁠.⁠” 보란이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말하시면 저 안 가요⁠. 둘이 같은 문으로 같이 들어와야 열리는 식이라면서요⁠. 하늬 춤도 없어지는 거예요⁠.⁠”

오븐 창 너머에서 반죽이 천천히 부풀기 시작했다⁠. 반달 모양 틀 열두 개가 노랗게 익어 갔다⁠. 주희는 대답하지 않고 뒷문으로 나왔다⁠. 골목은 아직 어두웠다⁠. 새벽 배송 트럭 한 대가 비상등을 켜고 지나갔다⁠.

*

소문은 월요일에 왔다⁠.

필름봄 사촌 동생이 영상 업체 사장들의 단톡방에 질문을 하나 올렸다⁠. 「⁠이혼식 촬영 원본을 변호사한테 줘도 법적으로 괜찮나요⁠?⁠」⁠. 질문은 지워졌지만⁠, 지워지기 전에 누군가 화면을 찍었다⁠. 화면은 웨딩홀 실장에게⁠, 웨딩홀 실장에게서 청담 웨딩인으로 넘어갔다⁠. 화요일 아침 솔지가 단톡방을 보여 주었다⁠.

「⁠연 실장 이혼식⁠, 알고 보니 소송 증거 찍어 주는 데래요⁠」

「⁠방송까지 탔던데 ㅋㅋ⁠」

「⁠신부들이 같은 홀 쓰기 싫다고 난리⁠」

「⁠큰 회사 나가더니 별걸 다 하네⁠」

주희는 화면을 끝까지 내렸다⁠. 솔지가 옆에서 숨을 쉬지 않았다⁠. 마지막 글은 화이트벨홀 신 실장이었다⁠. 처음으로 읽음 표시 말고 글을 남겼다⁠. 「⁠본인한테 직접 확인하세요⁠」⁠. 그게 신 실장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수요일 오후⁠, 신 실장이 전화했다⁠.

“⁠주희야⁠. 11월 27일 소연회장⁠, 같은 날 대연회장 신부님 두 팀이 대관을 취소하겠대⁠. 단톡방 캡처를 신부 엄마가 받았어⁠.⁠” 신 실장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미안해⁠. 계약금은 돌려줄게⁠. 위약금은 내가 막을게⁠.⁠”

“⁠실장님 잘못 아니에요⁠.⁠”

“⁠네 잘못도 아니잖아⁠.⁠” 신 실장이 말했다⁠. “⁠근데 이 동네는 누구 잘못인지 안 따져⁠. 소리 나는 데를 막지⁠.⁠”

전화를 끊자 휴대전화에 알림이 줄줄이 쌓여 있었다⁠. 마흔한 건의 문의가 하나씩 답장을 보내왔다⁠. 「⁠죄송한데 좀 더 생각해 볼게요⁠」 「⁠남편이 소송 얘기 듣고 싫대요⁠」 「⁠혹시 녹화는 안 하시죠⁠?⁠」⁠. 솔지가 숫자를 셌다⁠. 남은 문의는 아홉 건이었다⁠.

저녁에는 명순이 전화했다⁠. 인사도 없었다⁠. “⁠시장 사람들이 그러는데⁠, 당신이 소송 증거를 찍어 준다며⁠? 우리 아들 잡으려고⁠?⁠”

“⁠어머님⁠,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뭔데⁠?⁠”

주희는 대답할 수 없었다⁠. 무엇을 말하든 보란의 메일을 말하는 것이 되었다⁠. 떡 써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멈췄다⁠. “⁠답례떡 이백 개⁠, 쌀 불려 놨어⁠. 그거 버려야 돼⁠, 말아야 돼⁠?⁠”

“⁠불려 두세요⁠, 어머님⁠.⁠”

“⁠불린 쌀은 이틀 넘기면 쉬어⁠.⁠” 명순이 전화를 끊었다⁠.

밤 열 시에는 건우에게서 문자가 왔다⁠. 「⁠청담 웨딩인 캡처를 봤습니다⁠. 영상 업체 이름이 필름봄이더군요⁠. 사실입니까⁠?⁠」⁠. 단톡방 하나가 동네 플래너들보다 먼저 건우에게 닿아 있었다⁠. 주희는 답장 칸에 손가락을 올렸다가 내렸다⁠. 사실이라고 쓰면 메일을 넘기는 것이었고⁠, 아니라고 쓰면 거짓말이었다⁠. 휴대전화를 엎어 놓았다⁠. 십 분 뒤 한 통이 더 왔다⁠. 「⁠금요일 회의에 가겠습니다⁠. 답은 그때 듣겠습니다⁠.⁠」 휴대전화가 엎어진 채로 짧게 떨었다⁠.

*

목요일 저녁⁠, 국승현 피디가 촬영감독과 같이 사무실에 왔다⁠. 이번에는 미리 연락하지 않았다⁠.

“⁠실장님⁠, 지금 이게 진짜 그림이에요⁠.⁠” 국 피디가 문간에서 말했다⁠. 촬영감독의 카메라 빨간 불이 벌써 켜져 있었다⁠. “⁠방송 나가고 홀 취소당한 플래너⁠. 단톡방 캡처⁠. 실장님 얼굴⁠. 이거 하나면 본방송이 살아요⁠.⁠”

주희는 일어나서 문까지 걸어갔다⁠. 카메라 렌즈 앞에 손바닥을 들었다⁠. 건우가 첫날 그랬던 것처럼⁠.

“⁠피디님⁠, 준비 과정만 찍기로 했어요⁠.⁠”

“⁠이것도 준비 과정이죠⁠.⁠”

“⁠이건 망하는 과정이에요⁠.⁠” 주희는 손바닥을 내리지 않았다⁠. “⁠망하는 건 제 거예요⁠. 찍으시면 안 돼요⁠.⁠”

국 피디가 한참 주희를 보다가 촬영감독의 어깨를 두드렸다⁠. 빨간 불이 꺼졌다⁠. 문이 닫히고⁠,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 사이로 국 피디의 혼잣말이 들렸다⁠. “⁠아깝다⁠, 진짜⁠.⁠”

*

목요일 밤 주희는 접이식 침대에 앉아 클립보드를 무릎에 올렸다⁠. 맨 위에 하늬의 도화지⁠, 밑에 식순 일곱 줄⁠. 서로에게 드리는 감사 인사는 괄호를 지운 채 살아 있었다⁠. 감사 인사 줄이 사실은 덫이었다⁠. 덫을 놓은 사람은 십 년 동안 오븐 문을 발로 차 온 사람이었고⁠, 덫에 걸릴 사람은 인사를 하고 싶어서 변호사 몰래 밤 열한 시 사십 분에 전화한 사람이었다⁠.

말하지 않으면 식은 열렸다⁠. 잔금 구백만 원이 들어오고⁠, 하늬는 춤을 추고⁠, 방송은 준비 과정을 내보내고⁠, 월요일에 법원에서 영상 하나가 재생될 것이었다⁠. 말하면 보란은 오지 않았다⁠. 둘이 같이 들어와야 열리는 식은 열리지 않았다⁠.

주희는 탁상종을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소리가 나지 않을 만큼만⁠. 탓하지 않는다⁠. 둘이 같이 들어오고 같이 나간다⁠. 두 규칙 다 주희가 만든 것이었다⁠. 한 사람이 몰래 카메라를 세운 식장에서는 둘이 같이 들어와도 같이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

11월 5일 금요일 오후 네 시⁠, 기획 회의⁠. 규환과 보란은 계단참에서 기다렸다가 같이 들어왔다⁠.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했다⁠. 건우가 뒤따라 들어와 문 옆 의자에 앉았다⁠. 출구 옆이었다⁠.

주희는 탁상종을 탁자 가운데에 놓고⁠, 종 옆에 종이 한 장을 뒤집어 놓았다⁠.

“⁠식순 이야기 전에 말씀드릴 게 있어요⁠.⁠”

보란이 종이를 보았다⁠. 뒤집힌 종이 뒷면으로 노란 형광펜 자국이 비쳤다⁠. 보란의 얼굴에서 웃음이 천천히 빠졌다⁠. 주희는 종이를 바로 놓았다⁠.

“⁠식 당일 영상 업체 촬영표예요⁠. 감사 인사 장면을 무편집으로⁠, 마이크를 따로 달아서⁠, 원본 한 부를 아내분 변호사님께 드리게 되어 있어요⁠. 하객석 C 탁자 가게 직원분들 얼굴도요⁠.⁠”

규환이 종이를 집었다⁠. 오래 읽었다⁠. 읽는 동안 손등의 밀가루 자국을 엄지로 문질렀다⁠. 오늘은 밀가루가 묻어 있지 않았는데도 문질렀다⁠.

건우는 종이를 보지 않았다⁠. 보란을 보았다⁠. “⁠윤 변호사님 생각입니까⁠?⁠”

“⁠제 생각이에요⁠.⁠” 보란이 말했다⁠. 또박또박⁠.

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겼다는 얼굴이 아니었다⁠. 오래 기다린 서류가 결국 도착했을 때의 얼굴이었다⁠.

보란이 주희를 보았다⁠.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두 분 다 제 의뢰인이에요⁠. 한 분만 아는 카메라가 있는 식장에서는⁠, 두 분이 같이 들어와도 같이 들어온 게 아니에요⁠.⁠”

“⁠그럼 저는 안 가요⁠.⁠” 보란이 가방을 들었다⁠. 의자가 바닥을 긁었다⁠. “⁠규칙대로 하세요⁠. 식 없어요⁠.⁠”

보란이 문을 열고 나갔다⁠. 혼자였다⁠. 계단을 내려가는 구두 소리가 사층부터 일층까지 또박또박 이어졌다⁠. 규환은 종이를 든 채 앉아 있었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카메라 있어도 저는⁠…⁠.⁠” 거기까지 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규환이 촬영표를 반으로 접어 셔츠 주머니에 넣고 일어났다⁠. 문 앞에서 돌아보았다⁠. “⁠실장님⁠. 하늬한테는 제가 말할게요⁠. 식 없어졌다고⁠.⁠” 규환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느렸다⁠. “⁠토요일에 연습 가기로 했거든요⁠. 아빠한테 돌기 가르쳐 준다고⁠.⁠”

“⁠규환 씨⁠.⁠”

“⁠괜찮아요⁠. 저 원래 늦게 말하는 사람이에요⁠. 이번엔 좀 일찍 말해 볼게요⁠.⁠” 규환이 계단을 내려갔다⁠. 보란보다 느린 걸음이었다⁠. 사층에서 일층까지⁠, 보란의 구두 소리가 사라진 계단을 운동화 소리가 천천히 따라 내려갔다⁠.

건우가 서류 가방을 닫았다⁠. “⁠식이 없으면 제 의뢰인이 식장에서 할 말도 없습니다⁠. 월요일 일정을 당기겠습니다⁠. 협의를 정리하고 바로 서면을 준비하죠⁠.⁠”

주희는 종을 치지 않았다⁠. 아무도 탓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도 탓하는 말을 하지 않아서 식이 깨졌다⁠.

*

밤 아홉 시⁠,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하늬의 음성 메시지였다⁠. 숨이 찬 목소리였다⁠.

“⁠선생님⁠, 저 오늘 돌기 성공했어요⁠. 솔지 언니랑요⁠. 엄마 발 안 밟는 법도 알아냈어요⁠. 아빠한테 가르쳐 줄 거예요⁠. 토요일에 또 연습해요⁠?⁠”

주희는 음성 메시지를 두 번 들었다⁠. 세 번째에는 재생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클립보드 맨 위에서 크레파스 두 사람이 여전히 손을 잡고 있었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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